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368)
매국노의 원수 자식-368화(368/773)
368_불타오르는 화약고 (1)
1935년 10월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샌디에이고 항공기지 (Naval Air Station San Diego)에는 비상이 걸렸다.
“주말에 뭐 하는 거야, 시발, 진짜.”
래원이가 파일럿 재킷의 지퍼를 잠그며 투덜거렸다. 저 녀석 코믹스 읽거나 늦잠이나 잘 생각이었겠지.
“어이, 리 중위! 한국어로 욕하지 마, 다 알아들어!”
“죄송합니다, 아버-제독님···”
나한테 쪼인트 까인 래원이는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다른 파일럿들과 합류했다.
미합중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캘리포니아, 그것도 샌디에이고를 방문한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FDR은 정확히 나만 콕 집어서 보기 위해 굳이 샌디에이고로 행차하신 건 아니었다.
마침 샌디에이고에서 캘리포니아 태평양 국제 박람회 (California Pacific International Exposition) 가 개최되었고, 루스벨트는 이 행사에서 연설하러 올 예정이었다.
여기서 끝나면 괜찮겠지만, 나하고 엮이게 된 이유가 세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윌리엄 리히 중장.
몇 주 전에 항해국 국장 임기를 마친 그는 태평양 함대 전함대 사령관 (Commander Battleships, Battle Force/COMBATPAC)에 임명되었다.
대장 진급, 그리고 더 나아가서 해군참모총장 테크트리에 필수 과목 중 하나로 꼽히는 직책이었고, 해군참모총장과의 마찰도 제법 심했다더군.
그런데 내가 축하할 틈도 없이 리히는 나에게 충격과 공포의 제안을 꺼냈단 말이지.
‘리. 이번에 말이야, 각하께서 직접 오시는데, 제독 둘이서 기동훈련을 한 번 해봐야 하지 않겠나?’
‘나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규모로 생각하십니까?’
‘소소하게, 음, 130척 정도만 하자고.’
‘네?’
‘그리고 자네 기지에 정박해 있는 항공모함이랑 파일럿들도 동원할 수 있겠지?’
‘···네?’
처음엔 악질적인 농담이라고 생각했건만 리히는 그딴 농담 따위는 안 하는 인간이었다는 걸 떠올렸다.
이렇게 초대형 세러머니에 투입되는 것 외에도 FDR은 샌디에이고 항공기지를 직접 방문하겠다고 했고 심지어 나랑 개인적으로 할 얘기가 있다며 전화까지 했다.
하 씨 미치겠네.
리히와 루스벨트, 두 명의 절친이 나를 쌍으로 굴려 먹는구나, 젠장할.
그리고 마지막은 훈련 다 끝나고 볼 일이었고 어떻게 보면 정말 곤란한 일이기도 했지.
어쨌든, 이리하여 샌디에이고 항공기지의 항공모함과 파일럿들은 행사에 투입되고, 그 외 인원들은 기지를 광내느라 정신없게 되었다.
나도 거의 잠도 제대로 못 하고 뛰어다니는 건 마찬가지지만 부대원들한테 휴가나 보너스라도 좀 줘야겠군, 이거.
몇 주간의 준비가 끝난 후 루스벨트가 샌디에이고에 도착했고, 발보아 스타디움 (Balboa Stadium)에서 연설을 끝난 그는 순양함 USS 휴스턴 (CA-30)에 승선했다.
나 또한 리히와 함께 휴스턴에 탑승했고, 덕분에 그 엄청난 규모의 환영식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는 뿐만 아니라, 그 위용을 피부로도 느꼈다.
전함 12척과 순양함 17척을 포함한 130척이 넘는 함선이 전투 대형으로 움직인 후, 휴스턴을 향해 우렁찬 예포를 발포해서 한순간 귀가 안 들릴 지경이었다.
“이렇게까지 환영식을 준비할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지, 빌.”
“그저 각하 앞에서 선보이는 기동 훈련일 뿐입니다.”
어이, 이보세요 리히 제독님.
엄격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그런 뻔뻔한 거짓말을 하셔도 되는 겁니까?!
“그리고 리 제독이 마무리는 자신이 장식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길래 기회를 줬습니다.”
“···”
정말 뭐라고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속으로만 투덜거리면서 무전기를 통해 지시를 내렸다.
우우웅
“이런 세상에!”
무려 500기의 전투기가 휴스턴 위를 비행했고, (혼다 곶의 재앙에서 살아남은 몇 척도 포함한) 구축함들과 함께 성조기 색의 연막을 터트렸다.
껄껄 웃으면서 박수 치던 루스벨트는 갑자기 내 쪽을 쳐다보며 한 마디 날렸다.
“조금 실망이야, 리.”
“아니, 뭐가 말씀입니까···?”
FDR은 (래원이가 선두에서 조종하고 있는 것도 포함한) 전투기들을 가리키며 씩 웃었다.
“자네가 직접 비행할 줄 알았거든, 대전쟁의 스페이드 에이스로서 말이야.”
“엣.”
“농담일세, 하하하!”
50대가 넘어서 직접 전투기를 조종하는 해군 파일럿이라니. 내가 이성적이고 평범한 인간과는 거리가 멀긴 하지만 그 정도까지의 매버릭도 아니란 말입니다···
환영식-아니, “기동 훈련”이 끝난 후, 나, 리히, 그리고 FDR 3인방은 샌디에이고 항공기지···가 아닌 그 근처에 있는 RR 샌디에이고 지점으로 향했다.
루스벨트는 경호를 받는 의전 차량을, 나와 리히는 그 행렬 뒤에서 내 (크라이슬러에서 선물한) 개인차를 타고 따라갔다.
둘만 있게 된 순간, 리히는 그답지 않게 조금은 능글맞게 웃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환영식에 참석하느라 고생 많았어.”
“···‘기동 훈련’이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공식적으로는 그렇지.”
와.
역시 쓰리 스타는 대통령에게 아부할 때 창의력도 스케일도 둘 다 차원이 다르구나.
“정치인들과 엮이는 것도, 아부하는 것도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고, 리.”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리히는 근엄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워싱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굳이 캘리포니아로 도망까지 쳐 올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하네.”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만, 군인은 군대 일에만 신경 쓰는 게 마땅하지 않습니까.”
“이론상으로는 물론 그렇지. 하지만 자네 정도면 제독까지 올라간 시점부터 정치와 엮이는 건 불가피하다는 것도 잘 알 텐데 말이야.”
···하긴 뭐 오래전부터 두 명의 루스벨트를 후원해왔고, 캘리포니아 주지사도 내가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으로 앉혀 놓은 주제에 지금 와서 정치랑 손을 뗀다고 하면 웃기는 소리지.
툭툭
“그거 알고 있나, 리···”
자신의 계급장을 손가락으로 치던 리히는 곧이어 여러모로 충격적인 선언을 했다.
“···다음 해군참모총장은 내가 될 가능성이 크다네.”
음.
내가 뭔가를 마시지 않고 있어서 다행이다. 저 소식을 듣는 순간 바로 뿜었을 테니.
“현 참모총장 임기가 이제 1년 조금 더 남았지. 그래서 내가 이번 보직을 맡은 거야.”
“세상에나, 축하드립니다.”
“다만 조건이 하나 있지.”
“뭡니까?”
리히는 우리 앞에 가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차량을 가리켰다.
“각하가 재선된다는 전제하에서.”
“···아.”
현 해참총장 윌리엄 스탠들리 (William H. Standley) 제독과 사이가 안 좋다더니만. 그러고 보니 스탠들리가 리히를 꾸준히 리히를 한직으로 내몰려고 했다지, 아마.
“난 각하의 재선 가능성을 조금도 부정하지 않아. 물론 전함대 사령관 일도 절대로 소홀히 하지 않을 거고 말이야.”
당당하게 말하는 리히의 눈에선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저도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어느 쪽이 말인가?”
“둘 다입니다.”
리히가 해군참모총장이 됐는지 안됐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 그가 육·해군 최고사령관 참모총장(Chief of Staff to the Commander in Chief of the Army and Navy)이었던 걸 생각하면 안 됐을 리가 없지.
그리고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재선하는 거야 뭐···굳이 말이 필요하냐고.
“그렇게 말해주니 정말 고맙네. 만약 자네가 안 될 거라고 하면 솔직히 나도 포기할 것 같았거든. 다행히도 내가 그 직책을 맡는 게 재앙은 아닌 모양이군.”
“아니 거기서 그게-어휴, 뭐 어쨌든 그 날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툭.
그러자 리히는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니. 자네야말로 기대하고 있으라고.”
뭔가 엄청 위험한 미소를 지으면서.
저기요, 중장님. 뭘 기대하고 있어야 하는데요···?!
불길한 느낌이 들어서 질문할 틈도 없이 차량이 멈췄고, RR의 간판이 시야에 들어왔다.
“테디가 이 주점 체인을 그렇게까지 좋아했던 이유가 있었군.”
FDR은 주점 입구에서부터 보이는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사진과 그림을 가리키며 흐뭇하게 웃었다.
아, 저 양반 오늘따라 그립네. 테디씨, 아직도 당신 이름 빌려서 만든 테디 베어와 RR을 통해서 꾸준히 쓸어 담고 있고, 그 수익으로 루스벨트 일가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흑흑흑.
조금은 속물적인 생각을 하는 나는 FDR과 함께 2층이 아니라 1층에 있는 VIP룸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미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폐하.’”
“아니, 오히려 이 몸을 받아 들여준 것에 감사를 표하는 바요, 루스벨트 씨.”
VIP실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전 러시아 제국의 차르이자, 현 만주국의 ‘황제’ (그리고 어쩌다 보니 내 두 번째 사돈어른) 니콜라이 2세가 깍듯하게 FDR에게 인사했다.
그래.
재익이와 아나스타샤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미국까지 온 니콜라이 2세가 (이완용의 당부로) 캘리포니아에 머무르고 있다는 소식이 FDR의 귀에 안 들어갈 리가 없지.
‘내가 러시아 귀족, 그것도 무려 차르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혹시 만남을 주선해줄 수 있겠나?’
이걸 어떻게 거부하냐고, 젠장할.
“영국의 국왕과 사촌 관계라고 들었습니다만, 혹시 쌍둥이인 걸 제가 잘못 들은 겁니까?”
“그런 말 많이 들었고, 정확히 알고 있는 게 맞소, 하하하!”
밝게 미소 짓는 FDR과 니콜라이 2세는 악수를 나누기 위해 서로에게 손을 뻗었다.
그런데···
꽉
꽈아악
둘이서 손을 꽉 잡고 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몇 초 후에는 두 사람의 손에서 미세하게 힘줄이 튀어나오는 것도 보이잖아, 어이.
아.
이거 도대체 뭔 일이 일어나려는 거지.
*****
11월
독일국, 베를린
“부르셨습니까, 각하.”
“그래, 잘 왔어, 남작.”
루프트바페의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 중령은 넓은 탁자 뒤에 앉아 있는 히틀러 앞에 섰다.
리히트호펜은 늘 그랬듯이 사무실에 들어올 때 다른 장교들과는 달리 나치식 경례를 하지 않았지만, 히틀러는 그러려니 하고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내가 자네에게 임무를 내릴 게 있어.”
“뭡니까, 각하.”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리히트호펜은 책상 주변을 둘러봤으나 뭔가 군사 관련 서류를 찾아볼 수 없었다.
‘아 맞다.’
그러다가 헤르만 괴링에게 히틀러가 서류 작성 및 결재를 거의 안 하고 구두를 선호한다는 걸 떠올린 리히트호펜은 눈 대신 귀만 열었다.
그리고 명령을 듣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어···각하의 명령을 정리해보겠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탈리아군이 아비시니아군을 상대로 고전하고 있다는 게 맞습니까···?”
“그렇지.”
“그리고 저보고 무솔리니를 지원하러 가라는 말씀입니까···?”
“잘 알아듣는군.”
리히트호펜은 들은 내용을 믿기 힘들었는지, 아무 말 없이 눈을 여러 번 깜빡였다.
“정말로 이탈리아군이 아비시니아군을 상대로 고전하고 있다는 겁니까···?”
“그러게나 말이야, 하하하!”
의자에 기대어 앉은 히틀러는 한 손으로는 눈을 가린 채로 요란하게 껄껄 웃어댔다. 연극적인 자세가 이제는 일상적인 행동에도 배어 나오는 듯했다.
“웃기지 않나? 그 잘난 두체께서 우리의 도움을 요청했다고.”
비아냥거리는 히틀러가 쳐다보는 사무실 한구석에는 베니토 무솔리니의 흉상 하나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리히트호펜은 무솔리니 흉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놓여 있는 대일 리의 비스크돌에 더 시선이 갔다.
‘내 방에 저거 하나 구해서 놓을 수 없을까.’
그러나 애석하게도 지금 그가 베를린에서 머무르고 있는 하숙방은 너무 좁아서 저걸 또 놓기엔 어려울 것 같았다.
“어쨌든 간에 시간을 좀 줄 테니 괴링과 상의해서 지원군을 편성하게나.”
“···어 잠깐만, 진짜로 말입니까?!”
경악하는 리히트호펜과는 달리 히틀러의 표정은 너무나도 진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