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374)
매국노의 원수 자식-374화(374/773)
374_악의 추종자들 (2)
1936년 3월
플로리다, 펜사콜라
전쟁부 항공부장, 빌리 미첼 예비역 육군 대령의 장례식이 열렸다.
평생 창공을 바라보고 누비던 그를 애도해주기 위해서였을까, 푸른 하늘은 유난히도 넓고 구름 한 점 없었으며, 잔잔한 바다 또한 푸르름을 머금었다.
쓰러지기 직전까지 계속 항공력 강화에 힘써 왔던 그를 기리기 위해 육군과 해군 가리지 않고 참석한 장성만 거의 두 자릿수였다.
해군 측에선 2, 3대 해군 항공국 국장인 나와 어니스트 킹 소장, 그리고 항공대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었지만, 미 해군 최초의 항공모함 함장도 맡았던 윌리엄 리히 중장도 참석했다.
미첼의 철부지 없는 모습을 비웃어댔고 가끔 충돌도 했던, 어니스트 킹 소장의 신경질적이고 딱딱했던 얼굴에서는 희미하게나마 애도의 감정이 느껴졌던 것 같았다.
아 맞다, 리히는 중장이 아니라 대장(진)이구나. 아니 뭔데, 이 양반 전시도 아닌데 진급 속도가 왜 이렇게 고속을 넘어서 광속이냐···?
진짜 루스벨트가 재선되기만 하면 (당연히 성공하겠지만) 리히가 내년에 해군참모총장 되는 게 확정이겠네.
내가 재선이한테 마셜 라인 잘 타라고 한 것처럼 나도 리히 라인을 초창기부터 탄 게 곧 빛을 보겠군.
‘아니, 자네야말로 기대하고 있으라고.’
···샌디에이고에서 그가 나에게 보냈던 그 의미심장한 한마디가 불안하긴 했지만. 도대체 뭘 기대하라는 거지?
“리 제독. 그래서 선보이려는 게 뭐지?”
이 행사에 참석한 최고 권력자,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잠깐 빠졌던 잡생각에서 빠져나왔다.
내 정신 좀 봐, 각하께서도 오셨지, 참.
루스벨트가 미첼에게 그렇게까지 애착이 있었던 건 아니고, 마침 바하마 제도로 짧은 낚시 여행 휴가를 가기 위해 플로리다에 온 김에 참석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나름 좋은 기회라는 건 변하지 않았고 말이야.
내가 얼마 전에 펜사콜라 항공기지 사령관으로 부임한 윌리엄 홀시 대령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홀시는 고개를 끄덕이고 귀빈들을 이끌어 기지에 바로 붙어 있는 해변가로 향했다.
대공황 직전 기지사령관 시절, 한 번은 저기에 우리 마님도 모시고 와서 데이트도 했던 게 떠오르는 군, 큼, 크흠.
“준비는 다 됐어요, 선배님?”
“물론이지.”
홀시가 무전기에다가 지시를 내리니, 얼마 있지 않아 두 척의 군함이 나타나 귀빈들의 감탄사를 자아냈다.
하나는 별 볼 일 없는 오브라이언급 구축함 니콜슨 (Nicholson, DD-52).
또 한 척은···
“죽여주네.”
···요크타운급 항공모함의 제1 번함, 요크타운 (CV-5).
그것도 (내가 끈질기게 노래를 불러댄 덕분에) 무려 30년대 중반에 경사갑판을 장착한 최초의 항공모함이라니!
아,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어흐흑!”
“또 시작이네, 어휴.”
가슴에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고 홀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껄껄 웃어댔다.
캘리포니아를 떠난 홀시가 펜사콜라 항공기지에 도착한 바로 다음 날 그가 했던 전화가 떠올랐다.
‘세상에, 여기 시설 왜 이렇냐, 완전히 새롭게 정비되었는데?!’
‘아 그거 제가 사비 들여서 다 새롭게 뜯어고쳤거든요.’
그 사실을 들은 홀시는 한동안 말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수화기 너머에선 정적만이 가득했었다.
‘···당신은 신입니까.’
‘뭐, 병신도 신은 신이죠.’
‘뭐라고 벼웅싀인? 너 또 한국어로 욕했지?’
‘아니 어떻게 알았어요.’
‘네가 한국어 말하면 다 욕이잖아.’
하씨, 홀시 이 인간 눈치 보소.
“자 이번 목표는 전에 미첼 대령이 이뤄냈던, 항공기를 통한 군함 격침을 재현해보는 것입니다···”
홀시의 선언에 귀빈 중에서 이번 공연 기획에 도움을 줬던 어니스트 킹을 포함한 소수를 제외하고 술렁였다.
전에 리히가 FDR이 샌디에이고를 방문했을 때 훈련을 빙자한 환영식을 했던 걸 보고 배운 게 있었지.
“···다만 이번에는 우리 해군 항공대에서 새로운 변주를 넣어보기로 했습니다.”
사망하기 직전 미첼의 허가와 축복을 받은, 추도식과 훈련을 한 번 동시에 해보는 것으로.
부우우우웅
요크타운의 갑판 위에 있는 비행기 몇 기의 프로펠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만 함재기는 아니고.
미첼은 육해군 가리지 않고 다양한 종류의 항공기 개발에 힘을 썼고, 그중에는 당연히 저기 있는 B-18 (Douglas B-18 Bolo) 폭격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B-18을 선택한 건 절대로 내가 소유하고 있는 더글러스 에어크래프트 컴퍼니에서 개발한 폭격기라서 그런 게 절대 아니다. 아무튼 아님.
프슈우우욱!
시원스러운 소리와 함께 연기를 내뿜은 요크타운의 캐터펄트에게 엄청난 추진력을 받은, 복수의 B-18이 표적을 향해 비행했다.
그리고···
쾅!
콰콰쾅!
B-18이 투하한 폭탄 세례에 무참히 두들겨 맞은 니콜슨이 곧이어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침몰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루스벨트를 포함한 모든 관중이 박수갈채를 보냈지만, 난 절차 때문에 순양함 이상의 폐기 임박 군함을 동원하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었다.
아내의 등짝 스매싱 및 여러 가지 위험 요소 때문에 저 폭격기를 내가 직접 조종하지 못했던 것도, 젠장할.
한참 후, 억울하게 얻어맞은 니콜슨이 절반쯤 침몰했을 무렵 이번 폭격쇼에 투입되었던 폭격기들이 펜사콜라의 비행장에 착륙했다.
“항공모함에서 함재기도 아니고 폭격기를 띄울 생각을 하다니. 정말 대담하기 짝이 없군.”
나와 홀시 뒤에서 쌍안경으로 이번 퍼포먼스를 관측하던 리히가 혀를 찼다. 리히도 그렇고 킹도 그렇고 이번 실험을 성공시키기 위해 도와준 게 꽤 있었지.
“저 위에서 미첼 그 녀석이 네가 보낸 그에게 찬사를 잘 받았을 것 같군. 어쩌면 저 밑에서일지도 모르겠지만.”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다가 밑을 가리키며 농담을 날린 킹은 왠지 모르게 나를 수상쩍은 눈빛으로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사실 지금 이건 지극히 순한 맛에 불과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실전에선 저 폭격기들이 절대로 무사히 복귀 못 할 테니까.
*****
1936년 7월
스페인,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 외곽의 어느 조용한 가정집에서 활기찬 노랫소리가 청명하게 울려 퍼졌다.
“Hoy los buenos Españoles, en un abrazo de unión, luchan por la madre España∼”
기계공 부에나벤투라 두루티 (José Buenaventura Durruti Dumange)는 유명 가수라도 된 것처럼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꽃무늬까지 그려져 있는 화사한 앞치마를 둘렀다.
솨아아
덜그럭덜그럭
쉬고 있는 아내 대신 설거지를 하는 와중에도 두루티의 노래는 멈추지 않았다. 부엌일을 다 끝낸 두루티는 냉장고를 열어 시원한 코카콜라 한 병을 따서 들이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벌컥벌컥
“크~”
코카콜라 특유의 청량감에 두루티의 피부를 태우는 더위가 잠시 날아간 기분이었다. 하지만 콜라병을 완전히 비우고 로고를 본 순간, 그의 마음속에 약간의 씁쓸함이 맴돌았다.
코카콜라의 판매권을 소유한 태평양상거래개발조합 산하의 노동자들이 누리던 권리를 보고 스페인의 좌익 세력들은 이런 노동정책을 도입하자고 주장했다.
그 반면 우파는 PCDA가 자본주의자라는 가면만 쓴 순도 높은 공산주의자라면서 규탄했다. 그것과는 별개로 회사의 소유주, 미합중국 해군 소속 대일 리 소장은 모범적인 군인이라며 나름 우파의 군인들에게 칭송받는 모양이었다.
“하나만 해라고, 하나만, 쯧.”
똑똑똑
냉소적으로 투덜거리던 두루티의 귀에 누군가가 집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끼익
“이거 오래간만이군, 두루티.”
문을 연 두루티는 어색한 미소를 짓는 마르크스주의통일노동자당 (POUM)의 공동 창립자이자 실세 중 하나, 러시아의 원조 공산주의자 레프 트로츠키와 마주쳤다.
다른 자는 몰라도 이 자는 기계공이 아닌 아나키스트 지도자이자 혁명가인 자신을 찾아온 게 분명했다.
“혹시 불편한 시간에 찾아왔나?”
“아니요, 그냥 설거지만 하고 있었습니다.”
“거참. 칠레 사상 최초의 은행 강도도 저질렀던 당신이 이런 여자들이나 하는 일이나 하다니. 정말 의외군.”
“혁명에는 남녀가 없는 법 아니겠습니까. 구체제를 뒤엎겠다는 자들이 성역활이라는 구식 발상에 사로잡히는 건 우스꽝스러운 소리죠.”
“역시 자유여성단 (Mujeres Libres)도 창설한 단체에 몸담은 자다운 발상이군.”
고개를 끄덕이는 트로츠키에게 두루티는 짓궂은 농담을 던졌다.
“당신도 본받으시죠. 부인에게 사랑받을 겁니다.”
“미안하지만 난 결혼할 생각이 없어서 말이야. 충고는 고맙게 받아들이지. 들어가도 되겠나?”
두루티는 잠시 고민하다가 트로츠키를 초대하기로 했다.
“아빠, 누구예요?”
“우리 귀염둥이, 지금은 좀 올라가 있을래?”
앞치마를 벗은 두루티는 2층에서 밑을 내려다보는 자신의 딸, 콜렛 (Colette Durutti)에게 부드럽지만 진지한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가라고 지시했다. 두 번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용건이 뭡니까?”
“자네도 들었을 거야, 지금 아프리카부터 시작해서 장군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 말이지.”
“못 들어봤을 리가요.”
거실의 탁자에 앉은 트로츠키가 던진 질문에 두루티는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그리고 자네 같은 열혈 아나키스트가 이번에 가만히 앉아 있을 리가 없을 거라고 믿네. 아니, 솔직히 말해봐, 이미 민병대를 소집하고 있지?”
“···”
너무 많이 알고 있는 이 공산주의자를 지금 죽여야 하나 고민하는 두루티에게 트로츠키는 깜짝 놀랄만한 제안을 던졌다.
“두루티. 자네 같은 정말 독특한 아나키스트와 우리 POUM은 사실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더 많아. 하지만 말이야···”
트로츠키는 두루티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금 우파의 반란군이 바르셀로나를 점령하려고 한다네. 이번만이라도 임시 동맹을 맺는 게 어떻겠나?”
이제까지 살면서 들은 그 어떤 질문보다 무겁고 충격적인 질문에 두루티는 숨이 턱 막혀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도 두루티의 입가엔 묘한 미소가 피어나고 그의 손은 무의식적으로 움직여 트로츠키와 악수했다.
“걸리적거리지나 마시죠.”
한없이 위험한 조합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몇 개월 전
워싱턴 D.C.
해군 항공국장 어니스트 킹 소장은 그렇게까지 신앙심이 투철한 자는 아니었지만, 항공국 사무실로 돌아온 그는 어설프게나마 기도를 하고야 말았다.
“신이시여, 대일 리가 육군이 아니라 해군에 왔다는 사실에 감사드리옵나이다···”
대일 리 소장은 펜사콜라 항공기지를 뜯어고친 거로 모자라서 항공모함과 폭격기를 동원한 실험에 들어간 예산조차도 사비로 충당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게다가 그는 모종의 이유로 항공국장 자리에서 물러날 때, 항해국장 리히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차기 국장은 킹 말고 다른 인물은 없다는 걸 강조해줬다.
해군이라는 조직 차원과 개인적인 차원 모두에서 그에게 감사할 게 어찌 이리 많았을까.
피식 웃는 킹은 그 폭격 실험 관련 서류를 꺼내어 분석하고, 특히 캐터펄트와 격납고 관련 개선점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잠깐만.”
실험 결과를 살펴본 킹은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고 인상을 찌푸렸다.
드르륵
탁
갑자기 불안한 기분에 휩싸인 킹은 곧바로 태평양의 지도와 자를 꺼내서 거리 계산에 들어갔다.
항공모함과 폭격기.
미군이 그 두 개를 동시에 투입해야만 타격할 수 있는 표적이 과연 무엇이 있을까.
“···아니 이 미친놈이?!”
덜그럭
리의 의도를 파악한 킹은 경악을 하며 손에서 자를 떨어트렸다.
“세상에. 정말 한 나라를 처절하게 박살낼 생각이군···”
몇십 년간 스스로를 한결같이 멍청이라고 불러오던 자의 머릿속에서 나온 발상에 킹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