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390)
매국노의 원수 자식-390화(390/773)
390_폭풍의 유라시아 (6)
1937년 1월
스페인, 마드리드
터벅, 터벅
목에는 카메라, 손에는 수첩을 든 미국의 한 방문객이 몇 개월째 국민파 군대에 의해 포위된 마드리드 시내로 진입했다.
“이거 참. 신기하네.”
내전 발발 이전 때와 그렇게까지 다르지도 않은, 마드리드 시민들의 일상생활을 보고 방문객의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왔다.
시민들은 일터로 나갔고 전차들도 국민파 진영의 폭격과 사보타주 때문에 끊임없이 선로를 복구해야 하긴 했다만, 여전히 운용 중이었다.
챙이 넓은 검은색 모자를 쓴 방문객은 소소한 경외감에 사로잡혀 목에 걸린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다만 몇몇 마드리드 시민, 특히 그중에서 의용대원으로 보이는 자들은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순간 손으로 얼굴을 가리거나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를 피했다.
“리 부인이 방문객인 티를 너무 내지 말라고 했더니만, 사실이었나 보군···”
스페인의 다른 규모 있는 도시에서도 그렇듯이, 마드리드를 지키는 공화파 진영의 부대는 공성전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에 몰려든 방문객들의 관심을 받았다.
다양한 부류가 마드리드를 찾아왔지만, 그중 대다수는 기자들, 공화 정부의 지지자들, 또는 전쟁과 비슷한 스릴을 즐기려고 찾아온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세 가지 부류 모두에 해당하는 몇 안 되는 별종, 미국의 유명 기자이자 작가인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시민들의 눈빛을 유심히 관찰하며 수첩에다가 기록했다.
“이 재밌는 곳을 어떻게 마다할 수 있겠냐고.”
헤밍웨이의 (두 번째) 아내 폴린 (Pauline Marie Pfeiffer)은 안 그래도 대전쟁 당시에 큰 부상을 입었던 그가 다시 전쟁터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그의 성향도 성향이었지만, 타임지의 편집장이자 소유주, 세레나 리가 전적으로 헤밍웨이의 여행 경비를 충당해주겠다는 제안을 한 것도 절대로 무시할 수 없었다.
···다만 그가 스페인으로 오는 길에 유명한 여성 저널리스트, 마사 겔혼 (Martha Ellis Gellhorn)과 부적절한 관계를 시작한 걸 보면 폴린의 감이 맞았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읏차.”
적당히 필기를 끝마친 헤밍웨이는 만주 정교회 성당의 사제에게 선물 받은 갓을 벗어서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마음에 드는 모자긴 했다만 확실히 너무 시선을 끌긴 했는지, 몇몇 시민들이 자신의 방향으로 의심과 호기심, 그리고 짜증이 모두 뒤섞인 눈빛을 보내는 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시민들과 공화파 병사들은 전선의 병사들은 새로운 얼굴들, 특히 유명한 사람들의 방문을 좋아하기는 했다만 그들이 끼친 민폐 또한 무시할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적군을 자극하지 마시오···”
헤밍웨이는 방문객들, 특히 미국인 출신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현지인들이 건네준 책자를 하나 건네받아 읽었다.
책자의 내용에 의하면 전선에 찾아온 방문객들은 병사들로부터 소총이나 심지어는 기관총을 빌려서는 적군이 있는 쪽으로 발포하기도 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달까, 심지어 그렇게 스릴을 원하는 자들이 프랑코의 병사들을 자극하는 바람에 폭격을 받아서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부분을 읽은 헤밍웨이는 혀를 끌끌 찼다.
’그런 아까운 풍경을 놓치다니, 좀 더 빨리 올 걸 그랬나.‘
농담도 잠시, 헤밍웨이는 이번 여행 겸 취재의 후원자 중 하나인 대일 리 소장의 예측을 떠올렸다.
일상적인 모습을 유지하는 것도 잠시, 마드리드의 공성전은 폭격, 공습, 그리고 그 중간에 총격전만 일어나는, 춥고 배고픈 양상으로 바뀔 거라고.
“어쩐지.”
마드리드에서도 마카로니와 치즈를 포함한, 크래프트 사가 개발한 가성비 식료품 이름이 적힌 박스가 간혹 보였다.
마치 PCDA가 대전쟁 당시 솜과 파스샹달 등의 전장에서 싸우던 영국군에게 티백과 과자, 그리고 약품을 제공했듯이,
타임지에서 받은 막대한 선인세(?)를 떠올리자 헛웃음이 나오던 헤밍웨이는 지하철로 향하면서 잡담하는 시민들로 시선을 돌렸다.
누가 마드리드 관련해서 농담하지 않았던가. 전차는 전선을 통과할 수 없지만, 지하철은 전선을 지나 적진 후방까지도 갈 수 있다고.
실제로도 지하철을 이용해 병력과 보급품을 신속하게 전선으로 보내는 경우도 찾아볼 수 있긴 있었으니 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건 아닌 것 같았다.
전선에 있는 부대에 제대로 된 음식을 보급하는 게, 후방 진지에 있는 병사들에게 음식을 보급하기보다 훨씬 더 쉽다는 말이 나올 정도면 말 다 했다.
지하철을 보며 헤밍웨이는 마드리드의 업무가 다 끝나면 저걸 타고 카탈루냐 지역에 있는, 이번 내전에 참전한 자 중 가장 큰 거물 중 하를 만나보겠다고 결심을 내렸다.
“트로츠키 이 인간은 살아 있는지나 모르겠네.”
*****
2월
뉴 저지, 프린스턴
“눈이 있는 자는 보고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텐션이 하늘을 찌를 정도로 흥분한 니콜라 테슬라를 따라서 고등연구소 내부로 들어가니, 어, 정말 예상치 못한 물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씹-!”
그리고 그 기괴하기 짝이 없는 모습에 하마터면 쌍욕이 튀어나올 뻔했네, 어후 시발.
“소개합니다, 일렉트로와 그의 충견 스파코!”
이건 또 뭐야.
왠 로봇을 만들고 앉아 있냐고?!
키는 2미터, 무게는 뭐 적당히 100kg은 넘어 보이는 로봇, 그리고 그의 다리 옆에 붙은 목각 인형처럼 생긴 개를 보니까 할 말이 안 나오네.
기가 차서 멍하게 있는 나를 보고 테슬라는 오히려 더 흥분했는지, 열심히 이 망할 흉물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내후년 쯤의 뉴욕 세계 박람회 (1939 New York World’s Fair)에 전시할 물건인데 제독님이라서 특별히 미리 보여드리는 겁니다.”
“저기, 테슬라씨.”
위잉, 위이잉
여전히 싱글벙글한 테슬라가 리모트 컨트롤을 누르니 정말 불쾌한 골짜기가 뭔지 제대로 보여주는 일렉트로는 뻣뻣하게 움직여 댔다.
“음성 인식으로 걷고 머리랑 다리를 움직일 수도 있고요, 녹음기를 통해 무려 700개의 단어나 말할 수도 있죠. 게다가 세상에, 담배도 피우고 풍선도 터트릴 수 있는 최첨단 철인인 게 완전히 아놀드 암스트롱 상원의원 그 자체-”
듣다 못한 나는 (일렉트로보다는 자연스럽게) 팔을 들어 올려 테슬라의 말문을 막았다.
“이보세요.”
“···네네, 제독님.”
“제가 퍼부어 준 예산으로 이런 거나 만드셨습니까?”
내가 보내는 싸늘한 눈빛, 곧이어 그보다 더 싸늘해지는 연구실 내부의 공기를 느낀 테슬라는 식은땀을 흘리며 곧바로 태세전환에 들어갔다.
“아, 아하하하 물론 아니죠! 좀 더 제대로 된 물건도 만들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 그가 선사한 물건은 정말로 훌륭했다.
철컥철커덕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어색하게 웃는 테슬라가 나를 다급하게 데리고 간 다른 연구실에는 새로운 형태의 컴퓨터가 정교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 이렇게 나오셔야지.
“딱 봐도 정말 우수한 게 느껴지는 군요.”
“휴, 제독님 마음에 드셔서 다행입니다, 하하하···”
야 이거 진짜 대단한 물건이네.
방 한구석을 다 차지할 정도로 거대한 (그리고 리히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해군 소유로 만들었던) 마크 1 컴퓨터와 비교하면 지금 내 앞에 있는 컴퓨터는 크기가 1/4도 안 되는 것 같다.
게다가, 와, 진공관을 쓰고 있잖아?! 저기서 좀 더 업그레이드하면 바로 그 에니악도 나오겠네, 홀리쉣!
“이거 그러면 진짜로 디지털 컴퓨터인가요?”
“어, 그건 말이죠-”
그러자 연구실 안에서 나와 테슬라가 아닌 제3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밀히 따지자면 아닐 겁니다.”
아직 이름을 붙이지는 않은 컴퓨터 뒤에서 고등연구소의 신규 멤버, 앨런 튜링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아직 프로그래밍 자체는 안되거든요. 그러면 그냥 컴퓨터는 몰라도 디지털 컴퓨터라고 부르긴 좀 그렇죠.”
“하긴, 그건 그렇죠. 그래도 연립 일차 방정식 정도는 손쉽게 풀 수 있다고요, 제독님.”
튜링의 설명에 조금 보태며 고개를 끄덕인 테슬라는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리고 저 친구 말입니다, 아직 어리지만 과장 보태서 벌써 우리 중에서 최고의 컴퓨터 전문가일지도 모릅니다.”
“맙소사.”
“저 친구도 캘리포니아로 데려가실 겁니까?”
음, 내가 태평양상거래개발조합을 통해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진행하고 있는 초대형 프로젝트에 대해서 이 양반도 들어본 것 같네.
아 맞다, 뭔 소리 하고 있냐. 들어본 정도가 아니라 테슬라가 지금 이번 사업의 뿌리가 되는 핵심 인원 중 하나인데.
“일단 첫 번째 기업은 곧 세워질 예정이긴 합니다.”
얼마 전 내 회사에 장학금도 받은 적 있는 젊은 공학자 두 명이 투자 모집 광고를 보고 접근해왔다.
스탠퍼드 대학교 전기공학과 출신인 빌 휴렛 (Bill Hewlett)과 데이빗 팩커드 (David Packard)는 PCDA에게 약 500달러 정도의 투자금을 조심스럽게 요청했다.
정작 그들이 받은 건 10,000달러짜리 수표였고 말이지.
그렇게 팔로 알토 (Palo Alto)의 어느 차고에서 캘리포니아, 정확히는 곧 실리콘 밸리가 될 지역의 첫 번째 컴퓨터 기업이 탄생하게 됐습니다, 짜잔.
그나저나 저 두 사람, 이름이 참 익숙한데. 내가 기억하는 그게 아마 맞겠지···?
“과연 이게 어느 정도 규모까지 성장할지는 모르겠지만, 제독님이 손을 대는 사업이니 이 또한 대성공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봐주시니 고맙군요.”
“그리고 혹시···제가 죽기 전에 인간이 저 우주로 가는 모습을 볼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전에 얘기해주신 그 ‘스마트폰’이라는 물건이 현실화되는 것도?!”
“너무 급발진하진 맙시다···”
한 편 여전히 컴퓨터 뒤에서 진공관을 점검하던 튜링은 다시 고개를 들어 눈에서 무서울 정도의 광채가 흘러나오는 테슬라, 그리고 그 텐션을 못 따라가는 나를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아인슈타인 박사님이 제독님 보고 과학은 못 하지만 순수한 괴짜라고 하셨는데, 사실인가 보네요.”
아니. 내가 뭔 짓을 저질렀다고 아인슈타인한테도 괴짜 소리를 듣는 거지.
“박사님께 잘 알겠다고 전해주시죠, 튜링 씨···”
이건 뭐 영광이라고 해야 하나···?
“저도 ‘박사’입니다만···”
“어허, 아직 논문 심사 통과 안 하셨잖아요, 속이지 마시죠.”
“···윽.”
테슬라의 일침을 듣고 얼굴이 붉어진 튜링은 ‘몇 개월만 더···’라고 중얼거리며 컴퓨터 뒤로 숨어버렸다.
그래, 대학원은 힘들지···좀 더 힘내십시오, 튜링 박사(가 아직 되지는 못한 자)여!
그 외 버니바 부시와 존 폰 노이만 등의 과학자들에게 고등연구소에서 일어나는 사업에 대한 근황 설명을 듣고 연구소를 떠나기 직전, 난 뭔가 떠올라서 그들에게 주문을 넣었다.
“허 참. 초단파도 아니고 극초단파를 쓰는 탐지기라···”
이제까지 기세등등하던 테슬라는 그 제안을 듣고는 약간 얼굴이 굳었다.
”아, 이거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제독님···“
물론 그 또한 얼마 가지 않았다.
“···하지만 애초에 쉬운 일이면 저희에게 의뢰하실 리가 없겠죠. 해보겠습니다!”
테슬라의 그의 동료 과학자들의 확답을 듣자마자, 난 바로 (거액의 수표를 끊어준 뒤) 워싱턴으로 향했다.
···만 이번에는 해군참모총장 윌리엄 리히 대장이 나를 사무실로 호출해서 뜬금없는 소리를 하고 말았다.
“독일 어느 해군 제독이 너와 만나보고 싶다더군.“
”···잘 못 들었습니다?“
어.
나치놈들이 나한테 또 무슨 볼일이 있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