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391)
매국노의 원수 자식-391화(391/773)
391_폭풍의 유라시아 (7)
1937년 1월
중화소비에트공화국, 옌안
인간이 동굴을 주거지로 두는 걸 그만둔 지가 얼마나 됐을까.
서구인들, 특히 서유럽과 영미권의 자칭 문명인들은 최소한 원시시대가 지난 후부터는 그런 군상은 사라졌을 거라 주장했을 것이다.
“으흐으으음···”
그러나 서양인들이 독특한 삶의 형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는지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마오쩌둥 (毛泽东, 모택동)이 알 바는 아니었다.
산시성의 황토고원에서 제법 흔히 볼 수 있는, 동굴을 깎아서 만든 집 문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그의 손에는 굳은살이 가득했다.
동굴 앞에 작은 텃밭 하나를 가꿔서 직접 조달한 담배는 여러 가지 의미로 각별한 맛을 자랑했으나, 재고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빨리 줄어드는 모습은 불안했다.
“···좀 더 아껴서 피워야 하려나.”
몇 걸음 안 되는 거리에 있는 텃밭으로 눈을 돌린 마오쩌둥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담배 외에도 다른 작물을 키우는 여러 밭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최근에는 자신을 포함한 홍군의 손은 총이나 칼 같은 무기보다는 괭이나 호미 같은 물건을 더 많이 들었을 것이다.
물론 서양의 순진한 선교사들이 성경에서 자주 인용하듯, 병기를 녹여서 농기구를 만드는 그런 낭만적인 낙원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또한 투쟁이리니.”
홍군의 수뇌부가 지금 이 지역에서 모든 것을 자력으로 마련하는 것은 순전히 ‘자력갱생’과 ‘생산투쟁’이라는 공산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는 삶의 자세였다.
···절대로 돌변한 장제스에게 공산당 세력이 사실상 궤멸하여, 여기까지 도망쳐와서 간신히 연명하는 게 아니었다.
증오와 원망이 가득한 마오쩌둥은 저 멀리 만주국의 수도, 하얼빈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쳇.”
만주국의 사정을 정확히 알지는 못했으나, 그 기괴하기 짝이 없는 누더기 국가는 마오쩌둥에게는 마굴 그 자체로 보이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스탈린이 처음으로 (그 당시엔 그나마 비폭력적으로) 소련 내의 정적을 제거하기 시작한 시점이 만주국 총리 이완용과 만나고 온 후부터였던 것 같다.
그 뒤로 얼마 있지 않아, 공산당 세력을 축출하고 말살하려 들던 장제스도 그 전에 하얼빈을 방문했었고.
툭.
얼굴이 일그러진 마오쩌둥은 다 피운 담배꽁초를 땅에다 버렸다. 아직 희미하게 남은 담배의 향 외에도 흙냄새가 그의 코를 채웠다.
“그 빌어먹을 뱀의 혓바닥이 나를 여기까지 몰아붙인 건가.”
장제스가 자신이 이 총리에게 속았다는 걸 깨달은 시점에는, 이미 만주국이 쉽게 공격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모습을 보고 후회했을 거라는 상상만이 마오쩌둥에게 위안을 가져다줬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총리와 만나고 그의 농간에 넘어가는 바람에 괜히 일을 망치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행이고 자신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절대로 만주의 일부 군벌과는 달리, 만주국이 자신의 세력과는 교우하는 걸 거부해서 기분이 상한 게 아니었다.
만주국은 물론이고 장제스도 지원한, 이 총리의 아들 이대일 제독이 소유한 태평양상거래개발조합 또한 중국 공산당에게는 극도로 적대적인 의사를 표출했다.
“···”
자신이 뭐라도 잘못 했던 것일까.
다만 개인적으로 만주국 (그리고 PCDA)을 향해 가진 악감정과는 별개로, 그 나라를 어떻게 할 방법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자세히는 추정할 수 없지만, 우선 몇십만 명의 군대를 운영하고 유지하는 것만 해도 중국 공산당 같은 세력은 알아서 엎드려야 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만 했으니까.
···어느 세력이 얼마 전 자신에게 연락해서 중국 공산당의 협력을 요청하는 손길을 보내기 전까지는.
제법 공식적인 그 편지의 내용을 떠올리며 음흉한 미소를 짓던 마오쩌둥은 땅에 버린 담배를 짓밟아 남은 불꽃을 완전히 꺼트렸다.
“과연 누구의 투쟁이 더 강한지 보자고, 이씨 부자여.”
*****
2월
워싱턴 D.C.
“부르셨습니까, 참모총장님.”
“어서 오게, 리 제독-아니, 이제는 리 국장이라고 불러야 하나.”
“하하하···”
해군참모총장 윌리엄 리히 대장의 책상 위에는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개발한 마크 2 (가제) 컴퓨터의 사진과 설명서가 펼쳐져 있었다.
사실 얼마 전에 나와 리히의 주도하에 태평양상거래개발조합은 미합중국 해군과 비밀 계약을 하나 했지.
PCDA의 자본이 투입돼서 개발되는 발명품과 기술의 현황은 제일 먼저 해군에게 보고하고, 납품하는 경우에 육군과 민간기업에 비해서 혜택을 끼얹어준다.
그 대신 나와 기업이 해군에게 받는 건, 뭐···어후.
“또 뭔가 대단한 물건을 만들어놨군. 마크 1 컴퓨터도 함포 사격장치에 통합이 완료되었는데 이건 얼마나 성능이 뛰어날지 기대가 돼.”
“아직 프로그래밍 자체는 안되니 너무 기대하지는 마시길 바랍니다.”
“그건 내가 판단하지.”
말은 단호하게 했지만, 그의 입가에 뭔가 흐뭇한 미소가 흘러나오는 게 보이네. 솔직하시군, 흐헤헤헤.
“그건 그렇고,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참모총장님?”
“독일의 어느 해군 제독이 자네를 만나보고 싶다더군.”
“···잘 못 들었습니다?”
어.
나치 놈들이 나한테 또 무슨 볼일이 있길래···?
“그보다 우선 하나만 물어보지. 해병대사령관 (Commandant of the Marine Corps)과는 어떻게 말이 잘 됐나?”
“아, 그거 말씀입니까? 덕분에 잘 흘러간 것 같습니다.”
최근에 1차 대전 때 같이 싸웠던 전임 해병대사령관 존 레쥰 소장의 소개로 토마스 홀콤 (Thomas Holcomb) 소장과 만난 적이 있었다.
다만 한가지 문제가 생기긴 했지.
‘···’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 보군요?’
···입 밖으로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하필 이 양반 또한 인종차별주의자였다는 점이 말이다.
뭐, 그래도 윌슨이나 대니얼스급은 아니고 그냥 이 시대의 평균 수준이라서 나를 불쾌하게 보는 건 정도는 그냥 무시할 수 있었다.
‘그건 아니고, 그냥 익숙치 않아서 말이죠.’
···그리고 1차 대전 당시의 나는 소령 나부랭이라서 꿇릴 게 많았지만, 지금은 제독이라 이겁니다.
게다가 레쥰 소장과 초대 항공국장 윌리엄 모펫 제독 사이를 조율해서 서류에만 존재하는 게 아닌, 훈련소와 편대도 갖춘 제대로 된 미 해병 항공대를 창설한 것도 이 몸 되시겠습니다.
아, 해군참모총장 겸 비공식 해군장관 리히가 혹시 해군이나 해병대 내에서 누가 내 인종 가지고 물고 늘어지면 자신한테 보고하라고 지시한 것도 있고.
“정확히 무슨 얘기를 나눈 건가.”
“신형 총기 도입 관련이었습니다. 아, 물론 해병대에게 예산이 떨어진다는 전제하에 말입니다.”
“한번 알아맞혀 보겠네. 그 총기를 생산하는 회사가 PCDA의 계열사 맞지?”
···아씨, 나라는 인간이 너무 뻔해졌나.
“그것과는 별개로 윈체스터 리피팅 암스 컴퍼니 (Winchester Repeating Arms Company)가 신뢰 가는 기업이지 않습니까.”
“그런 것 치고는 대공황을 버티진 못했지만.”
브라우닝이 콜트 사와 더불어서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많이 작업한 총기 회사 중 하나인 윈체스터는 약 6년 전 대공황 당시 많은 기업이 그랬듯이 뭐 박살이 났다.
짜잔, 그리고 법정관리 상태에 들어갔다가 회사 자체가 경매에 들어간 윈체스터를 날름 삼켜버린 게 바로 PCDA였지.
게다가 마침 이미 내가 존 모제스 브라우닝 옹과도 몇십 년간 일하면서 M1907 권총, PPS 기관단총, 그리고 카빈 소총 등 여러 가지 총기를 만든 적도 있는지라 명분도 충분했고.
“훗.”
이젠 숨기지도 않는 나의 뻔뻔한 면상을 본 리히는 잠시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뭔가를 세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세고 있는 게 두 자릿수가 넘자 어처구니가 없어서 아예 할 말을 잃었는지 그저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
“장하군, 리 제독. 자네 손으로 미국의 온 군수 사업을 장악해버리게나.”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결국은 민간사업이 더 달달합니다.”
벡텔의 회장한테 슬슬 건물과 송유관 외에 선박 건조 기반시설도 갖춰 놓으라고 지시한 걸 알면 더더욱 기겁하겠군.
아, 프랭클린 D. 루스벨트한테 미 해군 해상위원회(United States Maritime Commission)에 대해서도 제법 상세하게 언질을 받았으니, 그 정도는 알려나.
“아무래도 볼티모어에 있는 자네 집에는 금괴가 수십 개는 쌓여있을 것 같군.”
내 집은 아니지만, 만주국이 스페인에서 받은 수백 톤의 금괴 중 일부가 샌프란시스코로 와서 PCDA 관리하에 있긴 하지, 큼, 크흠.
“에헤이, 절 너무 과대평가하지 맙시다, 참모총장님.”
“···내가 말을 말아야지.
분명히 뭐라고 할 말을 하려다가 포기한 듯한 리히는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쨌든, 독일의 손님은 빌헬름 카나리스 소장일세. 그것도 자네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정보국 국장이고.“
빌헬름 카나리스라. 아씨, 들어본 것 같기도 한데. 생각이 안 나네,
아씨, 전생에서 역사책 좀 더 읽어야 했는데.
“음, 이런 인물을 제가 직접 만나보는 게 참모총장님이 보시기엔 현명한 것 같습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어, 솔직히 카나리스 제독은 어느 정도 위험인물이기도 하지. 하지만 말이야···”
정작 그러면서 리히는 나를 보며 더 위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잠재적 적성국의 고위급 인물과 접촉하는 건 전시보다는 평시에 해보는 게 더 좋지 않겠나?”
도대체 나를 왜 그렇게 신용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리히를 말릴 수는 없어보였다.
“씁, 알겠습니다. 어디서 만나면 되겠습니까?”
*****
만주국, 하얼빈
똑똑똑
실내가 과도할 정도로 동양풍으로 꾸며진, 한 장성의 관사 안에서 목탁 두드리는 소리가 청명하게 울려 퍼졌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머리를 삭발하고 승복을 입은 만주군 소속 로만 운게른 슈테른베르크 중장은 너무나도 경건하게 염불을 외웠다.
처음에는 맨 처음의 몇 구절만 외울 수 있었던 운게른이었으나, 20년이 지난 지금은 끝까지 전부 다, 그것도 러시아어와 한국어를 포함한 여러 국어로 외울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다.
‘모두 부질없도다···’
세상에 평화가 온 것 같지는 않다만, 그렇다고 운게른이 꿈꿔왔던 공산주의자들 또는 일본군과의 최종결전 또한 그저 신기루처럼 느껴졌다.
나이도 나이겠다, 오히려 전역만이 고행하는 부처를 유혹하는 마라의 세 딸처럼 성큼성큼 다가오는 중일 뿐.
그래.
이미 러일전쟁에서, 그리고 만주국 건국 초창기 때 충분히 파괴의 쾌락을 즐기지 않았던가. 지금은 마음의 번뇌를 모두 내려놓을 때다.
소크라테스가 나이를 먹는 건 감정과 욕구라는 폭군에서 해방되는 길이라며 말한 걸 보니, 정령 온 세상에는 부처의 말씀이 가득했다.
따르르릉
염불을 외우고 편안한 박자의 목탁 소리로 방을 가득 채우는 운게른의 귀에 전화소리가 들려왔다.
“세상에, 그게 사실입니까? 네. 네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드디어어어어어!!!!!!”
운게른은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환희에 가득차 짐승처럼 포효했다.
쾨직
잠깐 전만 해도 두드리던 목탁을 무심하게 짓밟아 부수고 승복을 거칠게 벗어젖힌 운게른은 당장 군복을 차려입고 관사 밖을 뛰쳐나갔다.
“비켜, 다 비켜!”
지나가는 사람들을 모두 밀치고 달려가는 운게른의 얼굴에는 평온함이 순식간에 증발해버렸다.
“난 이날만을 위해 살아왔다, 크하하하하하하하!!!!!”
이제는 오직 광기와 살의만이 가득 찬 그의 입가엔 흉악한 미소가 피어나면서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났다.
드디어 오고야 말았다.
전장에서 그 누구보다 행복한, 미친 남작으로 돌아올 때가.
*****
워싱턴 D.C.
“대일 리 제독님.”
“카나리스 제독님.”
올드 에빗 그릴의 VIP룸에서 내가 태어나서 처음 만나보는 독일 제국이 아닌, 나치 독일의 인사인 빌헬름 카나리스 소장과 마주쳤다.
인사를 꺼낸 카나리스는 단신이었는지 나를 약간 올려다보고 아주 잠시 입이 벌어졌지만 곧이어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여기까지 오신 걸 보니 굉장히 중요한 용건인가 봅니다?”
“그 유명한 리 제독님을 실제로 뵙는 건 처음입니다. 실물이 훨씬 더 괜찮군요.”
“뭐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생각하는 그 민망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끔찍한 물건이 독일에도 전파된 건 아니길 바란다, 제발!
하지만 카나리스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내 빈약한 상상력으로 생각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더 끔찍했다.
“우선, 제가 일정이 급한지라 결론으로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총통 각하께선 제독님께 관심이 많으시고, 미 해군과 좀 더 긴밀한 관계를 맺으시길 원합니다.”
뭐.
이 미친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