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398)
매국노의 원수 자식-398화(398/773)
398_배신과 야만 (2)
1937년 4월
소비에트 연방, 모스크바
소련 극동군 사령관, 그리고리 쿨리크 대장은 미신에 의존하는 자는 아니었다.
볼셰비키가 집권하기 시작한 이후로 – 좋든 나쁘든 – 수백 년간 광활한 대지에 뿌리내린 전통과 종교관은 대부분은 처참하게 무너져내렸다.
슬라브족의 민간설화는 그 와중에도 여전히 살아남았으며, 소련의 어린이들은 부르주아를 (그리고 최근에는 NKVD 요원도) 아이들을 잡아먹는 요괴, 바바 야가처럼 묘사하기도 했다.
“그리고리.”
“서-서기장 동지···”
그리고 해가 잘 들지 않는 사무실에서 냉랭한 표정을 지은 채로 자신을 노려보는 스탈린 앞에 선 쿨리크는, 어두운 숲속에서 바바 야가를 마주친 미아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소련의 서기장으로서, 러시아에서 숨 쉬는 모든 인간의 생살여탈권을 거머쥔 이오시프 스탈린은 그의 이름만 부드럽게 읊은 후 한동안 그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달까,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부들부들 떠는 쿨리크는 차라리 그가 눈을 부릅뜨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갈고리에 거꾸로 매달린 돼지의 어느 부위에 칼날을 밀어 넣어 도려낼지 고민하는, 도살자의 눈빛을 띠던 스탈린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고 드디어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보게나.”
마름 침을 꿀꺽 삼킨 쿨리크는 얼마 전에 일어난 할힌골 전투, 아니, 할힌골 참사에 대해 본인의 입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게 말입니다···”
이미 스탈린에게는 장문의 전투 보고서를 보냈고, 그의 성격상 내용을 전부 다 기억할 정도로 살펴봤겠지만, 무능한 죄인의 입으로 고해성사를 직접 듣고 싶었으리.
쿨리크는 이번 패배를 최대한 정당화해보려고 했으나, 적게 계산해도 1개, 최대한 많으면 무려 3개 사단을 단 한 달도 안 돼서 손실했다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었다.
안 그래도 이미 차가운 돌 같은 스탈린의 얼굴은 쿨리크의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더욱 굳어져 갔다.
“만주로 떠나기 전에 자네는 6주 안에 이 전쟁을 끝내겠다고 당당하게 선포했지. 그런데 지금 보니 끝장난 게 만주군이 아니군.”
자신의 앞에 놓인 서류를 읽는 스탈린은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펜을 매끄럽고 능숙하게 돌려대며 냉소적인 평가를 했다.
저 펜 돌리기를 누구한테 배웠는지 궁금했던 클리크였으나, 지금 물어보면 저 펜촉이 자신의 머리에 박힐 것 같기에 그 대신 어떻게든 자신의 목을 보존해보려고 변명을 생각해봤다.
“만주 놈들의···포병이 생각보다 훨씬 더 막강했습니다.”
“원래 전쟁의 신은 포병이야, 만주군은 전례 없는 광신교도 집단이고. 그래서 포병총감도 맡았던 포병장교 출신인 자네를 보낸 게 아닌가.”
툭.
세 손가락 사이에서 빙그르르 돌던 펜이 우뚝 멈췄다.
“나는 자네에게 실망했어.”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짧은 한마디에 쿨리크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고, 당장에라도 서기장의 발 앞에 엎드려 기도하려는 걸 겨우 참았다.
“서-서기장 동지, 한 번만···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이번엔 반드시-”
“아니, 괜찮네.”
스탈린은 손바닥을 들어 올려 두려움에 사로잡혀 애걸하려던 쿨리크의 입을 막아버렸다. 그러나 그다음에는 의외의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그동안···고생했으니 좀 쉬는 게 어떻겠나.”
예상치 못할 정도로 따스한 말을 듣자, 쿨리크는 눈가에 감동의 눈물이 고이기 직전까지 갔다.
“극동에는 새로운 사령관을 보낼 테니까.”
잠시 희망을 되찾았던 쿨리크의 가슴 속에는 다시 깊은 절망감이 가득 찼다. 그러나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었기에 그는 그저 조용하고 무기력하게 사무실을 떠나야만 했다.
오랜 친우가 사무실을 완전히 떠나자, 스탈린은 NKVD 국장 니콜라이 예조프에게 그를 감시 대상에 넣어놓으라고 지시했다.
다른 장성이었으면 진작에 계급장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뜯고 NKVD에 넘겨 가혹한 고문으로 거짓 자백을 끌어낸 후 총살했겠지만, 지금은 우선 그냥 한직으로 내몰기만 할 생각이었다.
만약 쿨리크가 조금이라도 군인으로서 양심이 있다면 스스로가 얼마나 큰 은혜를 누리는지 알고나 있는 게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좀 더 만주를 포함한 극동지역에 대한 이해도, 아니, 전반적인 전술과 기동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를 갖춘 장군을 보내는 게 좋을 터.
포병 위주인 만주군의 약점을 그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집요하게 파고들어 격파할 만한 자가 한 명 떠올랐다.
“투하쳅스키-”
미하일 투하쳅스키 원수를 호출하려던 스탈린은 지금 그가 어디로 갔는지 떠올리고 손을 멈춘 뒤,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투하쳅스키가 아직도 소련에 있어서 당장에 그를 보냈으면 정말로 쿨리크가 호언장담했듯이 만주국을 6주 안에 점령시켰을 가능성도 있었을까.
곧이어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처음부터 가능했을 리가 없지.”
어느 나라가 됐든 간에, 꽤 막강한 군사력을 갖춘 나라가 불과 6주 만에 함락되는 게 말이나 되는가.
지극히 비현실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흠.”
스탈린은 사무실에 있는 지도로 시선을 돌렸고, 극동 쪽을 바라봤다.
어쩌면···새로운 조력자들을 끌어들이는 것도 방법이라면 방법일 터.
*****
스페인, 게르니카
게르니카 시에서는 불지옥이 펼쳐졌다.
“음메에에에!”
꺼지지 않는 화염에 휩싸인 양과 소 떼들이 고통과 공포에 사로잡혀 건물들 사이를 뛰어다녔다.
애석하게도 스페인의 바스크인들이 성스럽게 여기고,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도시의 절반 이상이 타올랐다.
물을 찾을 수 없었던 짐승들은 그들처럼 불이 붙거나 무너진 건물 사이에서 비명을 지르면서 날뛰다가 쓰러져 죽어 나갔다.
도시에 펼쳐진 참상은 지옥 혹은 드디어 세상에 도래한 종말로 묘사해도 될 풍경이었으나, 지신과 자연의 개입 없이, 순전히 악의에 가득 찬 인간이 일으킨 대재앙이었다.
정확히는 부르고스에서 출발해서 게르니카에 약 세 시간 동안 20분 간격으로 체계적인 융단 폭격을 퍼부어댄 3개의 비행대대가 일으킨.
구성원 모두가 집의 잔해와 흙더미에 파묻힌 가족들 또는 피난민 수용소로 몸을 피했다가 오히려 거기서 깔려 죽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거나 들리지 않는 비명을 질러댔다.
일부 시민들은 얼굴과 옷이 검게 물든 채로 연기와 먼지 사이로 자욱한 거리를 넋이 나간 채 비틀거리며 돌아다녔다.
좀 더 기력이 남아 있는 자들은 파묻힌 가족이나 친구를 찾으려고 돌무더기를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맨손으로 파헤치기도 했다.
투둑
“으으으윽···”
그나마 가볍게 쌓인 어느 돌 더미 속에서 어느 미국인이 신음과 함께 매우 힘겹게 기어 나왔다.
얼굴이 피와 먼지로 뒤섞인 그를 본 몇몇 게르니카 시민들은 자신들이 찾던 자인가 싶어서 희망을 품고 다가왔으나, 동양인 티가 나는 걸 보고는 다시 절박한 구조 작업으로 복귀했다.
“맙소사···”
몸을 털면서 주변에 일어난 참상을 목격하는 록히드 에어크래프트 컴퍼니의 엔지니어, 제이크 리는 특이한 점이 많은 20대 청년이었다.
대부분 주변인에게는 그는 주로 해군부의 이단아 그 자체인 대일 리 제독의 아들이자, 러시아의 황녀와 결혼한 검은 머리 도련님이라는 부분이 자주 언급되었다.
아버지와 아내 모두 존경하는 그였으나, 제이크는 어렸을 때부터 항공기에 관심이 많았고, 시력이 매우 좋았다는 점이 더 부각 되길 바랐다.
우우우웅
···그 덕분에 얼마 전 불길한 소리를 내며 게르니카 시의 창공을 나는 육중한 비행기, 그리고 거기서 떨어지는 게 뭔지 파악할 수 있었으니.
우선 그는 전차처럼 묵직한 엔진 소리를 내며 날아와 화물 문을 여는 비행기가 독일 공군의 폭격기, 융커 52 (Junkers Ju 52)라는 걸 알아채고 당황했다.
다음에 그 폭격기들에서 금속 종이로 만든 비행기처럼 떨어지는 알루미늄 튜브 모양의 물건들이 소이탄이라는 걸 확인하고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본능이 그를 움직였다.
‘모두 피해!!!’
제이크는 어설픈 스페인어로 외치며 온 힘을 다해 달려나갔으나, 얼마 있지 않아 폭격의 충격파에 휩쓸려 정신을 잃었다.
“···”
살면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파괴의 현장에 압도된 제이크는 연기, 먼지, 화약, 그리고 비명에 뒤덮인 도시를 멍하게 바라봤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피해 현장을 분석해서 융커 52기들이 투하한 폭탄에는 소이탄 외에도 소형과 중형 폭탄이 섞여 있을 거로 추측했다.
털썩
박살난 돌덩이들이 가득한 거리를 하염없이 걷던 제이크는 주변에서 짙게 피어오르는 죽음의 냄새에 사로잡혀 다리에 힘이 풀렸다.
“우욱!”
구토를 내뱉는 걸 겨우 참았다.
독일 공군이 이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
붉은 남작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이 몸을 담고, 한때 아버지가 소속되어 있던 미군 항공대보다 훨씬 더 동경해왔던 그들이.
“이럴 수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복잡한 생각이 제이크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가득 채웠다. 도무지 결론이 나오지 않는 무거운 사색에 빠지기 전에 그는 고개를 조금은 어지러울 정도로 저었다.
지금은 움직일 때였다.
제이크는 섬뜩한 오렌지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봤다. 지금까지 이렇게 오싹한 석양을 보는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의 쌍둥이 형, 제이슨은 보너스 군대 사건 당시 – 퍼싱 원수가 현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 시위대에게 돌격하려던 조지 S. 패튼과 기병대를 온몸으로 막아섰다.
물론 온 사방에서 뛰어다니던 아버지가 한 일에 대해선 말하는 것 자체가 실례일 터.
“···등짝이 남아나려나 모르겠네.”
주변을 둘러보던 제이크는 곧바로 건물의 잔해에 깔려서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생존자에게 달려갔다.
···그가 제일 먼저 미국에 생존보고를 날려야 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는 조금 시간이 지나야만 했다.
*****
메릴랜드, 볼티모어
“어후, 다행이다.”
“당신 닮아서 그런지 명줄은 정말 질기네요···”
게르니카 공습 사건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던 나와 세레나는 천하의 불효자식, 이재익이 보낸 전보를 받고는 겨우 안심했다.
’생존. 걱정 불필요. 조만간 귀국.‘
야 이 개-아니, 내 새끼야.
걱정하지 말라고? 그리고 당장도 아니고 ‘조만간’은 또 뭔데, 그 꼴을 보고서 아직도 안 돌아와?!
재익의 생존 확인에 눈물을 흘리며 나를 껴안던 아내는 이제는 더욱 더 끔찍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대일, 혹시 있잖아요-”
“몇 번이나 말했지만, 안 돼요. 네이비 씰 부대 파병하는 건 제 권한이 아니라고요. 아, 그리고 용병부대 보내지도 말고요.”
“그치만···”
그녀는 당장에라도 용병단을 보내서 프랑코를 철저하고 조지고 싶었고, 내가 말리지 않았으면 진짜로 그랬을 것 같네, 어후.
그래도 대신 링컨 여단을 포함해 미국의 의용병들을 향한 대대적인 홍보와 금전적인 지원까지는 허용했다.
사실 그녀보고 뭐라 할 수 없었던 게, 나도 록히드 에어크래프트 사장을 볼티모어로 소환해서 사자후를 외치려다가 그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참았다.
아니 글쎄 재익이 이놈이 스페인에, 그것도 하필 게르니카에 갈 줄 누가 알았겠냐고. 그거 예측할 수 있을 정도면 상태창 한 번 외쳐봐야지.
그러나 우리가 재익이 때문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지 며칠, 아니,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이번에는 다른 아들놈이 편지를 보내왔다.
정확히는 필리핀에서 더글러스 맥아더, 그리고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와 세 얼간이를 찍고 있는 재선이가 보낸.
게다가 우리 아드님께서 다급히 보낸 전보에 이어, 며칠 후에는 이제 아버지(…)가 하얼빈에서 당혹감이 가득한 편지 한 통을 보냈다.
놀랍게도 두 사람이 보낸 내용의 주역은 동일했다.
“아니 미친.”
“···어머, 맥아더 장군님이 무슨 바람이 드신 거죠?”
맥가놈 너 이 새끼 필리핀에서 조용하고 호화롭게 지내는가 싶더니만 이번엔 또 뭔 개 짓거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