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404)
매국노의 원수 자식-404화(404/773)
404_만주와 스페인 (4)
1937년 5월
스페인, 바르셀로나
“으어어어어어어···”
스페인의 공화파를 지원하기 위해 온 영국의 작가, 에릭 블레어 (Eric Arthur Blair)는 한 손을 목에 대고 조용히 발성을 해봤다.
얼마 전 블레어는 시가전을 치르던 중에 저격을 당해 목에 총을 맞았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불과 몇 밀리미터 차이로 총알이 경동맥을 비껴간 덕분에 그는 바르셀로나의 병원으로 옮겨져 겨우 목숨을 건졌다.
“하이웨이 투 더 데인저 존···”
영국에서도 대흥행했던 미국의 액션 영화, ‘더 매버릭’의 주제곡을 힘겹게 흥얼거리려고 했으나, 목에서는 포드 자동차의 브레이크처럼 삐걱대는 소리만 힘없이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그의 192cm에 달하는 장신은 참호전에서는 명백히 불리하게 작용했던 모양이다. 틈만 나면 고개를 들어 고지대 쪽을 살펴보던 습관도.
그래도 살아남은 걸 보면, 대전쟁 당시 애드리언 카튼 드 워트 장군이나 대일 리 제독에게 불사의 가호를 베풀어줬던 신이 자신에게도 일부나마 선사한 게 틀림없다.
“뭐 하세요, 오웰 씨, 목이 제대로 회복될 때까지 입 다물고 계시라고 했잖아요!”
“켁, 케헥···죄송합니다.”
본명보다는 블레어의 필명 “조지 오웰 (George Orwell)”을 아는 사람이 더 많아졌고, 그의 어설픈 발성 연습을 듣고 와서 다그치는 간호사 또한 예외가 아닌 듯했다.
그 정도로 작가로서 유명해진 이상, 이런 상황에서도 오웰은 자신의 사명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슥, 슥슥
목과는 달리 손은 멀쩡했기에 오웰은 먼지와 얼룩이 페이지 다수에 묻어있는 수첩을 꺼내 그나마 깔끔한 부분에 펜을 댔다.
오웰에게는 목에 총을 맞는 건 너무나 흥미로운 경험이었기에 반드시 기록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처럼, 자신 또한 아메리칸미디어컴퍼니 산하 출판사를 통해 미국에서 대박낼 수도 있을지 누가 알겠나.
“인생 참···”
이 세상은 절대로 완벽하지 않았으나, 어쨌든 간에 오웰에게는 너무나도 잘 맞는 곳이었다. 이런 세계에 원치 않는 작별을 해야 했다는 사실에 화가 솟구쳐 올랐다.
고작 순간의 부주의로 인해 더럽고 하찮은 참호 한구석에서 죽어야 한다는 사실이 불합리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대전쟁 당시에도 글을 쓸 수 있는 군인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끼이익
“여기 오웰 씨 계십니까?”
수염이 덥수룩하고 상체엔 근육질이 가득한 미국인 작가가 병실에 들어왔다. 외모와는 달리 병실에 들어온 그는 제법 조심스러운 자세를 보였다.
자신을 부르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에게 오웰은 대답하는 대신 손을 흔들었고, 품에 뭔가를 안고 있던 헤밍웨이는 신이 나서 그의 침상으로 다가갔다.
“참, 작가님 같은 거물을 여기서 뵈다니 참 영광입니다.”
미소와 함께 자신의 목을 가리킨 오웰은 수첩의 다음 페이지로 넘겨 자신도 마찬가지라는 답변을 적어 보여줬다.
“영광의 상처라니, 참 부럽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싸운다고 뭐가 달라지는지는 모르겠다만.”
한숨을 내쉬는 헤밍웨이를 보며 오웰 또한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갈수록 공화파의 내분은 심화하고, 스페인 내의 공산당은 이단자를 처단하라는 스탈린의 명령에 따라 규모가 작은 POUM과 아나키스트들에게 공격을 일삼았다.
공화국의 총리, 좌파 사회주의자 프란시스코 라르고 카바예로도 NKVD 현지 요원들을 통해 POUM의 활동을 금지하고 지도부를 체포하라는 압력을 받았으니.
아무래도 선전포고로 인해 만주국의 지원이 끊겨버린 틈을 타서, 레프 트로츠키가 스페인에서 차지하고 있던 지분을 완전히 가져가 버리고, 러시아에서 못 했던 숙청을 끝내려는 걸까.
“게르니카에서 일어난 일은 작가님도 들어보셨을 겁니다. 피카소가 새로운 작품을 구상 중이라던데, 아무래 이번 사건을 다룰 게 분명하겠죠.”
헤밍웨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오웰은 게르니카에서 일어난 폭격의 상세한 정황이 궁금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허위 사실과 프로파간다가 뒤섞여 뭐가 진실인지 구분하기도 어려웠다.
잠시만 자신을 방문하고 다시 또 전장이든, 타자기 앞이든 적극적인 활동을 하러 갈 헤밍웨이와는 달리 현재로선 병상에 있는 자신이 부끄러워질 지경이었다.
인도에서 경찰 경력을 인정도 받아서 현장에서 곧바로 병장 계급까지 달았건만, 정작 한 행동은 이병이나 다름없었던 것만 같았다.
‘그건 또 뭡니까?’
스스로의 처지에 소리 없이 한탄하던 오웰은, 잠시 현실을 잊으려고 헤밍웨이가 들고 온 물건을 가리키며 수첩으로 질문했다.
“이걸로 말씀드리자면···”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듯이 헤밍웨이는 오웰의 침대 한구석에 전 세계에서 가장 흥행하고 있는 보드게임, 모노폴리 상자를 올려놨다.
“기분도 착잡한데, 한판 하시겠습니까?”
오웰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
소비에트 연방, 모스크바
어느 순간부터 소련에서는 비명이 때로는 섬뜩하게, 때로는 애처롭게 온 사방에서 들려왔다.
곳곳에서는 죄수호송차가 인민들의 집 밖에 멈추어 서고, 그들은 복도에서 무겁게 들려오는 발소리와 문 두드리는 거친 소리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짐을 다 싼 가방을 침대 아래 두기도 했으나, 어떤 이들은 두려움과 더불어 사는 법을 익혔다.
그런 뒤틀린 일상을 일으킨 내무인민위원회 (NKVD)는 도시와 시골 가리지 않고 러시아의 모든 지역에 고문실, 감옥, 그리고 수용소를 세웠다.
“윽, 으으으윽···”
“이제 좀 진실을 말할 준비가 되어있나, 겐리흐.”
모스크바라고 예외는 아니었으며, 그런 시설 중 한 곳에서 전 NKVD 위원장 겐리흐 야고다는 쇠사슬에 매달려 그의 후임 위원장 니콜라이 예조프에게 심문을 받았다.
그러나 현재 소련에서는 고문을 동반하지 않는 심문은 드물었고, 속옷도 없이 완전히 발가벗겨진 채로, 고환을 포함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야고다도 예외는 절대 아니었다.
그의 입안은 피와 침으로 범벅이 되어 분홍색으로 물든 이빨로 가득했고, 대답을 위해 여는 것도 고통스러웠다.
“듣고 싶은 진실이 도대체 뭔데-끄아아아악!”
우드득
그렇게 본인 나름엔 정말 성의를 가득 담은 대답이었건만, 예조프가 보기엔 마음에 안 들었는지 고문 기술자를 시켜 손가락 하나를 더 부러트렸다.
고통으로 인해 잠시나마 몽롱했던 의식을 회복했던 야고다는, 이게 그동안 자신이 체포했던 ‘정치범’들에게 똑같이 썼던 수법이라는 걸 떠올렸다.
“어디 보자, 당신이 소유한 4백만 루블짜리 집에서 발견한 것에 관해 설명부터 하시면 되겠군.”
예조프의 발언에 야고다는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 그냥 포르노 컬렉션을 만드셨더라고. 발견된 것만 약 4,000장의 사진, 10개의 영화, 150개가 넘는 조형물 등 끝이 없어, 이거.”
“무슨 헛소리야, 그렇게까지 많을 리가 없는데···”
“그러니까 최소한 일부는 진짜라 이거군. 뭐, 그것보다는 소유한 550권 가까이 되는 책 중에서 트로츠키가 쓴 책이 다수인 게 제일 크지만.”
손가락을 굽혀가면서 각종 물품을 나열하던 예조프는, 한때 자신의 상관이었던 자가 고통받는 모습을 보며 즐겁게 미소지었다.
있지도 않은 물건을 들먹이면서 자신을 추궁하는 야고다의 마음속에는 구체적이면서도 동시에 추상적인 공포가 싹을 내렸다.
지금 그의 눈앞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고 있는 음흉한 난쟁이는 자신을 죽일 것이다. 그것도 스탈린의 명령을 받아서.
“하···하하, 하하하하하!!!”
갇힌 채로 매일 같이 고문에 시달렸던 야고다는, 몇 개월 전 갑작스럽게 체포된 이후 처음으로 웃어봤다.
“그거 알고 있나, 예조프? 사실 난 내가 결국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그동안 계속 우위를 차지하던 예조프는 담배 연기를 피우다 말고 잠시 당황했다.
“내가 그 많은 사람을 처형하던 때, 그중 몇몇은 나도 그들과 똑같이 될 거라고 했지. 지금 보면 대일 리 제독도 울고 갈 정도로 섬뜩한 예언이군.”
기운이 빠진 흐릿한 미소를 짓는 야고다에게서는 알 수 없는 위화감이 흘러넘쳐 흐르기 시작했다.
소만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불교에 귀의하여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다던, 미친 남작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 중장처럼.
“조만간 그 잘난 위원장 직책도 부하한테 뺏기고, 그동안 네 밑에서 이루어진 체포 및 처형사건이 전부 다 검토되겠지. 유죄판결 취소와 감옥과 수용소에서의 석방이 이뤄질 거고.
인민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모든 탄압은 네 개인적인 일탈로 치부되며, 스탈린은 네 실수를 바로잡은 구원자가 되겠지.”
그럴 리가 없다며 불길한 저주를 무시하려던 예조프의 얼굴을 야고다는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며 외쳤다.
“이 모든 피바다를 다 네놈한테 뒤집어씌울 거란 말이다! 야 이 더러운 난쟁이 새끼야, 나 다음은 너야!”
“어디서 입을 놀려!”
치이이익
얼굴이 시뻘게진 예조프는 피우던 담배를 야고다의 몸에다 비볐고 다시 한번 그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하던 거 계속해. 죽여도 좋고.”
고문 기술자에게 감정을 담긴 명령을 내리고 고문실을 나선 예조프는 매일 그러듯이, 두꺼운 서류철을 갖고 스탈린의 사무실로 향했다.
슥, 스륵
사무실로 향하는 고급스러운 카펫을 걸으면서도 그는 서류를 간단하게 점검했다.
“체포, 모두 체포, 조사할 필요 없이 체포···”
그의 무차별적인 체포로 인해 현시점 기준으로 붉은 군대의 장군과 대령은 거의 70% 가까이 체포되거나 수사 대상이 되었다.
이 와중에 만주국과 전쟁을 포고한 내막은 예조프로서는 몰랐고, 굳이 알아내기 위해 들여다볼 필요도 없었다.
자신은 그저 할 일만 하면 된다. 한 명의 스파이를 놓치는 것보다 수십 명의 무고한 사람이 피를 보는 게 더 낫다.
숲을 베어내다 보면 나뭇조각이 튀기도 하는 법이니까.
“알긴 뭘 알아.”
키를 의식해서 조금이라도 커 보이게 걷던 예조프는 사무실의 문을 두드리기 전 하나를 확신할 수 있었다.
맡은 일만 열심히 하면 절대로 숙청당할 일이 없을 거라고.
*****
워싱턴 D.C.
오늘도 한결같이 해군참모총장 윌리엄 D. 리히 대장을 찾아갔다.
처음에는 어니스트 킹처럼 중장도 아니고 일개 소장이 해참을 이렇게 자주, 그것도 일반 제독과는 달리 제법 친근한 분위기로 만나는 게 너무나도 부담스러웠다.
“허, 이거 참 흥미롭군.”
“흥미롭지 않은 걸 가져올 리가 있겠습니까.”
그랬건만 지금은 그저 한없이 지긋지긋한 일상의 파편이 되어버렸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생물이란 말인가.
리히 또한 거의 오랜 친구라도 된 것처럼 우리의 천조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를 매일 같이 자주 만나곤 하니까.
흠, 내가 해군참모총장이 돼도 리히처럼 이렇게 대통령과 친밀한 관계를 하게 될까. 아냐, 킹과 FDR이 그렇게 특별히 친밀한 관계는 아니었을 거야.
야, 그리고 애초에 내가 해군참모총장이 된다니 말이나 되는 소리를 해야지. 킹이 멀쩡히 살아있는데 무슨.
“또 뭔 잡생각을 하는 모양이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어쨌든 얼마 전에 제가 후원하던 기술자들이 새로 뭘 만들었는데 말입니다···”
내가 헬리콥터와 새로운 형태의 항공모함에 관해 설명에 들어가던 중, 갑자기 해참 사무실 문이 요란하게 열렸다.
“참모총장님, 큰일 났습니다!”
“이번엔 또 뭐지.”
“저기, 건물 밖에 기자들이 잔뜩 몰려왔습니다, 해군에서 누가 전쟁 관련 발표를 했다면서···”
“뭐···?”
당혹감에 휩싸인 리히는 그의 비서가 아니라 내 쪽으로 눈을 돌렸다.
“리. 설마 자네 또 뭐 저질렀나.”
아니.
이건 또 뭔 참신한 개소리여,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