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410)
매국노의 원수 자식-410화(410/773)
410_전쟁을 원한다면 (4)
1937년 6월
스페인, 바르셀로나
“흐아암···”
마르크스주의통일노동자당(POUM)의 비공식 군사위원장, 레프 트로츠키는 눈을 비비며 요란하게 하품했다.
마음 놓고 잠을 푹 자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나는 그의 몸에는, 형용할 수 없는 피로가 고산지대의 만년설처럼 쌓여나갔다.
스륵
그래도 명색이 언론인 출신이고 여전히 저술 활동이 그의 본성처럼 자리 잡았기에, 트로츠키는 POUM 본부의 회의실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내서 국제신문을 펼쳤다.
“···이거 참.”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 중 하나, 파블로 피카소가 파리 엑스포에 전시할 작품의 제작을 끝냈다는 소식에 트로츠키는 흥미를 느꼈다.
정확히 어떤 형태인지는 모르겠지만 몇 개월 전에 일어난 게르니카 폭격의 참상을 묘사할 거라는 것만 언급했다.
“이런 젠장.”
게르니카라는 단어는 트로츠키의 안 그래도 이미 피곤한 머릿속에 두 가지 불쾌한 생각을 추가로 집어넣었다.
첫 번째는 그 폭격으로 확실히 드러난, 미국과 영국의 물자 지원에 더불어 독일과 이탈리아군의 압도적인 군사력.
공화파가 상대해야 하는 게 오직 프란시스코 프랑코 바하몬데였으면, “어느 정도”는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프랑코의 유능함은 인정해야 했다만, 자신 또한 POUM의 세력이 가장 강한 카탈루냐 지방을 철옹성으로 만들고, 마드리드도 아직은 방어해내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콘도르 군단이라는 괴물 같은 지원부대의 전투력은, 공화파로서는 어떻게 손을 쓸래야 쓸 수가 없었다.
두 번째는···
“그의 아들이 방문했다니···”
예상치 못한 공화파의 후원자, 리 가문의 일원인 제이크 리가 게르니카 시의 폭격에 휘말렸다는 사실을 떠올린 트로츠키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왜 하필 마드리드, 사라고사, 바르셀로나 등 많고 많은 도시 중에서 꼭 거길 골라서 방문해야 했던 것일까.
“역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인 건가.”
대일 리 제독은 재앙이 일어나는 곳을 찾아다니는지, 아니면 그가 가는 곳마다 재앙을 일으키는지 둘 중 하나였으니까.
다만 리 제독은 PCDA를 통해서 공화파를 지원하고, 제이크가 성찬용 포도주로 교회에 붙은 불을 끈 걸 보면 최소한 트로츠키는 그를 재앙신이라고 부를 순 없었다.
똑똑똑
“누구시오.”
대답과 동시에 트로츠키는 한 손으로는 신문을 계속 펼쳐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허리춤에서 (이 또한 PCDA를 통해 받은) M1907 권총을 꺼냈다.
소련의 서기장이자 한때 자신의 동료였던, 이오시프 스탈린이 보낸 암살자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기에.
끼익
“바쁘십니까, 트로츠키 씨.”
다행히 방 안으로 들어온 게 NKVD의 요원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지는 않은 장신의 소설작가, 조지 오웰인 걸 확인한 트로츠키는, 신문으로 가린 채 다시 권총을 집어넣었다.
“평상시와 달라진 건 없지. 말을 직접 하는 걸 보니 목은 제법 회복되었나 보군.”
“여전히 아프긴 하지만 퇴원 당했지 뭡니까, 거참. 아, 그거 아십니까? 로마노프 가의 황녀 중 하나도 적십자 소속 의료봉사자로 그 병원에서 일하더군요.”
“···”
리 총리의 개입이 아니었으면 로마노프 일가가 처형당할 뻔한 것에 책임이 있었기에, 트로츠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인도에서 경찰로 근무하기도 했고 – 별 도움이 안 되었지만 – 스페인에서도 실전을 겪은 오웰은 표정이 어두워진 그의 동작을 눈치채고는 미소지었다.
“저 정도 인간한테 암살당하실 것 같으면 진작에 사망하셨을 텐데요.”
“미안하네, 내가 지금 피곤해서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서 말이야.”
“괜찮습니다, 트로츠키 씨의 의심은 충분히 이해됩니다. 국민파는 물론이고 공화파 내부에도
적이 가득한 시대니.”
오웰의 말은 정말 한 방울의 악의도 섞이지 않은 진실이었으나, 트로츠키에게는 잔인한 폭행처럼 느껴질 정도로 쓰라렸다.
“···”
국민파 진영은 말할 것도 없고, POUM을 향한 거센 비난 운동은 공화파 내부에서도 계속되었다.
전 세계의 공산주의, 정확히는 스탈린주의 언론은 POUM의 인원들이 바르셀로나 건물에서 국민파 깃발을 내걸며 베를린과도 비밀리에 접촉하고 있다며 선동과 날조를 퍼부어댔다.
심지어 POUM과 아나키스트 민병대원들이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하고,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이 사망하고 있건만 무인지대에서 국민파 병사들과 한가롭게 축구나 한다는 말도 돌았다.
‘왜 이렇게 지중해에 인접한 나라의 국민은 하필 축구에 꽂힌 거지.’
따라서 트로츠키가 명목상으로는 POUM의 군사행동을 총괄하는 역할이었으나, 최근에는 그보다도 여론전에 진땀을 흘리는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이 모든 것의 뒤에 스탈린이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자는, 최소한 자신의 주변에는 없었다.
“그거 아십니까. 얼마 전 영국의 어느 신문에선 제가 국민파 전선을 몰래몰래 찾아다닌다는 허위 기사를 썼더군요.”
“자네 같은 환자가?”
“그러게나 말입니다. 세상에 프로파간다가 퍼져나가는 방식에 대해서는 알 만큼 알고 있다만, 죽다 살아난 사람 가지고 그런 새빨간 거짓 기사를 쓰다니. 너무하지 않습니까.”
오웰은 스스로의 목에 총알이 스쳐 지나간 흔적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면서 하소연했다.
작품관도 냉소적이고 인간의 어둠을 많이 본 게 틀림없는 오웰이었건만, 트로츠키가 보기엔 그는 이번 일로 상처받은 게 틀림없었다.
물론 지금 여기 스페인에서 일어나는 선동과 날조 이전에도 트로츠키는 소비에트 연방에서 추방당하기 전까지 충분히 겪어봤다. 주도자는 말할 것도 없이 스탈린이었고.
“어떻게 이리도 똑같은지 모르겠군.”
“뭐가 말입니까.”
“파시스트들과 공산주의자들의 수법이. 히틀러고 스탈린이고, 가상의 악마 같은 적을 창조하고 경쟁자들이 그 악마라며 중상모략으로 분열시킨 후 전부 숙청시키는 데 능숙하단 말이지.”
한탄하는 트로츠키를 보며 오웰은 굳은 표정을 지으며 더욱 더 무거운 질문을 던졌다.
“이곳의 의의는 무엇인 것 같습니까.”
“정의가 악의 권세 앞에 패배할 수 있다는 살아 있는 증거로서 역사에 남겠지. 아니. 누가 정의인지 누가 악인지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최소한 나는 아닐걸세.”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답하는 트로츠키를 보는 오웰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당신은 제가 아는 트로츠키가 아닌 것 같군요.”
“자네가 아는 트로츠키는 대체 누구길래 그러는 거지.”
“좌파의 새로운 지도자, 스탈린에 대항하는 마르크스주의 지식인들의 아버지-”
본인도 마음에 없고, 비아냥거리는 듯이 늘어놓던 오웰의 찬사에 트로츠키는 그 자리에서 바로 폭소하고 말았다.
예상치 못하케 터트린 웃음과는 달리, 그의 입에서 나온 짧은 연설은 환멸을 잔뜩 머금었는지 냉기가 가득했다.
“지금 이 스페인에 온, 아니, 전 세계의 좌파들은 문제가 뭔지 아나.
우리들은 객관적인 진실을 원하지 않아. 우리의 환상이 산산이 조각나는 것을 바라지 않고, 당신처럼 의용군으로 온 지식인들은 스페인을 해방한다는 거창한 대의명분에 흥분해있어.
독일과 이탈리아가 새로운 군사 장비와 교리를 시험해보려고 스페인에 쳐들어온 것처럼, 언론인과 창작가들은 작품을 위한 새로운 소재를 얻기 위해 여기에 왔지. 어쩌면 나도 이번 전쟁의 참가자가 아니라 관찰자였으면, 이걸 바탕으로 훌륭한 작품을 썼을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영웅놀이가 아니라 진짜 전쟁에서 이길 구체적인 방안을 가진 자는 그 어디에도 없어. 나조차도 말일세. 지금 이 전쟁이 어디서, 얼마나 더 많은 희생자를 일으키고 끝낼지 아무도 모르지. 하지만 난 장담할 수 있어···”
트로츠키는 손에 쥐고 있던 신문을 구겨서 집어던지고 허탈하게 한숨을 내쉬며 오웰에게 마지막으로 털어놨다.
“···결과가 어떻게 됐든 간에 이번 전쟁의 최종 승리자는 우파가 될 걸세. 아무래도 그게 변하지는 않을 거야.”
운 좋게 둘만 있는 공간에는 무거운 정적이 가라앉았다. 충격적인 발언에 잠시 정신을 못 차렸던 오웰은 이내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그래. 이래야 트로츠키답군요.”
“···내가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건 알겠어.”
어떻게 포장하든 자신은 패배자이며 도망자였다. 도망쳐서 도착하는 곳에서 낙원을 어떻게 찾겠는가.
사무실에서 오웰이 떠난 뒤, 홀로 덩그러니 남은 트로츠키는 마드리드 주변의 지도를 꺼내봤다.
스윽
트로츠키는 마드리드 서쪽에서 30km 정도 떨어진 도시, 부르네테 (Brunete)로 시선을 돌렸다.
프랑코군의 주요 보급로 중 하나였고, 저 거점을 공략하면 패배해서 후퇴하고 있는 공화파군을 재집결할 수도, 마드리드에 가해지는 압박 또한 줄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다시 생각해보면 현재 공화파 진영에게 새로운 기회가 왔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활동하고 있긴 있지만, NKVD는 소만 전쟁 때문에 잠시 정신이 약간 팔려있는지 조금이나마 움직임이 줄어들었다.
게다가 마침 파시스트들은 정확한 이유를 파악할 수 없다만 잠시 포위된 마드리드를 향한 진격을 멈춘 것 같다.
드륵, 드르륵
굳은 결심을 내린 트로츠키는 의용군을 포함해 지금 소집할 수 있는 병력을 끌어모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번에는 반드시 승리를 이뤄내리라.
*****
메릴랜드, 볼티모어
“어서오세요, 제독님∼”
집에 돌아가니 거실에서 아나스타샤 로마노바 리가 세레나와 함께 나를 맞이했다.
제이크도 임관 때문에 D.C.를 들락날락하게 되었는지라, 아들 가족 3인방은 둘째 출산 직전까지는 여기에 머무르기로 했다. 동부 최고의 병원 중 하나인, 존스 홉킨스 병원도 예약해놨고.
다만 이건 순전히 내가 아니라 세레나의 발상이었고, 솔직히 좀 어색하긴 했단 말이지···
“이거 익숙지 않네.”
“아 맞다, 대일? 부탁한 거 서재에 갖다 놨어요.”
아나스타샤와 출산일에 거대한 폭죽놀이를 벌이는 걸 논의하던 아내가 서재를 가리켰다. 마님, 또 이웃집 하나 날려 먹어서 손해배상하지는 맙시다···
턱
“···홀리 쉣.”
서재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막대한 분량의 문서가 나를 환영하고 있었다. 종이가 아니라 금괴가 나에게 ‘안녕!’ 해줬으면 참 좋았을 텐데.
아내는 아메리칸미디어컴퍼니를 통해 세계 각국에 ‘취재원’을 심어놨고, 지금 저 앞에 있는 서류더미는 그들이 수집해온 정보를 정리해 놓은 것 같네.
슥, 스륵
어후, 분량 봐라.
내가 기억하기엔 아마 CIA도 민간기업을 세워놓거나 인수해서 첩보활동을 했던 것 같은데, 내가 지금 그런 케이스인가.
이거 자칫 잘못하면 허버트 후버 그 친구랑 영역 다툼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측에서 그 인간 약점을 쥐고 있어서 다행이긴 한데···
“···어?”
서류 더미를 살펴보다가 아내가 정리한 게 아니라 만주국에서 보낸 서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팔랑
조심스럽게 읽어보니, 만주군이 소련군과 교전하면서 얻어낸 각종 전투 데이터가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어허, 이것 좀 보게.
뭔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걸?
따르르릉
한 손에는 그 서류를 들고 난 바로 샌프란시스코에 전화했다.
”제독님, 오래간만입니다! 요즘 많이 바쁘시죠?“
”뭐, 내가 안 그랬던 적이 얼마나 있겠니. 그리고 아무리 바빠도 너만 하겠어?“
”급한 용건이긴 한데 비행기 타고 날아오시지 않는 걸 보면 그렇게까지 급한 용건은 아닌가 보군요.“
정말 예리하군.
”일한아, 나 하나만 부탁하자.“
”말씀만 하시죠.“
전화기 너머에서 일한이 펜과 종이를 급히 꺼내는 소리가 들려왔고, 난 보고서를 살펴보면서 조금은 조금은 뜬금없게 느껴질 수도 있는 주문을 넣었다.
“혹시 우리 PCDA 산하 기업 중에서 의류 제작사는 있던가?“
“의류 쪽에는 안타깝게도 없습니다. 테디베어 덕분에 인형 공장은 여러 곳 소유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그쪽에도 확장해야 합니까?“
“그래, 특히 다른 것보다 신발이랑 코트 제작에 좀 초점을 두자고.”
“음,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추가할 게 있는데-”
만약 내가 분석한 사실이 옳고, 지금부터 쌓기 시작하는 게 몇 년 후 터진다면···
···아마 10년 안에 스탈린의 목이 따이고 소련이 붕괴하는 꼴을 볼 수도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