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42)
매국노의 원수 자식-42화(42/773)
42_1904년 2월 9일
1904년 2월 9일 자정
상트페테르부르크, 겨울궁전
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이 2세는 뺨을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만족스럽기 짝이 없는 저녁이었다. 마린스키 제국 극장 (Mariinsky Theatre)의 로열박스에 앉아서 다르고미슈스키의 오페라 루살카 (Rusalka)를 감상하는 그 기분이란 황제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였으니까.
오페라가 끝난 후, 아니치코프 (Anichkov) 궁전에서 황태후 마리아 표도로브나 (Maria Feodorovna)와 함께 차를 마셨다. 그녀에게 극동 지역의 무모한 확장 때문에 피를 볼 수도 있다는 굉장히 정중하지만 살벌한 경고를 들은 후에도 여전히 기분 좋은 하루였다.
하지만 1 시간전, 겨울궁전에 돌아오자마자 뤼순의 극동 총독 알렉세예프에게 긴급 전보를 전해 받자마자 달콤한 하루는 와장창 무너졌다.
‘2월 8일부터 2월 9일에 걸친 0시 전후에 일본의 구축함이 뤼순 요새 항 바깥 투묘지에 정박해 있던 함대에게 기습적인 수뢰 공격을 가했다. 이 공격으로 전함 ’레트비잔‘과 ’체사레비치‘, 순양함 ’팔라다‘가 관통 타격을 입었다. 중대함의 정도는 아직 불명하다···’
시간을 보니 상트페테르부르크 시간으로 이미 6시간이나 지난 후였다.
니콜라이 2세는 고함을 지르며 전보를 구겨 궁궐의 매끄러운 타일 바닥에 내팽개쳤다.
“이런 비열한 놈들, 선전포고도 없이 어떻게 이런 짓을 저지를 수가!”
쉬익쉬익 거칠게 숨을 내쉬며 손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그는 이 감정이 분노인지 공포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어쩐지 마린스키의 관객이 오페라는 관람하지 않고 자꾸 자신 쪽으로 쳐다보더니만. 그가 마치 찬란한 태양처럼 너무 잘생기고 기품이 넘쳐서 그랬던 것이 아니란 말인가!
잠시라도 이 고뇌를 회피하고 싶었는지, 니콜라이 2세는 잠이나 자기로 했다.
침소로 들어가기 전에 그는 시종에게 외무상 람스도르프와 전쟁상 쿠로팟킨(Aleksey Kuropatkin)에게 알렉세예프에게 전달받은 전문을 복사해 보내라고 지시했다.
“폐하, 지금 시간이 늦었는데-”
“혹시나 자고 있으면 깨우게나!”
다행히 쿠로팟킨은 이미 각료평의회 의장 비테 (Sergey Witte)에게 급습에 대해 전해듣고 사태파악을 하기 위해 종합청사 안에서 급박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쿠로팟킨!”
쿠로팟킨이 돌아보니 람스도르프가 잠이 덜깬 상태로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의 손에는 식은 땀으로 적셔진 전보가 쥐어져 있었다.
“늦은 밤에 이게 무슨 일이람···아벨란 (Theodor Kristian Avellan)은? 그는 왔는가?”
“망할, 가장 먼저 간 게 그의 사무실이야. 그런데 비어 있어서 알아봤더만 아직 자고 있다지 뭐야!”
“아니 뭐야, 뤼순항이 급습당했고 육군상이 발로 뛰고 있는 상황에 아직 해군 상이 잠이나 쳐자고 있다고?!”
어이를 상실한 두 대신은 그저 헛웃음을 칠 뿐이었다.
“이런 젠장. 베베르가 올린 보고서가 이 정도로 맞아 떨어질 줄 몰랐는데···!”
“아, 그 보고서···이름이 뭐였더라?”
“‘일본과의 잠재적 군사적 충돌과 극동지역 영향력 상실 가능성에 관한 분석’”
한 번만 발음해도 혀가 아파질 정도로 긴 이름을 한꺼번에 말하는 걸 보고 쿠로팟킨은 어떻게 그걸 다 외웠냐는 눈으로 쳐다봤다.
“잊을 때만 하면 언급하거든. 망할,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만 더 진지하게 그 보고서를 받아들일 걸···!”
“람스도르프, 혹시 그 보고서 나도 좀 보여줄 수 있겠나? 그리고 그걸 베베르가 썼다고 했던가?”
“그렇지. 하지만 사실 진정한 저자는 따로 있어. 가만 있자, 그자가 아직 조선으로 안 돌아갔지?!”
그리고 밤사이에 이 뤼순항 급습 뉴스는 온 언론사에 퍼졌다. 다음 날 아침쯤에는 이 충격적인 소식이 러시아의 온 국민의 귀에 들어갔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언론 중 하나인 ‘노보예 브레먀 (Novoye Vreyma)’의 주필수보린 (Aleksey Suvorin)은 이 소식을 듣자마자 순간적인 상황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절망적으로 변해버렸다.
“으아아아아아!!”
호흡이 힘들었는지,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재낀 그는 얼굴이 창백해진 상태로 손을 떨며 바닥에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한 참 후 깨어난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단 하나뿐이었다.
“러시아는 이제 망했어, 끝장났다고!”
***
2월 9일 아침
평안북도, 의주
의주공립학교 교장 아펜젤러는 꼭두새벽에 누구보다도 학교에 먼저 와서 일과를 시작했다.
교정을 쓸고 교실을 한 번 둘러본 후 교장실에 와선 서류작업 및 전날 못했던 업무를 처리한다. 이미 배재학당을 운영해본 적이 있는지라, 이젠 수월한 일과가 되었다.
등교시간 1시간 전, 따뜻한 커피와 함께 아침의 여유를 즐긴다. 한 손은 커피잔을, 다른 한 손은 루스벨트 동호회 배지를 만지작거렸다.
그에게서 세례를 받은 대일 리가 미국에서 창설한 단체의 상징품으로서, 제국 신문에 의하면 이 배지를 지니기만 해도 영험한 효과가 있다고 해서 나름 비싼 값으로 팔리고 있던 물건이다.
혹시나 해서 아나폴리스에 있는 리에게 물어봤더만 그딴 게 어딨냐, 제국신문한테 ‘개소리 자제 좀’ 부탁하는 편지와 함께 수백 개의 배지를 보내왔다.
그가 조선에 도착한 게 1885년. 내년이면 20년이다. 미국을 떠났을 때 대통령은 체스터 아서 (Chester A. Arthur), 현 대통령은 루스벨트. 그동안 미국 대통령만 다섯 번만 바뀌었다.
어떻게 둘 다 전임 대통령이 괴한의 총에 암살당해서 취임한 부통령이라는 점이 참 기묘하긴 했다.
한반도의 선교생활을 참 오래도 했다. 교회와 학교도 세우고, 작년 부로 조선 어로 된 구, 신약 번역도 완성했다.
사실 솔직히 말해서 그가 처음에 이 은둔의 왕국 (Hermit Kingdom)으로 향했을 때는 저기 아프리카나 남미의 오지나 다들 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야만인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할 것도 각오했다.
하지만 그의 예상외로 이곳 사람들은 그와 가족을 훨씬 더 환대해줬고, 지금은 나름 고위공무원인 공립학교 교장이라는 직위도 줬다. 아, 물론 한성감옥에 수감된 일도 있긴 했지만 말이다.
몇십 년 동안 이 나라는 그의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발전을 해왔다. 특히 대일 리의 아버지, 완용 리가 학부대신으로 부임한 이후로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서양식 교육제도를 도입하는 속도는 정말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그리고 이 모습을 보면서 최근 그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생각이 자꾸 맴돌았다:
이 정도면 할 만큼 하지 않았나?
물론 조선에 뼈를 묻을 각오로 오긴 했지만, 이제 본인 같은 선교사들 없이도 이 나라의 계몽은 순탄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어쩌면 몇십 년 만에 본격적으로 세계무대에 들어설지도 모른다.
이번 교장 임기가 끝나면 펜실베니아주로 돌아가 그의 고향 소더튼(Souderton)을 방문하는 것도 좋겠다. 아니, 아주 그냥 은퇴하고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앨리스와 도지는 여기서 태어났고 한 번도 미국을 가본 적 없네? 좋아, 내년 쯤엔 꼭 미국으로 돌아가야겠군.’
그렇게 여행계획을 세우는 아펜젤러를 한 교직원이 교장실로 뛰쳐 들어와 방해했다.
“속보입니다, 교장선생님, 속보!”
공립학교 공식 제휴 신문, 제국신문의 1 면지를 펼쳐 보이는 교직원의 얼굴에는 차마 형용할 수 없는 충격과 공포가 역력했다.
“아침부터 왜 그렇게 당황하십니ㄲ-으어억!”
커피를 마시던 아펜젤러는 헤드라인을 보고 사레가 들릴 수밖에 없었다.
***
2월 9일 오전 11시 45분
제물포 앞 바다
장갑순양함 아사마 (淺間)의 주포가 불을 뿜었다.
“온다!”
제물포 부근에 자리잡은 우류 소토키치 (瓜生 外吉) 중장 휘하 일본 제 4전대의 포위망을 어떻게 뚫어보려던, 프세볼로트 루드네프 (Vsevolod Fyodorovich Rudnev) 대령 휘하 장갑순양함 바랴크 (Varyag)과, 벨라예프 (G. P. Belyaev) 중령 휘하 포함 코리예츠 (Korietz)는 속수무책으로 선공을 얻어맞을 수 밖에 없었다.
아사마의 포탄에 직격으로 얻어맞은 바랴크의 함교의 일부분이 박살났다.
곧이어 해도실에 불이 붙었고, 항해 장교후보생 니로드 (Alexey Nirod)는 비명지를 틈도 없이 불타 죽었다.
첫발부터 엄청난 타격에 대응할 틈도 없이, 아사마의 포격을 신호로 나니와, 치요다, 타카치호 등 제 4 전대의 나머지 순양함들이 무자비한 일제사격을 퍼부었다.
“이런 망할, 빨리 소화시켜!”
“야 잠깐, 저거 지금 탄착관측소로 퍼져나가는데-씨발, 다 피해!”
불이 퍼진 바랴크의 탄착관측소에서 폭발이 일어났고 여러명의 수병이 즉사했다. 코리예츠는 사상자는 없었다만 오히려 바랴크보다 더 빨리 전투불능 상태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바랴크의 선원들은 이렇게 일방적인 공세에도 불구하고 당황하지 않으며 불에 붙고 온몸에 피를 흘리면서 반격과 선박 보수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이 무색하게 순양함 1척과 포함 1척은 일본의 6척의 순양함과 8척의 어뢰정을 이길 수 없었고 결국 오후 1시 15분 제물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코리예츠는 4시에 자폭시켰으나, 바랴크는 폭발로 인한 파편을 우려하여 결국 6시 쯤에야 침몰시켰다.
바랴그의 사망자는 30명, 경상, 중상자 합쳐 185명의 총 사상자가 발생했다.
본격적으로 제물포에 상륙하기 시작한 일본 제국군 12사단의 의무진이 사상자 치유를 맡아준 것 살아남은 러시아 수병의 자존심에 결정타를 꽂아 넣는 굴욕이었다.
피해자인 러시아측 참관자들은 물론이고, 중립국인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측 함장들과 조선의 백성들이 이 짧지만 결정적인 해전과, 곧이어 시작되고 다음 날까지 계속된 일본군 상륙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켜봤다.
그리고 이 관객 중에는 그다음 날, 제물포로 들어온 미 해군 소속 순양함 USS 신시내티 (Cincinnati)에 배치받은, 작년에 소위로 임관한 어니스트 킹도 포함되어 있었다.
함교에 서서 일본 해군이 저지르고 간 흔적을 훓어본 킹의 안그래도 분노로 가득차 있는 얼굴은 더더욱 일그러졌다.
‘잽스 놈들, 낌새가 이상했건만 중립국 항구 근처에서 교전을 벌이는 짓거리를 저지를 줄은 몰랐군.’
상황을 분석한 킹은 혀를 끌끌찼다. 그의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가 안되는 추악한 짓거리였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쉬울터. 피해자는 러시아에 그칠리가 없겠지. 그 다음에는 과연 누구를 또 노릴까?’
그날부로 킹 소위는 일본을 미 해군의 잠재적 경쟁자 리스트에 추가했다.
***
2월 9일 오후
샌프란시스코
이렇게 일본이 러시아에게 선전포고를 한 이후, 미국에서 워싱턴 DC와 뉴욕시에선 당연히 난리가 났지만, 그에 못지 않게 샌프란시스코도 들썩였다.
우선, 도시내의 한인들이 불안에 빠졌으며, 일본군 제12사단이 상륙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엔 완전히 패닉사태에 빠졌다. 그렇다고 일본인들이 딱히 환호하거나 한 건 아니었다.
물론 한인들은 일본인과 중국인에 비하면 인구수가 미미한 편이었다. 하지만 한때는 병공당이라는 이름의 악명높은 폭력단체이었으며, 지금은 수천 명의 조직원을 거느리는 태평양기독교연대의 대표이자,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종합기업 PCDA의 사장 안창호가 바로 한인이었다.
그래서 일단 최소한 한인들 앞에서는 그 어느 아시아인들도 대놓고 일본을 지지하는 발언은 못 했다. 물론 안창호 본인도 한인들에게 괜히 상관도 없는 일본인들에게 보복하려고 하지 말라고 당부했으며, 만약 적발 시 즉결처벌을 내리겠다고 경고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선언을 하는 안창호 사장의 심기가 매우 불편해 보였는지라 샌프란시스코 내 일본인들은 알아서 처신을 잘했다. 그리고 한인들도 대놓고 일본을 비난하는 건 피했지만, 러시아를 향한 열렬한 지지발언 및 시위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내에 ‘조선멸망’이라는 이름의 책이 다시 유통했다. 그리고 왠지는 모르겠지만 이씨 성의 한 부자, 이완용과 이대일의 이름이 그들의 입에서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반면 백인들에게는 다른 이슈가 화두에 올랐다.
캘리포니아 상원의원이자 샌프란시스코 재난대책 의원회장 토마스 바드가 도시 창설 이후 최대규모의 비리사태를 밝혀낸 것이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소방청장과 상의한 결과, 소방청에게 배정된 예산에 비해 실제 인원과 시설이 너무 부실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에 의문을 품고 조사해본 결과, 유진 슈미츠 (Eugene Schmitz) 시장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비리의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바드 상원의원은 시청에게 여러차례 해명을 요구했으나, 슈미츠 시장은 그저 무시와 변명으로만 대응할 뿐이었다. 이에 격노한 그는 시장을 캘리포니아 지방검찰 (District Attorney)에게 정식으로 고발해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캘리포니아 정부 차원에서 샌프란시스코 시의 종합감사가 들어갔고, 그 누구도 상상치 못한 권력형 범죄가 무더기로 발견되고 말았다.
이렇게 샌프란시스코의 1904년은 정말 화려하게도 시작했다.
***
2월 9일 저녁
상트페테르부르크
얼마나 좋은 대접을 받았는지 얼굴의 혈색이 좋아지고 살도 조금 찐 이완용은다급하게 짐을 싸서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는 열차를 탑승하러 튀어나갔다.
하지만 그가 기차역으로 향하는 길에 누군가가 황급히 그를 막아섰다.
“리 대신, 다행이군, 아직 떠나지 않아서!”
사색이 된 베베르는 손에 들고 있던 신문을 펼쳐 이완용에게 보여줬다. 항구에서 러시아 전함 세척이 파손된 사진 위에는 큼지막한 몇 단어가 거의 신문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일본, 러시아 제국에 전쟁을 선포하다!‘
“이런 세상에… 빨리 조선으로 돌아가야겠어…”
“리, 이 와중에 이대로 돌아가는 건가?!”
“나한테 원하는게 뭔가, 베베르? 난 외교관도, 군인 신분으로 온 것도 아니야,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아니야, 자네라면 분명히-”
그를 붙잡으려는 베베르를 뿌리치고 이완용은 황급히 달려갔다.
“미안하군, 난 열차를 놓치기 전에 빨리 가봐야겠어. 그 동안 모든 것에 감사하네, 베베르. 접대 감사했다고 총장님에게 전해주게.”
“리!”
하지만 한참을 달려가 역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미친 기세로 큰 마차 한대가 달려와 그의 바로 옆에 멈춰섰다.
그가 무슨 마차가 이렇게 위험천만하게 운전하나 생각할 틈도 없이 마차 안에서 험악하고 덩치 큰 장정 여러명이 튀어나와서 그를 둘러쌌다.
“드디어 찾았군요, 고스포딘(Господи) 리! 귀하를 긴급히 뵙고 싶다는 분이 계십니다.”
“아니, 저를요? 누가-”
“설명은 나중에 할테니, 어서 빨리 타십시오!”
이완용이 저항할 틈도 없이 러시아 황실의 비밀경찰, 오흐라나의 요원들은 양쪽에서 그를 잡아서 마차에 강제로 태우고 총알같이 어디론가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