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420)
매국노의 원수 자식-420화(420/773)
420_뒷거래 (3)
1937년 8월
독일국, 포츠담
8월이 포츠담에 찾아왔으며, 도시에서 가장 잘 알려진 명물 중 하나, 프리드리히 대왕이 약 200년 전에 세운 상수시 궁전 또한 여름을 휘장처럼 둘렀다.
여름 궁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양쪽엔 녹빛을 머금은 덩굴이 장식했고, 노란색 벽과 에메랄드빛 지붕이 뜨거운 햇볕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어이, 이쪽이야 롬멜!”
프로이센의 국왕이 건설하고 지금은 묻혀 있는 궁전이 보이는 카페 레핀 (Café Repin)에서, 한 프로이센 귀족이 동료 장교에게 손을 흔들었다.
“거참 우리 남작께서 뭘 또 굳이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사람 섭섭하게 왜 그러나.”
루프트바페의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 대령은 자신에게 농담을 던지는 포츠담 전쟁대학의 학과장 에르빈 롬멜 중령에게 반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뭐, 어쩌면 융커에게 가장 어울리는 곳이 여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전쟁 당시 엄청난 전공을 세웠으나, 평민 출신이었다는 것 때문에 뺏긴 적 있는 롬멜의 과거를 알았기에, 프로이센의 명문가 출신이었던 리히트호펜은 그의 발언을 웃어넘겼다.
“이렇게 둘이서 만나는 건 아비시니아 전쟁 이후로 처음 아닙니까.”
“셋이야. 그분도 곧 여기에 도착하실 테니까.”
“아, 맞다.”
리히트호펜이 앉은 카페 밖 테이블 건너편에 앉기 전, 롬멜은 오른팔을 들어 올리며 이젠 독일의 군인들은 너무나도 익숙한 경례를 했다.
“하일 히틀러.”
“···그냥 앉아.”
롬멜은 물론이고 카페의 몇몇 손님들도 경례하지 않는 자신에게 의아해하는 시선을 보냈으나, 리히트호펜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학교는 좀 어때?”
“아비시니아에서 오래간만에 실전을 맛보고 다시 학교로 들어가자니 영 적응이 안 됩니다. 전부 저를 굳이 거기로 같이 끌고 가신 대령님 잘못이니 책임지시죠.”
“좋은 경험 쌓았잖아, 덕분에 책도 쓸 수 있었고. 말 나온 김에, 물건은 들고 왔겠지?”
“아니 뭔 저희가 밀거래라도 하는 것처럼 얘기하십니까.”
이죽이죽 웃는 리히트호펜을 보고 한숨을 쉬며, 롬멜은 가지고 온 가방에서 ‘보병 전술 (Infanterie greift an)’이라는 적혀 있는 원고를 꺼냈다.
슥, 스륵
웨이터를 불러 커피를 주문한 붉은 남작은 원고를 읽었고, 롬멜은 마치 자신의 논문을 교수가 읽는 걸 지켜보는 대학원생처럼 긴장했다.
다행히 그의 우려와는 달리, 리히트호펜은 대전쟁 당시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전투의 생동감, 그리고 리더쉽과 소부대 보병 전술에 설명한 저서에 매우 만족한 모양이었다.
“여기저기 보충해야 할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역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수고했어.”
“집필하는데 대령님이 참으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에이, 내가 뭘.”
베를린에 있는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아 대출해주고, 붉은 남작 본인의 경험도 많이 보태줬지만, 결국 이 작품의 저서는 롬멜 아니겠는가.
“내가 장담하지, 이거는 인세만으로도 떼돈 벌 거야. 이런 말 하면 그 장군님한테 좀 미안하지만, ‘주목하라 – 전차에 (Achtung – Panzer)!’보다 더 많이 팔릴걸?”
만약 자신이 대일 리 제독과 연락이 끊기지만 않았으면, 바로 그의 부인이자 아메리칸미디어컴퍼니의 사장, 세레나 리에게 부탁해서 미국에 출판해달라고 요청하고 싶을 정도였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히트호펜은 언젠가는 그가 답하길 소망하며 리 제독에게 꾸준히 편지와 전보를 보내는 걸 포기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답하는 날이 올 터.
“아···그렇습니까. 정확히 얼마나 팔릴지는 사실 전혀 생각 안 하고 있었는데···”
“뭐?”
그저 멋쩍게 머리를 긁고 있는 롬멜을 뚫어지라 쳐다보던 리히트호펜은 곧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원고를 가리켰다.
“잠깐만. 설마, 출판사에 그냥 맡겨두기만 하고 안 찾아갈 생각이었어?!”
“사실 그렇긴 했습니다.”
“어째서? 세금 문제 때문에? 그거라면 출판 관련 세무사 잘 알고 있어. 나도 자서전 써서 돈 좀 벌어봤거든.”
사실 ‘붉은 전투기 조종사 (Der rote Kampfflieger)’로 벌어들인 인세 중 절반 이상은 각종 자선단체에 기부하긴 했지만, 그걸 굳이 알려야 할 필요는 없었다.
“그것도 있긴 하지만, 좀 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붉은 남작에게 칭찬을 받고 의기양양하던 롬멜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표정이 무겁고 불편하게 변했다.
“솔직히 그냥 좀 꺼림칙하지 않습니까.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처절하게 죽어가는 장면을 써서 돈벌이하는 게 말입니다.”
“···”
뭐라고 말하려다가, 정작 자신은 자서전을 집필할 때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는 걸 떠올린 리히트호펜은 가슴 한쪽이 쓰라려 왔다.
다만 그것보다 근소하게 더 중요한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갑작스럽게 떠올랐다.
‘대일 리는 내 자서전을 아직도 가지고 있을까···?’
대전쟁 최대의 항공전에서 패배하고 프랑스의 군사병원에 갇혀 있던 동안 붉은 남작은 자신을 격추한 ‘푸른 백작 (최근에 승작했기에)’과 같이 시간을 보낼 기회가 많았다.
살아남은 게 신기할 정도로 큰 부상을 치유하는 과정은 고통스러웠지만, 그와 대화를 나눌 때만은 힘든 것도 잊을 수 있었다.
그랬던 리가 자신의 자서전을 한 권 받을 수 있냐고 부탁했을 때 리히트호펜은 신이 나서 독일에 돌아온 이후, 고급스러운 양장본에 서명까지 해서 미국으로 보내줬다.
‘가지고 있겠지···’
독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사실상 전 세계의 유일한 버전이었으니.
“무슨 생각을 그렇게 오랫동안하고 계십니까?”
“음? 아 별건 아니고 당신의 생각이 굉장히 건전하다고 느껴져서 그래.”
부하들과 최전선에서 함께 근무하고 싸우는 투사라는 신선하고 정열적인 이미지를 보여줬기에 롬멜은 나치당에서도 꽤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걸 리히트호펜은 익히 잘 알고 있었다.
독일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는 자신이 자주 비난했던 프로이센 시대의 참모와 거리가 멀다며 그를 칭송한다는 사실도.
독일 제국 최고의 전쟁 영웅 중 하나로 등극한 프로이센 출신의 군인으로서 조금 섭섭하긴 했지만, 이해 못 할 건 아니었다.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아주 소소한 트집 잡을 부분이 생기긴 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창설한 신규부대에 관한 얘기는 별로 없었네?”
“아···솔직히 아직은 좀 연구가 더 필요한 것 같아서 이번에는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저런.”
작년 이맘때쯤에 리히트호펜은 항공장관 헤르만 괴링을 설득해서 루프트바페 산하의 공수부대 (Fallschirmjäger)를 창설했다.
물론 이탈리아의 정예부대 아르디티가 그랬듯이, 팔시름예거 또한 – 리 제독이 불과 대위 시절에 창설한 – 네이비 씰에 영향을 받았다는 걸 괴링에게 굳이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하긴 뭐 이번에 쓴 건 보병 전술, 그것도 소부대 단위의 지상부대를 염두에 두고 썼으니 공수부대를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
“사실 여기선 공군에 대해서도 크게 다루지 않았는데, 그 부분을 좀 더 추가할 걸 그랬습니다.”
달그락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
토론을 이어나가던 두 장교 사이에 웨이트리스가 커피 두 잔을 갖다 놨고, 주문한 음료를 마시며 그들은 잠시 머리를 식혔다.
“우리 둘 좀 봐. 여름이 다 끝나가는데 휴가도 안 가고 지금 여기서 군사교리 얘기나 하고 있다니.”
“전 조만간 가족 데리고 오버잘츠베르크에 피서 갈 겁니다. 운 좋으면 총통 각하도 뵐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가족과의 여행이라니, 참 좋겠어···”
“거참, 대령님도 결혼하시면 해결되는 문제건만. 아니, 요샌 리펜슈탈 그 여자가 연락 안 합니까?”
대답하는 대신, 리히트호펜은 그저 한숨을 쉬며 품에서 편지 봉투 하나를 꺼내어 롬멜에게 건네줬다.
그가 봉투를 열어보니 레니 리펜슈탈이 그녀의 영화가 상영하게 된 파리 엑스포에서 촬영한 사진이 여러 장 담겨 있었다.
“참 많이도 찍었네···어, 이건 또 누굽니까?”
사진을 슥슥 넘기던 롬멜은 한 사진에서 활짝 웃는 리펜슈탈과 그 옆에서 팔짱을 끼고 뚱한 표정으로 있는 미녀를 쳐다보며 물었다.
“아, 그 사람? 그게 바로 AMC의 사장, 세레나 리지.”
“잠깐만, 이게 진짜 리 제독의 부인이라고요? 딸이 아니고···?!”
부부 사이에 나이 차가 꽤 많이 났나, 싶었던 롬멜은 뭔가 깨달은 듯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 아하···저런.”
“뭔데, 대체 뭐야.”
“대령님. 그···결혼해본 남자만 아는 게 있습니다.”
롬멜은 측은한 눈빛으로 사진 속의 리 부인을 바라봤고, 붉은 남작은 오래간만에 울컥하는 기분을 느꼈다.
“뭔 얘기를 그렇게 재미나게 하고 계시나.”
참으로 유치한 감정에 휩싸인 그들이 약간은 날카로운 듯한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이번 소모임의 세 번째 멤버가 테이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턱에는 가지런하지 못한 수염이, 햇빛이 너무 강렬했는지 아니면 뭔가 거슬리는 게 있는지 눈을 찌푸리고 있는 장성을 본 두 장교들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칼같이 경례했다.
“장군님 오셨습니까!”
제2 기갑사단의 사단장, 하인츠 구데리안 (Heinz Wilhelm Guderian) 소장이 롬멜과 리히트호펜의 경례를 받으며 테이블에 착석했다.
‘보병 전술’의 원고를 본 구데리안은 껄껄 웃으면서 그 또한 자신이 집필한 ‘주목하라 – 전차에’ 1권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여자들도 아니고 남자들이 독서 클럽이나 하다니, 그것도 상급자까지 불러서. 참으로 웃긴 광경이야.”
“시간 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장군님.”
“뭐, 나도 자네를 한 번은 만나보고 싶긴 했어. 나에게 꼭 보여줘야 할 게 있다는데, 뭔지 참 궁금하군.”
“실망하시지 않을 겁니다.”
리히트호펜은 씩 웃으면서 독일 주변 국가의 지도를 꺼내어 테이블 위에 펼쳤다.
“허참. 미친 남작이 만주국이 아니라 독일에 있었을 줄이야.”
“대일 리 제독을 통해 배운 것뿐입니다.”
“누구를 통해서···?”
그렇게 세 장교는 온 유럽에서 펼쳐질 작전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
1달 전
워싱턴 D.C.
“흐으으으음···”
해군참모총장 윌리엄 리히 대장은 굳은 표정으로 내 눈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어려울 것 같습니까.”
“잘 알고 있군.”
해군 항해국장, 어니스트 킹 제독을 항해국 업무가 끝난 뒤 태평양함대 전함대 사령관 (COMBATPAC)에 임명하는 게 어떻냐는 제안을 해봤다.
킹이 COMBATPAC이되면 그가 눈여겨보던 항공모함 전대 사령관을 내가 정보국장 다음 보직으로 낼름 먹고, 장기적으로 내 커리어에 더 도움이 되기에 한 번 던져봤지.
아, 그런데 리히의 표정을 보니 나와 킹 둘 다 예측한 대로 애로사항이 좀 많아 보이네, 이거.
“확실히 자네가 말한 대로 킹 제독은 성실하고 머리도 좋지. 그걸 부정하는 자는 해군에 단 한 명도 없어.”
“···문제가 뭔지 알 것 같습니다.”
“그래. 하지만 다 좋은데···그놈의 성격이 자꾸 그의 발목을 잡는단 말이지.”
누가 그랬던가. 만약 킹이 성깔에 정비례하는 유능함이 없었다면 진작 해군에서 퇴출당했을 거라고.
심지어 몇몇 동기들이랑 선배들이 말하길, 내가 황인종이라는 디버프를 생각해도 나보다 킹이 해군 내에서 적이 더 많다고 했던 것 같다.
···야, 만약 사실이라면 그거도 재능이라면 재능인데?
“아직 결정할 시간은 남았으니, 좀 더 고려해보겠어. 그보다도 얼마 전에 좀 심각한 내용의 보고서를 보냈더군.”
“그렇습니다···”
최근 내가 해군 정보국장으로서 마주한 가장 심각한 문제가 하나 생겼다.
일본해군은 계속 군비확장을 해나가며 함대를 키워나가고 있다. 해군만큼은 몰라도 육군도 계속 몸집을 키워나가는 중이고.
아니, 뭔데.
한반도는 좀 복잡한 상황이라서 논외로 치고, 만주도 못 먹었으면서 자원 수급은 도대체 어디서 하는 거지···?
일단 내가 후원해주는 일본의 정치인, 오자키 유키오에게 전달받은 바에 의하면 현재 일본 국민이 아주 그냥 쥐어짜이고 있다는 말은 들었다.
그래도 그것만 가지고는 설명되지 않은 규모로 일본군이 커지고 있단 말이지. 뭐야, 누가 몰래 지원이라도 해주고 있나?
설마.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 상황은 아니겠지. 그놈들이 미쳤다고 일본과 손을 잡는다고···?
“결론만 말하자면 일본해군이 국가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그 이상으로 함대 규모를 확장해나간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거참.”
이쯤 되면 내가 자주 쓰지 않는 카드를 하나 꺼내야겠다.
“참모총장님. 제가 ‘예언’ 하나만 하겠습니다.”
“이런 세상에! 안 하면 안 되겠나?”
내가 아주 강렬한 키워드를 꺼내자 리히는 긴장하면서도 곧바로 펜과 종이를 꺼내어 필기할 준비를 했다. 어쩌겠나, 할 말은 해야지.
“미국은 앞으로 늦어도 4년, 빠르면 2년 안에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될 겁니다. 네, ‘2차’라고 말씀드린 거 맞습니다.”
달가닥
리히는 기겁하며 손에 쥐고 있던 펜을 땅에 떨어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