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460)
매국노의 원수 자식-460화(460/773)
460_침공 개시 (8)
1937년 12월
워싱턴 D.C.
미합중국 국무부 장관 코델 헐은 스스로를 잔뼈가 굵은 정치인이라고 자부했으며, 이에 딱히 반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당선과 함께 국무부 장관에 임명되기 전에도, 그는 이미 테네시주 상하원 의원에서 보낸 25년을 포함해 현시점엔 정계 경력만 무려 30년이었다.
하지만···
“저같이 별 볼 일 없는 자가 장관님의 귀하신 시간을 소모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길고 다사다난 정치 경력조차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속을 파악하기 힘든 덩치 큰 황인종 해군 제독처럼 기묘한 상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려주지 못했다.
다만 절대 함부로 다루지 말며, 특히 괜히 인종 가지고 트집 잡는 걸 피해야 할 정도의 존재라는 건 체감할 수 있었다.
길가에 쓰러져 있는 흑곰이 죽었는지 아니면 그냥 자고 있는지 확인해보려면 멀리서 던진 돌멩이나 아주 긴 막대기가 필요하듯.
“스스로를 너무 저평가하지 마시죠.”
지금으로부터 딱 30년 전, 헐이 처음으로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워싱턴에 왔던 당시, 국무·전쟁·해군부 건물에 웬 황인종 해군 장교가 들어와서 일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던 게 기억났다.
며칠 후 아나코스티아 다리 근처에서 시행된 비행 실험을 통해 병기국 소속의 대일 리 (그 당시 소위)라는 존재가 사실이었다는 것에 깜짝 놀랐던 것도.
심지어 그 건물에서 제일 높은 관료인 국무부 장관이 된 지금, 소장이라는 계급까지 달고 해군 정보국장으로 근무하는 그를 볼 때마다 헐의 머릿속엔 한 가지 의문이 솟아났다.
‘도대체 이 자는 뭐길래 30년 가까이 워싱턴을 들락날락하는 거지···?!’
그것도 헐이 조사해본 결과, 평범한 황인종도 아니고, 엄밀히 따지자면 대한제국이라는 아시아의 외국에서 태어난 이중국적자가.
물론 어차피 대일 리의 인종과 국적은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비하면 너무나도 사소한 문제에 불과했지만.
예를 들면 재난을 예고하면 매우 높은 확률로 일어나고, 경고를 무시하거나 조금이라도 적대시한 적이 있던 자들에게는 여러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나곤 했으니까.
“혹시 스페인 내전 관련해서 여쭤보실 게 있어서 그런 겁니까?”
의문점이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물어봐야 하나 고민하는 헐을 도와주고 싶기라도 했는지, 리가 질문을 던졌다.
역시 단순히 해군과 해양 관련 사안을 넘어, 국무부도 놀라워할 정도로 방대한 해외 정보를 다루는 자에 걸맞게 예리하긴 했다.
“주제가 많다만 그것도 포함되어 있죠. 이런 만남이 매우 익숙하신 것으로 보이는군요.”
“장관님 앞에서 둘러댈 순 없겠군요.”
그렇게 조금은 섬찟한 미소를 지은 리는 주저 없이 자신이 어떻게 PCDA를 통해 공화파를 지원하고 있는지에 대해 꽤 상세하게 설명했다.
이미 이 사안 관련해서 그를 추궁한 자가 있는 게 분명했고, 헐이 추측하기엔 군수사업 조사 위원회의 위원장 제럴드 나이 상원의원이 그 대상으로 유력해 보였다.
“지금 미국의 대기업 중 공화파를 지원하는 건 PCDA 밖에 없을 겁니다.”
“딱히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파시즘을 공산주의보다 훨씬 더 위험한 존재라고 판단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리 제독이 보기에 공화파가 선이고 국민파가 악이다, 이겁니까?”
정치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비참하게 몰락해버린 우드로 윌슨의 임기 당시, 헐은 잠시 하원 세입 위원회(House Committee on Ways and Means)의 일원으로 들어갔었다.
그로 인해 대전쟁 당시 대일 리가 PCDA를 통해 프랑스와 영국 (그리고 대한제국)과 거래하며 막대한 이윤을 봤다는 것도 확인했고.
다만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창업 이후로 세금만은 꼬박꼬박 빼먹지 않고 내고 있다는 사실이 희한할 뿐이었다.
“그럴 리가요, 요즘 같은 세상에 그렇게 뚜렷한 선악이 어딨겠습니까. 그저 거악과 차악이 있을 뿐입니다. 아, 물론 절대 오해하지 마십시오, 장관님.
전 이미 스탈린이 통치하고 있는 소련에서 얼마나 많은 핍박과 학살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익히 알고 있습니다. 불가침조약을 체결한 만주국을 침공한 것만 봐도 알겠지만, 소련은 위험한 존재입니다.”
사실 헐 또한 소련의 정확한 상황을 해군 정보국의 첩보를 통해서야 알게 된 관료 중 하나였기에, 고개만 끄덕이며 다음 설명을 기다렸다.
“그렇죠. 그걸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선 안심이 되는군요.”
“하지만 아비시니아와 오스트리아를 침략한 것, 그리고 그 이전에 태생적인 교리도 그렇고, 파시스트들이야말로 미국을 포함한 서방세계의 안보에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위협이 될 거라 믿습니다.”
“이탈리아와 독일의 태생적 교리에서 어느 부분이 문제 있다고 보는 겁니까?”
“내부로든 외부로든 무한히 적을 만들어 분란을 일으키고, 필연적으로 전쟁과 약탈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사회정치적 구조를 만들어나간다는 점이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리의 심도 있고 진지한 답변에 헐은 제법 감탄했다.
해군참모총장 윌리엄 리히 대장이 왜 그토록 저자를 아끼는지 이해가 되고, 솔직히 자신도 국무부로 끌고 와서 밑에서 부리고 싶을 정도로.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의 발언에서 찾을 수 있는, 어떻게 보면 위선적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모순 또한 놓치지 않았다.
“아무래도 전쟁이라는 것 자체를 혐오하는 것 같은데, 당신과 리히 제독님은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는 것 같군요?”
“참모총장님께선 사실 오래전부터 중국과 만주국, 그리고 아시아 전체에 대해 애착을 두고 계시기 때문이죠. 일본이···정말 상황이 안 좋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팽창주의적 정책을 펼치는 것도 사실이고요.”
헐은 자신이 앉아 있는 의자 가까이에 있는 테이블 위에 있는 얼음팩으로 시선을 돌렸다.
파나이 호 사건에서 리히 제독이 보인 너무나도 격렬한 반응 때문에 그는 극심한 두통이 생겨 자꾸 이마에 얼음찜질해야 했다.
사실 헐이 리 제독을 만나보기로 한 가장 큰 이유가, 리히의 많은 결정이 바로 정보국에서 보낸 첩보에 영향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건 아마 밝히지 않는 게 좋아 보였다.
물론 어떻게 보면 제일 중요한 질문은 해야겠지만.
“···혹시 제독님도 일본과의 전쟁을 원하시는 겁니까?”
언젠가 헐은 리히와 전 항공국장 어니스트 킹 소장을 만나서 리 제독이 혹시 무슨 꿍꿍이가 있는 자라고 물어봤지만, 그들은 그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저 얼굴이 불순한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까?’
‘저 녀석은 무슨 음모를 꾸밀 정도로 머리가 좋지 않습니다.’
확실히 국무부 장관 앞에서 일개 소장인 그라면 어느 정도는 몸을 사리는 게 당연할 테니 아마 불순한 대답을 할 것 같지는 않아 보였-
“장관님. 전 말입니다, 그냥 전쟁이 아니라 총력전을 원합니다. 저희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도 더 과격하고 총력적인 전쟁을 말이죠.”
-불순하다.
정말 한없이 불순하다.
밑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네?”
용케 표정 관리에는 성공한 헐이었으나, 무의식적으로 여전히 차가운 얼음팩을 향해 손을 뻗었다.
총력전 (total war)이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정신 나간 소리란 말인가.
상상도 못 할, 상식을 아득히 벗어난 답변에 순간적으로 헐은 이 미치광이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이 두려워질 지경이었지만 애써 침착을 유지했다.
“이건 또 무슨 참신한 발상인지 들어보고 싶군요.”
그리고 광기 어린 답변을 한 리의 입에선 영 뜬금없는 답변, 아니, 질문이 튀어나왔다.
“장관님은 각하께서 취임식 때 읊으셨던 구절 기억하십니까.”
“네? 정확히는 잘 기억 안 나는군요.”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요,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일지어다.”
“아 그래, 고린도전서 13장 13절이었죠.”
리는 잠시 천장을 바라보며 머릿속을 뒤지는 듯했다.
“각하께선 유난히 고린도전서 13장을 마음에 들어 하셨습니다. 그러실 만도 하죠, 13절 외에도 훌륭한 구절이 많으니까요.”
“예를 들면?”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그 구절이랑 총력전을 추구하는 거랑 무슨 관계가 있는지 궁금해하는 헐에게 리는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늘날처럼 서로 의존하는 세상에서 악, 정확히는 모순, 기만, 그리고 폭력으로 이뤄진 체제가 일으키는 혼란과 비극에서 완전히 스스로를 격리할 수 있는 나라는 없습니다.
묵시록처럼 필연적으로 일어날 불지옥의 불꽃은 미국에도 튈 것이며, 그날이 오면 제일 먼저 미국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는 세력 중 하나는 바로 미합중국 해군이 될 겁니다.
그렇게 악을 처단하기 위한 전쟁이 일어날 시, 저 같은 군인으로서 추구할 수 있는 가장 큰 미덕은 신속히, 피해자가 적게, 그리고 비극이 재발할 일 없도록 확실히 끝내는 겁니다.
따라서 전 최대한 압도적인 역량, 압도적인 기술차, 그리고 압도적인 물량으로 우리의 적을 찍어누르는 전쟁을 원하고, 그 길을 위해 지금껏 군대에 남아 전방위에서 노력해온 겁니다.”
달그락
거의 눈도 깜빡하지 않고 리의 짧은 연설을 들은 헐이 이마에 대고 있던 얼음팩을 다시 내려놨다.
“그리고 최대한 빠르고 평화롭게 끝내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국가의 모든 역량을 끌어내는 전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군요.”
“물론 그 뒤에 수습하는 것도 중요하겠죠.”
“전쟁 그 자체를 원하고, 그를 통해 이득을 보려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장관님이 보시기엔 제가 미친놈이나 파시스트로 보이십니까? 아, 둘은 중복어인가.”
급격히 가라앉은 분위기에 헐 또한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사실 국무부의 조사에 의하면, PCDA는 대전쟁 때보다 종전과 대공황 직전까지 벌어들인 돈이 훨씬 더 많긴 했었다.
“후자는 맞는 것 같습니다만.”
“···음, 딱히 부정은 않겠습니다. 아무튼, 저는 파시스트는 아니며 온전히 민주주의 체제를 지지합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헐은 자신의 가슴 속에 도사리고 있었던 의문과 우려가 해소된 것 같았다.
스페인의 공화파를 지지하는 것은 결국 그들이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수립된 정부이기 때문인 것.
그리고 나중에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리가 시어도어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친분과 후원을 이어온 루스벨트 가문에 충성할 것으로 보였다.
외교 관련된 무거운 논의가 끝난 뒤, 한참 동안 가벼운 대화를 나눈 둘은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했다.
“시간 내줘서 고맙군요, 리 제독.”
“장관님께서 오라고 하시면 와야죠. 그런데 마치 인터뷰라도 한 것 같은데 기분 탓일까요?”
리가 가볍게 던진 농담에 헐 또한 농담으로 받아쳤다.
“국무부에서 진행한 인터뷰라고 생각해도 됩니다. 언젠가는 전역할 거죠?”
“아이고 장관님, 저 같은 놈이 국무부에 들어오면 난리 납니다, 하하하!”
그렇게 리가 떠난 문을 쳐다보며 헐은 그와 나눴던 대화를 다시 짚어 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어디 보자···”
생각을 정리한 헐은 노트를 적기 시작했다.
*****
메릴랜드, 볼티모어
“다녀왔습니다.”
“어서 오세요. 칼튼 호텔은 좀 어땠어요?”
내가 헐이 머물렀던 방의 번호를 알려주자 세레나는 손가락을 굽히며 기억을 더듬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네요, 그때 그 방은 아니라서.”
“그 방 수리하는 데 좀 걸렸죠, 아마···”
“언젠가 또 수리할 일이 생기겠죠. 그건 그렇다 치고, 헐 장관님과 대화는 잘 되어갔나요?”
아 그거.
음.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긴장해서 아주 조금 급발진한 것 같기도 하네. 뭐, 그래도 전체적으로 훈훈하게 끝난 것 같으니 다 된 거겠지.
그런데 내가 나가기 직전에 헐 그 양반이 나를 매의 눈으로 쳐다본 것 같은데, 기분 탓이려나···?
에휴, 모르겠다. 어차피 국무부 일에 관여할 것도 없고, 나는 내 할 일이나 계속하면 된다.
압도적인 해군력, 정확히는 해군 항공력 증강을 말이지, 흐하하하하!!!
따르르르릉
조금은 빌런처럼 낄낄 웃는 나의 귀에 전화기가 울려왔다.
딸칵
“···네. 네네. 오 세상에, 알겠습니다.”
어허, 이것 봐라. 해군에서 대규모 사업을 할 일이 생긴 모양이군.
그리고 내일 아침 해군 정보국도, 참모총장 사무실도 아니고 바로 오벌 오피스로 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