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461)
매국노의 원수 자식-461화(461/773)
461_침공 개시 (9)
1937년 12월
스페인, 부르고스
국민파 진영의 총사령관, 프란시스코 프랑코 바하몬데 대원수의 사령부가 자리 잡고 있으며 프랑코 정부의 수도나 다름없는 부르고스는 언제나 분주했다.
형용할 수 없는 그 활력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쉽사리 구분할 수 없었으나, 이번엔 난이도가 큰 폭으로 내려갔다.
슥슥슥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빨갱이 놈들이 용케도 돌파하고 들어와 테루엘을 확보했으며···’
독일이 스페인에게 보내준 “의용군” 콘도르 군단 소속, 볼프람 폰 리히트호펜 대령은 자신의 숙소 안에서 묵묵히 일기를 적고 있었다.
평상시에도 매일 꼬박꼬박 전투일기를 쓰는 리히트호펜이었으나, 오늘은 더더욱 기록을 남겨야 할 것 같았다.
잔혹할 정도로 냉정하고 침착했던 프랑코가, 테루엘 점령 소식으로 인해 그 누구보다도 더 혼란에 빠져서 얼굴이 창백해지고 고함을 질러대는 진풍경은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어떻게 저딴 한심한 녀석들에게 또 한 방을 먹을 수가 있지···”
작성을 완료한 리히트호펜은 혀를 끌끌 차며 일기장을 덮고는, 여전히 소란이 들려오는 막사 밖으로 쳐다봤다.
이탈리아와 독일 측의 군사 고문들은, 브루네테 전투 이후에 숨통이 조금 트인 마드리드를 향한 대규모 공세를 펼치자는 계획을 세웠고 프랑코 또한 이를 받아들이는 듯했다.
애석하게도 프랑코는 군사적으로든, 개인적인 자존심 때문으로든, 공화파에게 그들이 악착같이 이뤄낸 승리를 즐길 틈을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몇 주 동안 세워놓은 마드리드 공세 계획을 취소하고서라도, 당장 테루엘 주변의 전선을 공화파 공세 이전으로 원상 복귀시키겠다고 선언한 걸 보면.
‘언제쯤이면 다시 비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하달까, 프랑코가 제일 먼저 보인 반응은 콘도르 군단을 찾아가 그들을 테루엘 전선에 투입하려는 시도였다.
‘기상 조건이 너무 좋지 않아서 한동안은 힘들 것 같습니다.’
‘···최대한 빨리 준비를 해놓으시오.’
리히트호펜은 단 하나의 거짓 없이 건조하고 신중하게 거절했으나 프랑코를 포함한 국민파 사령관들은 초조하고 답답했는지 매우 불만이 많아 보였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안되는 건 안 되는 거였고, 안 그런 군종이 어딨겠느냐마는 공군은 함부로 날씨를 거스를 순 없는 법이었다.
스카게라크 (유틀란트) 해전 때 기후고 뭐고 다 무시하고 뇌격을 저질렀던 어느 미국인 파일럿처럼 미친놈도 있지만, 콘도르 군단에선 그렇게 인간의 상식을 초월한 자는 없으니까.
···아마도.
똑똑똑
“리히트호펜 대령님 계십니까.”
“들어와.”
방문이 열리자 험지라도 다녀온 듯 지쳐있는 병사 두 명이 들어왔다. 그중 좀 더 피곤해 보이는 한 명은 싸고 거친 천으로 어설프게 포장된 물건 하나를 들고 있었다.
“테루엘이 정말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추운가?”
그들이 가져온 물건에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낸 리히트호펜은 제일 먼저 떠오르는 질문을 던졌다.
“정말···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전설적인 추위입니다. 차량의 부동액도 너무 빨리 소모돼서 밤 10시 이전에는 라디에이터의 물을 반드시 빼놓으라는 명령도 떨어졌지 뭡니까.”
“게다가 밸브를 열어놓고 계기판 온도가 200도를 가리킬 때까지 엔진도 계속 켜두라는 지시도 있었습니다.”
“저런.”
역시 저런 기상에 비행기를 그대로 날려 보냈으면, 공화파의 (만능) 대공포와 복엽기가 아니라 얼어붙는 엔진 때문에 콘도르 군단의 비행단이 격추됐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공화파와는 달리 국민파, 그리고 콘도르 군단을 포함한 독일군은 미국에서 석유를 많이 공급받아서 다행이긴 했지만.
“대령님, 저희가 현장을 정찰하고 오면서 뭔가 신기한 물건을 확보해왔습니다.”
“그래?”
병사에게 받은, 옷으로 싼 짐을 펼치는 리히트호펜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는 어린아이처럼 머릿속에 오만 기대와 상상이 가득했다.
하지만 공화파 측의 기밀문서 같은 걸 기대했던 그는 약간의 습기를 머금고 있는 방한복을 보고는 선물 대신 석탄을 받는 꼬마처럼 얼굴이 일그러졌다.
특히 피도 약간 묻은 걸 보니, 아무래도 테루엘에서 사망한 공화파 병사 중 하나에서 벗겨온, 정말 악취미적인 전리품이라는 걸 파악한 이후엔 더더욱.
“그냥 옷이잖아.”
“한 번 입어보십시오.”
“내가 뭔 패션모델처럼 옷걸이가 좋은 것도 아니고 뭘 굳이-”
뭔 쓸데없는 걸 들고 와서 굳이 보고까지 하려고 했냐며 투덜거리려던 볼프람은 방한복의 원단에 손을 대는 순간 얼굴이 굳었다.
“-오.”
원단을 계속 만져본 리히트호펜은 다시 호기심이 발동해 군복 상의를 벗고는 조금 더러워진 방한복을 몸에 걸쳐봤다.
“오오···”
스페인, 아니, 유럽 그 어디에서도 이렇게까지 (상대적으로) 가볍지만 동시에 따뜻한 옷은 처음 입어보는 것 같았다.
여러 번 탈의와 착용을 반복한 리히트호펜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방한복을 병사들에게 돌려줬다.
“아주 훌륭한 물건을 용케 찾아왔군. 이건 아무래도 독일로 꼭 보내야겠어.”
벌써 리히트호펜의 머릿속에는 이런 옷이 필요할 것 같은 전장이 하나 떠올랐고, 그 지역은 단순히 테루엘뿐만이 아니었다.
도대체 어느 기업에서 만들었나, 미국 기업이라면 독일군에 수출 계약을 맺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볼프람은 옷 내부를 살펴봤다.
“이런 젠장할···”
“무-무슨 일이십니까, 대령님?!”
“아, 아니야. 고생했으니까 들어가 보라고.”
병사들을 떠나보낸 리히트호펜은 옷에 박혀 있던 태평양상거래개발조합의 로고를 떠올리며 미간을 꾹꾹 주물러댔다.
“그럼 그렇지···”
대공포, 기관단총, 복엽기 등의 무기.
스팸, 스니커즈, 마카로니 앤 치즈 등의 식량.
그리고 두 항목 중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지만, 혁신적인 디자인의 철제 연료통, “리버티 캔” 등.
현재 공화파가 쓰는 것 중에서 성능과 효율이 좋은 제품의 원산지를 추적해보면, 결국 높은 확률로 미합중국 해군 소장 대일 리의 PCDA가 등장하곤 했다.
“본업은 해군 제독이지만, 부업은 기업인인 그가 왜 이렇게 빨갱이들을 지원해주는 거지···?”
이쯤 되면 만약 베를린에 폭격이 이뤄진다면, 폭탄이나 폭격기 둘 중 하나는 그 회사 제품이 될 게 분명해 보일 지경이었다.
제발 그의 사촌,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 소장이 정신을 차리고 그의 실체를 파악했으면 좋으련만.
“···설마 공화파 정부한테 금괴라도 받기라도 한 건가.”
*****
워싱턴 D.C.
후비적후비적
음, 어디서 누군가 내 얘기라도 하나, 귀가 가려운 걸 보니.
“좋은 아침입니다, 참모총장님.”
“자네도 말이지.”
아침 일찍부터 국무·전쟁·해군부 건물 근처에서 해군참모총장 윌리엄 리히 대장과 만난 뒤, 참모총장 사무실도 아니고 바로 오벌 오피스로 직행했다.
“헐 장관님과의 얘기는 잘 마무리된 것 같나.”
“국무부에서 어느 정도 들으셨습니까? 뭐, 별건 아니고 그냥 뭐 숨기는 거 없이 생각하는 데로 답변해드렸습니다. 그 뒤에 장관님이 절 어떻게 평가하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내 솔직한 대답에 리히는 오벌 오피스로 향하는 카펫을 걸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에는 나, 그다음에는 크레이그 참모총장, 이젠 헐 장관님까지···이번에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거라고 예언까지 한 모양이더군. 조금은 숨기지, 참.”
“헤헤헤.”
“자네가 평화롭게 사는 사람들에게 폭탄을 던져서 그들이 공포에 떠는 걸 즐기는 건 알겠어.”
분명히 리히는 농담이라고 던진 것 같은데 왜 어느 정도 진심이 느껴지는 것 같을까. 내 평판이 저렇게까지 나락으로 떨어진 거야?!
“어쨌든 너무 대책 없이 막 떠벌리고 다니진 말라고. 나도 내후년에는 전역할 거라는 거 잘 알고 있지 않나.”
하긴, 올해 유난히 내가 해군 정보국장으로서 전방위에서 어그로 끌고 다녔을 때, 리히가 해군참모총장의 직책과 권한으로 커버쳐준 게 엄청나게 많긴 했다.
마치 내가 아나폴리스의 입교하기도 전부터, 조지 듀이 원수와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득을 크게 봤듯이.
“전적으로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참모총장님께서 전역하실 무렵엔 각하께서, 그리고 미합중국이 저를 필요로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리, 내가 조금 전만 해도 뭐라고···아니 됐다, 그냥.”
뭐야, 포기하지 마요.
덜컥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리히가 오벌 오피스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번엔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외에도 하원 해양위원회의 위원장, 칼 빈슨이 우리를 맞이했다.
“잘 오셨습니다, 참모총장님-그리고 리 제독도 왔···군요.”
꽤 친분이 있었던 리히를 반갑게 미소짓던 빈슨의 얼굴은, 그의 옆에서 함께 들어온 나를 보는 순간 떨떠름하게 일그러졌다.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 빈슨은 잠시 눈을 감고 소리 없이 중얼거린 후 나에게도 억지로 똑같은 미소를 보여줬다.
음, 아무래도 참아야 한다고 계속 되뇌었던 것 같은데, 기분 탓이냐.
“기다리고 있었어, 리히 제독. 제일 먼저-”
“그래서, 각하. 영국에선 연락이 왔습니까.”
리히는 루스벨트의 말까지 끊어가면서 파나이 호 사건을 다시 꺼냈다. 루스벨트는 이해는 한다는 눈빛을 보였으나, 빈슨은 평소와는 다른 그의 모습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게 분명했다.
저럴 만도 하지, 솔직히 나도 적응이 잘 안 되는데.
와르르
대답 대신, 루스벨트는 그의 책상 위에 있던 자루 위에 (손등에 묵직한 힘줄이 난) 손을 뻗은 후, 내용물을 쏟아부었다.
어이쿠, 이게 다 뭐야. 일본어로 쓴 편지잖아?
“뭐라고 쓰여 있나, 리?”
이 자리에 모인 4인방 중에서 유일하게 일본어를 할 줄 아는 난 FDR의 허락을 받고, 편지 몇 편을 들어 즉석에서 영어로 번역해 읽었다.
빈슨과 루스벨트와는 달리, 편지를 읽는 나와 리히 둘 다 표정이 썩어 문드러지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거참. 일본의 여성들과 어린아이들이 이번 사태에 대해 손으로 직접 쓴 사죄편지라니.”
“원래 일본 정부와 군부는 강대국 대상으로 일을 저질렀을 때 민간인을 통한 감성팔이를 잘해왔습니다. 약 45년 전에 러시아의 황태자를 대상으로 일으킨 암살 미수 사건 때처럼.”
“그런 일도 일어났던가? 거참,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하군.”
“그때는 어떤 여성이 사죄의 의미로 자결까지 했는데, 참.”
당연히 이런 걸 한 번도 들어봤을 리가 없었던 빈슨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편지로 퉁치려는 걸 보니 그 때보는 조금 덜 미안한가 봐? 아 맞다, 배상도 하겠다고 했지, 참.
“게다가 영국 정부 또한 자국의 함선인 레이디버드 관련해서 일본의 사과를 받아들였으니, 리히 자네가 말한 합동 해상봉쇄는 일어날 것 같지 않아. 정말 안타깝지만 말이야.”
그 말에 리히는 속이 쓰린 듯 입술을 깨물었지만, 난 그것보다는 루스벨트가 일본의 사과를 영국이 받아들인 게 ‘안타깝다고’ 말한 게 더 놀라웠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진 말라고.”
씁쓸하게 현실을 전달하던 루스벨트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환히 – 그리고 조금은 소름 끼치게 –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번 일로 인해 나도, 국무부도, 그리고 하원 해양위원회 모두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네.”
“뭡니까, 각하.”
“우린 언젠가 반드시 일본과 전쟁을 하게 될 것이며, 그러기 위해 해군력을 추가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이야. 어느 해군 정보국장이 정확히 예측했던 것처럼 말이지.”
고개를 끄덕이는 루스벨트가 시선을 이쪽으로 보냈고, 리히와 빈슨의 시선 또한 나에게 화살촉처럼 따닥따닥 꽂혔다.
아. 이거 뭔가 익숙한 패튼-아니, 패턴인데···?
“그리고 일단···항공모함부터 추가 건조를 해보려고 하네. 그 말이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 리 제독.”
오.
오 세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