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47)
매국노의 원수 자식-47화(47/773)
47_총체적 난국 (5)
1904년 3월
메릴랜드, 아나폴리스
시발.
시발시발시발.
큰일났다, 큰일났다.
‘조선멸망’을 쓴 여파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이렇게 더 클 줄은 몰랐네.
아니 뭐, 그래. 그 책 사람들이 많이 읽고 대비를 하길 바랐지. 그런데 정신적으로가 아니라 이렇게 물리적으로 개판 날 줄은 몰랐다고!
매일매일 일본군한테 수십명씩 끌려가서 고문당하고 있고 죽어 나가기까지 하잖아?!
처음에는 민족의 저항 정신이 발휘됐나 싶어서 캬, 주모 하려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안창호가 설명하기엔 집단적 광기에 더 가깝다고 한다.
자꾸 나라가 망한다는 설이 몇 년이나 돌고 있다가 그게 현실로 다가오니 다들 멘탈이 나가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전반적인 범죄율이 폭등하고 경무청은 업무 과다에 시달리다가 일본군 헌병에게 집어 삼켜지고 있다고 한다.
항일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일본군에게 굽신굽신하거나, 조선을 뜨거나, 아니면 그냥 몸 사리고 조용히 있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더라. 그런데 왜 마치 온 조선이 들고 일어선 것처럼 보이냐고?
자꾸 언론이 부추기거든.
전국 각지의 언론이 항쟁 운동이 일어날 때마다 실제 성과와는 별개로 대서특필해주고 그런 보도를 하는 신문을 민중들이 계속 구매해준다. 그래서 본심과는 상관없어 조회수-아니, 판매부수를 위해서만 반일 정서를 자극하는 언론사들도 있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서도 한인들이 난리가 났다.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사퇴하는 PCDA 직원들도 있고, 일본인들만 보면 테러하는 한인들도 있으며, 온 사방에 일본의 스파이가 가득하다고 음모론을 읊어대는 자들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내가 불장난치고 가서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지 감도 안온다. 그리고 계속하여 발생하겠지.
당연히 내 책임이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사실 여기 현지 언론에서도 일본군 장군 사망 사건이 국제뉴스란에 언급되긴 한다. 그런데 문제는 다들 일본에 한없이 호의적인 보도뿐이었다. 오히려 그들을 추모하는 기사까지 나왔다니까?!
미국 내의 여론에선 일본은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문명화된 국가이며, 오만방자한 러시아를 혼내줄 대리 파이터로서 기대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미국 이놈들도 국제깡패였고, 멕시코나 필리핀 점령할 때 현지인들의 저항을 여러번 마주쳤고, 그때마다 잔혹하게 진압하고 학살까지 저지른 적도 있다. 그래서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는 모양이다.
내 동기 중에서 일본군이 한국인에게 저지르는 만행을 보고 원래 야만인들은 저 정도로 다뤄줘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눈이 뒤집히는 기분이었으니까.
그래, 니들 백인들이 보기엔 황인종이 몇 명이나 죽든 알 바가 아니겠지.
결국 현실은 러시아는 어그로를 너무 많이 끌어서 적이 많고, 일본은 마케팅을 잘해서 우방이 많았다. 물론 한국 편은 어디에도 없었고. 시발, 일본아 진주만 공습 좀만 더 빨리하면 안되겠니?!
이런 현실을 겨우 개개인이 뒤집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
하지만 그저 현실에 순응하지 못해서 괜시리 역사를 거슬러보겠다고 책 한 번 썼다가 지금 이 꼴이 났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고. 사태가 더 악화되지는 않을 거잖아?
그렇지···?
그러나 몇 주 후에 한 편지를 받고 나는 완전히 멘탈이 나가고 말았다.
*****
3월 첫째 주
대한제국 한성부
한성대학교 법학과 교수 이준(李儁)은 출석을 부르다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오늘 또 다른 학생이 결석했다.
이재명의 의거 이후로 결석하는 학생 수가 매일매일 늘어나고 있다. 처음엔 본인이 수업을 제대로 못해서 수강철회를 하는 건가 싶었다. 그러나 이제 강의실의 빈 구석이 많이 보일 정도로 결석자가 늘어난 것 보니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는 게 분명했다.
의거 바로 다음 날 수십 명의 헌병이 한성대학교를 들이닥쳤다. 가장 먼저 그들은 총장실로 들이닥쳐 박제순 총장한테 언론학과 소속 학생 및 교수진의 정보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명단을 확보한 다음 헌병은 박제순에게 이승만 교수를 해임하고 언론학과를 폐지하라고 으름장을 놓았고, 그는 벌벌 떨면서 단 한 번도 저항하지 못하고 순응하고야 말았다.
이런 과격한 행동에 이준은 처음엔 그렇게까지 반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충분히 이해할만하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일본이 러일전쟁을 일으킨 이유가 같은 황인종으로서 백인종에 맞서서 한국과 중국 두 나라의 독립을 수호해 주기 위함이 아닌가.
그런데 정작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일본군 장군이 무려 3명이나 살해당하고 참모총장 다음으로 가장 높은 장군 중 하나가 중상을 입었다. 게다가 그 이후로 팔도에서 일본군을 향한 테러 및 사보타주 활동이 일어나고 있다.
일본군이 대로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준은 일본군이 언론학과 학생들을 소환해 심문하더라도 오해가 풀리면 무사히 돌려보내줄 것이라고 믿었다. 최소한 그가 와세다대학 법학과에 다닐 시절에 배웠던 내용에 의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합당했다.
하지만 일본군에게 끌려간 학생들이 다시 돌아올 때는 어딘가 몸이 심각하게 망가져서 오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일부 여학생들은 왠지 모르게 수치심과 두려움에 시달리다가 자퇴하기도 했다.
아예 돌아오지도 못하는 학생도 벌써 두 자릿수에 달했다.
‘이럴 수가, 어떻게 영국이나 프랑스놈들이 식민지에서 저지르는 만행을 여기서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아시아 문명화의 희망이었던 일본에서 이런 야만스러운 짓을 저지르는 현실에서 받은 충격을 떨쳐내고 수업을 시작하려는 참에, 강의실에 무장한 헌병 셋이 들이닥쳐 한 여학생의 이름을 불렀다.
호명 당한 여학생은 산길을 걷다가 호랑이라도 만난 것처럼 놀라고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이준은 자신의 학생과 그녀를 압송하러 성큼성큼 다가오는 헌병 사이를 막아섰다.
“잠시만요, 헌병 나으리. 영장 소지하고 오셨습니까?”
“뭐야?”
“무슨 혐의로 제 학생을 체포하러 오신 건인지는 모르겠지만, 영장이 없다면 최소한 상당한 이유 (probable cause)라도 있으십니까?”
세 명의 헌병은 서로를 쳐다보다가 깔깔 웃었고, 그중 한 명이 이준에게 다가왔다.
“아, 영장? 여기 있지.”
“그러십니까? 어느 기관에서 발부-크헉!”
헌병은 영장을 꺼내는 척하다가 아리사카 소총의 개머리판으로 이준의 면상을 가격했다. 이준은 입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바닥에 부딪치자마자 군화로 복부를 한 번 더 밟혔다.
학생들 모두가 비명을 질렀다.
피를 철철 흘리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쉬는 이준 옆에 헌병이 쭈그려 앉았다.
“조센징 주제에 법 좀 공부했다고 까부는 것 같은데, 뭔가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구먼. 여기선 우리가 바로 법이야, 이 머저리야. 끌고 가!”
나머지 헌병 둘이 여학생을 양쪽에서 붙들고 끌고 갔다. 그녀는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발버둥 쳤으나 역부족이었다.
“저 아무것도 몰라요, 진짜에요, 제발 살려주세요!”
“누가 죽인데? 좀 진득하게 물어볼 게 있을 뿐이라고.”
눈물을 흘리며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여학생을 헌병들은 음흉한 눈으로 보면서 끌고 갔다. 이준이 그 중 한명의 발목을 붙잡았지만, 군화로 얼굴이 밟힐 뿐이었다.
복도에서도 비명소리가 계속 울려 퍼지다가 조용히 하라는 소리와 함께 뭔가 둔탁한 타격음이 들려왔고, 복도가 조용해졌다.
겨우겨우 일어난 이준은 입가의 피를 닦으며 헌병들이 나간 방향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봤다.
“그래. 내가 심각한 오해를 한 것 같네.”
이놈들은 백인종에서 황인종을 구하려는 자들이 아니라 스스로를 백인종으로 착각하고 압제자가 되고 싶었을 뿐이었다.
‘저런 놈들을 한반도와 중국의 구원자라고 생각해왔다니···!’
이준의 불끈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얼마 후, 수십 명의 사람을 심문하고 고문한 후, 일본군은 ‘조선멸망’의 최초연재처가 이승만의 제국신문이며, 원고 제공자가 의주공립학교의 아펜젤러 교장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렇게 수백 명의 일본군이 그들을 체포하러 의주로 향했다.
한편 한성대학교에서 그들이 저지른 만행은 전국에 퍼져나갔고, 그중 경상북도 영해의 어느 청년의 귀에도 들어갔다.
이재명의 의거를 새로운 귀감으로 생각하여 숭배까지 하던 그는 사실 몇 년간 한 번도 ‘조선멸망’을 읽어본 적 없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한번 의병을 이끌고 항일거사를 이끌어본 적 있는 사람이기도 했고, 아무래도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3월 중순, 신돌석(申乭石)은 100명이 넘는 마을 사람들을 모아서 짧은 한마디만 했다.
“긴말 않겠습니다. 왜구 사냥철이 왔습니다. 슬슬 가봅시다.”
*****
그 무렵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해군사관학교 (Sea Cadet Corps)
“젠장할, 도대체 이번 달만 도대체 몇 번째 오는 거냐, 네 이 녀석!”
해사생도 로만은 교육감이 성을 내며 그에게 삿대질해도 그저 지루하다는 듯이 하품만 했다. 이런 오만방자한 태도에 교육감은 당연히 더더욱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물들어갔다.
사관학교에는 항상 태도가 불량적이고 폭력적이거나, 학업성과가 영 신통치 않은 생도들은 늘 있었다. 하지만 로만처럼 성적도, 성격도 둘 다 개판인 생도는 해사 역사상 얼마 없었다.
“넌 진짜 참 여러모로 전설이다, 아주 그냥. 나도 이제 슬슬 지친다, 지쳐.
한 번만 더 교육감실에 불려오면 바로 퇴교시켜버릴 거야, 알겠어?!”
“뉘예뉘예.”
“아니 저걸, 이게 진짜, 어후 꼴도 보기 싫으니까 당장 나가!”
혈압이 솟구쳐 뒷목을 잡고 쓰러진 교육감을 뒤로하고 로만은 껄렁껄렁하게 교육감실을 나섰다.
셔츠를 풀어헤치고, 신발을 꾸겨 신고, 주머니에 입수한 채로 껄렁껄렁 나와 복도를 걸어도 아무도 지적할 사람이 없었다. 불과 1학년 때 자신의 몸가짐을 지적하는 4학년을 두들겨 패서 입원시킨 이후엔 복도에서 그를 만나면 다들 피했고, 로만은 오히려 그 모습을 즐겼다.
분명히 수업시간이었건만, 로만은 털레털레 교정을 나가 시내에서 산책했다.
어차피 퇴교 예정인데 수업 한 번 더 듣는다고 뭐가 달라지기나 하나.
만사가 지루했다.
수업도 재미없었고, 다른 생도들 괴롭히는 것도 이젠 질렸다. 몇 주 전에 일본놈들이 뤼순항을 급습했고 러일전쟁이 발발했다. 조만간 뤼순항 근처에서 대규모 전투가 일어날 분위기이건만 여기서 뭐 하는 것일까.
“하, 나도 가서 잽스 좀 죽여보고 싶은데.”
아무래도 만약 퇴교 안 하고 해사 안에 계속 있으면 졸업할 무렵엔 러일전쟁이 끝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게 무슨 재미란 말인가!
그렇게 궁시렁궁시렁거리며 시내를 걷다가 가판대의 베도모스티 (The Vedomosti)지 1면 헤드라인을 보고 우뚝 멈춰섰다.
‘코레아 청년의 일본군 장군 3명 사살, 군단급의 활약!’
“흠?”
로만은 신문을 펼쳐 러일전쟁의 무대인 한국의 식당, 한국인 청년, 그리고 일본군 장군 4명의 사진을 포함한 기사를 읽어봤다. 한 대학교 자퇴생이 수백명의 일본군의 연회를 급습하여 장군 2명을 폭사시키고 다른 한 명을 참수한 다음 자신도 자결했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엔 이게 무슨 내용인가 싶었다가 읽어나갈수록 몰입을 했고, 마지막 문장을 읽을 때쯤에는 온 몸에 소름이 돌았다.
“이게 한국인의 힘인가? 굉장하잖아, 흐하하하하…!”
안 그래도 폭력과 가학을 일삼고 다니는 그의 온몸이 광기로 전율했다. 그 소름끼치는 모습에 가게 주인이 신문값 내라고 할 용기를 차마 낼 수 없었다.
그가 어디에 있어야할지 드디어 깨달았다! 그래, 뭐하러 체질에도 안 맞는 사관학교에서 허송세월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날부로 로만은 모친과 양부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관학교를 자퇴한 다음 러시아 육군에 입대했다. 명색이 귀족 출신인 자신이 장교가 아닌 사병으로 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이 희대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 그러니까···이름이 좀 기네. 다시 한번 말해주겠네?”
“네, 로만 폰 웅게른슈테른베르크 (Roman Von Ungern-Sternberg)라고 합니다!”
*****
의주공립학교
수백명의 일본군이 의주공립학교를 향해 오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아펜젤러와 이승만, 런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아니, 일본군이 여기로 왜?!”
“교장님, 설마···설마 저희를 찾으러 오는 건 아니겠죠?!”
“어… 두분 찾으러 오는 거 맞는 것 같은데요? 교장님, 교수님, 그리고 기자님 빨리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지금 일본군은 ‘조선멸망’과 청화정 의거 때문에 꼭지가 돌아갔어요, 두 분을 보는 순간 즉각 사살할 겁니다!”
이승만은 얼어붙어서 아무 말도 못 했고, 아펜젤러는 한숨을 쉬며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이완용 그 인간이 교수직을 제안했을 때 거절해야 했는데…”
“‘조선멸망’ 그 원고가 내 앞에 왔을 때 찢어버려야 했는데…”
“허스트씨가 취재하라고 할 때 거절할 걸…”
셋 다 멍하게 있다가, 갑자기 아펜젤러가 허탈하게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종이와 펜을 꺼내 편지 한 장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빠른 손놀림으로 편지를 쓴 아펜젤러는 교직원에게 그 편지를 교장 사택에 머무르고 있는 가족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뭔가 눈치를 챈 교직원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당장 사택으로 달려갔다. 교직원이 떠난 후, 아펜젤러는 교장실의 서재 위에서 보따리로 싼 물체를 하나 꺼내어 이승만과 런던 앞에 내려놓았다. 보자기를 펼치니 병 하나와 유리컵 두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위스키 아닙니까? 교장님이 술도 드셨습니까…?”
“오래 전에 선물로 받은 거지. 조선에 온 이후 한 번도 입에 담은 적이 없지만… 지금은 기도도 기도지만 아무래도 독한 술이 많이 필요한 것 같군. 다들 한잔하죠.”
아펜젤러는 위스키 세 잔을 따랐고 모두 건배를 했다. 숨도 쉬지 않고 한 잔을 통째로 원샷한 아펜젤러는 잔이 깨트릴 기세로 빈 잔을 책상에 내리쳤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것 같군. 뭐, 준비는 되어 있었지. 기독교인이란 나 그네처럼 살다가 나그네처럼 가는 거 아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