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470)
매국노의 원수 자식-470화(470/773)
470_동방과 동유럽 (7)
1938년 1월
워싱턴 D.C.
“빌?”
오벌 오피스에서 미합중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약간 멍해 보이던 그의 오랜 친구의 주의를 끌었다.
“몸이라도 아픈가? 잠시 응답이 없어서 말이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각하.”
잠시 옆을 흘끔 쳐다보던 미합중국 해군참모총장 윌리엄 리히 대장은, 이 공간에 자신과 루스벨트 둘밖에 없다는 걸 깨닫고는 정신을 차렸다.
“아니야, 내가 보기엔 최근 들어서 자네도 나이가 나이라서 그런지, 몸이 좀 허약해 보이는 게 맞는 것 같아.”
덜그럭.
쿵.
약 60년 동안 대통령들이 업무를 봐왔던 결단의 책상 (Resolute desk) 밑에서 루스벨트는 몇십 파운드짜리 아령을 꺼내 보였다.
“상체부터 시작하지 않겠나, 하체는 생각보다 어려우니까. 내가 그 부분을 어떻게 아는지는 의심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하하하.”
“각하, 진짜 괜찮습니다···”
“보디빌딩의 멋짐을 모르는 자네가 불쌍해.”
루스벨트는 자신이 연속으로 날려대는 시시하면서도 동시에 지독하기 짝이 없는 농담에 피식 웃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리히가 두꺼운 서류 더미를 건네주자, 그는 한 손으로는 서류를 들어 읽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령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우리의 만능 일꾼이 영국으로 떠나기 전에 아주 바빴던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대규모 함선 건조 계획에 대한 의견을 상세하게 담은 보고서를 집필하고, 루스벨트에게 그 망할 보디빌딩을 가르쳐 준 자가 동일하다는 건, 둘 다 잘 알고 있었다.
리히가 마치 비서라도 되는 것처럼 계속 데리고 다니던 해군 정보국장 대일 리 소장이 남긴 공백이 컸다는 것도.
“이 정도로 마음껏 함선 건조를 할 수 있었던 게 언제였는지 정확히는 기억도 못 하겠어.”
“최소한 20년은 되었을 겁니다.”
몇 개월 안에 의회에서 통과될 대규모 함선 건조 법안을 앞두고, 리 제독과 여러 번 밤을 지새우며 논의해서 나온 결과물을 루스벨트는 흥미롭다는 듯 읽어내렸다.
“우선···대형 전함 4척을 건조하는 게 좋겠다는 거지.”
“균형 잡힌 함대를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 안 그러고는 제대로 된 전쟁을 못 하니까.”
물론 미 해군에서 이런 전함을 확보하는 것이 영국과 일본에 강력한 경계심을 심어줄 가능성을 무시할 순 없었다.
하지만 일본이 재작년 말에 제2차 런던 해군 군축 조약을 거부하고, 사실상 군축을 포기한 이상 미국으로서도 주저할 필요가 있을 리가.
국무부는 말할 것도 없고, 해군 정보국에서도 그랬듯이 도대체 일본이 어디서 예산과 자원을 끌어다가 계속 군사력에 투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함대 구성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아무래도 무슨 말씀 하시려는지 알 것 같습니다.”
해마다 자신의 무의식 속에서 차지하고 있는 공간을 늘려가고 있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리히의 얼굴이 무거워졌다.
전함 vs 항공모함.
미합중국 해군은 어느 쪽에 더 투자해야 하는가.
“끄으으으음···”
한편으로는 근본부터 ‘함포주의자들 (The Gun Club)’의 일원이었던 그였기에 전함을 소홀히 하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하필 자신의 애제자인 어느 동양인 장교가 해군 항공이라는 병과 자체를 만들었고, 눈 깜짝할 사이에 미 해군은 세계 최상위권의 항공력을 갖추는 기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젠장할 리, 너 이 녀석 도대체 어느 틈에!’
···라고 하기엔 그 과정에 리히 또한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참여하고, 특히 참모총장으로서 승인해준 게 너무 많았기에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일 터.
다만 해군 항공의 선도주자였던 리 제독조차, 너무나도 고맙게도 리히와 뜻이 일치한 부분이 몇몇 있었던 부분을 매우 강조해서 의견서에 적어놓고 영국으로 떠났다.
“항공모함을 얼마나 갖춰야 하는지는 둘째치고, 만약 전함을 만든다면 막강하고 보장된 화력을 보장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14인치 함포면 충분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16인치는 필요하단 말입니다!”
침착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가던 리히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루스벨트는 흠칫 놀랐다.
“···이봐, 빌. 진심인가? 14도 아니고 16인치를?! 그러면 예산도 너무 많이 드는 데다가, 자칫 잘못하면 너무 소모적인 함포 구경 경쟁을 일으킬지도 모른다고.”
“엄청나긴 하지만, 생각해보십시오, 각하. 이 정도 화력은 갖춰야 단순히 해상전뿐만 아니라 상륙 작전에서도 수월한 지원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음···생각해보겠네.”
그렇게 몇 시간에 걸친, 앞으로 수십 번이나 더 있을 논의 중 하나가 끝나고 리히는 밤늦게 백악관을 나와 해군참모총장 전용 차량에 탑승했다.
관사로 향하는 고급스러운 롤스로이스 팬텀의 내부를 슥 둘러보는 리히의 마음속에는, 잔혹하고 악의에 가득한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정보국장 임기 끝나면 항공함대 사령관이 아니라 해군 항해국장에다 임명시키는 쪽이 좋을까.’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루스벨트에게도 솔깃할 발상이었건만 리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떨쳐냈다.
만약 진짜로 그걸 실천해 버리면 워싱턴 근무가 아니라 함선 & 함대 지휘 경험을 절박하게 원하던 대일 리 소장이 무릎을 꿇고 오열을 할 게 분명했기 때문에.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자신에게 재앙이 닥쳐올지 누가 알겠나.
스윽
편안하게 움직이는 차 안에서 리히는 자신의 서류 가방 속에서 시간이 모자란 관계로 백악관에선 미처 꺼내지 못했던 주제를 담은 문서를 한 장 꺼냈다.
‘지역폭격 (area bombardment)이라···’
정밀하게 폭격할 정도로 기술력이나 여건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세밀한 표적에 집중하기보다는 지역 일대를 폭탄으로 도배해버린다는 리 제독의 설명을 리히는 복잡한 표정으로 읽었다.
목표물뿐만이 아니라 목표물 주변 지역까지 싹 다 초토화해버린다니. 어떻게 이런 무지막지한 전투 방식이 다 있을까.
다만 처음 들어보는 건 아니고, 빌리 미첼 육군 예비역 대령도 그렇고, 그 전에 펜사콜라 항공기지로 쫓겨났던 시절의 리가 이미 생각했던 개념을 좀 더 심화한 형태이긴 했다.
‘무시무시하군.’
기지나 공장에 도달하지 않는 정밀폭격을 가하느라 전력을 낭비할 바엔, 차라리 지역 일대를 폭탄으로 덮어버려 목표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주변에 있는 시설과 사람도 다 쓸어버리는 것.
어떻게 보면 무자비한 방식에 리히는 약간 소름이 돋기도 했다. 자신이 알고 있던 리는 이렇게까지 상상력이 끔찍한 군인-
‘-이 맞구나.’
애초에 그렇게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열렬히 설파하고 다니는 녀석의 머릿속에서 이 정도 발상이 뭐가 놀랍겠는가.
어떻게 됐든 간에 루스벨트에게 제출한 문서도 그렇고, 이것도 그렇고, 두 가지는 확실했다.
첫 번째는 이 보고서는 아무래도 백악관보다는 육군에 전해주는 게 더 좋겠다는 것.
(공교롭게도 리 제독이 방문한 이후로) 육군참모총장 멀린 크레이그 대장이 열심히 후임자를 찾고 있다는데, 물색 작업이 잘되고 있는지 알 도리는 없었다.
두 번째는 16인치 함포과 지역 폭격 같은 걸 주장하는 걸 보니, 대일 리조차도 결국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건 화력이라는 것.
‘새 항공모함의 명명은 리에게 맡겨야겠군.’
이번 법안으로 탄생할 전함과 항공모함 모두 리 제독의 덕을 볼 것이 자명했지만, 역시 전함 측은 자신의 손길이 더 많이 닿을 터.
‘새 전함은···아이오와급으로 지정해볼까.’
*****
중화민국, 난징
투콰콰콰콰쾅!
일본군의 학살과 강간으로 인해 비명으로 가득했던 난징이 몇 분간의 우렁찬 포격 소리로 뒤덮였다.
“어디 보자, 이 정도면 됐으려나.”
남만주에서 신속히 끌어올 수 있는 모든 화포로, 이미 일본군에게 두들겨 맞은 도시를 더 뜨겁게 찜질한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 중장은 쌍안경으로 도시 내를 살펴봤다.
정확한 일본군의 규모는 모르겠지만, 방금 예상치 못한 포격으로 인해 승리를 즐기고 있던 일본군이 갑자기 대혼란에 빠진 건 확실해 보였다.
다만 안 그래도 불타거나 유리창이 박살 난 건물에 포격을 추가로 퍼부은 부분은, 난징 시민들이 용서해주는 걸 바라는 수밖에.
”장군님, 그거 들으셨습니까.“
“뭐냐, 킴 대령.”
“정찰대에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지금 도시 내에서 몇몇 일본군 장교들이 포로 참수 경쟁을 하고 있답니다.”
그 순간 운게른은 쌍안경을 내려놨고, 대령은 아무리 그 악명 높은 미친 남작에게도 그건 너무 끔찍했던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지극히 상식적인 추측이 무색하게 장군은 그의 별명에 걸맞게 광인처럼 요란하게 웃을 뿐이었다.
“허허, 참, 정말 훌륭한 자들이로군!”
“···네?”
“목을 잘라도 되는 건, 목이 잘릴 각오가 되어 있는 자뿐이며 이는 잽스 놈들의 고사기에도 적혀있다.”
챙!
운게른이 뽑아 들은 도검이 구름 사이에서 비추는 태양을 머금어 영롱하게 빛났다.
“포로를 참수하고 다닌다, 이거지? 그 말인즉슨 그놈들도 자신의 목이 잘릴 각오를 했다는 뜻일 지어니!”
“어···그런 겁니까?”
뭔가 말이 안 되는 것 같다만 자신의 목을 아끼던 킴 대령은 운게른에게 중요한 질문 하나를 조심스럽게 날렸다.
“그렇다면···포로는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바위틈에서 흐르는 야생 꿀처럼 달콤한 발상에 운게른의 입가가 실룩거렸건만, 그는 곰이 아니라 인간이었기에 들끓어 오르는 욕구를 간신히 억눌렀다.
“아니야. 푸른 백작님이라면 절대로 그런 행위를 용납하시지 않을 걸세.”
(더글러스 맥아더와 함께) 대한제국군, 그리고 더 나아가 만주군의 토대를 세운 대일 리 제독은, 될 수 있는 대로 제네바 협약 준수하는 걸 강조했었다.
그게 인도주의라기보다는 명분 확보와 아군 부상자와 항복자를 위해서라곤 해도.
“하지만 포로를 수용할 여유가 없지 않습니까.”
“어허, 누가 우리가 수용한다고 했나? 이곳 사정은 현지인들이 가장 잘 알겠지.”
운게른은 씩 웃으면서 도시 외곽에 있는 중국인 시체 더미를 가리켰고, 여기에 더 섬뜩한 한 마디를 추가했다.
“아, 그리고 그거 아나? 우린 일본어를 할 줄 모르는 걸세. 대강 알겠지?”
“네···”
심호흡을 쉬며 도시에 질척하게 퍼진 피와 화약 냄새를 신선한 숲속 공기처럼 들이킨 운게른은 부대원들이 다 들을 수 있도록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잘 들어라, 이 더럽고 잔악한 잽스놈들아!
억울하게 흘리고 거리를 덮은 피 냄새를 맡고, 잔혹하게 살해당한 무고한 자들의 원혼이 울부짖는 소리에 이끌려 나, 로만 폰 운게른 슈테른베르크가 돌아왔느니라!
오늘은 내가 부처 대신에 심판하러 강림하였고, 해골로 세운 왕좌에 앉아 피를 잔에다 담아 마셔주리라!”
그리고 운게른은 번뜩이는 칼로 허공을 내리쳤고, 그와 동시에 도시 내부로서의 진격이 시작되었다.
“우라아아아!!!!”
한 편 이미 일차적으로는 전단지, 그다음엔 포격으로 공포에 휩싸여버린 일본군은 만주군의 질서정연하지도 않은 진군에 대비하지 못했다.
“미-미친 남작이다!!!”
“그래, 나다, 흐하하하하하하!!!!!”
도시에 진입한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운게른의 허리춤에는 벌써 여러 ‘전리품’이 걸려 있었다.
한편 멀리서 이 경이로운 모습을 보고 있던, 지멘스 중국 지사의 임원 욘 라베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단순에 팔이 아니라 자신의 이마에 卍자를 각인하다니. 저건 누가 봐도 딱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아아, 총통 각하께서 열렬한 나치의 용사를 보내주셨어!!!”
···운게른이 러시아인이었다는 사실은 오늘 하루만은 중요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