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479)
매국노의 원수 자식-479화(479/773)
479_모래탑과 면도날 (6)
1938년 5월
워싱턴 D.C.
“타워스, 너도 끌려왔구나.”
동공이 흔들리는 존 H. 타워스 대령은 자신은 누구이며, 또 여기는 어디인가 진지하게 고민해하기 시작했다.
“어서 와, 참모총장님 뵈는 건 처음이지~”
첫 번째 질문의 답은 해군 항공국 부국장이며, 두 번째 질문의 답은 세 명의 해군 장교가 기다리고 있는 해군참모총장 윌리엄 리히 대장의 사무실.
생각해보니 둘 다 딱히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다. 그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어려웠을 뿐이지.
“아니, 체스터 너보고 오라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제2대 해군 항공국장, 그리고 전 해군 정보국장이자 현 항공함대 사령관 대일 리 소장은 그의 동기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너 같은 재앙신이 있는 자리엔 나 같은 행운의 신도 있어야 완벽하게 균형을 맞추지, 만물이 그래야 하듯이.”
“···어련하시겠습니까, 에휴.”
해군 항해국 부국장 체스터 니미츠 대령은 리 제독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쿡 찌르며 키득키득 웃어댔고, 세 명 중 유일한 제독인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이 모임이 뭔가 재밌기라도 한지, 니미츠 대령은 싱글벙글 웃으며 수첩과 펜을 꺼냈고, 장소만 아니었으면 그가 아마 팝콘까지도 씹었을 거라 타워스는 장담했다.
끼익
“오셨습니까!”
“다들 꽤나 일찍 왔군.”
얼마 있지 않아 법원에 들어오는 판사처럼 근엄한 표정을 짓는 리히 대장이 사무실 문을 열자, 세 장교는 마치 검사, 변호사, 그리고 배심원이라도 된 것처럼 예의를 갖췄다.
“어디 보자···”
리히 대장은 잠시 리 제독의 손에 들려 있는 묵직한 서류 더미를 흘끔 쳐다본 뒤,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책상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턱
더 이상의 말이 딱히 필요 없기라도 했는지, 리 제독은 고개만 끄덕이며 책상 위에 제법 무게감이 느껴질 정도의 서류를 올려놨다.
“해군 역사상 제일 훌륭하고 열심히 일한 정보국장이 올리는 마지막 보고서란 말이지.”
“과찬의 말씀입니다.”
“자네가 구축한 정보망은 이제···아니, 나중에 따로 얘기하자고.”
눈치가 그렇게 빠른 편이 아닌 타워스도 방금 뭔가 엄청난 얘기가 나오려다가 니미츠 대령과 자신이 있어서 쏙 들어가 버렸다는 건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슥, 스윽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를 날카롭고 흥미로 가득 찬 눈으로 훑어본 리히는 몇 분 후 보고서를 덮고는 세 장교를 쳐다봤다.
“이쯤 되면 지금 리 제독의···특이한 평판에 대해선 다들 들어봤을 거라 믿겠네.”
다시 한번 타워스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고, 니미츠 대령은 웃으려는 걸 겨우 참느라 애써야만 했으며, 한 편 리 제독은 그저 어깨만 으쓱일 뿐이었다.
촤악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여주는 장교들 앞에서 리히는 보고서와 백과사전 급의 정보국장 매뉴얼을 책상 위에서 치우고 그 대신 유럽 지도 하나를 펼쳐놨다.
“타워스 대령.”
“네-네, 참모총장님!”
“리 제독이 자네를 이번 모임에 꼭 불러야 한다고 강조했지 뭔가. 지금 우리 해군 전체를 통틀어서 그렇게 다양한 유럽 국가에서 주재무관을 해본 장교가 없다고.”
“···”
분명히 사실이긴 했다만 그게 지금 이 상황이랑 무슨 관계인가 고민하는 타워스에게 리 제독이 (매우 비싸 보이는) 만년필 하나를 건네줬다.
그쯤 되니 분위기를 파악한 타워스는 자신이 방문했던 주요 도시에다가 만년필로 표시해나가기 시작했다.
“고맙네, 타워스 대령.”
그다음엔 리 제독이 만년필을 받아들여 타워스가 표시한 주변에 추가적인 기호와 설명을 적어나갔다.
표기를 완성하고 각 도시를 하나의 선으로 연결하니, 정말 섬뜩하기 짝이 없는 경로가 탄생했다.
“···맙소사.”
“내가 정리한 게 정확한가, 타워스 대령?”
“그게 말입니다, 제독님···”
잠시 몇 분 동안 타워스는 자신이 주재무관으로 있었던 당시의 경험을 토대로 하나씩 점검해나갔다.
얼마 있지 않아 모두 맞아떨어진다며 확인하자, 리히 대장은 말할 것도 없고, 장난기가 가득했던 니미츠 대령조차도 정색한 채로 지도를 바라봤다.
“오스트리아는 이미 병합해버렸고, 독일은 몇 개월 안에 체코슬로바키아를 노릴 겁니다.”
정말 확신에 가득 찬 리 제독은 지도 위에서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도 프라하를 손가락으로 꾹 찍어 눌렀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폴란드가 될 것이고, 그렇게 시작하는 전쟁이···자네가 여러 차례 경고했던 바로 그 제2차 세계대전이 된다, 이건가.”
“정확하십니다.”
“그렇단 말이지.”
정말 엄청나기 짝이 없는 얘기를 너무나도 태연스럽게 논의하는 해군참모총장과 전 정보국장을 보며 타워스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저기, 제독님. 질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뭔가.”
“그···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하는 게 미국, 특히 해군과는 정확히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극히 합리적인 질문이군.”
턱
한 번 더 리 제독이 손가락을 움직였고, 이번에는 오스트리아-체코슬로바키아-폴란드를 잇는 선에서 추가로 뻗어 나가 프랑스와 덩케르크까지 도착했다.
“프랑스를 점령한 시점부턴, 아니, 그 이전부터 영국과 영국 해군도 개입하겠지. 그러면 결국 또 잠수함 전쟁이 일어나고, 이 타이밍에 맞춰서 일본 해군도 본격적인 활동을 할 거야.”
조용히 들으며 ‘잠수함’이라는 단어에만 솔직한 반응을 보인 니미츠 대령과는 달리 타워스는 할 말을 해야만 했다.
“제독님, 실례지만 그건 아닐 것 같습니다. 제가 육군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아는 건 아니라도 독일이 프랑스를 상대로 그렇게 쉽게 승리를 거두는 전개는 납득할 수 없습니다.”
다행히 리 제독은 타워스가 프랑스군과 독일군이 격돌하여 70만 명이 넘는 사상자를 낸 베르둔 전투를 포함한 대전쟁의 여러 전투를 언급하며 그를 반박하려는 걸 허용했다.
“···이상입니다.”
“흐음.”
그러자 그동안 계속 타워스와 리 제독의 말을 듣고만 있던 리히 대장이 입을 열었다.
“육군도, 크레이그 참모총장도 타워스 자네의 말에 동의할 거고, 솔직히 상식적인 세계에선 그러는 게 마땅할 거야. 하지만,”
리히 대장은 잠시 뜸을 들이며 무표정한 리 제독에게 시선을 돌렸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상식만으로 돌아간다면 육군이고 해군이고 군대라는 것 자체가 필요 없지 않겠나.”
또 한편으로는 대전쟁이 일어난 전개를 생각하니, 리히 대장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게 너무나도 소름 끼쳤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군대는 물론이고 경제 및 정치 관련해서도 리 제독의 예측 중 맞아떨어지지 않은 걸 찾기가 더 어렵다는 사실도.
“···뭐야, 왜 날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거지.”
역시 황인종 미 해군 제독이자 세 제국의 귀족이라는, 존재 자체가 타워스가 알고 있는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는 존재였기에 상식 그 너머를 볼 수 있었던 것일까.
“뭔가 실례되는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표정이 일그러진 채로 조용히 중얼거리는 리 제독을 보며 피식 웃는 리히 대장은 두꺼운 보고서에 포함된 도안 하나를 꺼냈다.
“마침 얼마 전에 해양 위원회의 칼 빈슨 씨가 해군력 확장 법안을 확고하게 통과시켜줬다네. 신규 함선 건조할 때 지금 논의된 걸 참고하는 게 좋을 것 같군.”
그리고 이번엔 리히 대장이 니미츠 대령과 타워스를 가리키며 지시를 내렸다.
니미츠 대령에겐 대잠수함 관련 기술 및 전술의 추가적 연구를 이어나가고, 타워스에겐 항공국 부국장으로서 신규 항공모함 건조와 항공대 훈련에 집중하라고.
그 외에도 기나긴 토의가 끝나고 참모총장 사무실을 나설 무렵엔, 들어올 때만 해도 푸르고 화창했던 하늘이 어둑어둑하게 물들어버렸다.
“후, 죽겠군.”
“하지만 이번에도 네 덕분에 재밌었다, 대일아.”
“재미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 짜슥이. 어이 타워스, 오늘 참모총장님 사무실에서 얘기한 거 쿡한테도 전해주라, 항공국장은 걔니까.”
“네, 선배님.”
또 무슨 일에 불려 나가기 전에 서둘러 자리를 뜨려던 타워스에게 리 제독이 질문을 던졌다.
“이제 생각났는데 쿡 걔 내가 남긴 매뉴얼은 다 읽었던가?”
“그···국장님은 선배님이 쓰신 부분은 다 읽었지만 킹 제독님이 추가하신 부분은 다 못 읽었습니다.”
“푸하하하하하하!!!”
뭐가 그리도 웃겼는지, 니미츠 대령은 그 한마디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러면 전 항공국 사무실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선배님들.”
“너도 수고했어. 그리고 나 조만간 또 찾아갈게!”
다정한 한 마디였으나, 타워스는 사색이 되어 안 그래도 빨랐던 그의 발걸음이 더더욱 빨라졌다.
자신의 동기인 레이먼드 스프루언스 대령이 왜 그렇게 리 제독을 두려워하는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
7월
메릴랜드, 볼티모어
“힘차고 강한 저녁입니다, 함대 사령관님!”
“아침이겠지, 임마.”
해군 항해국 부국장-아니, 이번 달부터 제2 순양함 분대 분대장으로 임명된 체스터를 집으로 초대했-는데 저건 또 뭐라냐.
“너 뭔가 좀 묵직한 걸 들고 왔다?”
“올해가 너희 부부의 결혼 30주년이잖아, 그래서 특별히 선물도 챙겨왔지.”
“30주년은 작년이었다만.”
“···아 미안, 계산을 잘못했네!”
민망함에 사로잡혔는지 체스터의 얼굴이 빨개졌다만 전혀 그를 뭐라 할 생각도, 이유도 없었다.
아니 세상에 이게 뭐냐고, 이 녀석 월급을 최소 2개월 정도는 모아야 할 수 있는 선물이잖아. 진짜 부담스럽게끔···
“항공함대 일은 좀 어떠냐.”
“뭐, 그럭저럭.”
항공함대 일도 일이었지만, 정보국장 업무를 완전히 마무리 짓기도 사실 엄청 까다로웠다.
‘자네가 구축한 정말···정말 방대한 “정보망”은 어떻게 할 건가.’
‘음···일단 미 해군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계속 활동하긴 할 겁니다.’
‘나라면 아예 첩보조직을 따로 만들었을 텐데 말이지. 뭐, 그건 자네 선택에 맡기겠네.’
참모총장님 자꾸 저한테 막 맡기시네요. 뭐, 이건 나만 손댈 수 있는 거니까 리히 말이 맞긴 하는데···
“네가 부탁한 거 들고 왔어, 읏차.”
슥
체스터는 품에서 여러 함선이 수록된 긴 목록 하나를 꺼내 거실의 탁자 위에 올려놨다.
“땡큐. 전에 내가 너한테 내가 잘 아는 함선 분야 순위에 관해서 얘기한 적 있었지?“
“네가 제일 잘 알고 있는 분야가 항공모함이라는 건 굳이 말 안 해도 알고 있고, 그다음 순위가 구축함인지 잠수함인지가 문제라는 것 정도는 알지.”
“그쯤 되면 아주 잘 아는군.”
“아무튼, 그중에 순양함은 포함되지 않으니 내가 또 친절한 선생님이 되어줘야겠군.”
제2 순양함 분대장 맡기 전에도 잠수함이나 구축함 만큼은 아니더라도 순양함 관련 경험이 있었던 체스터가 목록에 있는 순양함을 집어가며 특강을 시작했다.
“어이, 체스터 거기서 잠시 멈춰봐.”
“뉴올리언스 (New-Orleans)급 순양함? 얘네들이 왜?”
“갑자기 뭔가 떠올라서 말이지.”
몇 년 전에 이미 취역한, 최신형 순양함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벌써 난 쟤네들이 얼마나 활약할지 감이 왔거든.
그리고 나중에 쟤네들을 잘 분석해서 신규 경순양함도 설계해보자고 – 그가 내년 중순쯤에 전역하기 전에 – 리히한테 부탁해봐야겠다.
“아무래도 이게 또 중요하게 쓰이겠다, 이거군.”
“사실 어지간하면 소유한 모든 무기와 자원이 다 쓰이게 될 전쟁일 테니까.”
“그렇긴 하겠네. 하여간 왜 독일 애들은 전쟁을 못 벌여서 안달이냐, 참나.”
···어이. 니미츠 씨?
“넌 뭐 독일인 출신 아닌 것처럼 얘기하냐. 유머 감각이 독일인답지 않긴 하지만.”
“Küss meinen Arsch.”
“Nein, danke.”
우리가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고 난 지 며칠도 지나지 않아, 런던에서의 장기 파견이 끝나고 본토로 돌아온 로열 E. 잉거솔 대령이 다급히 나를 찾아왔다.
“대일이 너 이 망할 자식아! 진짜 자꾸 이럴 거냐?!”
아니.
내가 이번엔 또 뭘 잘못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