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496)
매국노의 원수 자식-496화(496/773)
496_전쟁이여 어서오라 (3)
1939년 2월
카리브해
진한 주황색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바다 위의 태양이, 점점 짙은 푸른색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에서 수면 밑으로 서서히 사라져 갔다.
긁적긁적
“끄음···”
“무슨 일이십니까, 사령관님?”
긴장을 떨쳐내지 못하는 내 모습이 신경 쓰였는지 – 항공함대의 기함인 – 렉싱턴의 함장, 존 후버 대령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뭐 별건 아니고···”
기분이 싱숭생숭하지 않다면 새빨간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현재 할 일이 있었기에 지도와 시계, 그리고 나침반으로 항공함대의 현 위치를 살펴봤다.
어디 보자, 현재 미국 본토 가장 남동쪽에 있는, 플로리다주의 사블 곶 (Cape Sable)에서 대략 1,400km 정도까지 왔군.
북쪽에는 쿠바, 남쪽에는 파나마 운하, 그리고 저기 동쪽에는 푸에르토리코가 있군. 흐음. 뭔가 바다지만 육지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 어떻게 보면 지중해가 떠오르기도 하네.
“···우리 상대팀이 조금만 살살 해줬으면 좋겠거든.”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이번 훈련에 참여하는 건 항공함대뿐만이 아니며, 다른 제독들도 주변에서 다른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긴 했다.
그것과는 별개로, 짜잔, 내 함대의 적팀 역할을 맡은 함대는 두 배 가까이 되는 규모를 자랑하는 정찰함대 (Scouting Force)가 되겠습니다, 이런 젠장할.
여기까지만 해도 – 어차피 예산 문제 때문에 함대 vs 함대 총력전은 아니어도 – 괜히 긴장되지만, 이게 끝이 아니란 말이지···
“음, 솔직히 저라면 딱히 기대 안 할 것 같습니다.”
“그럴 것 같지?”
하필 정찰함대의 사령관, 아돌퍼스 앤드류스 (Adolphus Andrews) 중장은 원한이라고 부를 정도는 절대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나에게 좋은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핵심적인 문제는 두 가지가 있었고 (다행스럽게도 그중에서 인종 관련된 문제는 없었지만), 그 중 첫 번째는 내가 그의 3년 후배이며 함선 근무 경력도 부족한데 중장까지 올라왔다는 것.
이건 내가 소장으로 진급했을 때부터 사실 해군 내에서 논란이 많았지만, 그다음 문제는 훨씬 더 개인적이었다.
‘리 제독.’
‘선배님.’
‘내가 왜 화났는지는 충분히 이해하겠지?’
‘넵, 그리고 딱히 뭐라 반박은 못 하겠군요.’
절대로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작년 말쯤에 항공함대는 정찰함대에서 함선을 몇 척 빼앗아 가버리고 말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윌리엄 리히 대장의 결정으로 인해 순양함 여러 척을 포함해, 정찰함대의 일부 함선이 항공함대로 강제로 편입된 거고.
따라서 이번 훈련에서 푸에르토리코 쪽에서 “침공”해오는 전투함대의 항공모함 전대는 화가 잔뜩 나 있겠다, 이겁니다.
‘이봐, 리. 내기 하나 하는 건 어때. 이번 모의전에서 내가 승리하면 네가 뺏어간 함선 다 돌려주는 거로.’
‘애초에 이건 제가 결정한 게 아니라서 말입니다.’
‘비겁하게 참모총장님 뒤에 숨지 말라고···’
아니 저기 선배님, 애초에 제가 당신 함선이 탐나서 리히를 꼬드긴 게 아니에요.
아 글쎄, 내가 그냥 태평양 놔두고 대서양 가기 싫어서 무리수를 뒀는데 그게 진짜로 될지 누가 알았겠냐고요.
정작 대서양으로 출동하려는 계획은 뮌헨 협정, 그리고 그로 인한 영국의 협력 거부로 인해 취소되었긴 하지만.
“뭐, 그쪽이 어떤 식으로 나오든 간에 우리가 전력을 다해야 하는 건 변하지 않지. 슬슬 시작해볼까···”
저물어가는 해가 완전히 사라지자, 짙고 차가운 어둠이 바다 위를 드넓은 이불처럼 덮어갔다. 그 틈을 타서 나는 전투 준비가 다 된 함선을 움직였다.
자, 동쪽에서 오고 있는 정찰함대의 목적은 쿠바 밑으로 통과하는 것이며, 내 목적은 정찰함대에서 보낸 전대를 먼저 포착하고 “제압”하는 것.
다시 정리해보니까 샌디에이고의 항공기지 사령관 시절에 했던 훈련의 확장판이잖아, 이거 완전.
“우선 구축함 전대부터 움직여 볼까.”
조용히 구축함 여러 척을 푸에르토리코 근처에 있는 항구로 향하라는 지시를 내리고는, 드디어 기함인 렉싱턴과 엔터프라이즈에 함재기 출격을 지시했다.
“이렇게 어두운 데서 출격하라니, 사령관님 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
“연습한 대로만 하면 돼, 연습한 대로만.”
“하긴, 그것도 그렇습니다.”
후버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사실 야간 훈련 때 렉싱턴은 반드시 참여시키는 바람에 이 친구도 고생 많이 하긴 했지, 참.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구축함 전대와 두 개의 항공단 양쪽에서 동시에 라디오가 들려왔다.
“수송선 ‘무력화’!”
“적선 포착!”
공교롭게도 정찰함대에서 보낸 전대의 선두에 있는 항공모함 레인저를 제일 먼저 포착한 건 렉싱턴에서 출격한 래원이군.
아이구 훌륭하다 우리 아들. 그렇게 내 밑에서 복무하는 거 싫다고 투덜거리더니만 그래도 할 건 하는구나!
“모두 제 위치로.”
얼마 전에 육군참모차장 조지 C. 마셜 준장과도 항공모함 간의 전투에 관해서 얘기한 게 있었지.
원래 항공모함 간의 전투란, 서부극에서 총잡이들의 결투처럼 먼저 무기를 뽑는 놈이 이기는 거라고.
*****
몇 주 전
만주국, 하얼빈
하얼빈 종합청사 근처에는 수십 개의 식당이 운영하고 있었다.
마침 만주국에 사는 인종만 두 자릿수에 달했기에, 러시아인, 중국인, 한국인 등 다양한 입맛을 맞추기 위한 식당들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 이런.”
그리고 만주국 재무장관 안창호와 외무장관은 종합청사에서 가장 가까운 양식당에서 함께 – 업무 회의도 할 겸- 식사를 하기로 했다.
“갑자기 또 무슨 일인가, 도산.”
“독일에서 전보가 왔더군.”
“어디 한 번 알아맞혀 보지. 제국은행 관련 일이겠지.”
정확한 이승만의 추측에 안창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받은 전보를 흔들어보았다.
“얄마르 샤프트 총재님이 결국 제국은행 총재에서 해임당하셨다지 뭔가. 지금은 잠시 휴식을 취하고 독일에서의 혼란을 피하려고 인도로 여행을 가셨다더라고.”
“이제 와서 겨우 해임당했다는 사실이 더 놀라운데. 혹시 수정의 밤 사건과 관련 있나?”
“히틀러한테 해임당하신 이유가 표면적으로는 국가사회주의와는 안 맞는 사람이라는 것 때문이긴 한데, 은행원 크리스마스 파티 때 수정의 밤의 책임자라며 비난하시기도 했더군.”
“그거 맞네.”
주문한 음식이 만들어지고 있는 부엌 쪽을 바라보며 안창호는 갑갑하다는 듯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이승만에게 나치 독일의 경제문제 때문에 샤흐트가 군비 확장을 그만두라고 권유했다가 히틀러의 눈 밖에 난 과정에 관해 설명을 마칠 무렵엔 그들의 식사가 도착했다.
“···난 이해할 수 없어. 어떻게 경제가 이렇게 안 좋은 상황에서 계속 국방비를 늘리고 전쟁할 생각을 하는 거지?”
“그런 질문을 하다니, 나 참. 자네는 돈에 대해선 잘 알아도 정치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조금 미숙하군, 그래.”
자신 앞에 놓인 스프의 맛을 보려고 숟가락을 집어 든 이승만은 안창호에게 손가락을 흔들어보았다.
“경제 형편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군비 확장을 하는 게 아니야. 그렇게 ‘때문에’ 하는 거지. 우린 이미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 나라를 여러 곳 알고 있지 않은가.”
땅땅
이승만은 순무로 인해 붉은빛이 도는 자신의 스프 그릇을 숟가락으로 툭툭 쳤다.
“그것도 그렇지.”
독일도 독일이지만, 안창호는 천문학적 규모의 국가부채를 껴안고 있건만 계속 군대와 전쟁 둘 다의 규모를 키워가는 일본제국을 떠올렸다.
그 막대한 액수를 국가 부도를 일으키지 않고 어떻게 갚을 건지, 최소한 안창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었고.
“하···”
즉, 이미 만주국과 중화민국 양쪽과 전쟁을 일으키고 있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 새로운 전선을 만들어낼 게 분명해 보였다.
“···하하하하!”
“으아앗!”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안창호는 시원스럽게 웃어댔고, 스프를 맛보던 이승만은 화들짝 놀라서 입천장을 데고 말았다.
“사람 놀래지 말라고, 아 뜨거라···도대체 뭐가 그리 웃긴가.”
“하하하, 아하, 하···미안하네. 별건 아니고, 이대일 제독님이 떠올라서 말이지.”
“그 양반이 갑자기 왜.”
“제독님은 3대가 놀고먹어도 되는 돈을 벌어들이셨지만, 여전히 해군에 남아 계셨고, 근무하는 곳도 바다 위가 아니라 계속 책상 뒤라면서 불평을 많이 하셨단 말이지.”
그게 지금까지 하던 대화랑 무슨 상관이 있냐고 물어보려던 이승만은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이 다 맞춰졌는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만 이젠 소원 성취하셨구나, 싶었는데 정작 함대 사령관이 되니까 뭔가 걱정이 많으신 모양이더군.”
“사람이란 원래 자신이 익숙해진 틀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지.”
“마치 우리 모두가 과로의 굴레에서 해방될 수 없는 것처럼.”
무심코 나온 한 마디는 두 장관 모두에게 심리적인 피해를 줬으며, 그들 사이엔 잠시 씁쓸한 정적이 가라앉았다.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인데, 이 제독님은 절대로 손해 보는 선택은 하시지 않는다고.”
“나를 태평양상거래개발조합의 2대 사장으로 임명 안 한 걸 보면 그건 아닌 것 같지만 말일세.”
“···소인배도 아니고 아직 그걸 마음에 두고 있었을 줄이야, 이런 세상에. 아무튼, 그분이 해군에 남아있는 것도 장기적인 투자의 일부라고 생각하네.”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승만을 보며 안창호는 씨익 웃었다.
“바로 해군의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자신감에 기반한 투자이지.”
“음, 육·해군 양측의 원수들과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만, 과연 그가 대장까지 진급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네.”
“이래서 자네는 투자자로서의 역량이 부족한 거야.”
“그래그래, 알겠다고.”
그렇게 두 사람의 간략한 회의가 끝난 지 얼마 있지 않아 하얼빈에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손님이 찾아왔다.
“어···?”
“베를린에서 만난 이후로 처음이오, 안 장관.”
“그, 여기엔 무슨 일이십니까?!”
“인도에서 여행을 마치고 독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생각이 바뀌었지 뭡니까. 그리고 말하자면 좀 복잡한데···”
얼굴이 초췌해진 (전) 제국은행 총재, 얄마르 샤흐트에게 안창호는 뭐라 해야 할지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
2월
푸에르토리코, 쿨레브라 (Culebra)
“모두 수고가 많았어.”
함대훈련이 전부 다 끝나고, 훈련 내내 지켜보고 있던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탑승한 순양함 휴스턴 (Houston, CA-30)에 나 또한 승선했다.
이번 훈련에 참여한 모든 제독이 휴스턴의 갑판에 모였고, 루스벨트는 한 명씩 한 명씩 악수하면서 평가와 격려를 섞어서 해줬다.
“이번에도 또 한 건 해냈군 그래, 리.”
“감사합니다, 각하.”
내가 보낸 구축함 전대는 정박해 있는 정찰함대의 보급선과 급유선 모두 “무력화”시키고 돌아왔고, 그로부터 얼마 있지 항공모함 레인저를 포착하여 함재기와의 교전 후 레인저 또한 “격침”에 성공했다.
극도로 긴장한 것과는 별개로, 이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심판(?)들은 다행히 항공함대의 손을 들어줬다, 오예.
심지어 큰 잡음도 얼마 없었지. 적팀에 소속된 레인저의 항공대장, 마크 미처 (Marc Andrew Mitscher) 대령이 판정이 이상하게 되었다고 항의했다는 것만 제외하곤.
‘리 제독님의 함재기를 저희가 더 먼저 발견하고 “격추”했단 말입니다. 솔직히 이건 재판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경질 내지 말고 침착하라고. 우선 보고 받은 시간을 다시 한번 점검해봐.’
본인의 전과보다는 자신 휘하의 파일럿들에게 공이 돌아가길 원했던 모양이지만, 성깔 한 번 끝내주는군.
자칫 잘못하다간 선 넘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아무튼 승리는 승리였기에 나름 뿌듯함에 가득 차 있고, 함대원들에게 무슨 포상을 해줘야하나 고민하던 나에게 FDR은 갑자기 심상찮은 소리를 했다.
“항공함대가 다시 노퍽으로 복귀하는 즉시 백악관으로 튀어오게나.”
아.
젠장할, 결국 올 것이 와버린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