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532)
매국노의 원수 자식-532화(532/773)
532_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2)
1940년 9월
메릴랜드, 볼티모어
내가 대서양 함대 사령관에 임명되고, 임시 계급이라곤 해도 무려 해군 대장에 진급했다는 소식은 꽤 빨리 퍼져나갔다.
일단 다른 걸 떠나서 신이 난 세레나가 아메리칸미디어컴퍼니를 동원해서 온 사방에 퍼트리고 다니기도 했고.
그로 인해서 우리 집에는 참으로 다양한 손님이 찾아왔는데, 그중에서 가장 먼저 찾아온 사람 중 하나는 나처럼 임시 계급으로 대장을 달고 있는 장군이었다.
“진급 축하드립니다, 제독님. 양군의 미래를 위하여.”
“가-감사합니다, 참모총장님, 위하여···”
짠
한결같이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육군참모총장 조지 C. 마셜 대장과 함께 건배하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어색했다.
“지금 와서 말씀드리지만, 제독님은 언제쯤 대장으로 진급하시나 내심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아니, 제가요?”
특히 마치 내가 같은 계급으로 올라오는 걸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말을 하는 게 더더욱.
“제독님이 전에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해군에 떨어지는 혜택과 예산을 육군과도 공유하도록 노력해보겠다고.”
“그렇게 말하긴 했습니다만.”
“지난번 훈련도 그렇고, 절대로 빈말이 아니었다는 걸 확인하게 되었지 뭡니까.”
하긴 뭐 해군 항공기 개발에 투입된 예산으로 육군 항공단이 쓸 물건도 야금야금 만드는 계획도 세웠다.
그 외에 여러모로 두 대양 해군법으로 인해 철철 흘러내리는 꿀이 육군에게도 흘러갈 수 있도록 손을 최대한 썼지.
해군참모총장과 해군장관, 그리고 하원 해양위원장이라는 거물들 앞에서 열심히 입을 털어야 했지만, 아무튼.
“그리고···대서양 함대가 유럽으로 파견된다고 들었는데 말이죠. 슬슬 육군도 준비해야 하는 겁니까.”
“음···아직 몇 년 더 기다리셔야 할 겁니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지시하에 일단 내가 대서양 함대 사령관으로서 영국에 가는 건 확정이다.
다만···대서양 함대 전체가 바로 가는 건 아니다. 그건 사실상 추축국을 대상으로 한 선전포고나 다름없으니.
“그래도 미리 하실 수 있는 만큼 하셔도 손해 볼 건 없겠죠.”
“하긴, 이미 육군 확장도 시작되었으니 지금부터 바빠지겠습니다.”
자신에게 닥쳐올 일을 생각한 마셜은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아직 선전포고도 안 했지만 내년 말까지 육군 전체 인원이 대략 6, 7배는 늘어날 계획이라지, 아마?
아무튼, 아돌프 히틀러 이 작자는 대륙 중심으로 생각하는 자였기에 독일군을 직접적으로 두들겨 패는 건 미 육군이 되겠지.
물론 연합국의 물자가 피가 흐르듯 수월하게 유통하고, 장기적으로 추축국 전체를 올가미처럼 조여 죽여가는 건 해군의 역할이겠고.
“다만 또 해외로 나가시니, 부인께서 또 많이 섭섭해하시겠군요.”
“엣.”
산더미 같은 (그리고 불과 몇 년 안에 태산처럼 될) 일더미에서 화제를 돌리고 싶었는지, 마셜은 예상치 못한 발언을 했다.
그의 시선이 아주 잠깐 시선이 내 얼굴이 아니라 목으로 향했다. 성급히 흔적을 가리려고 했다만 이미 늦었고, 그걸 제외하고도 향수 냄새를 가릴 수 없네, 어후.
“하하하, 장군님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드렸군요.”
“그 나이 들어서도 계속 부부간의 사이가 좋다는 건 절대로 부끄러워할 일이 아닙니다.”
뭔가···뭔가 마셜이 외교나 군사와 전혀 관계없는 발언을 평소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니 뭔가 위화감이 느껴지네.
그러고 보니 마셜 저 양반도 의외로 보기 힘든, 여자관계가 엄청 깔끔한 장성이었지, 참.
“어찌 됐든 간에, 유럽에 잘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다시 돌아오실 무렵엔 본격적인 직책을 맡아서 워싱턴에서 계속 뵈기를 희망하죠.”
“허허, 장군님도 참.”
음, 마침 워싱턴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만나러 갈 녀석이 하나 있긴 하지?
*****
몇 주 전
일본 제국, 도쿄
야스쿠니 신사에선 오랜 세월 동안 쌓인 피의 잔흔과 망령이 기이하게 뒤섞여 메아리쳤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와는 달리, 건물 자체의 미관과 역사적 가치도 갖추지 않을 장소였는지라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폭력과 죽음의 냄새를 온전히 숨기긴 힘들었다.
평화와 이성을 원하는 자에겐 꺼림칙하였으나, 깊은 근본부터 뒤틀린 광인 집단에겐 형용할 수 없는 의지력과 긍지를 불어넣기도 했다.
터벅터벅
“날씨가 참 덥군.”
일본 제국 육군성의 자동차가 신사 앞에서 멈춰섰고, 일본 제국 육군대신, 도조 히데키 중장이 차에서 내렸다.
외관만 보면 그는 매우 점잖고 근엄해 보였다. 그러나 메이지 신궁을 방문하자마자 바로 영령을 위로하러 온 걸 보면 그 또한 지극히 전자보다는 후자에 더 가까운 부류일 뿐이었다.
그의 머릿속까지 파고드는 쨍쨍한 태양의 따가운 더위로 인해, 도조의 무의식 속에선 몇 년 전 5월 중순에서 해군 장교들이 일으킨 반란 사건이 스멀스멀 부상했다.
“더위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걸까.”
젊은 해군 장교들이 반란을 일으키기 전에도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했었다. 그들의 손에는 그 리 다이이치 제독이 고안했다는 기관단총이 쥐어져 있었고.
다만 약 4년 전 2월 말에 육군 장교들이 훨씬 더 크고 폭력적으로 일으킨 사건을 생각하면 계절이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근본적으로 도쿄라는 이곳 자체가 기만, 배신, 그리고 암살로 돌아가는 마굴이니 조용하고 평화로울 수가 있겠나.
펑, 펑펑
쓸데없고, 제3자가 들으면 참으로 가식적인 감상에 젖은 채로 신사 안으로 들어가는 도조 히데키의 뒤에서 카메라 플래시를 여러 번 터졌다.
새로운 일본의 국책에 따라 더욱더 몸 바쳐 열심히 일할 것을 약속하는 발언을 하며 도조는 참배를 마쳤다.
아까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렸던 다수의 카메라맨과 신문 기자들은 웅성거리며 참배하는 그의 주위를 떠나지 않았다.
‘역시나 저자들이 여기에 안 올 리가 없겠지.’
참배를 마치고 기자들 쪽을 보는 순간, 아메리칸미디어컴퍼니 소속 언론사에서 일하는 몇몇 기자들도 도조의 시선에 들어왔다.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한 모습에 도조는 인상을 희미하게 찌푸렸다. 저 작자들은 어디서 또 소식을 듣고 시체 냄새를 맡은 파리처럼 몰려왔을까.
“이렇게 다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저와 육군성의 향후 계획에 대한 궁금증으로 인해 여기에 모였을 거라 의심치 않습니다.”
저들 또한 온 세계에 퍼진 리 다이이치 제독의 눈이 되어주는 존재일까 고민하던 것도 잠시, 도조는 신문 기자들 앞에서 위세 좋게 대답했다.
“···독일군은 대프랑스전에서 결정적 승리를 거두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저희 일본의 국책 또한 결정되었으니 참으로 마음이 든든합니다.”
소름 끼치는 두 대양 해군법 발표 이전에도, 일본 군부에서 미국의 상상을 초월한 자원과 산업력을 모르는 자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일본 측에서 미국에 두 나라 간의 전쟁은 상상할 수도 없다고 여러 차례 설득하고 회담까지 해보려고 했으나, 미국 국무부 장관 코델 헐은 한결같이 미심쩍어했다.
헐 장관이 보기엔 일본의 태도가 뮌헨 협정 당시 히틀러가 체임벌린에게 써먹은 것과 다른 바 없는, 지극히 교묘하고 저열한 기만책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이기라도 한 걸까.
“···앞으로 이것 외에도 맡은 일을 충실히 수행하고 실현하는 것이 저와, 그리고 더 나아가 육군 전체에게 부여된 막중한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군부의 수뇌부는 여러 차례 회담이 결렬되자, 나름대로 대화와 협상을 제대로 해보기 위해 충분히 노력을 기울였다고 스스로에게 확답을 내리기 시작했다.
즉, 앞으로 워싱턴에서 냉담한 반응이 계속 나오면···협상 그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드세게 치솟을 거라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일터.
‘미국은 정말로 평화를 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시간을 벌려는 것일까.’
다음날 일본의 신문들이 긍지 있고 호전적인 육군대신의 답변이라 칭하며, 그가 신사 앞에서 한 말을 대서특필한 걸 보면서도 도조는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일본에 주어진 얼마 안 되는 시간은 줄어들고 있다.
“빨리 뭐라도 해야겠지.”
1주일 안에 일본의 다음 침공 대상이 결정되었다.
*****
워싱턴 D.C.
누가 그랬던가.
원래 미치고 팔짝 뛸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 일어나면, 가족과 친구들에게 털어놓으라고.
나처럼 경력이 완전히 불균형적이고 개판인 해군 장교, 심지어 황인종 출신이 대서양 함대 총사령관에 임명되고 해군 대장으로 (임시) 진급한 사건 정도면 충격적이지 않을까 싶다.
“어이쿠, 이렇게 누추한 곳에 귀하신 분이 오시다니.”
“그런 표현은 어디서 또 배웠냐고.”
“누구긴 누구야, 너지.”
현재 미합중국 해군 전체의 인사 관련된 거의 모든 업무를 다 맡은, 해군 항해국장 체스터 니미츠 소장이 껄껄 웃어댔다.
그런데···
“···넌 또 왜 고개를 그렇게 들고 있냐.”
왠지는 모르겠지만 체스터는 내 눈이 아니라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 별건 아니고. 네가 너무 하늘처럼 높은 사람이 되었으니까 그렇지.”
“하하하, 재밌다, 하하하.”
“거참 너무 하시는 거 아닙니까, 대장님.”
“야이씨.”
농담이 끝나자 체스터는 따스하게 웃으면서 나를 쳐다봤다. 어후, 저기 다크 서클 잔뜩 낀 거 봐. 마셜만큼은 아니겠지만 얘 업무량도 장난이 아닌가 보네.
“축하한다, 대일아. 우리 기수 최초의 해군 대장이 된 거.”
“아 몰라. 나도 지금 상황 파악이 잘 안 된다고-야, 너 우냐?”
“크흡, 당연하지 이 자식아.”
이것도 장난인지 아니면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전자일 확률이 제일 높겠지), 체스터의 눈가는 유난히도 촉촉해 보였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육군 애들 전부다, 어, 대령도 달고 준장도 달 때 너 혼자만 계속 만년 소령이었잖아.”
“그래도 종전 후에 바로 대령으로-”
“지금 봐, 2차대전 발발하기 얼마 전에 바로 중장, 그리고 이젠 아주 대장까지 진급하다니. 나는 정말 기쁘다, 대일아.”
“어···고맙다?”
흠, 생각해보니 60세가 되기도 전에 해군 대장이 되었는데, 이거 어쩌면 나름 해군 기록에 남지 않을까.
···아, 아니다. 몇십 년 후에는 40대에 해군참모총장 찍는 괴물 같은 제독도 나올 예정이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겠지.
“게다가 이젠 대서양 함대 사령관으로서 영국에 파견되다니. 이거 네가 기다리고 있던 거 아니었던가? 지금 기분 엄청 좋겠어.”
“잘 모르겠는 걸.”
내 미적지근한 대답에 계속 웃던 체스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모르긴 뭘 몰라. 계속 바쁘고, 성실하게 뛰어다니는 네 가슴 속엔 한결같은 불만이 느껴졌는데.”
“난 지금 현 상황이 매우 만족스러운데-”
“대일아. 내가 널 알고 지낸 시간만 30년 넘었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전쟁에 직접적으로 개입이나 참여를 못 하고 있었던 게 갑갑했던 거 아니냐고.”
손가락을 까딱까딱 흔든 체스터는 이젠 꽤 진지하고 날카로운 표정으로 내 눈을 쳐다봤다.
“어디 하늘에서 예언을 받았는지, 아니면 국제 정세 파악에 탁월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넌 몇십 년 전부터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주장해왔어. 네가 말 한 대로 됐고.”
탁탁
체스터는 엄지손가락으로 X표가 그려져 있는 프랑스와 유보트 예측 경로가 표기되어 있는 유럽과 대서양 지도를 가리켰다.
“이제 2차대전 발발과 프랑스 함락까지 이뤄졌겠다, 조만간 미국이 참전하는 일만 남았을 거 아냐? 그리고 넌 필사적으로 실전 경험을 원해왔었네.”
“···그렇지.”
“그러니까 잘 됐지. 이번에 유럽으로 가면 전투에 직접적으로 참여는 못 해도 전쟁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지 않겠어?”
음. 녀석의 말이 맞긴 하지.
내가 제일 꿈꾸고 있던 건 태평양 함대 쪽이었지만, 이것도 확실히 좋은 경험이긴 하다.
아무리 장비가 좋아도 어느 정도 레벨업은 하고 레이드를 해야 하지 않겠어?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그리고 경험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내가 너를 오랜 세월 동안 관찰하면서 확실히 배운 게 뭔지 알아?”
뭔가 불길한 한 마디와 함께 진지했던 체스터의 얼굴엔 형용할 수 없는 미소가 다시 한번 피어났다.
“훌륭한 지휘관의 가장 큰 덕목 중 하나는 본인의 역량이 부족할 시 그 부분을 채워줄 사람을 밑에 두는 거야.”
스윽
음흉한 표정을 짓는 체스터는 서랍에서 인사 관련 문서 하나를 꺼냈다. 저기 밖에서 발 걸음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그러니까 내가 우리 대일 리 제독님이 훌륭한 지휘관이 될 수 있도록 완벽한 대서양 함대 부사령관을 골라서 참모총장님께 올려보냈지.”
“···야, 체스터 너 설마-”
콰앙
항해국 사무실 문이 어느 제독의 발길질에 격하게 열렸다.
“야이 개새끼들아!”
뚜벅뚜벅뚜벅
“여, 마침 타이밍 맞게 잘 왔-커헠?!”
“아주 이것들이 쌍으로 그냥!”
얼굴이 새빨개진 로열 E. 잉거솔 소장이 체스터의 멱살을 잡고 오만 욕설을 다 하면서 흔들어댔다.
아.
뭐, 원 역사에서 2차 대전 발발 이후로 쭉 대서양 함대 사령관을 맡았던 쟤라면 진짜 완벽한 부사령관이긴 하네.
“잘 부탁한다. 로열-”
체스터의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어대던 로열은 나한테 살기어린 눈빛을 보냈다가 이내 한숨만 내쉬었다.
“저도 자아아아아알 부탁드립니다, 사령관님. 하, 내 인생 진짜···”
어쩌겠냐.
네 말대로 이게 인생인 걸, 깔깔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