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565)
매국노의 원수 자식-565화(565/773)
565_대서양 함대의 폭주 (5)
1941년 4월
워싱턴 D.C.
미합중국 대통령 프랭클린 델라노 루스벨트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인물이라는 사실에는 딱히 이견의 여지가 없었다.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거창한 직위에는 그에 걸맞은 막대한 책임과 업무가 동반하는 법. 따라서 루스벨트의 시간이란 어찌 보면 석유에 맞먹을 정도로 귀한 자원이었을지도 모른다···
“흠, 흠흠.”
절그럭, 절그럭
···만, 그렇게 바쁜 루스벨트에게도 반드시 어떻게든 시간을 조금이라도 내는 일이 몇 개가 있었다.
그중 하나는 당연히 자신의 아름답고 강인한 상체 근육의 단련이며, 또 하나는 영국에 파견을 보낸 어느 황인종 제독의 행적을 계속 눈여겨보는 것이었으리라.
“로포텐에서 그렇게 불길을 일으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더 큰 불장난을 치려는군.”
런던에서 미합중국 대서양 함대 총사령관, 대일 리 대장에 관한 편지를 읽으며 루스벨트는 피식 웃었다.
평상시와는 달리 이번에 리 제독에 관한 얘기를 담은 문서는 대서양 함대에서 보낸 전보나 보고서가 아니라 윈스턴 처칠의 편지였다.
“하하하, 이거 참.”
문제의 제독이 처칠의 사무실에 쳐들어가 자신이 필요한 걸 “점잖게 요구했다.” 그것도 처음도 아니라 두 번씩이나.
게다가 이번에는 로포텐 전투 때보다 훨씬 더 많은 병력은 말할 것도 없고, 여러 척의 함선까지 뜯어간 모양이다.
“사람이 타협할 줄도 알아야지.”
중대하고 복잡한 문제들을 많이 안고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쉽게 화를 내고, 한 번 충돌했던 자들과 다시 함께 일하는 것을 꺼리는 성향이 있었다.
혼돈에 빠진 이 세상에는 정말 다행이겠지만, 루스벨트 본인과 처칠 둘 다 타협에 그 누구보다도 능숙했던 정치인 아니던가.
따라서 영국에서 그토록 요청하던, 항공기와 공중전에 익숙한 해군 제독을 보내줬으니 처칠도 그와 타협하는 법에 숙달하는 게 좋을 터.
“당신이 영국으로 끌어들인 지원군이니 추가적인 불만 없이 잘 받아들이시길.”
루스벨트는 그 워딩 그대로 답장을 보내는 것까지도 생각했지만 거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안 그래도 이미 자신을 향해 불판을 표출하는 자들은 많았으니까.
최근의 예를 들자면 일부러 대서양 함대를 유럽으로 보내서 히틀러를 자극했다, 미국 본토가 침공받은 것도 아닌데 미국 청년을 죽게 하고 있다, 하필 미국을 대표해서 보낸 게 황인종이냐, 는 등의 내용을 꼽을 수 있었다.
따라서 로포텐 전투에서 단 한 명의 미군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게 지금 루스벨트에게는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리 제독은 아마 모를 것이다.
그에게는 그 정도까지의 정치적 눈치는 없었고, 설령 있었더라도 새로운 침투 작전에 집중하고 있을 테니까.
“이 녀석은 무슨 폭탄마라도 되나, 왜 이렇게 뭔가 터트리는 데 집착하는 거지···?”
이제는 아주 까마득한 먼 옛날처럼 느껴지는, 우드로 윌슨 대통령 밑에서 해군 차관보였던 때가 떠올랐다.
당시 해군 항해국 소속이었던 윌리엄 리히와 처음 만났었고, 두 다리가 멀쩡했던 참 좋은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여전히 대일 리라는 이름의 걸어 다니는 기행 그 자체인 해군 장교를 어느 정도 경계했던 게 기억났다.
“생각해보니 용케 살아있군···”
윌슨과 해군 장관 조지퍼스 대니얼스의 눈 밖에 나는 바람에, 워싱턴에서 펜사콜라 항공기지로 쫓겨났던 무렵에는 오히려 그의 기행은 더더욱 심각해졌었다.
고작 심심하다는 이유로 네이비씰이라는 특수부대를 창설하지는 않나, 비행기를 직접 폭파한 뒤 낙하산 타고 뛰어내리지를 않나.
솔직히 이번에 생나제르를 날려버리려는 계획도, 리가 따분해 미쳐서 떠올린 작전일 가능성을 무시할 순 없었다. 대서양 함대가 영국에서 아무 일 없이 꽤 오래 있긴 했으니까···
“어휴. 인생도 참으로 불공평해.”
고양이도 아니고 목숨 여러 개 달린 것처럼 온 사방에서 날뛰고 다닌 리는 사지가 멀쩡하건만, 어째서 몸 사려가면서 살아온 자신은 하반신이 불구가 된 걸까.
그래도 최소한 그가 보디빌딩이라는 새로운 길을 열어준 것에 대한 진심으로 감사를 표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이럴 때가 아니지.”
잡념을 떨쳐낸 루스벨트는 다시 대통령으로서의 업무에 집중했다. 곧이어 오벌 오피스는 그가 펜을 움직이는 소리와 가끔 쇳덩이가 움직이는 소리로 채워졌다.
그로부터 며칠 있지 않아 생나제르 습격의 결과가 워싱턴에도 들어왔다.
*****
대영제국, 콘월
난 개인적으로 영국과 영국인들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미 내 머릿속에서 신사적인 영국인이라는 이미지는 진작에 지워졌고, 그들에 대해 할 수 있는 부정적인 말만 과장 좀 보태서 세자릿수는 되겠지.
그러나 적어도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영국인에게 할 수 있는 욕 명단에 절대로 “단순무식”은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저 깃발은 대체 어디서 구한 거냐, 대일아?”
“다 방법이 있어.”
다른 건 몰라도 영국인들 특유의 기발함과 교활함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정말 감탄스럽긴 했다.
얼마 전에 에니그마 기계 부품이랑 암호책을 확보하고, 블레츨리 파크를 찾아갔을 때 절실하게 느꼈지.
거기서 만난 영국 해군 정보부 소속의 이언 플레밍 소령은···참으로 어마어마한 폭로를 하나 했거든.
‘독일어를 능숙하게 할 수 있는 대원에게 독일 공군 제복을 입히고,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부서진 비행기에 집어넣는다고요?’
‘그다음에는 독일군 구조대에 SOS 신호를 보내서 독일군 구명정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그다음에는 선원을 사살하고 시체를 물속에 던진 다음 구명정을 영국 항구로 끌고 오는 겁니다.’
야, 아무리 전쟁이라고는 해도 그거 너무 하드코어하잖아!
‘저기요, 플레밍 소령. 뭔 세상에 그런 잔인한 작전이 다 있는 거죠?’
‘제독님은 어떻게 또 아셨습니까, 진짜로 “잔인한 작전 (Operation Ruthless)”이라고 명명했는데 말입니다.’
‘맙소사!’
아 그러니까. 내가 만약 로포텐에서 확보하지 않았으면, 해군 정보부에서 에니그마 기계를 훔치려고 진짜로 저런 정신 나간 작전을 펼쳤을 거다, 이거지?
하여간 진짜 악랄한 쪽으로는 영국인들만큼 더 창의력이 넘쳐나는 인간들이 거의 없을 거다, 어후 세상에.
“음, 그렇게 나오니까 왠지 모르는 쪽이 좋을 것 같네···”
“껄껄.”
팰머스 항구에서 나와 로열은 이번 작전에 쓰일 자폭함 중 제일 먼저 개조가 끝난 타운 (Town)급 구축함 캠벨타운 (HMS Campbeltown, I42)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확히는 영국에 공여된 수십 척의 구축함 축 하나였고, 한때는 윅스(Wickes)급 구축함 뷰캐넌 (USS Buchanan, DD-131)이라는 이름이 있었던 함선에 게양되는 깃발을.
···그것도 영국도 미국도 아닌, 독일 전쟁해군의 깃발을 말이다.
“이건 또 어디서 배운 수법이냐, 대일아.”
“어디긴 어디야, 바로 여기지.”
“어련하시겠습니까···”
사실 플레밍에게 전해 들은 영국 해군 정보부의 발상 덕분에, 좋은 아이디어를 하나 얻어내긴 했다.
바로 생나제르 항구의 수문에 자폭할 구축함을, 최대한 독일 해군 함선으로 보이도록 개조하는 거지!
“이거 진짜 문자 그대로 거짓 깃발 작전 (false-flag operation, 자작극) 아니냐?”
“나도 명색이 해군 제독으로서 엄청 찝찝하긴 한데, 어차피 우리가 뭐 거짓 명분이라도 만들려는 게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
설령 그게 맞는다고 해도, 애초에 독일이 제2차 대전을 일으킨 것도 폴란드 대상으로 한 “거짓 깃발 작전” 아니냐고.
한마디로 지금 내가 독일에 저지르는 건, 역사의 아이러니를 대신 실천해주는 참교육이다 이겁니다, 깔깔.
슥
내가 품에서 신호탄 조명탄 발사기를 꺼냈고, 로열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다.
“그건 처음 보는 발사기잖아?”
“당연하지, 독일 해군이 쓰는 장비니까. 씰 대원들이 로포텐 근처에서 격침된 잠수함 안에서 확보해서 가져온 거야.”
“우리가 정말 알차게도 다 긁어갔구나,
한 번 시험 차원에서 발사해본 결과, 조명탄은 초록빛을 내며 타오르다가 여러 개의 빨간색 불빛으로 갈라져 떨어졌다.
“···흐음.”
“갑자기 또 왜 그래, 대일아.”
일단 “채리엇”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 작전의 준비는 제법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며칠 전에 쐈던 조명탄의 섬찟한 빛을 보고는 왠지 모르게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독일놈들이 눈치를 챈 것 같기도 한데 말이지.
*****
독일국, 오버잘츠베르크
부우웅
독일 내에서 아돌프 히틀러가 가장 애용하는 별장 겸 총통 관저 중 하나인 베르크호프 근처에서는 들려서는 안 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끽, 끽, 끼이이이이익!
주변에는 제대로 된 활주로도 없었건만, 붉은색으로 도색한 전투기 한 대가 매우 거칠고 요란하게 착륙했다.
근처에 있던 경비병들이 소총을 든 채로 당장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바짝 긴장하던 그들은 비행기에 내리는 유명인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총을 내렸다.
“리히트호펜 원수님, 제발 두 번 다시는 그렇게 오지 마십시오, 깜짝 놀랐지 않았습니까···”
“하하하, 이거 참 미안하게 됐어. 그래도 이해해달라고, 각하께서 긴급히 부르셨거든.”
“마침 기다리고 계셨습니다만, 원수님이 내일쯤 도착할 거라고 하셨는데-”
“급한 일이라서 말이야. 이렇게 외딴곳에서 고생이 참 많아, 그래도 경치는 좋구나.”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 원수는 친근하게 미소를 지으며 경비병을 경례를 받았고, 그들의 어깨를 토닥여주거나 사인까지 해준 뒤 관저로 향했다.
잠시 후 그는 관저의 문을 열고, 책상 앞에서 근엄한 자세를 취한 채로 기다리고 있던 히틀러의 얼굴을 마주쳤다.
“생각보다 훨씬 더 일찍 도착했군, 남작-자네 지금 괜찮은가?”
무슨 소리냐고 말하려던 리히트호펜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이죽거리는 입가에 미소가 피어나려 하고 손을 싹싹 비비는 모습을···
여기가 알프스산맥 근처라서 추워서 그랬던 걸까, 아니면 극도의 흥분감을 주체하지 못해서 그런 걸까. 진실을 그 중간쯤 어디였으리라.
“저는 최근 들어서 가장 상태가 좋습니다.”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내가 자네를 왜 불렀는지는 말 안 해도 알겠지?”
추가적인 설명을 하는 대신 히틀러는 자신의 책상 위에 있는, 나치당의 기관지인 푈키셔 베오바흐터 (Völkischer Beobachter, 민족의 파수꾼) 1부를 가리켰다.
이미 총통이 부른 이유를 익히 알고 있었음에도, 리히트호펜은 1면에 실린 사진을 보고는 전율에 휩싸였다.
“자네가 매우 잘 알고 있는 자지.”
“···그렇습니다, 각하.”
붉은 남작은 사진 속에서 로포텐에 상륙하여 전투에 승리한 특수부대원들을 격려하는 대일 리 제독을 뚫어지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히틀러는 묘한 자신감이라도 생겼는지 씨익 웃었다. 누가 그랬던가, 미친놈을 상대하려면 더 미친놈을 보내는데 최상책이라고.
특히 그 미친놈을 가장 숭상하고 관찰해왔던 자라면 더더욱 완벽하고.
“최대한 빨리 각하의 뜻을 이뤄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했건만, 히틀러는 리히트호펜의 처음 보는 표정을 보고는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리히트호펜, 그 표정 안 지으면 안 되겠나.”
“어, 전 항상 이 표정입니다만, 각하···?”
분명히 어떻게 하면 히틀러의 명령대로, 대일 리와 그의 대서양 함대에 타격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그의 눈빛은···너무나도 맑아 보였다.
개인적으로 히틀러는 저런 눈빛을 하는 자들은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었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