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568)
매국노의 원수 자식-568화(568/773)
568_생나제르의 폭탄이 너무 강함 (3)
1941년 4월
대영제국, 콘월
전생에 읽은 책 중에서 어느 북유럽 심리학자가 쓴 저서의 내용이 애매하게 떠올랐다.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 축복받은 부류를 제외하면, 대부분 인간은 멀티태스킹을 하면 뇌에서 기억을 형성하고, 세부사항을 포착해내는 기능이 손상된다고 했었던가.
뇌를 자극하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리할 정보가 과도하게 많거나 초점을 맞출 시간이 부족하면 한 마디로 과부하가 온댔지, 아마. 정확히는 기억 안 나는 게 멀티태스킹하면서 읽었나.
“태스크포스가 슬슬 도착했으려나.”
애석하게도 나의 전생과 현생 모두 그런 심리학적 이론을 그대로 실천하기에는 너무나도 여유가 없다는 게 현실이었다.
아나폴리스 때부터 이미 학업과 스포츠팀 활동, 거기다가 밖에서는 사업까지 하면서 보냈다. 임관 이후에는 뭐 과장 좀 보태서 커리어 절반 가까이가 야근이었고.
“그걸 한 시간에 몇 번씩은 하시는 거냐고요, 사령관님-야야 그리고 가만히 좀 있어 봐···”
“말이야 쉽지.”
그리고 지금도 믹스커피를 마시며 몇 분 동안만 휴식을 취한 뒤, 초조함에 휩싸인 채로 멀티태스킹 상태로 복귀했다.
생나제르로 향한 태스크포스 채리엇에서 틈틈이 들려오는 무전을 계속 들으면서, 프랑스 서해안 지도와 시계, 작전 계획서 등을 점검하는 등, 내 초점이 한곳에서 머무를 틈이 없구나.
“그거 알아, 로열? 솔직히 좀 아쉽긴 해.”
“뭐가 아쉬워. 설마 자폭함으로 쓸 구축함이 줄어든 거?”
내가 생각하는 건 다른 부분이었다만, 솔직히 저것도 그게 아쉽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
원래는 타운급 구축함 다섯 척을 개조해서 생나제르로 들이받으려고 했건만, 영국 해군이···그것만은 용납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아이고 나으리, 이건 안됩니다요, 이거까지 가져가시면 저희는 뭐로 유보트 순찰을 합니까···!’
‘놔라, 이거 놓지 못할까!’
물론 진짜로 저렇게 말하지는 않았다만, 영국 해군은 구축함을 제발 아껴달라며 완강한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결국 3척만 냅다 들이받는 거로 타협 봤지.
“그것도 맞지만 제일 아쉬운 건 캠블타운도 그렇고, 자폭함의 항속이 너무 떨어졌다는 거야.”
“어쩌겠냐, 독일 해군에서 사용되는 함선처럼 개조하려면 잘라내야지.”
독일 해군은 수상함이 극히 드물었고, 얼마 남지 않은 구축함은 여러모로 개성 넘치는 형태를 자랑했다.
따라서 그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독일 해군 깃발을 다는 것 외에도 네 개의 굴뚝 중에서 두 개를 뽑아내고, 남은 굴뚝도 끝을 비스듬하게 잘라내야 했다.
그 결과 약 35노트 (시속 65km)까지 낼 수 있는 함선의 최대항속이, 그 절반 조금 넘는 20노트로 대폭 떨어지고 말았지, 쩝.
“허.”
“갑자기 왜 그러냐.”
“옛날 생각이 나서 말이야. 그것도 딱히 좋지도 않은 생각이.”
서류를 재검토해본 결과, 이번 작전에 투입되는 구축함 몇 척은 의외로 나한테 친숙한 함선이었다.
짜잔, 바로 혼다 곶 집단 좌초 사건에 휘말렸고, 그 직후에 구축함 전대장에 임명된 내가 지휘하던 그 구축함 되시겠습니다!
“로열. 넌 혹시 침수차 구매해봤냐.”
사실 처음에는 처칠이 구축함 몇 척의 상태가 많이 안 좋다고 루스벨트한테도 불평했을 때 배부른 소리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데. 적어도 그 부분은 합당한 불만이었으려나.
“딱히, 애초에 차를 내 돈으로 구매해본 적이 몇 번 없어서. 갑자기 그건 왜?”
“혹시나 침수차 구분하는 방법 궁금하면 물어봐.”
“···어, 참고하지.”
잡담으로 조금이나마 신경을 안정시키긴 했지만, 얼마 있지 않아 혼다 곶 집단좌초 사건과 이번 작전의 공통점이 떠올라 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때도 주역은 구축함이었고, 함선들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지역을 통과하다가 사건이 터진 데다가, 나 또한 그 중심에 있었지.
하지만···둘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이번에는 재앙으로 끝나지 않을 거야.”
절대로.
“그래. 우리 재앙신께서 재앙이 안 일어난다고 할테니, 잘 풀리겠네.”
“···야.”
그러나 로열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내 앞에 있는 무전기에서 긴급 통신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
생나제르 항구
“빌어먹을 놈들, 이번엔 또 무슨 개수작을 부리는 거지!”
제333 보병사단의 사단장이자 이 지역의 임시사령관, 루돌프 핏츠 소장은 황급히 항구의 수문까지 달려 나왔다.
쌍안경을 들어 바다 쪽을 보니, 흐릿한 달빛 밑에서 여러 구축함의 형태를 포착한 그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붉은 남작이 경고한 게 혹시 바로 이건가···!”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 원수의 경고와 협박에, 긴장과 경계심으로 사로잡힌 핏츠의 심장은 그 자리에서 바로 발포하라는 지시를 내리려고 했다.
다행히 마지막 순간에 이성의 끈을 붙잡는 데 성공한 그는 심호흡했다. 그러고는 해안포대병에게 함선들 대상으로 일반적인 수하 절차를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일단 경고탄 한 발을 쏴봐. 대답 못 하면 바로 물고기 밥으로 만들어버리라고.”
“알겠습니다, 장군님.”
생나제르 항구는 루아르 (Loire) 강이 대서양과 만나는 입구 근처에 있고, 해안포대가 위치한 지점만 5곳이었다.
병력 상으로도, 지리로도 이곳이 독일군에게 매우 유리했기에, 자신이 두려워할 건 별로 없었다고 핏츠는 장담할 수 있었다.
끼리리릭
펑!
평정심을 되찾은 그의 명령에 해안포 중 하나가 항구로 접근하는 정체불명의 함선 쪽으로 강력한 경고탄 한 발을 발포했다.
굴뚝에서 불과 몇 미터 위에서 경고탄이 날아가자 함선은 곧바로 멈췄다. 심장박동 수가 상승하던 핏츠는 그냥 격침하라는 명령을 다시 내리는 걸 고민하기 시작했다.
피슈우우우웅!
핏츠가 적, 중립, 그리고 아군을 가리지 않고 그냥 마음 편하게 발포하라는 신호를 보내려던 순간, 정체불명의 함선에서 조명탄이 올라왔다.
조명탄은 에메랄드처럼 밝고 아름다운 초록색 빛을 뿜으며 하늘로 치솟다가, 터지는 순간 붉은빛을 내뿜으며 내려왔다.
“흐음···저거 우리 해군이 쓰는 신호가 맞긴 합니다. 구식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해안포대의 포대장 중 하나, 칼 메크 (Karl-Conrad Mecke) 대위가 핏츠의 옆에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메크의 반응에 흠칫한 핏츠는 항구에 접근하는 함선에 조명을 비추라고 지시했다. 밝고 하얀 불빛에 “정체불명의 구축함”에 걸려 있는 독일 해군 깃발이 드러났다.
“세상에, 큰일 날 뻔했잖아!”
“그러게나 말입니다, 장군님. 다만 뭔가 이상한 것 같기도 한데···”
한순간 핏츠는 자신이 하필 아군 함선에다가 발포하고, 히틀러나 붉은 남작 둘 중 한 명한테 살가죽이 벗겨질 뻔했다는 사실에 잠시 충격받았다.
그러나 몇 초 만에 그 충격은 의심으로 바뀌었다. 리히트호펜 원수가 미군은 (특히 대일 리 제독은) 특유의 교활함과 비범함을 둘 다 갖추고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는 당부는 떠올렸기에.
불쾌한 기억을 곱씹는 대신, 그는 쌍안경으로 구축함과 깃발을 재확인하고 메크에게 한 번 더 물어봤다.
“이봐, 대위. 방금 저 신호가 오래된 신호라고 했었지?”
“그렇습니다, 장군님.”
“정확히 언제쯤 신호인가.”
“음, 아마 독일 제국 시절에 쓰던···신호···어?”
현재 독일 육군에는 1차 대전 때부터 쓰던 장비가 아직도 많다는 건 핏츠도 잘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이 딱히 부끄럽지도 않았고.
육군도 그런 판국인데 해군은 육군과 공군과 비교하면 히틀러의 관심과 예산 둘 다 압도적으로 더 적었다. 따라서 상황이 더 안 좋으니 구식 함선의 비율도 꽤 높았으리라.
그러나···
“그···장군님. 로포텐 침공사태 이후로 레더 원수님께서 대대적인 신호체계 개편을 지시하시긴 했습니다. 공문이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늦게 적응하는 함장들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것도 그렇겠지만, 내가 해군 장교는 아닌데···우리한테 저렇게 여유롭게 순찰이나 할 정도로 구축함이 많았던가?”
바로 그 순간 핏츠와 메크 사이에는 어색한 정적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곧이어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은 그들은 숨이 멎는 기분이었다.
“···”
“···”
“···이런 썩을, 전 포대 발포 개시!”
온 사방에서 포격과 날카로운 포탄이 침묵의 밤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
캠블타운을 포함해 생나제르로 접근하는 여러 구축함의 갑판 아래는 긴장감이 넘칠 수밖에 없는 공간이었다.
네이비 씰과 SAS 대원들은 자신들이 강인한 정신을 지녔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아무리 지옥 같은 훈련을 받았다고는 그들 또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마음이 온전히 평화로울 순 없었다.
“이봐, 혹시 왜 이 구축함이 ‘타운’급이라고 불리는지 아나?”
“그거야, 영국과 미국 두 나라 모두에 있는 지역을 본떠서 지었으니까.”
따라서 좁고 조명도 나쁜 곳이었지만, 그들은 잡담이라도 하면서 긴장한 가슴을 잠깐만이라도 달래야 했다.
“아, 그랬지 참. 그럼 이 중에 뉴욕도 있으려나.”
“···이 무식한 양키 친구야, 니들이 왜 New 욕이라고 부르는지 잊었어?”
“흠, 그러면 언젠가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면 그곳에는 뉴 뉴욕이 생기려나.”
“욕 나오네, 진짜-”
꼬르륵
미군 동료한테 시시한 농담을 하던 SAS 대원의 뱃속에서 허기를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근처에 있는 대원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향했다.
“에휴, 리 제독님께서 마지막 만찬이 될지도 모르니 단단히 챙겨 먹고 가라고 하셨건만. 야, 해적놈아, 나 샌드위치 여분으로 하나 싸 왔는데 먹을래.”
“아, 나야 고맙지-”
아무 생각 없이 받아 베어 물은 SAS 대원은 입안에 전해지는 이상한 촉감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문제의 “샌드위치”를 줄 때부터 입가가 씰룩거리던 SEAL 대원은 그 모습에 더 못 참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씨, 양키놈아, 샌드위치에 비누랑 면도크림 넣는 미친놈이 어딨냐고!”
“누구긴 누구야, 너희들이지!”
SAS 대원이 깔깔 웃던 SEAL 대원을 자세히 보니 그 또한 입가에 하얀 액체가 묻어있었고, 그 또한 희생자였다는 걸 깨달았다.
···동시에 이 앙증맞은 장난을 발명한 것도 사실 영국군이었기에, 속은 자신이 잘못이라는 것도.
콰쾅!
얄궂은 장난의 추가적인 피해자가 나기도 전에 갑자기 저 멀리서 우렁찬 포격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그들이 탑승하고 있던 캠블타운이 격렬하게 뒤흔들렸고, 균형감각이 떨어지는 몇몇 대원들은 앞으로 고꾸라졌다.
“으윽!”
“올 것이 왔군.”
한 편 갑판 위에선 캠블타운의 함장, 에드워드 비티 중령은 심장이 가슴을 뚫고 나올 것 같았다.
분명히 철저히 기만을 준비하고 접근했건만, 아무래도 생각보다 독일군은 눈치가 빨랐던 모양이다.
“함장님, 이제 어떻게 합니까?!”
“어쩌긴.”
이미 독일은 속임수를 눈치챘다. 캠블타운이 해안포대의 포격을 견디지 못할 가능성도 절대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영원과도 같았던 찰나가 지나고 비티는 인생 최대의 결단을 내렸다. 곧바로 독일 해군의 깃발을 내리고 영국 해군의 깃발을 힘차게 올렸다.
“배달부가 문 앞에서 맹견이 지킨다고 배달을 안 할 수 있겠나?”
두 눈을 부릅뜬 비티의 다음 명령은 캠블타운 위에서 포격 소리를 묻을 정도로 힘차게 울려 퍼졌다.
“모두 꽉 잡게나, 전속전진!”
남아 있는 연료를 모두 다 태울 기세로 최대항속까지 끌어올린 캠블타운은 두꺼운 포화의 장막 속으로 돌진했다.
그리고···
“폭탄 받아라!”
콰지끈!
···포화에 두들겨 맞으며 전력으로 전진한 자폭함은 항구의 수문을 들이받아 뚫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