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59)
매국노의 원수 자식-59화(59/773)
59_복잡해지는 전황
1904년 4월 중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종합청사
“리 차관 어딨나!”
격노로 얼굴이 붉게 물든 해군상 아벨란이 임시 내무부 차관실에 들이닥쳤다.
아벨란은 왜 저기 폰탕카 임뱅크먼트 (Fontanka Embankment) 57번지에 내무부 청사가 따로 있는데 왜 굳이 종합청사에서 빈 사무실을 하나 빌려서 일을 보고 있었는지 늘 궁금했었다.
하지만 이번에 물어봐야 할 건 그런 시시콜콜한 문제가 아니었다.
“무슨 일이신지요?”
너무나도 태연한 표정으로 물어보는 리의 반응에 아벨란은 끓어오르는 감정을 못 참고 달려가 그의 멱살을 잡았다.
“무슨 일? 무슨 일?! 너 때문에 엔키비스트가 죽었단 말이다! 네가 죽였어!”
“말은 똑바로 합시다. 제가 아니라 일본군이 죽인 거죠.”
“어디서 말장난이야! 네가 도발했기 때문에 그 녀석이 스스로를 증명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이 참사가 일어난 게 아닌가!”
최소 3, 4개 국어로 된 수십 권의 책과 수천 장의 문서로 빼곡하게 덮인 책상에서 업무 중이었던 완용 리 내무부 차관은 거친 숨을 몰아쉬는 아벨란에게 멱살이 잡힌 상황에서도 별 동요도 하지 않았다.
“뭐, 그건 맞습니다. 그리고 엔키비스트 대장님은 훌륭하게 증명을 하셨지요.”
“뭘 말이지, 순전히 인맥을 통해 그 자리에까지 올라갔다는 걸?!”
“방금 그건 당신이 말한 겁니다, 제가 아니라.”
이젠 목에 힘줄이 빳빳하게 선 아벨란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한 손을 들어 리의 얼굴을 후려갈기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손은 리의 눈시울이 촉촉하게 적셔오는 광경에 잠시 멈춰섰다.
“엔키비스트 대장님은···아직도 이 나라의 해군에 희망이 있다는 걸 몸소 증명하셨습니다.”
“뭐-뭐라고?”
예상치 못한 답변에 아벨란의 손에 힘이 풀렸고,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리는 은근슬쩍 손을 뿌리쳤다.
“전 엔키비스트 대장님이 절대로 뤼순항에 가서 연합함대와 맞서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셨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도 아셨겠죠. 그런데도 그 먼 곳까지 가셔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황제폐하를 위해 몸을 바치신 겁니다.”
“아니 분명히 넌 오스카를 모욕했다고, 그래서-”
“네, 제가 틀렸습니다. 그 점은 깨끗하게 인정하겠습니다. 엔키비스트 대장님은 훌륭한 지도자였으며, 앞으로 러시아 해군 전체의 귀감이 될 것이라 확신 합니다! 그리고 이 기세를 유지한다면, 마카로프 중장님이 이끄는 발트 함대는 반드시 연합함대를 격파할 수 있을 겁니다. 모두 그의 숭고한 희생 덕분입니다.”
리의 아낌없는 칭송에 아벨란은 더 이상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몸에 힘이 풀린 아벨란은 털썩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리는 아무런 말없이 함께 앉아 그를 껴안아 줬다.
“엔키비스트 대장님의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러야겠습니다. 저도 반드시 참여 하죠.”
“고맙군···그나저나 왜 자꾸 그를 대장이라고 부르는 거지···?”
“적과의 교전 중에 돌아가셨으니, 사후 추서를 해드리는 게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권한이 있는 건 아닙니다만, 저라면 반드시 그랬을 겁니다.”
“아···”
그렇게 조용히 한참을 더 통곡을 한 아벨란은 같이 눈물을 흘려준 리에게 사과를 한 후, 사무실을 떠났다.
그리고 아벨란이 사무실을 떠나자마자 이완용은 손가락으로 눈물을 슥 닦아내고 그저 냉소적으로 웃을 뿐이었다.
“잘 뒈졌구만, 뭘.”
한국어로 혼잣말을 한 그는 마치 가짜로 감정을 연기했던 것이 너무나도 피곤했다는 듯이 기지개를 폈다.
솔직히 그가 엔키비스트의 죽음에서 애석한 건 러시하 해군의 최강의 전함 중 하나인 페트로파블롭스크와 유명 화가 베레샤긴을 잃었다는 점 뿐이었다.
하지만 분명 그 전함이 아쉽긴 하지만, 전함 함대랑 무능한 제독 하나를 대가로 일본 해군의 기뢰 및 전체적 역량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러시아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유능한 장성 하나가 살아남았다.
“이 정도면 남는 장사지.”
또 하나 일을 처리한 이완용은 아주 요란하게 하품을 했다. 망할 놈의 ‘조선 멸망’이라는 책과 더 망할 놈의 짜르 덕분에 강제로 러시아 내각의 일부가 되어버린 이후로 그는 제대로 휴식과 숙면도 취하지 못하고, 1주일에 100시간 가까이 일을 해야 했다.
오흐라나 해외공작원의 지휘관으로서 보고를 받는 건 물론이고, 언론 검열도 주된 업무 중 하나였다. 러시아놈들은 왠지 모르게 짜르를 직접 비판하는 내용만 아니면 너무나도 검열이 너그러웠고, 분명히 기밀 정보로 취급해야 하는 정보도 공개하는 일도 허다했다.
아마 자신이 오흐라나의 부분적인 통솔권이 없었으면, 짜르에게 일본군의 스파이들이 러시아 현지 언론을 통해 정보를 얻어내니까 제발 검열을 좀 해야한다고 설득하는 것도 불가능 했을터.
그 외에도 그의 시간을 상당히 많이 잡아먹는 업무는 다름 아닌 일본어 통역관 교육이었다. 일본어의 독, 청해 둘 다 가능한 자가 러시아군 전체를 통틀어 한 자릿수였다는 사실을 알고 통탄을 금할 수 없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번역사업 하면서 일본어를 제법 빨리 배웠던 경험을 살려 일본어 속성 교육과정을 창설해 현재 수십명의 통역관을 교육시키는 중이었다. 아마 몇 개월만 지나도 이들은 최소한의 구실은 할 것이다.
여하튼 여러모로 바쁜 그는 1주일에 한두 번씩, 어딘가 가둬놓은 아카시를 회유한다는 명분으로 찾아가 잡담을 나누고, 러시아와 짜르를 험담 하며, 서예와 회화를 하는 것만이 사실상 유일한 휴식이지 오락거리였다.
심지어 최근에 들어선 비밀가옥에 찾아가서 그냥 몇 시간 정도 모자란 잠이나자고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아카시가 보기엔 그가 정말 한심하면서도 안쓰러워 보였을 터.
물론 그렇게 봐줄수록 그를 회유하는 게 더 쉬워지긴 하다.
아무튼, 이완용은 과로로 죽기 전에 최대한 러일전쟁이 빨리 끝내도록 최대한 손을 쓸 수밖에 없었다. 다시 업무를 재개한 그가 가장 먼저 확인한 건 안남에서 현지요원들이 보낸 보고서였다.
“판보이쩌우 (Phan B? i Chau)에 접근을 했다···일단 반은 성공했군.”
*****
5월 말
아나폴리스
하, 인생.
러일전쟁은 계속되고 있었고, 러시아군의 굴욕은 멈출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4월 13일, 러시아의 최신형 전함 하나가 기뢰를 들이받고 격침되었고, 태평양전대 사령관까지도 함께 사망했다네.
처음엔 어떻게 하필 전함 하나가 그렇게 허무하게 갈 수가 있냐고 어이없어하려고 했었다. 하필 딱 그날, 홀시가 장교후보생으로서 처음 배치받은 전함 미주리 (USS Missouri, BB-11)에서 초대형 사건이 터진 것이다.
포격 훈련 중에 프로펠런트에 불이 붙어서 폭발은 안 일어났지만, 엄청난 매연이 발생해서 질식사한 선원만 36명이었다지. 그리고 하필 그날이 금요일.
아이고 세상에, 큰일 날 뻔했네. 미 해군 역사에 네 명밖에 없는 해군 원수 중 하나가 그렇게 갔으면 어떻게 됬겠냐고.
홀시는 아마 평생 13일의 금요일을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두려워할거야, 아마.
그리고 내가 의병들한테 부비트랩 제조법을 알려주니 그것만 가지고도 얼마나 대활약을 하고 있냐고. 최대한 많이 잡아야 몇 천 밖에 안되는 의병들이 수만 명의 병력을 몇 개월 동안이나 붙잡고 소모시킨 것만 해도 엄청난 전과 아니겠어?
다만 대나무 함정은 일본군한테 조금 미안하긴 했다. 울 아부지가 그거 포함해서 베트남전에서 부비트랩에 가실 뻔하셨던 게 한두 번이 아니거든.
···어떻게 참, 베트남에서도 그렇게 생존하시고 훈장까지 받으신 분이 남산에서는 못 돌아오신 건지.
그나저나 부비트랩 제작법 자체는 보낸 게 맞는데, 그건 도대체 누가 전파한 거지? 생각보다 너무 빨리, 광범위하게 퍼져서 솔직히 나도 좀 놀랐거든.
흠, 어쩌면 슬슬 함선용 부비트랩에 대해 알려줄 때도 됐나?
어쨌든 그렇게 진짜 유교 탈레반으로 진화한 의병들 덕분에 한국에서 발이 묶여있던 일본군은 결국 압록강을 향해 진군했고, 사실상 무방비했던 러시아군을 너무나도 손쉽게 격파했다.
저, 저, 망할 놈의 러시아놈들.
아니, 해전이라면 뭐 일본이 그 부분에 경험이 많으니까 인정할 수밖에 없지.
그런데 육지전에 어떻게 그렇게 탈탈 털릴 수 있냐? 만주랑 시베리아 같은 평원에서의 전투가 니네들 주특기 아니었나요?
터키랑 전쟁하다가 유능한 장군들이 다 갈려가기라도 한 거야 뭐야···
그리고 이때다 싶어서 일뽕 쳐맞은 백인놈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와서 ‘오오 사무라이 정신 오오’ 이 난리를 치니 내 뒷목이 멀쩡하지가 않다.
분명히 아펜젤러 선교사님의 순교 사건이 묻히지는 않았다. 여긴 아무래도 명색이 개신교 국가이고 자국민 민간인 사살은 엄청나게 큰 사건이며, 루스벨트도 일단 조사 차원에서 파파 맥아더를 한국으로 보내기는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러시아는 내가 생각한 그 이상으로 온 사방에 어그로를 끌어댄 모양이다. 특히 유태인 학살 사건, 그것도 단일 사건도 아니고 여러 차례 수백, 수천 명을 죽여댄 게 충격적이긴 했다는 점은 인정해야겠다.
하지만 이게 반일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물타기일 가능성도 있다는 걸 고려하면 씁쓸하다 못해 속이 찢어지는 기분이다.
다시 우울증이 도지려는 어느 날, 난 세레나의 편지를 받았다. 내가 여론전시키려고 샌프란시스코로 보낸 그녀가 무슨 일인지 다시 뉴욕시로 왔는데, 온 김에 나 좀 보자고 한 것이다. 만나는 장소는 뭐, 여전히 레이놀즈 태번.
그렇게 난 몇 개월만에 다시 그녀를 만났다. 하지만 오래간만에 본 그녀의 눈가엔 다크서클이 생기고, 머리는 푸석푸석해진 게,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고 엄복동한테 권총을 꺼내 들던 그 에너지를 찾아볼 수 없었다.
“오래간만이에요, 대일. 조만간 이번 학년도 끝나겠고, 내년이면 졸업이네요?”
“뭐, 그렇죠. 그나저나 생각해보니, 스테이튼 양은 대학교는 어쨌어요? 코넬은 많이 힘들 텐데.”
“제가 교수님들이랑 알아서 잘 해결했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이거나 좀 봐주실래요?”
쿵.
내 앞에 수백 장의 문서가 드롭했다. 내가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에 대비하라고 설득하기 위해 끌어모은 소견서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엄청난 분량이잖아···?
“···왜 그렇게 지쳐 보이는지 알 것 같군요.”
“고마워요 대일, 알아줘서. 그리고 미안해요, 프로파간다의 약빨이 생각보다 약한 점.”
“아뇨···결국 뭐 프로파간다는 돈 싸움인데 자본가를 어떻게 이깁니까.”
무거운 한숨을 내쉬는 나를 세레나는 하얀 이빨을 보이며 너무나도 상큼하게 미소를 지어줬다. 마음이 심란해서 그런지, 저런 소소한 것만 해도 너무나도 안식이 되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요.”
하지만 그녀가 나에게 몇십 페이지짜리 책자를 하나 건네주는 순간, 내 마음의 평화는 사라졌다.
“이거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조사를 해야 했는지 몰라요. 인터뷰만 거의 100번 했고, 의회도서관 (Library of Congress)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어후, 죽는 줄 알았다니깐요? 아빠가 큰 소송할 때도 이 정도로 많은 자료를 열람하진 않아요.”
침묵.
“···제가 지금, 눈이 어떻게 된 게 아니고 제대로 읽고 있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네요.”
“저같이 밤샘 여러번 한 거 아닌 이상 멀쩡할 걸요. 유태인놈들이 물타기 하나는 끝내주게 잘하잖아요? 하지만 불을 아무리 넓고 두꺼운 이불로 덮어도,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곳에서 터지면 한계가 있는 법이죠.”
“그래서 이걸 쓴 거라고요.”
“정답! 아, 그리고 말 나온 김에 활동비가 좀 필요한데, 한 2만 달러는 있어야겠어요.”
천사같은 미소를 지으며 너무나도 당당한 주장을 하는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내 손에 들려있는 책자를. 다시 한번 그녀의 얼굴.
한참을 번갈아 본 후, 난 그 책자를 몽둥이처럼 돌돌 말아서 그녀의 머리를 내리쳤다.
“아야야···아 왜 그래요!”
“야 이 미친 아가씨야, 제정신이에요?!”
내 손에 말려 있는 책자의 표지엔 일곱 단어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국제 유대인, 세상에서 가장 큰 문제 (The International Jew: The World’s Foremost Problem)’
*****
6월초
요동반도 근처, 남산 언덕
“젠장할, 왜 이런 곳에서 삽질이나 하고 있어야 하냐고!”
제5 시베리아 연대에 배치받은 로만 폰 운게른-슈텐베르크 소위는 투덜거리면서도 열심히 삽을 들고 참호를 파고 있었다.
꼴에 귀족출신이고, 피를 튀기는 전투의 맛을 빨리 보고 싶어 여기까지 온 운게른은 온몸이 근질근질했었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 달리 열차에서 내려서 이동해 도착한 곳은 남산 언덕이었고, 도착하자마자 사병과 장교 가릴 것 없이, 삽질과 철조망 설치 등, 참호를 강화하는 육체노동만 며칠 동안 계속한 것이다.
그의 성깔상, 이딴 짓거리는 그만하고 빨리 일본군을 찾아 나서자고 뛰쳐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 요새의 총사령관, 니콜라이 트레탸코프 (Nikolai Tretyakov) 대령이 함께 웃통을 벗고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고 뭐라 할 수 없었다.
“일본놈들 오기만 해봐라, 네놈들의 목으로 탑을 쌓아주겠어···”
그렇게 운게른은 삽질을 재개했다.
한 편, 뤼순항에는 비상사태가 떨어졌다.
“아이고, 큰일났네 우린 다 죽었어!”
“일본놈들 도대체 여기가 뭐라고 그렇게까지 하는거야?!”
호들갑 떠는 병사들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묵직한 걸음소리에 잠시나마 진정을 했다. 뤼순항의 3인자, 로만 콘드라텐코 중장이 조용히 담배를 피우면서 그들에게 다가왔다.
“뭐 이리 호들갑 떠는거지?”
장군님, 일본군이-일본군이 조만간 10만명 넘게 이쪽으로 올 예정이랍니다!“
“오라고 해라.”
“···네?”
“내가 살아있고, 이 요새에 물자가 남아 있는 한, 신의 군대도 여기를 뚫지 못할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