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607)
매국노의 원수 자식-607화(607/773)
바르바로사와 진주만 (2)
1941년 7월
일본 제국, 도쿄
일본 육군대신 도조 히데키 대장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동맹국이 보낸 문서를 읽으며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이거 참 곤란하게 됐는걸.”
독일군, 그것도 국방군 최고사령부에서 직접 보낸 전문은 여러모로 그가 보기에 불편한 내용을 잔뜩 담았다.
그동안 무적으로 군림했던 독일군은 콧대가 꺾이고, 일본만큼은 아니더라도 꽤 거대하고 막강했던 이탈리아 해군 또한 재기할 수 없는 피해를 봤다는 사실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이 두 가지 불길한 사건의 공통적인 요인을 도조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는 건가.”
심지어 새로운 독일 공군의 창시자이며 불패의 장군이었던 붉은 남작조차도 지중해 전투에서 처음으로 패배를 겪고 말았다.
미합중국 대서양 함대 총사령관, 리 다이이치 제독 말고 이런 짓을 저지를만한 자가 또 얼마나 있겠는가.
“일단 육지에서의 협공은 일어날 일이 없겠군···”
리 제독의 공작으로 인해 독일의 지중해 및 중동 점령의 가능성은 완전히 물러갔다. 당연히 인도까지 올 일도 영영 없을 테고.
전쟁과 평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빠듯한 상황에서 결국 무력을 택하고, 육해군 모두 작전 준비 체계를 몇 단계 높인 이후로 시간이 꽤 지났다.
이런 판국에 아시아 공략을 도와줄 동맹 하나가 힘이 꺾여버렸다는 사실이 도조를 포함한 일본군 그 누구에게도 달가울 리가 없었다.
“적어도 국내 여론은 영향을 받지 않아서 다행이란 말이지.”
독일의 전문에서 아침 신문으로 시선을 돌린 도조는 1면에 다뤄진 내용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본 국민이 군부의 주도로 이뤄지는 장엄한 국책이 얼마나 착착 움직이고 있는지 알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국가들이 일본을 고립하며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오랜 선동이 잘 먹혀나갔는지, 서구를 향한 증오심과 전쟁을 향한 목소리 모두 날로 커져 나갔다.
“그러면 된 거지.”
똑똑똑
조직적이고 철저한 언론 통제와 지식인들 대상으로 한 협박의 결과에 만족한 도조의 귀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면담 약속을 기억한 신문에서 시선을 고정하고 관등성명도 요구하지 않은 채로 입장 허가를 내렸다.
“들어 오게”
“실례하겠습니다, 대장님.”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장군에게 도조는 마치 오랜 친우나 아끼는 친척이라도 된 것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신보다 3살 정도 많은 장군이었건만 그의 얼굴엔 기묘할 정도로 앳된 기색이 맴돌았다. 마치 시간이 보통 사람과는 다르게 흐르기라도 한 것처럼.
”노기 장군“
짧지만 강렬한 명칭에 노기 야스스케 소장의 온몸이 긴장했고 표정 또한 불편하게 일그러져나갔다.
“여전히 그 호칭이 적응 안 되는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일본 육군에서 노기 마레스케 대장이 뤼순 공방전 패배의 책임을 지고 할복한 일화를 모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노기 야스스케 본인이 아버지의 목을 직접 치고, 돌아온 그 날 어머니도 목을 매달아 자살했다는 일화 또한.
“자네에게도 그런 끔찍한 비극이 반복될 일은 없을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말라고.”
“···”
노기 가문 유일한 생존자의 얼굴엔 어둠이 짙게 드리웠으나, 도조 또한 그 말만큼은 진심이었다.
성서에서도 말하지 않았던가. 아비는 아들의 죄악으로 처벌받지 아니할 것이며, 아들 또한 아비의 죄악으로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고.
안타깝게도 이번에 특별히 그를 부른 이유는 따로 있었고, 설명하려는 도조의 가슴 속엔 묘한 죄책감마저 피어 올라올 지경이었다.
슥
“이건 뭡니까, 대장님-”
사무실에 들어오기 전부터도 불안함을 느끼던 야스스케는 자신이 건네받은 명령서를 읽는 순간 굳어버렸다.
도조는 다시 생생히 떠오르는 악몽으로 얼굴이 창백해진 그에게 미안하기라도 한 듯,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가문의 영광을 회복할 기회를 주겠네. 내일 당장 아시아로 가게나.”
*****
대영제국, 런던
띵!
윈스턴 처칠과의 불편하고 긴 대화를 끝마치고 난 곧바로 사보이 호텔에 있는 내 방으로 돌아갔다.
내 방이 호텔에서 가장 크고 고급스러운 방 중 하나였다는 사실은 그나마 고맙긴 해도, 조용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좋은 객실도 다 필요 없으니까 집이나 태평양으로나 보내달라고!
“에휴, 다 귀찮아, 다 귀찮다고.”
몰타 항공전에서 붉은 남작 휘하 전투기 수백 기는, 단 한 두 척의 대서양 함대 소속 항공모함에 적재할 수 있는 함재기로 상대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상대였다.
그래서 대서양 함대는 물론이고 영국 지중해 함대와 심지어 본토함대에 소속된 항공모함까지 동원해야 했었고.
애석하게도 그 덕분에 처칠 이 양반이 또 목소리를 높일 기회를 얻었단 말이지···
끼리릭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차라리 리히트호펜을 상대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새록새록 들 지경이었다.
그나저나 걔는 그렇게 명문가 출신의 미남이면서 왜 아직도 독신으로 있는 걸까. 나는 벌써 손주만 5명인데 말이지-
-야,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구나, 아이고.
“음?”
별 쓸데없는 생각으로 가득했던 내 뇌는 방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상자를 보는 순간 잠시 멈춰버렸다.
아이씨, 저건 또 뭐야. 그···혹시 부비트랩이라던가, 그런 건 아니겠지. 사람 하나가 들어가도 남을 정도인데-
-야 잠깐만 설마.
덜크덕
“짜잔~!”
“뜨허어엌?!”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해맑게 웃는 세레나가 상자 뚜껑을 힘차게 열어젖혔다. 아니 이게 무슨 함정카드도 아니고?!
“기다리다가 지쳐서 그냥 비행기 타고 왔지 뭐에요.”
“다 좋은데 말 좀 하고 오지 그랬어요, 마중 나가게-흡?!”
대백색함대의 항해 당시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을 때처럼, 그녀는 정말 오래간만에 가히 흡성대법이라 불러도 될 법한 키스를 박았다.
조금 숨 막히기는 해도 솔직히 기분 좋은 키스가 끝나고, 난 그동안 지은 죄가 떠올라서 코트를 벗고 세레나에게 등을 보였다.
“자요”
“네? 아, 당신이 유럽에서 저지른 일에 대해 익히 듣긴 했죠~”
대충 눈치를 챈 세레나는 흥얼거리며 하얀 손을 쓱쓱 비벼댔다···만, 등짝 스매싱은 오지 않고 대신 그녀는 뒤에서 나를 꼭 껴안을 뿐이었다.
“···엣.”
“고생 많으셨어요. 제가 뭘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서 죄송해요.”
“아니, 그럴 것까지는 없는데 말이죠. 잠깐만, 우리 막내는요?”
“아이린이 맡고 있으니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된답니다.”
나름대로 냉철하고 현실적인 그녀였건만, 아무래도 이번에는 감정이 너무 앞섰던 모양이네. 그녀를 탓할 수는 없지만.
아니 잠깐. 안 그래도 미녀인 아내가 평소보다도 더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그것도 결혼기념일에 내가 머무르는 호텔까지 찾아왔다니.
야, 이거 진짜 다시 신혼이라도 된 것처럼 정신이 나갈 것 같은데. 동해물과 백두산이-아, 이 노래가 아니지, Stand Navy down the field···!
“그것참 다행이네요. 아, 마침 잘됐어요, 꼭 부탁할 게 하나 있었거든요.”
“원하는 게 몰라서 옷장에서 가져올 수 있는 건 다 가져왔어요. 그 외에 다른 게 있으면 사와도 되고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고, 뭔지 물어보는 것도 두렵군요.”
여러 가지 의미로 이성을 붙드는 게 힘들 정도로 흥분되는 상황이었지만, 지금 너무 심각한 일이 하나 닥쳐와서 말이지.
감정을 간신히 억누르며 난 세레나에게 독일 방첩국의 빌헬름 카나리스 제독이 런던에 긴급히 보낸 전보를 보여줬다.
황홀한 표정으로 헤실헤실 웃던 아내는 전보의 내용을 읽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곧바로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갔다.
“···이런 세상에.”
“히틀러 그 자식이 결국 소련 침공을 원래대로 진행할 생각이에요.”
“어쩐지. 그 정도 군사력으로 왜 아직도 수에즈 점령 못 하고 질질 끌고 있나 싶긴 했어요. 아, 물론 당신의 활약이 결정적이기도 했겠지만요, 대일.”
머리 아파 죽을 것 같네, 아놔 진짜. 지중해와 발칸에서 그 꼴이 난 걸 보고도 정신 못 차려서 더 크고 강력한 상대랑 싸움을 걸다니?!
아니다, 이건 보통 사람이 아니라 히틀러라고. 제정신이 박힌 인간이면 애초에 이번 전쟁 자체를 안 일으켰겠지.
“사실 저도 당신한테 전해드릴 게 있긴 있어요.”
음흉하게 웃는 게 아니니 또 늦둥이 하나 더 가지자는 식의 무시무시한 소리는 아니고, 뭔가 PCDA나 아시아 쪽과 관련된 사안이려나.
“좋은 소식은 아닌 모양이군요.”
“안타깝게도요.”
마음의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세레나가 가져온 소식을 전해 듣는 순간 이미 지끈지끈 아팠던 머리가 완전히 깨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이고 세상에.”
“축하해요, 세계적인 인기인이 되셨군요.”
“이딴 인기 필요 없습니다만.”
하 미치겠네. 이 불똥이 하필 만주 쪽으로도 튈 거라고는 생각 못 했네.
그리고 루스벨트 이 양반···이번엔 나한테 또 무슨 미친 짓을 저지르려는 거지?!
*****
워싱턴 D.C.
“각하. 이러시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어허, 우리 사이에 왜 그러나.”
백악관의 오벌 오피스 안에서 미합중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수상쩍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만 집무실 안에 있는 손님, 그리고 그와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언론인과 루스벨트의 정적들이 들으면 기뻐할 만한 비리나 스캔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현직 해군참모총장이 따로 있는데 왜 자꾸 해군 관련 업무에 저를 부르시는 겁니까···”
“거참, 알면서 왜 그러나.”
“···스타크 제독이 화내도 할 말 없으실 겁니다.”
전 미합중국 해군참모총장, 윌리엄 리히 예비역 해군 대장은 루스벨트의 뻔뻔한 반응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의 입을 통해, 유럽의 바다에서 추축국을 일방적으로 휘젓고 다니는 자신의 애제자에 대해 듣는 건 나름대로 기분 좋기도 했다.
수십 년 지기 친구의 머릿속을 들어보기라도 했는지, 루스벨트는 리히가 전혀 들을 준비가 되지 않은 한마디를 던졌다.
“대일 리 제독 이 친구도 슬슬 다시 소환해야겠어.”
“···네?”
“유럽의 바다도 어느 정도 진정된 것 같고, 나머지는 영국 측에서 충분히 감당하겠지. 마침 그를 써먹을 데가 있거든.”
잠시 고민한 리히는 그 활용도가 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지만, 더 캐묻지 않고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 그를 보며 루스벨트는 본인의 서랍에서 매우 중요해 보이는 외교 문서 한 장을 신중하고 동시에 과장된 듯한 동작으로 꺼냈다.
“그리고 돌아오면 제일 먼저 나한테 와서 큰절을 올려야 할 거야.”
“대체 뭐길래 그러십니까?”
루스벨트는 그야말로 사악하다고 불러야 할 정도로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손에 쥐어진 문서를 리히는 뚫어지라 쳐다보고는 기겁하고 말았다.
“그 조약서는 1차 대전 직후에 체결한-아니, 각하 설마.”
“나 이전의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 저지른 죄악을···‘바로잡을’ 생각이거든.”
돌이킬 수 없을 결과를 일으키겠다는 루스벨트의 강력한 선언이 오벌 오피스 내부를 무겁게 짓눌러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