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61)
매국노의 원수 자식-61화(61/773)
61_장군의 아들과 미친 남작 (1)
1904년 5월 말
대한제국, 제물포
일본군 장교들을 위해 임시로 설립한 쉼터에 제2군 소속 시바카와 마타사부로 중위가 부채질하며 들어왔다.
이런 껄렁껄렁한 모습에 쉼터 안에 있는 몇몇 장교들이 흠칫 놀랐다. 심지어한 소장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그를 불렀다.
“어이, 자네. 걸으면서 부채질이라니, 누가 그딴 짓거리를 가르쳐 준 거지?”
“허, 이것 참. 앞으로 계급이 높다곤 하지만, 제가 해군한테 푼수를 들어야 합니까?”
“아니 이 자식이?! 너 당장 따라와, 내가 교육을 좀 똑바로 해줘야겠군!”
도고 마사미치 해군 소장은 성난 얼굴로 시바카와 중위를 장성들만 쓸 수 있는 특실로 끌고 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하급 장교들은 약간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특실로 가서 문을 닫자마자 두 장교는 서로를 노려봤다.
“내가 왜 여기까지 네 녀석을 끌고 왔는지는 알겠지?”
“제가 그것까지 알아야 합니까?”
둘 사이에서 어색하지만 싸늘한 정적이 돌았다.
하지만 몇 초 버티지 못하고 둘은 깔깔 웃으며 포옹했다.
“마타사부로 이 자식, 결국 장교까지 되었구나, 정말 자랑스럽다!”
“어휴, 과찬입니다, 숙부님에 비하면 갈 길이 멀죠.”
도고는 멋쩍어하는 먼 조카 시바카와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했고, 찻잔과 함께 어렵게 구한 여러 가지 다과를 담은 접시를 건네줬다. 시바카와가 자신은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고 쑥스러워했지만 도고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과를 권했다.
“그래서, 네가 배치받은 곳이 2군이고, 그러면 조만간 남산으로 출발하는 거지?”
“맞습니다. 남산이랑 달니이 (Dalniy, 오늘날의 다롄)만 점령하면 뤼순항을 포위하기 좋은 거점을 획득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단 말이지. 이거 너한테만 말하는 건데, 솔직히 난 처음에 네가 좀 걱정되었거든. 그런데 압록강에서 러시아놈들이 보여준 추태를 보니 별문제는 없을 것 같네!”
“압록강 회전은 진짜···그걸 그렇게 내줄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쿠로키대장님도 당황하셨다더군요. 그 사령관이 남산으로 갔었으면 참 좋을 텐데.
뭐, 러시아 장성이라는 작자들이 다 거기가 거기니 별 차이는 없으려나요?”
그렇게 둘은 한참 러시아군을 욕하고, 육해군 관련 악의 없는 농담을 나누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나저나, 요즘 의병놈들이 진짜 말썽이더군. 최근에 압록강 부근에서도 이것들이 출몰한다는 데,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압록강에서요? 에이, 설마. 쥐새끼 같은 산도적들이 거기까지 갈 리가 없잖아요.”
“그 쥐새끼들한테 너희 육군이 몇 개월이나 붙잡혀 있었잖냐.”
“윽! 그-그러는 해군도 지금 벌써 어뢰정만 5척이나 격침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난 조심하라고 하잖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던 시바카와는 그저 앓는 소리를 내며 일장기가 그려진 부채를 흔들 뿐이었다. 도고도 괜히 자기가 말해놓고 자기가 타격을 입어서 잠시 말을 잃었고, 빨리 화제를 바꿨다.
“그거 부채 끝내주네.”
“그렇지 않습니까? 러시아군과 싸울 때 이걸 흔들면서 싸울 겁니다. 호테이(布袋, 7복신 중 하나) 같지 않나요, 살은 안 쪘지만.”
“뭘 흔들든 상관없는데 제발 조심만 해. 네가 죽으면···내 아들을 잃는 심정일 것 같으니까.”
“···아들도 있으신 분이 그런 말씀 하시면 안 되는 것 같다만, 마음 감사히 받겠습니다.”
도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숨겨왔던 술병 하나를 꺼내 마셨다.
“큽, 역시 본토의 술만큼은 못하군.”
“숙부님, 제 지인 중에서 히로시마현의 타케즈루 (竹鶴)라고, 양조장 하는 가문이 있습니다. 나중에 본토로 돌아가면 거기서 빚은 최고급 술로 대접해드리 죠.”
살갑게 웃는 조카의 얼굴을 도고는 영 자신감이 없는 얼굴로 바라볼 뿐이었다.
“‘돌아가면’ 말이지.”
“뭐 그렇게 불길하게 말씀하십니까. 어차피 러시아군은 이번에도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바로 도망갈걸요? 이 녀석들은 하나같이 겁이 많고 근성이 부족하니까요!”
*****
6월 넷째 주
남산 근교, 진저우 성
제5 시베리아 연대의 일부가 요새화된 진저우 성안에서 자리 잡았다.
트레탸코프 대령은 남산 언덕의 조금 더 북쪽에 있는 이 성이 전술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요새화 작업에 착수했다.
그 작업의 일환으로 진저우 성 부근에 무려 5겹의 철조망과 지뢰를 잔뜩 깔아놓았고, 여기엔 운게른도 울며 겨자먹기로 투입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트레탸코프 대령 휘하 전체 병력이 얼마 안 되는지라, 진저우 성에 배치된 건 400명의 병사와 구식 야포뿐이었다.
며칠 전에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경로를 통해 미군이 쓰던 장비로 추정되는 총기를 담은 나무 상자가 수십 개 도착했지만, 그건 전부 남산의 본진에 비상용 무기로 보관되었다.
남산과 진저우 성의 병력을 포함해서 총 3, 800명 밖에 안되는 러시아군은 뤼순항으로의 길을 뚫기 위해 진군하는 거의 4만명에 가까운 일본 2군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여하튼 400명의 러시아군이 막고 있는 지점에 최소 사단급 전력이 들이닥칠 것이라는 속보를 들은 진저우 성의 수비군은 충격과 공포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단 한 명만 빼고 말이다.
“자, 빨리 들어오시지.”
압도적인 열세에 처해 모두가 불안함에 떨고 있는 와중에 로만 폰 운게른-슈텐베르크 소위 혼자만 흥분감에 주체를 못 하며 쌍원경으로 입구를 목이 빠지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멀리서 4사단의 엄청난 병력이 몰려오는 소리가 그의 소원을 답했다.
“발포하라!”
좁은 입구로 밀물처럼 몰려드는 병력을 향해 수십 개의 야포가 대지를 뒤흔들며 불을 뿜었다.
맨 앞에서 군도를 뽑고 달려오던 한 소위는 포격에 직격으로 맞아 상반신이 통째로 날아갔다. 그 뒤에서 따라오는 병사들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불빛에 날아드는 나방들처럼 산화되었다.
“그래. 그래그래그래, 바로 이거야, 크하하하하하!”
야포의 굉음과 일본군의 함성과 비명이 운게른에게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음악처럼 들려왔다. 그가 마린스키 극장에서 관람했던 그 어떤 오페라도 이렇게 그의 가슴을 웅장하게 만들어준 적이 없었다.
그날 몇 시간에 걸친 공방을 4사단은 두 번이나 시도했다. 하지만 어찌한 일인지, 압록강에서처럼 제법 쉬운 승리를 기대했던 일본군의 바람과는 달리, 400명의 수비병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마음에 여유가 넘쳤는지, 운게른은 심지어 그 막간을 이용하여 일본군을 위한 ‘작은 선물’을 만들기도 했다. 물론 그 모습을 본 동료 병사들은 모두 경악했지만.
그날 밤, 2군 총사령관 오쿠 야스카타 (? 保鞏)는 앓는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젠장할! 압록강처럼 만만한 놈들만 있을 줄 알았더니만!”
“심지어 어떤 미친 러시아놈은 우리가 죽어나가는 모습 보고 계속 웃어댄답니다.”
“나도 그거 들었다. 역시 땅덩어리 넓고 인구가 많으면 기행을 일삼는 놈도 나올 법 하지. 그러면 작전을 변경해야겠군···”
그렇게 다음날 새벽, 오쿠는 4사단이 정면으로 진입하는 동시에 공병을 동원해 진저우 성 측면을 뚫어 1사단의 2개 대대를 투입했다.
투쾅.
이제까지 야포가 울부짖는 그 어떤 소리보다 더 요란한 소리가 측면에서 들려 왔다. 얼마나 폭발이 컸는지, 벽에서 날아간 파편에 맞고 즉사한 병사들이 여럿 생길 지경이었다.
결국 세 방향에서 한꺼번에 공격해오는 바람에 5연대는 버틸 수가 없었고, 결국 후퇴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망할 잽스들, 오늘은 이만 물러가 주지. 어차피 본무대는 남산이니까, 으하하하하하!”
“소위님, 이상한 소리 그만하시고 빨리 튀십시오!”
“뭐 이 새끼야?!”
그렇게 일본군은 힘겹게 진저우 성을 함락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한 무리의 의병이 공세 내내 그들을 계속 관측해온 것도 모르고.
*****
엄청난 양의 흙먼지를 뒤집어쓴 노기 카츠스케 소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함락된 진저우 성에 진입했다.
“허 참. 이거 손실이 좀 많이 큰데? 뭐, 그래도 뚫었으면 됐지.”
그의 상관 시바카와 중위가 일장기가 그려진 부채를 흔들며 무심하게 한마디 던졌지만, 카츠스케는 그 정도로 맛이 간 사람이 아니었다.
온 사방에 흩뿌려진 동료 일본군의 시체의 규모에 카츠스케는 할 말을 잃었다. 물론 견고한 요새에 돌격하는 건 희생자가 많이 발생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수백 명의 일본군 사상자가 발상한 것에 비해 러시아군 사상자는 100명도 되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진지에 올라가보니 정말 턱도 없이 구식 야포, 그것도 몇 개 되지도 않았다. 불과 이 정도 수비군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병사가 갈려 나갔는지, 카츠스케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혹시나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러시아군을 찾기 위해 돌아다니던 카츠스케의 발치에 무언가가 닿였다.
그리고 밑을 내려다본 그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질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인가, 노기 소위-이런 세상에!”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온 시바카와는 일어서지도 못하는 카츠스케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봤고, 그도 경악하고 말았다.
한 나체의 일본군 병사가 사지가 큰 대자로 벌려진 채, 모든 손발에 철조망설치에 쓰이는 대못이 박혀져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국부에서 가슴팍까지 마치 녹슨 도끼로 찍어낸 듯 뜯겨 열려있었다. 내장의 펼쳐진 모습은 마치 악몽에서만 나올법한 독수리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그 끔찍하게 살해당한 병사의 발치엔 러시아어로 두 문장이 피로 쓰여져 있었다. 정신을 차린 카츠스케는 의무병과 함께 역관을 불러 이 문구를 해석하도록 지시했다.
“남작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 여기서 놀다 가다. 남산에서 기다리고 있겠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일본군이 마른 침을 삼켰다. 분명히 그 중엔 자신들도 혹시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는 자들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무거운 정적은 의무병의 소름 끼치는 한 마디에 깨졌다가 더 싸늘하게 돌아왔다.
“이 병사···죽은 지 얼마 안 됐습니다.”
*****
도망쳐 온 5연대의 생존자들을 보고 트레탸코프 대령은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이들이 수천 명의 일본군을 막아낼 것으로 생각한 적도 없었다. 오히려 하루만이라도 훌륭하게 버텨낸 그들 모두를 칭찬하며, 여기서 살아남는 자들에겐 훈장이 수여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살아남는다면 말이지.
정말 속이 터질 노릇이었다. 애초에 이 지역 방어의 총 책임자는 트레탸코프가 아니었다.
책임자는 바로 그의 상사, 아나톨리 스테셀 (Anatoly Stessel) 대장이었고, 그가 지휘하는 병력은 무려 18, 000명이나 되었다. 물론 여전히 일본 2군의 절반밖에 안 되는 병력이었지만, 방어전이라면 제법 해볼 만한 규모였다.
그런데 그 병력은 뤼순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주둔 되어 있었고, 남산 지역에는 고작 5연대를 포함한 3, 800명의 병력만 배치한 것이다.
트레탸코프는 여기가 얼마나 중요한 지역인지 수십 번이나 설명하고, 지원군을 보내달라고 사정을 했다. 하지만 스테셀의 부관이자, 예비병력의 사령관 알렉산더 포크 중장은 뤼순항 밖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남산의 중요성을 파악을 못 했는지, 요청을 전부 거절했다.
아무래도 제대로 된 전쟁 경험도 없고, 정치가들과 황가와의 연줄만으로 중장까지 오른 경찰 간부 출신이라서 용기고 지식이고 아무것도 없었던 모양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트레탸코프는 공병 출신이라 진지구축에 일가견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욱더 다행으로 이 일대를 무인지대를 방불케 할 정도로 온 사방에 철조망과 지뢰를 깔아놓을 정도의 물자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압도적인 머릿수 앞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젠장할, 자슐리치 같은 머저리가 둘이나 더 있고, 게다가 그게 하필 내 상관일 줄이야!”
빠각!
참호를 점검하던 트레탸코프는 짜증나서 돌멩이를 하나 걷어차려다가 겨냥을 잘못해서 미군 장비를 가득 담은 상자의 모서리를 걷어찼다.
“!!!!”
너무 아프지만, 분명히 자기 잘못이라서 트레탸코프는 그저 발을 붙잡고 마음 속으로 비명을 지를 뿐이었다.
“그나저나···”
아무래도 이게 뭔지는 살펴봐야겠다 싶은 트레탸코프는 쇠지레를 하나 들고와 수십 개의 상자 중 하나를 따서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총기를 본 그는 할 말을 잃었다.
분명히 ‘이게’ 도대체 왜, 그리고 어떻게 여기에 왔는지 도무지 몰랐다.
하지만 이 상황에 너무나도 이상적인 무기였다.
마침 수량이 매우 넉넉하게 도착한 지라, 트레탸코프는 당장에 이 총기를 장전시켜 여분의 탄환과 함께 참호 안의 병사들에게 분배했다.
특히 운게른이라는 한 소위는 이 총을 받는 순간 정말 악마 같은 미소를 지었고, 정말 꿈에 나올법한 광경이었다.
“난 아마 제 명에 못 살 거야···”
*****
다음날, 남산 언덕 밑에 2군의 전력, 1, 3, 4사단이 모였다. 근처 해안가엔 포함해 여러 척이 언덕 위의 진지를 향해 조준했다.
1사단의 맨 선두에서 선 카츠스케의 손은 쥐어 잡은 총기에서 달그락달그락소리가 날 정도로 벌벌 떨렸다.
어제 그 끔찍하게 손상된 시체를 본 일본군의 머릿속엔 오만 생각이 나돌았다. 일부 창의적인 병사들은 혹시 이 운게른이라는 작자가 인계에 강림한 악귀가 아닐까 상상하기도 했다.
짧은 찰나에 여러 가지 의견과 음모론이 돌았고, 그중 하나는 그 무엇보다도 끔찍하게 다가왔다.
만약 그렇게 살육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작자가 저 언덕 위에 한 명만 있는데 아니라면···?
혹시 자기가 두 번째 희생양이 되면 어떡할까, 고민할 틈도 없이 포함은 언덕위의 진지를 향해 포격했다.
대지가 흔들리는 요란한 포격소리와 함께 진군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카츠스케는 떠밀리다시피 언덕을 올라갔다.
공포에 사로잡혔지만, 그는 돌아설 수 없었다.
단순히 죽는 거로 끝나지 않고 곱게 죽지 못하는 한이 있어도 진군해야만 했다.
카츠스케는 마음속의 두려움과 주저함을 떨쳐내는 우렁찬 고함과 함께 달려나 갔다.
천황 폐하를 위해. 가문의 명예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