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616)
매국노의 원수 자식-616화(616/773)
치욕의 날 (6)
1941년 9월
하와이, 진주만
하와이에서 일어난 대사건의 전말이 워싱턴을 제외한 미국 본토에 전해지는 데는 꽤 오래 걸렸다.
“미확인 비행기”들이 진주만 기지를 공습했다는 소식에 정말로 최악의 사태가 일어난 거라 곧바로 믿는 자는 적었다.
심지어 몇몇은 긴급 방송을 들으며 3년 전에 송출된, 오슨 웰스 (George Orson Welles)의 공상과학 라디오 시리즈를 떠올리고는 재밌다는 듯이 웃기도 했다.
“어느 멍청이가 저기 와이키키 해변에 연막탄이라도 터트린 거겠지.”
하와이에 가장 가까운 해군기지 중 하나, 샌디에이고 항공기지의 해군 파일럿들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몇 개월 전 미합중국 대서양 함대는 (꼼수를 썼다고는 해도) 독일 루프트바페의 에이스 사령관,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 원수가 지휘하는 항공부대를 격파해냈다.
“누가 길을 잃어서 폭탄을 잘못 떨어트린 게 아닌가 싶은데.”
“보나 마나 육군 파일럿이겠지.”
대일 리 제독의 파일럿들은 몰타섬의 상공에서, 거의 무적이라는 평판을 얻을 정도로 막강한 공군을 무찔렀다.
파일럿으로서도, 지휘관으로서도 패배한 적 없는 붉은 남작이 리 제독의 손에서만 두 번이나 패배했다는 사실은 유럽의 가보지도 않은 해군 파일럿들에게도 자부심을 불어 넣어줬다.
“맞아, 우리 중에 누가 그런 어설픈 짓을 하겠냐고.”
젊고 혈기 넘치는 장교들이 철없는 소리를 낄낄거리는 와중에 프레더릭 미어스 (Frederick Mears) 중위는 계속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진지한 표정을 짓는 미어스는 낙관적인 다른 장교들과는 달리 훨씬 더 비관적인 추측을 입에 담았다.
“어쩌면 진짜로 일본군 사령관이 확 돌아서 공격대를 보낸 걸 수도 있겠지.”
“소설을 써라, 소설을 써. 아주 그냥 리 부인한테 원고라도 보내지 그래.”
낙천적이든, 비관적이든, 그 누구도 단번에 진실을 파악할 수는 없었다. 남은 오전 내내 상반되는 보고와 추측이 혼란스럽게 뒤섞이면서 더더욱.
심지어 소규모 낙하산부대가 하와이 제도의 한 곳에 착륙했다는 속보도 이어졌고, 아무래도 한동안 보도 검열이 이어질 게 분명해 보였다.
“···이거 일이 생각보다 더 심각한 건지도 모르겠네.”
샌디에이고의 해군 파일럿들의 가슴 속에는 싸늘한 불안감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제야 그들 중 일본에 관해 조금이라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현재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진주만에서 일어난 피해가 심각하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는 것도.
한 편 파괴와 혼란의 중심에 있는 진주만 곳곳에서는 불꽃과 연기가 사방을 덮어 나갔다.
“저건 또 뭐야?!”
일본군이 진주만을 공습하고 있다는 다급한 외침과 경보에 농담한다는 반응을 보이던 자들도, 이제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중에서 가장 공포에 질린 채로 신속히 대응하며 움직이는 자들은 대체로 전함의 승조원들이었다.
“전원 퇴함해, 빨리!”
전함 대열 (Battleship’s Row)에 포함된 8척의 전함에선, 수백, 아니, 거의 수천 명의 승조원이 퇴함을 실시했다.
일본군의 폭탄과 어뢰 수백 발이 거친 우박처럼 쏟아지는 와중에도 많은 장정은 예상보다 훨씬 더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공격받는 함선에서 탈출했다.
그러나 아무리 태평양 함대가 사전 훈련을 많이 시행했다고 한들, 실전에 대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으아아아악!”
일본군의 거센 공격이 계속 이어지면서 전함 대열 곳곳에선 바다로 뛰어드는 승조원들이 속출했다.
몇몇 운 나쁜 자들이 수면에 충돌하자마자 바로 의식을 잃어버린 와중에, 다수의 입수자들은 허겁지겁 헤엄쳐 해안가로 도달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이야말로 오히려 더더욱 운이 나쁜 자가 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야-야, 모두 빨리 잠수해, 잠수하라고-!”
심각한 손상을 입은 함선들에서 흘러나오는 연료로 인해, 두께가 20cm가 될 정도로 굵은 기름층이 수면을 넓게 뒤덮었다.
근처의 일본 전투기 중 몇몇 집요한 파일럿은 저공비행을 하며 바닷물과 기름에 적셔진 승조원들을 향해서도 총탄을 퍼부어댔다.
결국 총탄과 폭발로 인해 수면의 기름은 불타올랐고, 물로 뛰어든 승조원 다수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여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일본군은 아직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
“저놈들이 진짜 미쳤구나.”
“그러게나 말이다, 아주 단단히 미쳤어.”
사이렌, 폭격, 격침하는 함선, 그리고 비명소리가 뒤섞인 지옥 같은 풍경 속에서 조지 웰치 소위는 주먹을 이를 꽉 깨물었다.
그의 옆에 있던 케네스 테일러 소위 또한 몸에 남아 있는 술기운을 떨쳐내기 위해 손바닥으로 자신의 뺨을 쳤다.
“부대에 전화해봤는데 아무도 답변이 없어.”
“혹시 우리 부대도 잽스한테 당한 건가.”
“만일 사실이라면···여기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네.”
서로의 눈을 빤히 쳐다본 웰치와 테일러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당장 숙소로 돌아가 파일럿복을 챙겨입었다.
하필 군복 바지를 세탁소에 맡겨버린 바람에 전날 밤 파티에서 입은 턱시도 하의를 그대로 착용한 둘은 웰치의 붉은 색 뷰익에 탑승한 채로 비행장으로 직진했다.
“연락되는 비행장이 어디였다고 했지?”
“할레이바 보조 비행장 (Haleiwa Fighter Strip) 밖에 없더라고.”
“그럼 그쪽으로 가야겠네. 꽉 잡아!”
부르르르릉
연료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신경 쓰지도 않고 웰치는 뷰익의 최대속도까지 올려 비행장으로 질주했다.
테일러가 겨우 아침이 밝아온 하늘을 올려다보니 수십, 수백 기의 전투기가 하늘을 휘저었고, 몇 기는 민간인들이 있는 건물을 향해서도 폭탄을 떨어트렸다.
그리고 그중에서 한 전투기가 뷰익이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는 도로의 방향으로 지공 비행을 시도했다.
“어. 어어어, 야, 잠깐잠깐-”
“와, 독하다 독해, 잽스놈들!”
곧이어 새빨간 욱일기가 그려진 전투기는 조종석 뒤에 앉은 파일럿이 보일 정도로 낮은 고도로 내려왔다.
웰치는 황급히 방향을 바꾸기 위해 운전대에 힘을 꽉 줬고, 테일러는 품에서 권총을 꺼내 마지막 발악을 준비했다.
하지만 둘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그들의 귀에 전투기의 기총이 무자비하게 난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타타타타
갑자기 둘을 노리던 제로센이 위에서 뿌려진 총탄에 순식간에 찢겨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날개 양쪽이 난도질당한 전투기는 이어서 엔진에서도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고도를 상실했다.
슈우우웅
콰지끈!
불과 몇 초 만에 너덜너덜해진 전투기는 도로 주변에 있는 무수히 많은 야자수 중 하나에 들이받았다.
반으로, 아니, 그 이상으로 조각나버린 제로센은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어떻게 보면 운이 좋았는지, 일본의 파일럿은 이미 충돌하면서 즉사해버린 듯했다.
“와씨 저건 또 뭐야.”
“어이, 위를 봐!”
기적처럼 한순간에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난 웰치는 여전히 운전대를 꽉 잡은 채로 입이 떡 벌렸다.
한편 다시 품에 권총을 집어넣은 테일러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우우우웅
“···하하하, 세상에.”
둘의 머리 위에서 워호크 전투기 (Curtiss P-40 Warhawk) 하나가 자동차 위를 힘차고 당당하게 날아갔다.
독수리가 먹이를 노리고 급강하하는 매를, 더 높은 곳에서 더 빨리 강하해서 낚아채 버리듯, 저 전투기 또한 둘을 노리던 제로센을 역으로 덮쳐버린 게 틀림없었다.
“그 어떤 재앙 속에서도 수호천사가 한 명씩은 나타나는 법이지.”
“우리도 누군가에게 수호천사가 되어줘야겠네.”
“···두 번 다시 그런 오글거리는 말 하지 말아줄래.”
“미안, 내가 듣기에도 좀 그랬네.”
끼이익
할레이바 비행장에 도착하기 한참 전에 술이 다 깬 웰치와 테일러는 비교적 말끔한 정신으로 비행장의 워호크에 탑승했다.
그런 그들을 보며 비행장에 나온 정비병 중 하나가 기가 찬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찼다.
“세상에, 진짜로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꼭 가셔야겠습니까···?”
“갑자기 그건 또 왜 그러냐.”
신속히 전투기의 시동을 거는 웰치에게 정비병은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그···몇 분 전에 출격한 물개한테도 말했지만, 지금 하늘 위에 떠 있는 잽스 전투기만 세자릿수입니다. 겨우 둘, 아니, 셋이서 나가봤자 자살행위밖에 안 될지도 모른단 말입니다.”
진심 어린 걱정이었으나 웰치는 정비병이 무안해질 정도로 그저 짧게 쏘아붙일 뿐이었다.
“그거야 알 바 아니지 (The hell with that)!”
한 편 그 말을 들은 테일러는 웰치와는 다른 포인트에 반응했다.
“잠깐만. 아까 물개라고 했어?”
“네, 그렇습니다. 그 누구냐, 대일 리 제독처럼 황인종이었던 것 같은데···”
그 순간 두 파일럿은 눈빛을 교환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그들을 구해준 게 누군지 답이 나왔다.
“하, 이거 참. 리 대위님 덕분에 목숨을 건졌을 줄이야.”
“아무래도 육군이 물개한테 빚을 지면 안 되겠지?”
굳은 결심과 함께 두 파일럿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
“이런 제기랄”
기동부대의 항공모함 아카기에서 출격한, 제1차 공격대의 지휘관 후치다 미쓰오 (淵田 美津雄) 중령은 진주만을 내려다보며 앓는 소리를 냈다.
일단은 전함과 순양함 다수를 격침 및 무력화하는 데는 성공한 것 같고, 이 정도면 이미 전투는 승리라고 불러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더 큰 틀에서는 오히려 일이 뒤틀리고 있었다. 일단 핵심적인 목표 중 하나가 사라져 버렸다는 점에서.
“항공모함은 다 어디 간 거지···”
항공모함만 6척을 동원한 연합함대가 최우선 파괴대상으로 둔 것 중 하나가 진주만에 정박하고 있던, 엔터프라이즈를 포함한 약 4척의 항공모함이었다.
그러나 태평양 함대가 미리 준비했는지, 아니면 미끼를 물어서 웨이크섬 쪽으로 보낸 게 바로 그 병력이었는지, 하와이 근처 그 어디에서도 미 해군의 항공모함은 보이지 않았다.
만약 정말로 후자였으면 연합함대가 펼친 교란책 자체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왔을지도 모르겠다.
“야마모토 제독님께서 충격받으실지도 모르겠군.”
연합함대의 총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대장은 미국을 거대한 보일러로 묘사했다. 불이 붙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지 몰라도 붙으면 멈출 수 없는 막대한 힘이 무한히 나온다고.
따라서 전력을 발휘한 미국과 상대하는 걸 피하려면, 보일러에 불이 붙기 전까지 최대한 타격을 줘서 꺼트려 버려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후치다를 포함한 파일럿들은 서서히 불안감에 휩싸여갔다. 어쩌면 그 정도의 결정적인 피해는 못 줄 가능성도 보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미리 전달받고 준비를 꽤 철저하게 한 건가···?”
콰쾅!
그가 진지하게 고민할 틈도 없이, 그의 근처에서 한 제로센이 총탄 세례를 얻어맞고 회전을 하며 추락했다.
대공포인가 싶어서 고개를 총탄이 날아온 쪽으로 시선을 돌린 후치다는, 자신 앞에 펼쳐진 광경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저 미친 놈이, 설마?!”
단 한 기의 미군 전투기가 일본 공격대를 향해 날아왔다.
마치 혼자서 100기가 넘는 전투기를 전부 상대하겠다는 기세로.
당황한 일본의 파일럿들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으나, 문제의 전투기를 조종하는 미 해군 소속 파일럿 레온 리 대위는 눈과 목에 핏대를 세운 채로 외쳤다.
“번지수 잘못 찾아왔어, 이 개자식들아 (Came to the wrong neighborhood, you sons of bitch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