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624)
매국노의 원수 자식-624화(624/773)
깨어나는 거인 (6)
1941년 9월
일본 제국, 도쿄
육군과 해군, 그리고 군인과 민간인 가리지 않고 일본 제국의 남성들에게는, 다양한 덕목이 교육과 강요를 받았다.
특히 군인들에게 중요하게 여겨졌던 항목 중에는 압박 속에서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흐으으음···”
그러나 초거대 전함, 야마토급 전함의 내부에서 야마구치 다몬 (山口 多聞) 소장은 쉽사리 선택을 내릴 수 없었다.
장성급 회식의 메뉴로 나온 프랑스 요리 풀코스 중에서 정확히 어느 것부터 제일 먼저 먹어야 하는가.
“아직도 뭐 먹을지 고민하는 거 보니 배에 공간이 남은 모양이네.”
“메뉴가 훌륭하긴 한데 양은 약간 부족해서 말이야.”
“지금 벌써 3인분은 먹은 것 같은데···?”
해군사관학교 40기 동기인 야쓰시로 스게요시 소장은 야마구치 앞에 쌓인 접시 더미를 가리키며 소소하게 놀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야마구치는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자신 앞에 남아 있는 음식들을 탐욕스럽게 바라봤지만.
“사나이는 야망이 커야 하는 법이야. 뼈를 끊으려면 살을 내어줄 각오도 해야 하고.”
“하긴 안 그랬으면 지금 이 정도의 성과를 내지 못했겠지.”
고민 따위는 포기하고 자신의 접시가 담을 수 있는 만큼 다 쓸어 넣는 야마구치를 보며, 야쓰시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평양과 동남아시아 양쪽에서 해군은 여러 기의 항공기만 바친 대가로 승리를 가로막던 가장 큰 장애물 중 다수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야쓰시로가 보기에 야마구치는 진주만 공습 당시 제1 항공함대 소속 제2 항공 전대 사령관으로 그 전공의 핵심에 있었던 자 중 하나였다.
“나도 너처럼 보직을 항공으로 갈아탈 걸 그랬어. 그러면 저기 콰잘레인 환초 (Kwajalein Atoll) 같은 곳의 기지에 박혀있는 게 아니라 항공모함을 지휘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그렇게 부러워하진 말라고.”
엄밀히 따지자면 자신의 전문 분야가 해군 항공은 아니었지만, 야마구치는 정정하지 않고 자랑스럽다는 듯이 씩 웃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해군의 수뇌부 중 보수적인 제독들은 전함이 항공기에 의해 침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해전의 개념은 종말을 맞이했으며, 그 주역이었던 파일럿들은 당연히도 의기양양했다.
심지어 그중 일부는 그 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할 말도 꺼낼 수 있었다.
“우리가 드디어 영국 해군을 따라잡았을지도 모르겠어. 아니, 어쩌면 뛰어넘었을지도.”
“호오?”
일본의 해군은 영국에게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심지어 해군사관학교를 건축하는데 사용된 벽돌도 대다수 영국에서 직수입해왔다.
그랬던 영국 해군의 Z함대가 일본 해군에게 일방적으로 패배했을 때, 영국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 또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야마구치, 영국은 그렇다치고 미국은 어떤 것 같아. 물론 진주만은 논외로 치고.”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총사령관님께서 하버드 대학교에 유학 가셨던 것처럼 너도 프린스턴 대학교로 갔었잖아?”
“20년도 더 전 얘기인데.”
자신에게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내는 동기를 위해 기억을 더듬어보려던 야마구치는 말 나온 김에 조금 찝찝한 사실을 떠올렸다.
일본 해군의 파일럿들이 우쭐해 하던 반면, 연합함대 총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대장은 그런 위험한 사고에 빠지지 말라며 경고까지 했다.
‘우리가 벌어낸 시간은 얼마 없다네. 그 짧은 기간은 절대로 방심하면 안 된다고.’
야마모토 제독은 진주만 공습으로 얻은 우위는 짧으면 6개월, 아무리 길어도 12개월 안에 원상 복귀가 될 거라고 누차 강조해왔다.
아니, 원상 복귀 수준이면 다행이며, 오히려 전쟁 발발 전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크고 영원히 회복 불가능한 격차가 생길 확률이 더 높을 거라고.
“겨우 그놈 하나 때문에 왜 그렇게 난리인지.”
“누구?”
“리 다이이치 말이야.”
“아, 그 자식.”
리 제독이 해군 항공의 선구자라는 사실, 그리고 그가 태평양 함대 사령관에 임명되었다는 소식이 충격적이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나이란, 특히 군인은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 외에도, 더 멀리 보고 더 장엄한 상상을 할 수 있어야 했다.
“총사령관님께선 놈을 두려워하시는 것 같지만 난 동의하지 않아.”
적어도 야마구치는 그렇게 믿어왔고, 자신의 동기 앞에서 당당하게 내뱉었다.
“언젠가 반드시 리 다이이치를 무릎 꿇게 만들어 주겠어. 그것도 항공전으로.”
“하긴, 재앙신이니 뭐니 하는데 너무 호들갑스럽잖아. 일개 인간, 그것도 심지어 조센징인데 말이야.”
···그날 밤 야마모토는 왠지 모르겠으나 불길한 기운에 짓눌려서 잠을 설치고 말았다.
*****
메릴랜드, 칼리지 파크
진주만 공습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와 고통을 많이 받은 건 말할 것도 없이 하와이에 있던 군인들과 민간이겠지. 사상자 규모가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러나 몇천 킬로미터 떨어진 미국 본토에도, 기습의 책임을 물게 되는 지휘관 및 고위 장성이 아니건만 날벼락 맞은 집단이 하나 있었지.
“뉴욕의 일본계 미국 시민으로서, 저희는 모든 시민과 함께 우리나라를 공격한 일본을 강력히 규탄합니다. 국가 수호를 위한 모든 지원 조치를 다 할 것이며···”
체스터와 함께 롤스로이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 어느 일본계 미국인 단체가 밝힌 성명이 라디오에서 들려왔다.
그렇다, 일본계 이민자 및 미국 시민들한테도 불똥이 제대로 튀었다. 공습 바로 다음 날에는 성난 군중이 문을 박살 내고 들어올 기세로 일본 대사관 밖에 모이기도 했으니까.
여러모로 암담한 상황에 부닥친 노무라 기치사부로 대사는 심지어 칼을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만약 그가 자살하면 일본에 있는 미국 대사가 위험해질 수도 있었으니.
“그래도 역시 홀시 선배의 발언이 더 와닿는 것 같단 말이지.”
“세상에 그런 신랄한 표현은 어디서 배운 걸까.”
공습 이후 난 언론을 통해 킴멜을 변호하는 동시에, 호전적인 장성에게 그들의 발언이 미국 전역에 퍼져나갈 기회도 줬다.
그리고 역시 우리의 윌리엄 F. 홀시 제독이 빠질 리가 없었고, 그 유명한 선언을 결국 실시간 육성으로 듣는 영광을 누렸지.
‘이 전쟁이 끝날 무렵엔, 일본어는 지옥에서나 쓰는 언어가 될 겁니다 (Before we’re through with them, the Japanese language will be spoken only in Hell)!’
역시 실제로 들으니까 뭔가 확실히 포스가 넘쳐나네. 괜히 아나폴리스 때부터 황소라고 불려온 게 아니란 말이지.
···현재 캘리포니아랑 만주국의 일본인 인구 생각하면 진짜 저 문자 그대로 돼서는 안 되겠긴 하지만 암튼.
그리고 체스터는 나도 잠시 잊고 있었던 현실적인 지적을 하나 해줬다.
“너한테도 일본인이냐니 뭐냐니 하는 멍청이들은 없었으면 좋겠다만, 아무래도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거겠지?”
“정답.”
씁쓸하지만 2020년대의 미국인들도 중국인, 한국인, 그리고 일본인 구분 못 하는 놈들이 넘쳐난다는 사실을 익히 전해 들었다.
하물며 1940년대의 더 교육 못 받고 인종차별이 심한 사회에선···에휴. 뭐, 내 앞에서 나보고 일본인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면 넘어가야겠지.
흠, 그러고 보니 슬슬 일본계 미국인의 격리 수용 얘기도 나오기 시작했던가.
끼이익
FDR과 프랭크 녹스 해군 장관과 논의를 해봐야 할까 고민하려던 찰나, 우리 둘을 태운 롤스로이스는 목적지인 칼리지 파크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후배님은 더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계셨군.
“여어, 레이먼드! 태평양으로 갈 준비 됐어?”
푸에르토리코의 해군 기지 사령관 근무를 마치고 본토로 돌아온 레이먼드 스프루언스 소장은 늘 그랬듯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에게 경례했다.
“···”
이제 마지막 카드까지 다 모았군.
*****
워싱턴 D.C.
스프루언스를 태평양함대 밑으로 집어넣은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FDR의 호출을 받고 백악관으로 향했다.
이 시국에 무슨 일로 불렀는지는 뭐 뻔한 얘기라 딱히 마음의 준비도 없이 오벌 오피스에 들어갔다.
“하하하, 리 이거 봤나!”
···만, 내가 들어오자마자 루스벨트가 신문을 가리키며 저렇게 껄껄 웃는 건 예상 못 했단 말이지.
무슨 내용인가 싶었더니만 그의 시선은 기사나 헤드라인도 아닌 타임지의 만평에 꽂혀 있던-이런 세상에.
“아이고 저런.”
AMC의 전속 만화가이자 고등학교 선배인 루브 골드버그한테, 오래간만에 선전포고 특집 커미션을 부탁했지. 그런데 그 결과물이 생각보다 훨씬 더 웅장하고 정신 나갈 것 같다.
문제의 만평에선 근육질인 루스벨트가 파란색과 빨간색, 그리고 하얀색이 섞인 갑옷을 입은 채 일본의 황제를 노려봤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는 모자랐는지, ‘거짓 황제에게 죽음을 (DEATH TO THE FALSE EMPEROR)!’이라고 외치며 불타는 검까지 휘두르고 있네, 어후.
흠, 저 문구 뭔가 익숙한 게 분명히 들어본 것 같은데, 어디서 나왔더라···
“마음에 들어, 아주 마음에 든다고. 그건 그렇고, 자네 제안은 잘 들었어. 마셜 장군도 오는 중이니 도착하면 같이 논의해보자고.”
“감사합니다, 각하.”
“사실 필리핀 대철수는 시도라도 하는 게 좋을 거야. 맥아더가 포로로 잡히거나 사망하면 여러모로 골치 아파지니까 말이지.”
“대충 왜 그런지 감은 오지만 정확히 무슨 이유로 그러십니까?”
그리고 루스벨트의 입에선 상상을 초월하는 미친 소리가 튀어나오고 말았다.
“맥아더를 필리핀에서 철수시킨 뒤···미합중국군 최고사령관에 임명하자고 주장하는 자들이 의회에 여럿 있어서 말이야.”
“···엣.”
아니. 미합중국 육군, 육군 항공대, 해군, 해병대 전부 다 통솔할 수 있는 파워를 맥아더한테 주자, 이 소린가?
“아 각하, 재미없습니다, 진짜로.”
“미친 얘기 같지만 전부 사실이야···”
그런 유례없는 막대한 권한이 아이젠하워나 니미츠 같은 완성형 지휘관한테 간다면 또 몰라, 맥아더? 맥아더?!
야이 미친, 끔찍하기 짝이 없군.
“여하튼 빨리 움직이는 게 좋을 거야.”
“그래야 할 것 같아보입니다.”
“그러니 당장 진주만으로 튀어가서 전쟁 끝날 때까지 돌아올 생각은 말라고 (Get the hell out to Pearl Harbor and don’t come back until the war is won).”
물론 진짜로 하와이에만 있으라는 말은 아니겠지. 루스벨트, 킹, 마셜 등의 양반들과 논의하기 위해 워싱턴에 종종 올 일도 생길 테니까.
“알겠습니다, 각하.”
여하튼 이제 시간은 끌만큼 끌었고, 본토에서의 일도 사실상 다 봤으니 출발해보자.
수습할 것도, 재건할 것도 많지만 태평양함대가 기다리고 있는 진주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