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641)
매국노의 원수 자식-641화(641/773)
하늘이 뚫리다 (7)
1942년 2월
워싱턴 D.C.
둘리틀 특공대의 과감하기 짝이 없는 작전에 격한 반응을 보인 건 일본뿐만이 아니었다.
일본 제국의 수도가 미군의 공습으로 인해 충격과 분노에 휩싸이던 반면, 미합중국의 수도에는 환희의 물결이 몰아쳤다.
그동안 대서양 함대가 유럽에서 독일과 이탈리아를 상대로 거뒀던 여러 차례의 승리 중에서도 이 정도로 대중을 열광시킨 전투는 없었다.
“결국 저질러 버렸잖아, 허허허.”
진주만 공습 이후 계속 스트레스와 근심에 시달렸던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몇 개월 만에 처음으로 만족스럽게 웃어봤다.
기자회견에 참석하러 가기 전에 루스벨트는 오벌 오피스에서 이번 작전의 결과를 호들갑 떨며 다룬 일간지들을 음미라도 하는 듯이 읽어봤다.
여러 개의 신문 중에서 가장 먼저 그의 시야에 들어온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1면에는 오직 두 단어만 짧고 굵게 박혀 있었다.
TOKYO BOMBED!
도쿄가 폭격당하다!
로스엔젤레스 타임스는 그나마 얌전한 편이었고 다른 신문들은 훨씬 더 요란하고 자극적인 표현을 가득 넣어가며 대서특필했다.
그중에서 태평양상거래개발조합과 아메리칸미디어컴퍼니 두 대기업체와 엮인 한 언론사에선, 유명 만화가 루브 골드버그의 특별 만평이 수록되어 있었다.
해당 만평에선 천황이 부풀어 오른 볼을 부여잡은 채로 일본 열도 위에서 쓰러져 있었고, 대일 리 제독이 폭탄을 마치 돌멩이처럼 쥐고 도발적인 대사와 함께 하와이 위에 서 있었다.
Oi, there’s plenty more where that came from!
여어, 이걸로 끝이라 생각하진 마시라고!
다만 이번 승리의 주역인 태평양 함대 사령관 대일 리 대장은, 둘리틀 공습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검열해달라고 요청했다.
로스엔젤레스 타임스의 1면에서도 헤드라인 밑에는 ‘투입된 기체는 미확인 (Raiding Craft Unidentified)’이라고 덧붙여 있었고.
똑똑똑
“각하.”
“아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 읏차.”
비서의 부름에 루스벨트는 상체에 힘을 잔뜩 넣은 뒤 지팡이를 힘껏 짚고 몸을 일으켰다. 다만 한쪽 어깨를 움직여보는 순간 뭔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일부러 근소하게 한 치수 작게 입은 자신의 정장 셔츠가 예전보다는 조금 더 여유가 생긴 것 같았다.
“···벌써 근손실이 오면 안 될 텐데.”
본인 외에는 그 누구도 공감할 수 없는 한탄을 내뱉고 회견장으로 움직인 루스벨트는 도착하자마자 공습의 결과를 칭송하는 짧은 연설을 시작했다.
해군과 육군의 합작으로 이뤄낸 쾌거는 연합국의 반격을 상징하며, 모든 전선과 포로수용소에서 연합군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는 도화선이 될 것이라는 등의 내용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평범한 기자회견이 끝날 무렵, 한 기자가 루스벨트에게 (예상치 못했던 건 아니었다만) 민감한 질문을 하나 던졌다.
“각하, 우리 파일럿들은 어디서 출격한 겁니까? 도대체 어디였길래 저 멀리 일본 본토까지 날아가서 폭격할 수 있었습니까?”
그 부분이 궁금했던 게 질문자뿐만 아니었는지, 회견에 참석한 다른 기자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루스벨트를 바라봤다.
사실 여기서 그가 기밀이라는 명분을 대며 답변 자체를 거부해도 뭐라 지적할 수 있는 자들은 없었을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군사기밀이니 자세히는 밝힐 수 없겠군요.”
···그러나 묘한 장난기가 발동한 루스벨트는 그 대신 몇 년 동안 미국에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던 영국 소설 하나가 떠올렸다.
씩 웃으며 그는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 (Lost Horizon)’에 묘사되었던 지역의 이름을 인용했다.
“공식적으로 밝힐 순 없지만, 혹시 압니까. 어쩌면 저기 티베트의 샹그릴라에서 날아올랐을지도?”
이미 폭격기들이 기습 공격에 성공했다는 사실에도 흥분했던 기자들은, 환상의 낙원이 언급되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웅성거리며 수첩에 받아적기 시작했다.
우스꽝스러운 광경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루스벨트는 그저께쯤에 리 제독과 했던 전화 내용이 기억났다.
‘아주 훌륭하게 잘 해냈어, 리 제독. 이제 슬슬 워싱턴에도 한 번 방문할 때 되지 않았나.’
‘어, 각하께서 저에게 명령하시지 않았습니까···? 큰 승리 하나 따내기 전에는 진주만을 떠날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사람이 왜 그렇게 융통성이 없는 건가, 쯧쯧쯧.’
마침 둘리틀 특공대의 임무도 성공했겠다, 드디어 그다음 단계에 진입할 때가 왔다.
이번 공습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거대한 작전을 실행할 때가.
*****
하와이, 진주만
태평양 함대와 육군항공대는 (나를 포함해서) 모두가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작전에 성공하고야 말았다.
이 사실에 미국 전역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로 치솟았고, 루스벨트 행정부 또한 이를 적극적으로 선전하며 정치적 부담을 덜어내는 데 이용했다.
하지만 이런 축제에 가까운 분위기 속에서도 난 아직 긴장을 늦출 순 없었다.
“···그거참 다행이군요, 총리님.”
도쿄에서의 소식을 들은 후 내가 가장 먼저 취했던 행동 중 하나는 하얼빈에 긴급히 둘리틀 특공대 관련 전보를 보내는 것이었다.
다행히 며칠 후, 안창호는 만주군이 특별히 파견한 구조대가 만주에 불시착한 특공대원들을 모두 무사히 구조했다는 소식을 전화로 알려줬다.
“제독님. 작전 성공에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대원들은 모두 융숭하게 대접하고 돌려보내 드리죠.”
“아이고 감사합니다, 총리님~”
파일럿들이 하얼빈에 도착하면 그들을 귀빈 대접하고 성대한 축하행사를 열겠다는 계획을 안창호가 간단하게 설명해줬다. 그 자리에 황제도 특별히 참석할 거라면서.
허 참, 니콜라이 2세도 그렇고 이완용도 그렇고 왜 이렇게 다들 명줄이 긴 거지. 혹시 내가 모르는 의학적 비밀이라도 있는 건가···?
“아 그리고 제독님, 질문 하나만 해도 되겠습니까.”
“어휴, 기밀만 제외하면 안 될 게 뭐 있나요.”
“그, 현장에 도착한 구조대에서 연락받았습니다만···특공대원 중에 이재익 대위도 포함되었다는 게 사실입니까?”
“넵. 심지어 그것도 본인이 지원했다니까요?”
내가 너무 캐주얼하게 대답해버려서 뇌정지라도 왔는지, 수화기 너머에서 안창호는 잠시 침묵했다.
안창호도 본인의 딸이 재작년에 샌디에이고 주립대학교 (San Diego State University)에서 졸업하고 장교로 들어간 지라 자식이 입대했다는 사실에 놀란 건 아닐 거다, 아마.
“···음. 그렇군요. 참···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하시군요, 제독님과 가족 전체가.”
“총리님 따님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겁니다.”
안수산(安繡山)은 명백히 미국 시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그것도 아시아계라는 이유로 미 해군 예비군 장교교육 프로그램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고 했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내가 해당 기관에 직접 전화해서 “점잖게 설득”한 뒤엔 바로 받아줬지만 말이지.
“그게 격려인지 저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독님···”
“에헤이, 당연히 전자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다시 한번 축하드리며 건투를 빕니다.”
안창호가 전화를 끊자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는지, 내 친애하는 부사령관님께서 사령실 안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여어어, 국제 외교 통화는 다 끝나셨나?”
“국제 외교는 무슨.”
“국무부 장관 준비를 미리부터 할 필요는 없다고, 들어간다~”
싱글벙글 웃으며 들어오는 체스터 니미츠는 이번엔 전보 대신 신문 1부를 내 앞에서 흔들어 보였다.
다른 한 손에는 함선 이름을 다수 나열하고 제법 중요해 보이는 서류가 있는 것 같은데 저건 또 뭐였더라-
“이거 봐, 대일아. ‘샹그릴라’라는 곳이 실제로 존재하는 곳인 줄은 처음 알았다고.”
제임스 둘리틀 중령은 만약 일본에 불시착하게 되면 폭격기로 자살 공격이나 해버릴 거라고 선언했고, 특공대원들 모두 포로 취급받을 생각은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래도 난 최악의 사태를 대비해서 파일럿들에게 일본군한테 잡혀서 심문당할 시 어떻게 둘러댈지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은 줬지.
대충 뭐 저기 알류샨 열도나, 취역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아무도 들어보지 못한 최신형 항모에서 출격했다던가, 하는 식으로.
“각하께서 쓸데없이 유머 감각이 넘쳐나신단 말이지, 어휴.”
거기서 조금 더 창의적으로, 성질을 박박 긁도록 답하고 싶다면 지도에 나오지도 않는 신비의 섬을 언급해도 된다고 했다.
물론 일본군 성격을 생각하면 안 하는 게 좋다는 경고도 했건만, 특공대원도 아니라 루스벨트 대마왕님께서 진짜로 그 드립을 칠거라곤 상상도 못 했네.
이 시대 사람들 수준 생각하면 나한테 샹그릴라라는 함선이 어딨냐고 물어보는 인간이 꼭 있을 텐데, 에휴.
“솔직히 그러실 만도 하잖아. 우리 참모총장님께서도 그렇게 기분이 좋아 보이시는데 각하는 오죽하시겠어?”
“음, 그런가.”
놀랍···다고는 할 수 없지만, 둘리틀 공습 성공 이후 진주만에 제일 먼저 연락한 사람 중 하나는 미합중국 해군 총사령관 겸 해군참모총장, 어니스트 킹 대장이었다.
하지만 그가 나를 진심으로 칭찬해준 건, 어, 확실히 놀라운 일이긴 했지. 햐,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이 양반이 만족하는 모습을 보다니.
‘지금 와서 말하는 거지만, 처음에는 이 작전의 승인을 거부할 생각도 했었지. 너도 인정하겠지만 너무 위험한 발상 같기도 해서 말이야.’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참모총장님.’
나도 마음 한구석에선 내 아들까지 보내는 작전이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없었다. 덕분에 거의 1주일 동안 잠을 한숨도 못 잤고.
솔직히 이번 작전이 엄청나게 리스크가 크다는 걸 모르는 장성이 있었다면, 난 마셜이나 킹에게 그놈을 조심하라고 경고했을 거다.
‘듣자 하니 고생 많이 한 것 같은데 효율을 위해서라도 좀 쉬라고.’
‘어···감사합니다.’
웬일로 유틀란트 해전 때 했던 닥돌 사건을 언급 안 하냐. 뭐, 내가 굳이 그 얘기를 먼저 꺼낼 필요는 없지.
업적과는 별개로 자랑스럽기보단 부끄러운 일이었고, 어쩌면 오히려 킹 쪽에서 30년 전 일을 아직도 들먹일 필요 있냐고 반응할 수도 있으니.
‘그럼 난 이만 가봐야겠어. 빌어먹을 기자 놈들이 또 해군부 건물 앞에 몰려들었거든···’
세레나가 전쟁정보국장으로서 알려주길, 최근 들어서 기자들과 일반 대중 양쪽에 내 이름의 인지도가 급격히 올라가는 중인 모양이다.
하지만 태평양 함대 사령부는 하와이에 있으니, 나에 대해 캐물으려는 기자도 결국엔 워싱턴에 사령부를 둔 킹을 찾아갈 수밖에 없단 말이지.
‘아이고, 고생하십쇼 참모총장님.’
그의 유명한 성깔은 해군뿐만 아니라 언론에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따라서 그의 공보 관련 정책 또한 킹답게 매우 심플했지:
아무것도 알려주지 말고, 끝나면 누가 이겼는지만 얘기해라 (Don’t tell them anything, tell them who won when it’s over).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였지만, 세레나 휘하 전쟁정보국은 킹이 따로 말할 필요도 없이 알아서 해군 관련해서 제대로 자가검열에 들어갔다.
“이미 기분이 좋으신 각하와 참모총장님께 경사를 하나 더 가져드리자고, 사령관님.”
슥
넉살 좋게 웃던 것도 잠시, 체스터는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다른 한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책상 위에 펼쳐 보였다. 아하. 저것도 이제 실행할 때가 됐네.
“일본 함대를 피해서 출발할 수송선들 준비는 다 끝났어.”
“좋았어. 맥아더도 기다릴 만큼 기다렸겠지.”
자, 일본 해군 시선도 충분히 끌었으니 드디어 필리핀 대철수 작전을 시작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