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644)
매국노의 원수 자식-644화(644/773)
항공모함 vs 항공모함 (3)
1942년 2월
하와이, 진주만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it takes a village to raise a child)’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나는 이 속담을 무척 좋아한다. 내가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쉬나 플라톤이 말하는 철인왕도 아닌, 혼자서는 별것도 아닌 존재였기에.
여기서 단순히 아이를 키우는 걸 넘어서 적국을 불태우는 (raze a country) 데는, 고작 마을 하나 외에도 훨씬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한 법이지.
“좋은 아침입니다, 리 제독님~”
“허이구 이 친구 봐라, 신났네, 신났어.”
“안 그러게 생겼습니까, 하하하!”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아놀드 중장의 목소리는 너무 흥분감과 활기가 넘쳐나서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뭐, 둘리틀 공습도 대성공이었으니 적어도 한 달 정도는 아놀드와 육군항공대의 어깨에 힘이 팍팍 들어가도 이해해줘야지.
특히 아놀드 저 녀석이 하얼빈에서 특공대의 소식을 보내오기 전까지, 겉으로는 밝은 표정을 유지하면서도 속으로는 초조함과 근심에 시달린 걸 생각하면 더더욱.
“우리 파일럿들이 전원 무사히 도착했다고 만주국 외무부에서 전달했습니다. 융숭한 대접까지 받고 돌아올 예정이라니 참 다행이군요.”
“마셜 총장님께서 알려주셨는데, 둘리틀 중령이 명예 훈장 받을 예정이라면서? 미리 축하한다고 전해줘.”
우리 재익이도 수훈비행십자훈장 (Distinguished Flying Cross)라도 받으면 좋겠는데. 뭐, 그건 육군 (항공대)와 정부가 결정할 일이니 내가 간섭해선 안 되겠지.
녀석이 만주에 무사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어오기 전에, 아나스타샤가 나한테 언제 도착하냐고 몇 번이나 연락했던 게 생각나네.
···이거 잘못하면 손주가 또 늘어날지도 모르겠군, 어후.
“잘 알겠습니다, 제독님. 그나저나 몇 주 후에 수여식 있을 텐데 참석하실 겁니까?”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각하께서 큰 승리를 거두기 전까지는 하와이를 떠날 생각 말라고 하셨거든.”
“어, 이번 공습도 사실상 제독님이 총책임자셨는데, 그 정도면 충분히 큰 승리처럼 보입니다만-”
“연합함대가 항모를 태평양 쪽으로 움직이고 있어. 앞으로 몇 개월 동안은 좀 바쁠 거야.”
캐주얼하게 내뱉은 짧지만 강렬한 한 마디에, 수화기 너머에서 묵직하기 짝이 없는 침묵이 들려왔다.
아놀드가 충격에서 벗어나고 대답하기까지는 몇 분 정도 걸렸다. 흠, 이번 건에 대해서 루스벨트와 마셜한테는 이미 통보했는데, 얘한테는 아직 전달이 안 된 모양이네.
“···저런, 제가 태평한 소리나 하고 있었을 줄이야. 태평양 함대가 어떻게 대응할 계획인지는 모르겠지만, 육항대의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얼마든지 말씀만 해주시길 바랍니다.”
“고마워, 햅. 역시 이렇게 거대한 전쟁에선 육군과 해군 모두 제대로 협력해야 확실히 이길 수 있지.”
지극히 정론인 얘기로 감사했건만, 그 말을 들은 아놀드는 왠지 모르겠지만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뭔가 무의식적으로 또 말실수라도 했나 싶었던 나의 귀에 뭔가 끔찍할 정도로 부담스러운 답이 들려왔다.
“킹 총장님께서도 제독님 같은 태도를 보여주시면 참 좋을 텐데 말입니다···”
“···야 임마.”
미합중국 해군총사령관 겸 해군참모총장, 어니스트 J. 킹 대장은 내가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본받고 싶은 지휘관이다.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고. 그의 성격이 개떡 같고, 사실상 미 해군을 제외한 모든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그리고 “해군을 제외한 모든 것”에는 당연히 육군도 포함되어있지.
“아니, 만약 필리핀 철수 작전 과정에서 해군의 피해가 너무 커질 땐 맥아더 장군님을 그냥 죽게 내버려 둘 거라고 발언하셨다는데, 사실입니까?”
“나는 모르지.”
언론을 귀찮아하고 작전 관련 논의내용도 절대로 떠벌리지 않는 킹이 그런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을 리가 있겠냐.
···다만 킹 성격상 진지하게 그런 판단을 내리지 않을 거라고 100% 장담할 수는 없다는 게 문제지만.
하이씨, 리히 제독은 뭐 하고 있는 거야, 빨리 육·해군 최고사령관 참모총장으로 와서 양 참모총장 사이에서 조율 안 해주고?!
“해군 입장을 생각하면 이해 못 할 건 아니지만, 너무 노골적으로 그러는 건-”
“아 맞다, 육·해군 협력하니까 갑자기 생각났네, 폭격기 개발 현황은 좀 어떤가.”
점점 더 골치 아픈 방향으로 대화가 흘러갈 조짐이 보였다. 화제를 돌리기 위해 팩트체크 대신 몇 년 전부터 시작한 전략 폭격기 개발 사업을 언급했다.
다행히도 아놀드의 관심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그럴 만도 하지, 내가 수십년 동안 참여 및 진행했던 항공기 관련 사업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니까.
“···제독님.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과장 좀 보태서 아나폴리스 입학하기 전부터 시작했던 모든 사업 통틀어서 역대 최대 프로젝트 탑5 안에 들어갈지도 모르겠-
-잠깐만, 이게 또 무슨 소리야, 안 좋은 소식이라니? 내가 혹시 너무 무리했나?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쁜 소식부터 먼저 얘기해줄래.”
“아, 내일쯤이면 태평양 함대 사령부에 편지가 도착할 겁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말로는 다 못할 정도냐고···알겠어, 수고해.”
딸칵
음, 아무래도 오래전부터 시작해온 프로젝트와 사업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트래킹하기 어려운 지경에 도달한 것 같네.
이래서 역시 한 사람이 모든 걸 혼자서 다 할 수는 없고, 업무 위임 및 협력이 필수적이란 말이지.
그리고 이젠 나한테 분할된 몫을 다할 차례다.
끼이익
“기다리셨습니까, 사령관님.”
아놀드와의 전화를 마치자마자 참모진을 포함한 두 자릿수의 장교가 내가 기다리고 있던 작전회의실에 들어왔다.
“아니, 다들 딱 맞춰서 왔어.”
그럼 슬슬 시작해봐야지.
일본놈들, 정확히는 연합함대의 추진력을 완전히 꺾어버릴 회의를.
*****
일본 제국, 히로시마
야마토급 전함이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전함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자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히로시마 만에 정박한 이 전함보다 더 큰 전함 또한 없을 거라는 주장에도 반박할 자가 많지는 않았다.
실제 성능은 제대로 확인해본 적은 없으나, 그것과 별개로 야마토는 일본 제국 해군 연합함대의 기함이라는 위치에는 매우 어울리는 함선이었다.
“정의 없는 국가는 망하고 이상 없는 국민은 쇠퇴한다. 다행스럽게도 황국 일본은 이 두 가지를 모두 갖고 있으며···”
“어이, 곧 훈련 시작할 건데 라디오 끄라고.”
“아, 네, 죄송합니다!”
도조 총리의 선전성 연설이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끈 장교들은 야마토 함선의 가장 넓은 선실중 하나에서 재빨리 움직였다.
반 농담, 반 진담으로 호텔이라고 불릴 정도로 질 좋은 음식이 나오는 식당이, 오늘은 식사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붐벼댔다.
촤르르륵
덜커덕
식당 가운데에 큰 테이블 여러 개를 붙여놓은 뒤, 그 주변에 여러 명의 장교가 모여서 순식간에 모의 훈련장이 설치되었다.
“자, 슬슬 시작해보자고.”
연합함대의 참모장, 우가키 마토메 소장은 준비가 다 된 걸 확인하고 본인이 심판장을 맡은 도상훈련을 시작했다.
우가키는 야마모토 대장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겠다는 열의에 가득 차 보였다. 한 편 그 외 장교, 특히 젊은 장교들은 그 열정을 공유하지 않았다.
심지어 상당수는 쉽사리 이해하기도 어려운 작전의 훈련을 명령이라서 억지로 한다는 기색을 겨우겨우 숨겼다.
도르륵
“적이 측면에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의욕 넘치는 몇몇 젊은 장교들은 기왕 여기까지 온 거, 주사위를 굴리며 성의껏 도상훈련에 임하기로 했다,
태평양 함대 사령관이자 해군 항공의 창시자인 리 다이이치 대장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최대한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그 결과 얼마 있지 않아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
“···놈들의 뇌격기가 대공포화를 뚫고 들어옵니다-”
“히류, 명중탄 4발. 대파!”
훈련이 진행될수록 연합함대가 아니라 미 해군 쪽으로 유리하게 돌아가는 모습에 여러 장교의 안색이 서서히 뒤틀려갔다.
“잠깐!”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힌 우가키는 견딜 수 없었는지 손을 들어 단호하게 외쳤다.
“우리 함선의 방어력은 철벽이다. 그 정도로는 격침하지 않아.”
“···잘못 들었습니다?”
“방금 그건 격침이 아니라 경파란 말일세.”
“어, 어···?”
연합함대의 항모를 “격침”한, 대항군 역할을 맡은 장교들은 우가키의 선언에 그 자리에서 바로 굳어버렸다.
물론 이런 분위기에서 공개적으로 항의할 정도로 용감한 자는 단 한 명도 없었기에 그들은 마지못해 주사위를 다시 굴려 결과를 조정해야만 했다.
애석하게도 그걸로 끝날 훈련이 아니었다.
“아카기, 명중탄 9발! 격침!”
“잠깐! 명중률이 너무 높아, 명중탄은 3발이다.”
“···”
그날 야마토에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적이 일어났다.
아브라함계 종교에서 묘사된 신도 해낼 수 없는, 침몰한 전함이 다시 살아나 물 위로 떠오르는 기적이.
무신론자도 즉시 독실한 신앙인으로 만들 성스러운 광경에 대항군의 장교들은 감격하여 속으로 외쳤다.
‘개 짓거리 한 번 참신하네. 우주 비행도 하지, 그래.’
‘역시 일본 해군은 강해, 타임머신까지 개발하다니!’
연합함대의 찬란한 미래에 히로시마는 밝고 뜨겁게 빛났다.
*****
하와이, 진주만
“다들 HYPO에서 전달한 건 들었을 거라 믿겠네.”
연합함대가 산호해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정황이 들어왔다. 아마도 파푸아뉴기니의 수도, 포트모르즈비 (Port Moresby)가 표적일 터.
전략적으로 나쁘진 않네. 여기를 함락하면 뉴기니 전체를 손에 넣고 그 밑에 오스트레일리아로 뻗어 나갈 수도 있을 테니.
결정적으로 필리핀 철수를 맡은 구조대가 절대로 접근도 못 하겠지.
“다행히 우린 놈들의 움직임을 제법 파악할 수 있지만, 방심하지는 말게나. 우리의 믿음을 적에게 무작정 투영하는 건 치명적인 실수라고.”
“명심하겠습니다, 사령관님!”
아무리 일본놈들이, 음, 일본놈들이라고 해도 무작정 정신 나간 짓을 할 거로 생각하는 건 위험한 짓이다.
연합함대가 모든 것이 자기들한테 유리한 쪽으로 흘러가는 걸 전제로 작전을 세운다던가, 그런 실책을 범하는 걸 기대할 수는 없겠지.
내가 마셜 제도에선 일본 제독 하나 노릇노릇하게 구워버리고, 도쿄에선 천황 머리 위에서 불장난까지 한 판국에는 더더욱.
“야마모토 그 녀석한테 하나는 고마워해야겠군. 우리 해군 교리의 근본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게 해줬으니까.”
진주만 기습의 (전략이 아니라 전술적인 차원에선) 대성공으로 전함이 항공전력에 얼마나 취약한지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해줬으니까.
그리고 이젠 사실상 내가 수장으로 있는 항공파가 미 해군의 주류로 영구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됐고.
“호넷과 엔터프라이즈는 아직 돌아오지 못했나?”
“그렇습니다, 사령관님.”
“저런.”
둘리틀 공습이 엄청나게 효과가 좋긴 했지만, 역시 태평양 함대가 보유한 항공모함 전력이 많이 소비되었네.
하, 이런. 이미 예상하기는 했어도 이렇게 전황이 급박한 판국에선 그 공백이 더 크게 느껴지네.
물론 그렇다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건 절대 아니란 말이지.
“사령관님, 플레처 제독님께 연락이 됐습니다.”
“신속한 게 마음에 들어. 뭐라고 하나.”
“마침 그 수역에 있고 바로 출동할 수 있답니다!”
“좋았어. 그쪽은 제17 기동부대에 맡기자고.”
통신장교가 내 짧은 명령에 바로 플레처에게 연락하러 뛰어갔다.
자, 어리석은 일본 놈들이여, 오늘 이 자리에서 선언하마.
너희들의 시시한 공세는 모두 끝났으며, 내가 썩어빠진 네놈들의 해군을 말살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