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682)
매국노의 원수 자식-682화(682/773)
녹색과 잿빛 지옥 속으로 (2)
1942년 7월
소비에트 연방, 모스크바
세상 모든 국가에는 국민이 자부심을 가질만한 오랜 전통이 최소한 한 두 개는 존재했다.
더 나아가 마음에 안 드는 지도자가 있으면 단두대를 꺼내오는 프랑스처럼, 제법 과격하고 폭력적인 전통을 자랑하는 국가도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처럼 극단적이고 경악스러운 전통이 내려온 국가는 찾으려고 해도 쉽사리 찾아볼 수 없었다.
“음. 이거 참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소련군의 최고사령관 대리, 게오르기 주코프 대장은 본인의 사령부 건물 입구에서 모스크바 시내의 건물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붉은 군대가 몇 개월 동안 발악을 해온 덕분에 기적적으로 모스크바 자체를 사수하는 데 성공하긴 했다는 게 그는 믿기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무려 150만 명이 조금 안 되는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연방이 회복할 수 없을 규모까진 아니었으리라.
“뭐가 말씀입니까, 주코프 장군님?”
짧은 휴식을 취한 주코프가 다시 시설 안으로 돌아오자 약간 긴장한 그의 부관이 뒤에서 따라붙었다.
틈만 나면 들이키는 플라스크 속의 내용물이 코카콜라라는 걸 아는 명단에, 상대적으로 젊었던 그 장교는 포함되지 않았다.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잘 알 텐데.”
만약 히틀러의 군대가 모스크바를 점령할 기세가 보였다면 연방의 수뇌부는 러시아의 전통을 답습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나폴레옹이 침공해왔을 때도 그랬듯이 모스크바를 침략자가 아니라 러시아인들의 손으로 직접 불태워버리고 도망치는 과격한 전통을.
올해 초만 해도 그런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했다는 것 자체가 끔찍했다.
‘그 빌어먹을 콧수염쟁이도 최소한의 긍지는 있었나 보군.’
현재 유럽에서 그 악명을 떨치는 콧수염쟁이는 최소한 두 명이었지만, 현재 주코프가 지칭하는 대상은 베를린에 있지 않았다.
연방의 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은 누가 봐도 독일군의 (배신이나 다름없는) 침공에 충격받은 게 확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스크바에 남아 있겠다고 발표한 데다가 그걸 실천까지 한 건 높게 쳐줘야 할 터.
“모스크바를 막아냈으니 다음엔 스탈린그라드를 사수해야겠지.”
“그렇지 않겠습니까.”
다만 작년 12월부터 올해 초까지의 방어전이 성공하자 스탈린이 다시 자신감에 취해 무리한 작전을 밀어붙이는 건 피곤했다.
붉은 군대가 기계화 부대를 재집결시켜 공세를 재개한다면 독일군은 속수무책이 될 거라 주장하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당당해 보였다.
···하르코프 (Kharkov)에서 독일군의 손에 참패를 맛보기 전까지는.
“작년에 우리 전선 부대가 공세를 펼칠 때 킬로미터당 대략 몇 문 정도의 야포와 박격포가 지원해줬는지 혹시 기억나나.”
“음···자세히는 계산해보지 않았지만, 대략 1킬로미터당 10문 정도였을 겁니다, 장군님.”
기계화 부대를 재집결하고 본격적인 기갑 공세로 독일군을 밀어내는 건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까진 독일군 침공 이전에 배운 쓰라린 교리를 강화하는 쪽이 좋을 터.
다른 건 몰라도 만주국과의 전쟁에서 꽤 중요한 교훈을 하나 얻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결국 육군에서 포병이 대체되는 일은 없을 거라고.
“그걸로는 부족해. 앞으로는 50문 정도로 대폭 증가시켜야 할 거야.”
“···세상에 맙소사.”
만주국과 만주군 총사령관, 미하일 투하쳅스키 원수는 그 점을 너무나도 잘 이해했다. 스탈린도 이 점에는 당연히 동의할 것이다.
심지어 다소 생뚱맞게도, 미합중국 해군의 대일 리 제독 또한 타임지의 군사칼럼에서 화력의 중요성을 설파한 적이 있었다.
‘장담하는데, 만약 인류가 우주까지 진출해서 초고대 문명의 외계인들이나 우주를 맨몸으로 여행하는 괴물들과 전쟁을 해도, 인류의 핵심 병기는 자주포와 지뢰가 될 겁니다.’
···왜 푸른 백작이 다른 것도 아니고 굳이 외계 괴물들을 언급했는지 주코프는 영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본부 안으로 들어온 그는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인 문서를 보고는 흠칫 놀랐다.
“허참.”
보통 같았으면 외국이 소련에 군수물자를 보내줬다는 소식은 말할 것도 없이 희소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선의 손길을 보낸 국가가 하필 몇 년 전만 해도 만주 벌판에서 충돌했던 곳이었다.
슥
‘총리님께선 아량도 넓으시단 말이지-잠깐만.’
안 그래도 극도로 신경 쓰이는 내용이었건만, 보내온 물자의 목록을 살펴본 주코프는 뭔가 수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어딘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그는 목록을 꼼꼼히 살펴보고는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뭔가 익숙해 보이는가 싶었더니만, 우리가 만주에서 철수할 때 놔두고 갔던 물자였군.’
주코프는 그저 허탈하게 웃었다.
*****
워싱턴 D.C.
어느 러시아계 미국인 사업가가 말했지. 인간은 선택하고 노예는 복종한다고.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항상 누군가에게는 복종해야 하는 군인은 절대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걸까.
특히 나 같은 경우에는 훨씬 더 심각하겠지.
“리 제독님, 괜찮으신지요?”
···해군도 아니라 육군참모총장도 도구처럼 빌려 갈 정도로 미군의 다용도 노예가 되었으니까, 이런 젠장할!
마음 같아선 지금 워싱턴이 아니라 볼티모어에서 기다리고 있는 금발미녀한테 노예로 부려 먹히고 싶다만-에헤이 씁, 대일아, 착한 생각, 착한 생각.
“아, 죄송합니다, 참모총장님, 잠시 머리가 복잡해서 그만···”
그리고 솔직히 이건 내가 괜히 또 쓸데없이 입을 털어서 일어난 일이잖아? 그래놓고 불평하면 웃기지 않냐고.
제대로 집중해서 이번 전역도 빨리 넘어가야겠다. 피로로 찌든 머릿속에서 자꾸 아무 말이나 막 튀어나오기 전에.
“이런 말씀 드리긴 좀 그렇지만, 저도 어느 제독님의 제안 덕분에 머리가 꽤 복잡해졌지 뭡니까.”
입으로는 농담했지만, 마셜 대장의 표정은 제법 무거워 보였다. 뭐, 저런 반응을 보일 만도 하겠지.
일본계를 포함한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이뤄진 전투단을 창설하자는 제안은 내가 봐도 약간 미친 것 같으니까.
아, 진짜 미친 건 그게 아니구나.
“냉정히 말해서 제독님 배경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건 아닙니다만, 일본인에 대해서 악감정을 품고 계신 줄 알았는데 참 의외군요.”
진주만 공습 이후 일본에 대한 미국 대중의 분노는 말 그대로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로 인해 제일 먼저 불똥이 튄 건 당연히 일본계 미국인들이었지.
그들은 직장에서 해고당하는 건 물론이고, 자택이나 상점이 테러당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났으니까.
여기서 더 나아가 결국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일본계 미국인들을 거주지에서 내쫓아 수용소에 강제 수용시키는 행정명령까지 서명하려고 했다.
“감정과 실리는 구분할 줄 알아야 하는 법입니다, 참모총장님.”
“흠···”
뭐. 내가 설득해서 말리기 전까지는. 물론 내가 일본인들이 마음에 든다거나 하는 건 절대 아니었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단 말이지.
안타깝지만 21세기의 미국인들도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구분 못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1940년대의 미국인들은 말할 것도 없을 거다.
일본이랑 독일 측이 반미 프로파간다에 써먹기 딱 좋거든. 세레나가 말해줬듯이, 적국에게는 될 수 있으면 명분을 만들어주면 안 된다고.
“어차피 어디 수용소에 밀어 넣는 것보다는 공장이나 전장으로 보내서 부려먹는 게 훨씬 더 이득 아니겠습니까.”
“저도 동의합니다만, 그로 인해서 제독님을 경계하는 자들이 더더욱 많아졌을 텐데 말이죠.”
“별수 있습니까, 함대 사령관으로서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는 수밖에.”
“제독님한테도 맥아더 장군 정도의 정치적 기반이 없다는 게 아쉽군요.”
하이고, 잠시 잊고 있던 이름이 다시 또 나오는군. 보통 같았으면 육군 얘기를 해군 장교한테 이렇게 얘기해도 되냐고 물어봤겠지만, 그럴 단계는 한참 전에 지났지?
그나저나 마셜도 참 부담스럽겠어. 하필 제1차 대전 때도 상급자였고 심지어 육군참모총장까지 맡았던 맥아더가 부하라니.
뭐 어쩌겠나. 세상의 모든 참모총장이 나처럼 말도 잘 듣고 얌전한 부하를 둘 순 없는 법이거늘.
“어쨌든 간에, 이 신규 전투단에 투입될 장교들은 구하셨습니까.”
“쉽지 않더군요. 황인종 병사들을 지휘하겠다는 자들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말이죠.”
“마음 같아선 과달카날로 데려가고 싶다만, 이 친구들은 태평양 전선에서 싸우는 것이 금지되었다는 게 아쉽습니다.”
그래도 태평양 전역에 투입 못 한다는 거지, 유럽이랑 아프리카 쪽으로 보내는 건 전혀 문제없잖아?
마침 과달카날과 동시에 북아프리카 쪽에도 상륙작전을 펼칠 계획이고. 이걸 둘 다 할 수 있다는 게 대단하긴 하구나-
-아 잠깐만. 잊고 있었던 녀석이 하나 있네.
“참모총장님. 신규 부대에 대해 제안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내가 조심스럽게 꺼낸 말에 마셜은 대답 대신 대충 짐작이 가는데 한 번 들어나 보자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그렇지 않아도 실전에 참여하고 싶어서 발광하는 육군 장교를 하나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
캘리포니아, 알라메다 (Alameda)
루스벨트, 킹, 마셜, 처칠 등등 중요 인물만 두 자릿수로 만나서 수십 시간이나 회의한 후에야 난 겨우 워싱턴을 떠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헨리 아놀드를 한 번 더 만나 폭격기 프로젝트와 신규 전투기에 대해 논의하고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시코르스키사의 비행정 (The Sikorsky XPBS-1)이라. 나쁘지 않은걸?
“워싱턴은 어떠셨습니까, 사령관님.”
킹이 새롭게 붙여준 함대 사령관 비서, 프레스턴 머서 (Preston V. Mercer) 중령이 나한테 서류 가방을 받아갔다.
흠. 그 양반이 보기에도 내 건강 상태가 영 안 좋은 모양인가.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만 빼면 나쁘지 않아.”
“···그 정도면 나쁜 거 아닙니까?”
캘리포니아를 정유하면 드디어 다시 진주만으로 돌아가는군. 과달카날 그 망할 이름이 한 동안 머릿속에 떠날 일이 없겠네.
과달카날섬은 일본의 최남단 전초기지로, 솔로몬 지역에서의 해군 작전을 위한 기지라는 무시 못 할 가치가 있다.
현재 당장 투입할 수 있는 해병 사단은 1,2개 정도밖에 없고 선박이 충분치 않았으며 비행기가 매우 부족하군. 일본 지상기지에서 출격한 항공기에 속수무책이겠는걸.
덜컥.
덜커덩덜커덩
“앗.”
비행기 안에서도 작전 서류를 계속 살펴보는 와중에 갑자기 심상치 않은 진동이 격렬하게 느껴졌다.
불길한 소리를 내뱉고 창밖을 내다본 머서는 얼굴이 창백해졌고, 그 모습을 본 나도 간담이 서늘해지기 시작했다.
“사령관님···놀라지 말고 잘 들으십시오.”
“나보다 네가 더 떨고 있는 것 같은데.”
“비행기에 이상이 생긴 것 같습니다···!”
“뭐?!”
야 잠깐만.
비행기가 추락한다니, 이건 또 무슨 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