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708)
매국노의 원수 자식-708화(708/773)
쥐와 인간의 전투 (4)
1942년 9월
우크라이나, 빈니차
독일 국방군의 제6군이 스탈린그라드에 진입하기도 전에 이미 돈과 볼가강에는 피가 끝없이 흘러내렸다.
공군의 전투기는 인근 농가의 소련 주민들 머리 위까지 하강하여 기관총탄을 퍼부었고, 농가와 시장에 검붉은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말, 당나귀, 소를 포함한 가축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뒷다리를 들어 일어났고, 농민들과 상인들은 농작물 가운데서 기관총 탄환 세례에 비명횡사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란 말이지.”
보고서에 수록된 여러 장의 사진을 보며 아돌프 히틀러는 매우 흡족해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소와 농기구를 부랴부랴 챙겨온 농민들이 절박하게 동쪽으로 향하는 도로를 가득 메우는 꼴이란 안쓰러울 정도로 추했다.
동시에 예술가를 꿈꾼 자로서 그런 풍경이야말로 영감을 자극하는 소재. 붓과 캔버스를 챙겨 그 현장에 달려가지 못한다는 현실이 너무나 아쉬웠다.
“이런 풍경을 좀 더 보고 싶을 정도로 말이야.”
흡족하다 못해 묘하게 부드러워 보이기까지도 하는 미소와는 달리, 히틀러의 태도 자체는 두 형용사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늑대인간’이라는 – 좋게 말하면 거창하고 나쁘게 말하면 유치한 – 이름을 붙은 전시본부는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처음부터 편하진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불편한 시설 속에서 “최고사령관”의 방이란 그나마 가장 안락한 공간인 편에 속했다.
“각하, 이미 저희 군은 진군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면-”
“이번 회의 만에도 그 말을 몇 번이나 듣는지 모르겠군.”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틀러의 방에서 열린 회의에는 빈니차의 무더운 여름 날씨가 무색하게 냉랭한 공기로 가득하였다.
지휘관들과 참모들 모두 위축된 가운데 묵묵하게 독재자의 말을 전부 기록하는 속기사의 청명한 타자음만 방을 가득 채웠다.
어떻게든 이 어색하고 무거운 상황을 타개하려고 한 장군이 입을 열었다. 그러나 애초에 들을 생각조차 없었던 히틀러는 손을 들어 발언을 차단해버렸다.
“잠시 생각 좀 해야 하니, 자리 좀 비켜주게나.”
그 자리에 모인 장교들은 최소한 당장 자신 눈앞에서 꺼지라는 호통을 듣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괜히 또 독재자의 생각이 바뀌기 전에 장교들은 질서정연하지만 신속한 발걸음으로 그의 방을 떠났다.
물론 히틀러는 그들과 악수나 인사를 안 했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끼이익
바스락
마지막으로 방을 떠난 장교가 ‘하일 히틀러’를 외치고 문을 닫았다. 그제야 침대 밑에서 한 생물이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회의 내내 불쾌하고 냉랭한 모습을 보여준 히틀러는 암컷 저먼 셰퍼드를 보는 순간 얼굴이 진심으로 밝아졌다.
“아이고 우리 귀염둥이, 오래 기다렸니.”
블론디는 자신의 부하 중 하나가 갈수록 복잡하고 거대해지는 문제들로부터 머리라도 좀 식히라고 준 선물이었다.
본인의 존재 목적을 이해할 리가 없던 1살짜리 저먼 셰퍼드는 혀를 내밀고 헉헉거려댔다. 자신을 봐서 반가운 건지, 아니면 여기 빈니차의 날씨가 더워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그래, 이 귀여운 것. 인간들도 모두 너 같이 충성스럽고 순종적이면 얼마나 좋을까.”
둘 중 어느 쪽이 됐든 간에 블론디는 히틀러의 열심히 얼굴을 핥고, 배를 쓰다듬으면 뒷발로 발차기까지 하면서 주인을 미소짓게 했다.
순수한 셰퍼드의 모습에 히틀러는 두 가지 중요한 결심을 했다. 언젠가 월트 디즈니처럼 이번 전쟁을 소재로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면, 독일인은 셰퍼드로 묘사하겠다고.
···그리고 더 중요하게 앞으로는 그 누구도 자신의 명령에 토를 달지 못하게 (추가적으로) 강력한 조처를 해야겠다고.
“양키놈들이 수작을 부리기 전에 빨리 이번 공세를 끝내야 할 텐데 말이지.”
아프베어가 전달해오는 정보에 의하면 현재 미군은 지중해나 대서양 둘 중 어딘가에서 대규모 상륙을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다.
미군이 잠시 태평양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유럽을 바라보는 것만 해도 심각했지만, 개인적으로 상륙작전이라는 형태의 침공이라는 점이 어느 것보다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일본이 동맹국으로서 좀 더 잘해줘야 할 텐데.”
상륙작전이란 결국 바다와 닿인 곳에서 일어난 작전이다. 즉 바로 그 빌어먹을 푸른 백작이 다시 한번 그 유대인처럼 더럽고 음흉한 마수를 뻗어올 것을 암시했기 때문에.
스탈린그라드와 캅카스 지역에서만큼은 절대 아니지만, 히틀러는 어느 새 과달카날 쪽에서도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초조하게 기다렸다.
안타깝지만 그가 소망하는 와중에도 대일 리 제독의 피해자는 계속 늘어날 뿐이었다.
*****
남서태평양, 과달카날
“총사령관님이시여, 어찌 저에게 이런 시련을 내리셨나이까···”
미합중국 제1해병사단의 사단장, 알렉산더 벤더그리프트 소장은 손에 든 전보를 읽고 앓는 소리를 냈다.
태평양함대 사령부에서 전보가 오면 보통 희소식이거나 비극이지, 중간지대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또 다른 일본군 호송대가 이 섬으로 향하고 있다니, 이 무슨?!”
애석하게도 이번에 벤더그리프트가 얼마 전에 상륙한 일본군 부대를 막아내는 동안 받은 건 전자보다는 후자에 더 가까워 보였다.
보고에 따르면 각종 물자를 실은 대형 수송선 여러 척이 현재 라바울에서 이 (망할 놈의) 섬으로 출항할 준비가 되었던 모양이다.
특히 적어도 수천 명의 병사, 두 자릿수의 전차, 곡사포, 등등을 수송하는 함선들이 구축함과 전투기의 보호를 받으며 오는 위치는···영 마음에 안 들었다.
“더 슬롯이라면···”
“전에 사보섬의 대참사가 일어난 바로 그곳 아닙니까, 사단장님?”
“정답이야, 이런 제기랄.”
다행히 그 이후 리 대장의 주도하에 상과 해상 양쪽에서 만족스러운 승리를 거두어 제법 설욕에 성공하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보섬 해전 같은 비극은 하루아침에 잊을 수 없는 노릇. 가히 무의식적인 차원까지 새겨진 충격은 씻어내려면 한참 더 걸릴 것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합시다, 사단장님. 어차피 저희가 그 수송 선단에 대해선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있기나 합니까?”
“하긴, 그렇지. 어차피 그쪽을 견제하는 건 캑터스 항공대와 함대의 역할이었으니.”
제1 해병 레이더대대 (1st Marine Raider Battalion)의 대대장의 한 마디에 벤더그리프트는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어째서 일본군과 미군 가리지 않고 다들 야위어지는 이곳에서 메릿 에드슨 (Merritt Austin Edson, Sr.) 중령 혼자만 오히려 살이 더 붙은 건 신기하긴 했다.
궁금하긴 해도 안 물어보는 쪽이 좋을 것 같았다.
“그래도 요즘 따라서 킹 제독님한테 직접적으로 한 소리 안 들어도 되니 좋은 것 같습니다.”
“허, 생각해보니 그렇잖아?”
“딱히 제독님이 성격이 유해지실 분도 아니고, 희한합니다.”
“수송 선단 견제가 우리 역할이 아닌 것처럼, 어쩌면 그분도 담당 분야를 바꾸셨나 봐.”
일단 해군총사령관 (예정) 대일 리 대장에 의하면, 어니스트 킹 대장은 앞으로 해군참모총장으로서 행정 분야에 좀 더 집중할 예정이라고 했다.
심지어 두 보직의 분리로 인해 오히려 킹 제독의 진정한 역량이 더 폭발적으로 발휘되어 두려울 지경이라며.
‘너무 걱정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벤더그리프트 장군. 어차피 놈들과 같은 소규모 부대로 헨더슨 비행장을 다시 장악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외람된 말씀이지만, 총사령관님, 방금 소규모라고 하셨습니까···?’
‘뭐, 객관적으로 따져서 지난번에 침공해왔던 병력의 두 배가 넘지. 그래도 이제 슬슬 질적인 차이가 극복 못 할 단계까지 왔다고?’
미드웨이 해전 무렵만 해도 ‘양은 양만의 질이 있다’고 중얼거리던 지도자가 그런 말을 하는 거 보니 상황이 좋아지긴 한 걸까.
다소 낙천적인 평가긴 해도, 상황에서 따라선 그런 식의 자세도 필요한 법이었다.
“담당 분야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자네를 왜 불렀는지 알겠나?”
“음, 뭔가 상륙한 잽스놈들을 섬멸할 계획이 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
탁
비장한 표정의 벤더그리프트는 사령부 천막 안에서 과달카날 섬 지도 위에서 손가락을 움직였다.
원래 (리 제독의) 해군 정보국이 하는 일은 정말 많았지만, 이번 전역에선 제대로 된 지도를 제작한 것만 해도 큰일을 해줬다.
“1개 연대 전체를 해안을 따라 이동시키고, 2, 3개 정도의 대대를 내륙의 밀림을 통과시켜. 주요 강의 상류를 건너 적을 포위하는 거지. 참 쉽지?”
“···네, 정말 쉽습니다, 그래.”
“특히 자네 부대는 여기서 제일 쉬운 일을 맡을 거야. 잽스놈들이 접근할 핵심 경로, 그러니까 저기 능선을 사수하기만 하면 돼.”
“어쩐지 왜 이번에 증원된 육군 공수부대원들이 제 지휘 밑으로 들어왔나 싶었더니만···”
무거운 한숨을 내쉰 에드슨은 일본군이 상륙한 해변 쪽을 바라봤다.
지뢰의 대폭발로 일어난 흐릿한 연기 기둥이 아직도 높은 하늘로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
일본 제국, 도쿄
“이거 정말 골치 아프군.”
과달카날에서 벤더그리프트가 끙끙거리는 동안 일본군이라고 사정이 좋은 건 절대 아니었다.
라바울과 도쿄의 일본군 수뇌부는 심리적인, 그리고 더 본질적으로 물리적인 여유가 점점 사라져 나날이 다급해졌다.
“이런 젠장할, 미군이 여전히 전투태세를 잘 갖추고 있었다니···!”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대장은 라바울에서 온 보고를 전해 듣고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평상시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도 나름대로 낙천적인 태도를 보여줄, 연합함대 참모장 우가키 마토메 소장 또한 표정이 좋진 않았다.
은폐하려고 해도 정확히 어디부터, 어떻게 덮어야 할지부터 문제인 수준까지 와버렸기에.
상륙하자마자 지뢰에 상륙부대 병력 중 일부가 한꺼번에 날아간 판국에는 더더욱.
“게다가 보급품 사정도 꽤 괜찮은 것 같습니다.”
“도대체 뭐야, 물자가 무한정이라고 있는 건가?!”
“이러니까 아직도 만주국놈들이 악착같이 버티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차와 전투기도 없고 병력 자체도 얼마 되지 않는 만주국이 그저 화력, 단순무식하고 무자비한 화력만으로 버티고 있는 이유가 다 있었던 걸까.
이런 판국에 대본영은 과달카날섬에 있는 미 해병대가 일본군이 상륙에 성공하기만 하면 항복할 거라고 단언했다는 사실이 경악스러웠다.
물론 야마모토 본인이라고 딱히 할 말은 없었지만.
“어찌됐든 간에 끝날 때까지 끝난 건 아니겠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사령장관님. 그리고 혹시 압니까, 사보섬에서 이룬 대승이 한 번 더 일어날지!”
“꼭 그랬으면 좋겠군. 야간 전투에선 우리 해군이 제일 강하니까.
연합함대의 소망을 누군가가 들었는지, 얼마 있지 않아 그들이 그토록 원하던 형태의 해전이 펼쳐졌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번에 야간 기습을 한 건 일본 해군 쪽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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