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736)
매국노의 원수 자식-736화(736/773)
공격, 공격, 그리고 또 공격 (2)
1943년 2월
소비에트 연방, 모스크바
러시아의 광활한 영토에서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웃음이나 음악처럼 듣기 좋은 소리도 있지만, 동시에 짐승의 포효나 총소리처럼 인간의 신경을 갉아 먹는 소음도 많았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무섭고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소리는 모스크바의 쿤체보에 자리 잡은 한 건물 안에서 들려왔다.
슥슥슥
“시간이 이렇게 됐나.”
자신의 별장이자 주요 업무실인 쿤체보 다차에서 연방의 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은 벽시계를 바라봤다.
여러 문서 위에서 날카롭게 움직이던 펜을 잠시 내려놓자 다차의 서재 내부를 가득 채웠던 섬뜩한 소리 또한 멈췄다.
“잠시 쉬어야겠군.”
다소 높은 확률로 그랬듯이, 스탈린이 그날 처리하던 서류 또한 누군가를 죽이거나, 그 과정을 위한 준비의 일환이었다.
이번에는, 그리고 최근 1년 동안은 죽이려는 그 대상이 같은 러시아인을 포함한 연방의 소속원보다는 독일인으로 바뀌긴 했다.
규모가 확실히 줄어들었긴 해도 내부 숙청이 아예 멈춘 건 절대 아니었지만.
치지직
나이와 과로가 동시에 겹쳐 점점 뻣뻣해지는 손목을 털며 스탈린은 책상 한구석에 있는 라디오를 켰다.
약 반년 전,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직접 선물해준 라디오의 성능 자체가 좋다는 점은 인정해야만 했다.
그 전에 꽤 까다로운 보안 조치는 취해야 했지만.
‘이 라디오에 도청장치 같은 건 없는 것 같습니다.’
‘그거 다행이군.’
NKVD의 베리야가 음향 발명가 레온 테레민 (Leon Theremin/Lev Sergeyevich Termen)을 시켜 문제의 라디오를 해체해봤다.
다행히도 딱히 문제 되는 부분이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해당 제품이 아메리칸미디어컴퍼니 계열사에서 제작되었다는 사실은 여전히 껄끄러웠다.
‘서기장 동지, 그런데 양키놈들한테 그런 기술이 있긴 합니까? 아직 저희도 완성 못 한 장치인데 말입니다-’
최근 들어서 꽤 여유라도 생겼는지 굳이 이런 조치를 해야 하냐고 의문을 표한 베리야에게 스탈린은 싸늘하게 쏘아붙였다.
‘그들을 너무 과소평가하지 말게나. 테슬라 같은 미치광이 과학자들을 대거 보유한 쪽이 어딘지 생각해보라고.’
‘죄-죄송합니다!’
라디오를 켜서 주파수를 조정하니, 한 영국 방송에서 얼마 전에 개최된 카사블랑카 회담에 관한 내용이 들려왔다.
특히 최초로 성사된, 현직 미국 대통령의 역사적인 항공여행이 연합국 전체에 강렬하면서도 감동적인 충격을 일으켰다는 부분을 강조했다.
이미 몰로토프 외무장관을 통해서 카사블랑카 회담의 진행 과정과 합의 내용에 대해 들을 만큼 들었던 스탈린은 오래 듣지 않고 라디오를 껐다.
“생략된 내용이 있을 텐데 말이지. 아니, 애초에 모르고 있나.”
연합국과 추축국 양측 주요 매체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카사블랑카에 파견한 연방의 정보원들은 중요한 정보 하나를 얻어냈다.
해당 정보가 모스크바에 도착한 이후 스탈린은 아무래도 그 사실을 머릿속에서 떨쳐낼 수 없었다.
‘루스벨트의 전용기에 미 해군총사령관이 탑승했다고. 그 대일 리 제독이 맞나.’
‘맞습니다.’
악명이 자자한 그 푸른 백작이 미국 내에서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점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정도를 넘어 아예 미군 수뇌부이자 루스벨트의 최측근 중 일원에 등극한 게 분명했다.
“루스벨트 그 작자는 사람 보는 눈이 독특하단 말이지.”
만약 스탈린이 미국 대통령이었다면, 대일 리 같은 위험한 자는 오래전에 숙청해버렸을 것이다.
보통 장성도 아니고 과장 좀 보태서 마음만 먹으면 독자적인 군벌까지 조직할 수도 있는 자를 루스벨트는 어떻게 내버려 둔단 말인가.
“가만있자···”
온전히 같은 선상에 두고 비교하는 건 힘들지만 러시아에도 주의를 해야하는 장군이 하나 있긴 했다.
얼마 전에 원수까지 진급한 게오르기 주코프의 전공 자체는 절대로 무시할 수 없으나, 오히려 그런 자일수록 더 위험하지 않던가.
털컥
드르륵, 드르륵.
눈을 찌푸린 스탈린은 라디오 근처에 있는 전화기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이제 눈 감고도 걸 수 있는 번호를 입력했다.
“···그래, 제대로 들은 게 맞아. 주코프 장군의 감시를 강화해주게.”
*****
워싱턴 D.C.
“커어어어엉···”
하와이에서 워싱턴 D.C.로 다시 돌아온 그 날, 올드 에빗 그릴의 VIP실에서 익숙한 정치인 한 명을 만나기로 했다.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해당 메릴랜드 하원의원이 도착하기 전까지 짧게나마 낮잠을 즐기고 있었지.
꾸우욱
“흐브븝?!”
꾸벅꾸벅 졸고 있던 난 면상에 뭔가 부드러운 촉감이 가해지자 버둥거리면서 잠에서 깼다. 눈을 뜨니 단정하면서도 격식 있게 차려입은 세레나가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젠 워싱턴에서도 훨씬 더 자주 뵈게 생겼네요.”
“그러게요.”
내 뺨에 가볍게 키스한 세레나는 테이블 건너편에 착석한 뒤 들고 온 가방에서 여러 장의 문서를 꺼내 보였다.
“하원 해양위원회에 들어가는 건 잠시 좀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해군 제독 아내가 임기 시작하자마자 바로 거기에 들어가면 좀 눈치 보이거든요.”
“하기야, 딱 봐도 이해충돌 소리가 나오겠죠. 급한 건 절대 아니니까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어요.”
“아, 걱정하지 마세요, 그쪽으로 간접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넘쳐 나니까요.”
그 방법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내는 음흉하게 웃었다. 이런 맙소사, 벌써 너무 익숙해진 건 아니겠지···?
“다만 이건 좀 의외더군요.”
슥
고개를 갸우뚱하는 세레나는 얼마 전부터 진지하게 생각해본 주제를 다루는 문서를 짚어 나에게 흔들어 보였다.
“현재 우리와 전 세계의 안보 보장에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가, 다른 것도 아니고 공공교육의 강화라고요···?”
본격적으로 미국이 전쟁에 진입한 이후로 육군과 해군 모두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마주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생각보다 미국 사람들은···훨씬 더 무식합니다. 그리고 이 친구들을 징집해서 군인으로 훈련해야 한다 이겁니다.
처음부터 일단 글자 읽는 것부터 가르치고, 양치질하는 법도 알려주고, 시력 나쁜 애들은 안경도 새로 맞춰야 하고, 할 게 너무 많단 말이지.
“일반적으로 예측 못 하는 문제지만 맞아요.”
“그렇군요. 뭔가 좀 프로이센스럽긴 한데.”
프로이센이 뭘 어쨌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난 적어도 사람이 공룡이랑 같은 시대랑 살았다거나,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놈들이랑 같이 살기는 싫다고.
물론 이 문제점은 우리 부부가 아니라 마셜 참모총장을 통해서 공식적인 발표로 문제를 공론화시켰다.
설마 괜히 또 교육기관이 어린애들을 세뇌한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는 소리가 나오는 건 아니겠지···?
“프로이센하니까 생각나는 게 지난번에 독일과 소련 간의 상황에 관해서 물어보셨잖아요? 최근 흥미로운 소리가 돌더군요.”
“어떤 소리가요?”
“두 국가 간의 단독 강화를 위해 각국의 외무장관들이 긴밀히 접촉하고 있다는 소문이 말이에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소리에 난 잠시 굳어버렸다. 당연한 소리지만, 처음부터 이번 전쟁은 단순히 군사적 투쟁을 넘어서 정치 및 외교적 분쟁도 포함했다.
전쟁과 그 이후의 평화는 전략뿐만 아니라 국가 간의 정치적 동맹을 통해서도 성패가 결정될 예정이니까.
그런데 이건 좀 의외군?
“물론 냉정하게 따져서 딱히 구체적인 증거가 있는 것 같진 않아요.”
“솔직히 현실적으로 그럴 리도 없겠죠, 흘린 피가 얼마나 되는데.”
“하지만 하나는 확실해요. 적어도 스탈린은 전후 세계를 준비하고 계획하는 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게.”
“그렇단 말이죠···”
여러 가지 고민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나갔다. 한숨을 내쉬고는 팔짱을 낀 채 천장을 올려다봤다.
하, 이거 참. 점점 국제정세가 나 같은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규모 그 이상이라는 걸 다시 실감하게 된단 말이지.
뭐, 이럴 때일수록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밖에 없지 않겠어?
*****
“하와이는 잘 갔다 왔나.”
“기념품은 깜빡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참모총장님.”
“기념품은 무슨, 어서 앉게나.”
올드 에빗 그릴에서 세레나와 헤어진 뒤 우리의 해군참모총장님, 어니스트 킹 대장의 사무실로 직행했다.
평소처럼 서류 더미에 둘러싸인 킹은, 평소와는 달리 표정이 좋아 보이네. 내가 하와이에서 한 게 꽤 마음에 들었나.
“참으로 신기해, 맥아더 그 작자가 웬일로 우리 측에서 제안한 타협안을 태연하게 받아 들인 거지?”
“다행이지 않습니까.”
더글러스 맥아더 대장의 주도하에 태평양에서 수레바퀴 작전 (Operation Cartwheel)이 개시되었다.
파푸아뉴기니 같은 일부 지역에서는 솔로몬 제도 쪽과는 달리 해전보다는 지상전이 이뤄질 곳이 많기도 하지.
그렇다고 태평양함대의 도움 없이 맥아더 혼자서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우리 손을 많이 빌려야 하지만.
“리, 솔직히 말해봐.”
이번 작전은 또 얼마나 걸릴까 고민하던 와중에 킹은 주변을 둘러보고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마치 이 사무실에 도청장치라도 심어놓기라도 한 것처럼 목소리를 낮춘 그의 입에선 다소 생뚱맞은 소리가 튀어나왔다.
“도대체 어떻게 그 인간의 성격을 죽여놓은 거야? 내가 아는 맥아더라면 절대로 그렇게 고분고분하게 나올 리가 없다고.”
“아 별거 아닙니다, 최면어플 썼죠.”
“최면···뭐?”
“그런 게 있다고요, 아무튼 간에.”
대충 얼버무리고는 태평양 전역의 지도로 시선을 돌렸다. 자, 아마 원래 올해 태평양 전역은 조용할 예정이었을 거다.
미군과 일본군 양쪽 모두 전투를 치르기보다는, 기지를 강화하고 병력을 증강하는 일종의 소강상태의 한 해였겠지.
하지만 이걸 어쩝니까, 일본군은 몰라도 우린 굳이 그럴 필요 없이 계속 진군하면 된다 이겁니다.
“일본군 지휘관들은 작전 수립도 그렇고 여러 면에서 상상력이 부족합니다. 대규모 포격의 위력과 중요성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요.”
“어쩌면 잽스놈들도 포격의 중요성 자체는 알아도 그냥 물자가 부족해서 그런 거 아닐까?”
“음, 딱히 틀린 말씀은 아니군요.”
여전히 일본군, 그리고 태평양 전역 전체를 통틀어 최우선 요소 중 하나는 역시나 해상 수송이었다.
나도 일본 내부 상황을 자세히 아는 건 아니지만, 아마 현시점엔 신중하게 배분된 예산과 물자가 엉망이 됐을 터.
그리고 체스터 니미츠 주도로 체질 개선을 다 마친 우리 잠수함대가 바다를 배회하며 사냥을 시작했지.
“안 그래도 부족한 그들의 물자가 앞으로는 더더욱 부족해질 겁니다.”
내가 장담하마. 앞으로 1년도 되지 않아 지독한 연료 부족으로 더는 제 기능을 못 하게 될 거라고.
그 전에 철저하게 궤멸당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어느 쪽을 바라보는 거지?”
“놈들이 그토록 원하던 함대 결전의 장소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대충 감이 오는군.”
나와 킹 둘 다 필리핀 근처의 한 바다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래. 저기면 딱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