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764)
매국노의 원수 자식-764화(764/773)
노르망디와 마리아나를 향해 (4)
1943년 10월
북아프리카, 카이로
윈스턴 처칠이 생각하기에 세상의 평범한 사람들은 대체로 신적인 존재를 믿었다.
다소 드물게 유대-기독교의 여호와뿐만이 아니라 그 어떤 신도 믿지 않는 자들도 보이긴 했다.
버트런드 러셀 경처럼 본인의 무신론을 공개적으로 설파하는 부류도 있었지만, 처칠은 그런 존재들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았다.
‘너희는 근심하지 말라, 신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네?’
···무신론자들은 최소한 자신을 신에 비유하지는 않았으니까.
테헤란회담 전에 개최될 예비 모임이었던 카이로 회담의 개최일 직전에, 영국 비밀정보부 측에서 안전문제에 대한 우려를 표출했다.
확정된 건 아니고 단순히 가능성만 제기했지만, 만일을 대비해 처칠은 루스벨트에게 연락했다.
회담 장소가 독일 측에게 노출되었을지도 모르니, 카이로에서 좀 더 남쪽에 있는 하르툼 (Khartoum)에서 만나는 건 어떻냐고 제안한 처칠은 기묘한 대답을 들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허허허, 대통령님, 그건 거의 신성모독 수준의 발언 같은데 말입니다.’
‘설마 제가 스스로를 신이라고 부르겠습니까. 그저···뭐랄까, 신, 또는 그에 걸맞은 존재의 가호를 받고 있다는 것뿐이죠.’
테헤란회담까지 생각하면 추후로 일정을 조정하기도 절대 쉽지 않은지라, 결국 회담은 원래대로 개최하게 되었다.
도대체 루스벨트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처칠은 카이로에 도착하는 순간 어렴풋이 상황을 파악했다.
“···또 뵙게 되는군요, 제독님.”
“그러게 말입니다, 하하, 하하하···”
분명히 이번 회담에 미합중국군 측에선 육군참모총장 조지 마셜 대장과 해군참모총장 어니스트 킹 대장도 참석했다.
그런데 엄밀히 따지자면 그 두 장성의 하급자였던 해군총사령관이 퀘벡에 이어서 왜 여기까지 온단 말인가.
“사실 마음 같아서는 꾀병이라도 부려서 빠져야 했나 싶었지만, 어쩌겠습니까. 안 간다고 하면 각하께서 제 멱살을 직접 끌고 오셨을 텐데.”
“그렇겠죠.”
“아니, 총리님, 바로 그렇게 수긍해버리시면 어떡합니까.”
멋쩍게 웃으며 시선을 돌리는 대일 리 대장의 모습은 처칠의 머릿속을 매우 복잡하게 휘저었다.
안타깝게도 처칠의 두통은 긴 행사의 첫 번째 회담의 시작이 다가오면 올수록 더욱더 심해졌다.
“처음 뵙습니다, 안 총리님.”
“처칠 총리님에 대해 많이 전해 들었습니다. 강인하면서도 신사적이라고 들었는데, 그대로군요.”
“과장이 좀 심하긴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죠.”
애써 웃으며 만주국의 총리와 악수한 처칠은, 그의 제법 거친 손을 잡는 순간 소소하게 놀랐다.
챙호 안 총리와 그의 배경에 대해서 아는 건 딱히 없었지만, 적어도 자신처럼 귀족이나 명문가 출신일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처칠이 보기에 만주국 총리는 손만 만져보면 정치인보다는 노동자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지요?”
“아, 아닙니다. 생각보다 영어를 잘하셔서 말입니다.”
“총리님처럼 기품 있는 영어는 못하지만, 저도 한때 캘리포니아에서 사업하던 사람이라서 말이죠.”
“그것참 대단하군요. 사실 제 어머니도 미국인이었습니다.”
“오호···!”
마치 자신이 할리우드 배우라도 되는 것처럼 호의적으로 대해주는 안 총리의 모습에 처칠은 본인도 모르게 호감이 갔다.
그것과는 별개로 만주국 (그리고 며칠 후에 도착할 중화민국) 소속 대표들이 참석한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불편했다.
‘불만 있으면 어쩐단 말인가. 내가 여기서 뭘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그래도 명색이 영국의 총리로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할 수 있는 모든 건 다 시도해봐야 할 터.
*****
“저 위에서 다들 무슨 얘기하고 계실 것 같습니까, 총사령관님?”
정말 귀찮게도, 카이로나 테헤란 다 합쳐서 이틀 만에 끝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 약 2주 동안 두 자릿수의 크고 작은 회담이 열릴 예정이다.
그중에서 적어도 몇 번은 루스벨트, 처칠, 그리고 안창호를 포함한 국가수반뿐만이 아니라 장성들도 대동할 자리도 있겠지.
“참모총장님께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합니다만, 이번 주제는 유럽에 관한 건 아닐 겁니다.”
현재로선 정치인들이 논의하는 동안 나 같은 군바리들, 그것도 미군 소속은 회의실 밑층에서 대기모드에 들어갔다.
거참, 워싱턴 밖에서 마셜, 킹, 아놀드,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서 집합하는 건 처음···은 아니었던가?
“알고 있습니다, 그건 테헤란에서 주로 다루겠죠.”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전까지와 비교하면 마셜은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처럼 보였다. 오버로드 작전이 앞당겨진 것도 한몫했겠지.
그나저나 영국해협 그 위험한 곳을 봄이 오기도 전에 건널 수 있으려나? 얼마 남지 않은 아이젠하워의 모발에 묵념을···
“보나 마나 영국 불도그 자식이 또 헛바람 넣으려고 발광하겠지, 뭐.”
“너무 말을 험하게 하시지 마시죠, 킹 제독님.”
점잖은 마셜과 온유한 아놀드와는 달리, 우리 해군참모총장님은 늘 그랬듯이 필터링이 없으시구먼.
아, 그렇다고 킹이 틀렸다는 건 절대 아니고, 마셜도 적극적으로 말릴 생각은 딱히 없어 보이네.
“어차피 이미 우리 군은 가히 기하급수적으로 강화되고 있습니다. 영국 측에서 할 수 있는 발언의 한계는 뚜렷합니다.”
“확실히 그렇긴 하지. 전쟁의 극 초반에는 합동 군사작전 시 투입되는 병력 비중이 미국과 영국이 비슷했을지도 모르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을 테니까.”
오버로드 작전 계획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킹도 유럽 쪽 사정에 대해 꽤 뚜렷이 파악하게 된 모양이군.
애석하게도 곧이어 제국이었던 것이 될 예정인 영국에게 닥칠 운명은 저걸로 끝나지 않을 거다.
이번 전쟁이 끝나면 러시아와 미국 두 강대국만이 남게 되겠지. 그런 상황에서 우리 섬나라가 할 수 있는 발언권은 얼마나 줄어들까.
“안 그래도 묘하게 불안한 상황이건만, 각하께서 처칠이 보기에는 강국도 아닌 만주국 쪽에 관심을 주는 데 속이 타들어 가려나.”
“뭐, 거기까진 확답을 못 하겠습니다. 어느 쪽이든 각하의 결단에 달려 있지 않겠습니까.”
“마치 본인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것처럼 얘기하고 앉아있군, 참나.”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참모총장님∼”
내 대답이 워낙 뻔뻔했는지, 킹은 혀를 끌끌 찼고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던 아놀드는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진짜 지금 여기에 누가 폭탄이라도 하나 떨어트리면 사실상 미군 수뇌부 전멸 아닐까-
-대일아, 정신 차려라. 아무리 네가 폭탄에 환장한 미친놈이라고 해도 아군까지 폭파할 생각을 하냐···
“하, 이런···”
품위를 유지하고 있던 마셜은 갑자기 뭔가 중요한 문제를 떠오르기라도 했는지 급격히 안색이 나빠졌다.
그 모습에 당연히도 나를 포함한 나머지 세 대장 모두 긴장했다. 설마 상륙작전에 차질이라도 생기는 건가···?
“뭔가 고민이라도 생긴 모양입니다, 참모총장님?”
“아 별건 아니네, 아놀드 장군. 만주국 얘기가 나오는 바람에···잊고 있던 걸 떠올려서 말이지.”
마셜의 불편해지는 표정을 보며 킹은 혹시 뭐 아는 거라도 있냐는 듯이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필 왜 저러는지 감이 온다는 게 골치 아프네, 아이고···
“혹시···중화민국으로 파견한 장군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예리하시군요.”
과장을 좀 보태서 처칠은 여전히 피부색만 봤고, 인도나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아마 빅토리아 여왕 시절의 사람과 차이 없을 거다.
한편 루스벨트는 최소한 중국과 만주가 미래 세계에 추가될 (최소) 수억 명의 인구라는 것 정도는 충분히 이해했다.
애석하게도 현재 장제스 옆에서 그를 도와줄 미군 장성은···성격으로나 능력으로나 그 의도를 제대로 반영 못 하겠지, 쩝.
“차라리 거기다가 해군 제독을 보내지 그랬나.”
“아씨, 참모총장님, 제발 좀.”
“왜, 네가 성깔이 식초 같은 그 땅개 놈보다는 훨씬 더 잘할 거 아냐?”
“그게 요점이 아니지 않습니까, 에휴.”
슥
한숨을 내쉬며 품속에서 문서 한 장을 꺼냈다. 여기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작성해놓길 잘했군.
이번에는 마셜과 킹보다 아놀드가 제일 먼저 반응했다. 흠, 어떻게 설명해야 하려나···
“이런 곳에 또 뭔가 엄청난 걸 가지고 오신 모양입니다, 리 제독님?”
“폭탄이라도 가져올까 싶었지만 그건 너무 위험해서 말이야.”
뭐, 어떤 면에서는 어지간한 폭탄만큼 위험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 점을 눈치챈 듯한 킹은 내 손에 쥐어진 문서를 보고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리. 그거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겠지···?”
“무슨 연설이라도 준비하신 모양입니다, 총사령관님?”
경악하는 킹과 호기심에 가득한 마셜의 시선을 받으며 난 빡빡하게 쓰인 연설문 한 장을 펄럭였다.
“별건 아니고, 그냥 ‘대아시아 연설’이라고 합시다.”
*****
일본 제국, 도쿄
끼이익
심신이 피폐해진 노기 야스스케 대장은 몇 년 만에 돌아온 고향 집의 문을 힘없이 열었다.
자신만 제외하고는 노기 일가족이 몰살당한 뒤 폐허가 된 집 안은 섬뜩한 정적으로 가득 찼다.
죽음과 비극이 가득한 공간 안으로 들어서면서 야스스케는 오래전부터 스스로에게 물어왔던 질문을 중얼거렸다.
“왜 전쟁이 계속되는 거지···”
일본, 한반도, 그리고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전역 관련해서 영국과 미국을 포함한 동맹국이 회담을 열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모두 저마다 다른 이유로 별개의 전쟁을 계속하고 있었고, 따라서 군사적 우선순위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정치적 미래에 대해서도 동의하기 힘들 터.
그래도 결국 일본 측의 발언권은 영구적으로 박탈될 것이라는 점만은 그들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으으윽···”
거실 안으로 들어서니 뜯겨나간 바닥에선 잔디가 자랐고, 뚫린 천장에서는 늦가을의 햇살이 쏟아졌다.
곧이어 짓눌러왔던 일러전쟁의 후폭풍을 기억해낸 야스스케는 속이 뒤틀리는 듯한 고통에 사로잡혔다.
그 끔찍한 악몽이 다시 반복될 걸 생각하니 마치 할복이라도 하는 것처럼 창자가 찢어지는 기분이었다.
“형···아버지···어머니.”
스스로의 목숨을 끊은 부모의 얼굴을 떠올린 야스스케는, 부들부들 떨며 자신의 군도를 뽑아 들었다.
호흡은 가팔라지고 심장이 격렬하게 뛰어대는 노기 가문의 마지막 생존자는 칼의 손잡이를 꽉 쥐었다.
“어쩌면 저도 곧 따라가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해군이 아니라 육군의 장성이지만 야스스케는 리 다이이치 제독의 가히 초자연적인 능력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었다.
재앙신의 손길이 일본 본토에 닿는 데까지 길어야 1년, 짧으면 6개월밖에 안 남았을 것이라는 점도.
일본군의 장교로서 최악의 사태가 발발하기 전에 먼저 손을 써야만 했다.
휘이익!
굳은 각오와 절망감 섞인 광분에 휩싸인 야스스케는 먼지가 휘날리는 거실의 공기를 칼로 휘둘렀다.
집 내부와는 달리 깨끗하고 날카롭게 빛나는 칼날은 내각총리대신, 도조 히데키 대장의 총리관저 쪽으로 향했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이겠지.”
솔직히 일본에서 반란 한 번 더 일어난다고 충격받는 자가 얼마나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