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769)
매국노의 원수 자식-769화(769/773)
재앙신이 지배하는 바다 (3)
1943년 11월
이란, 테헤란
얼핏 보기엔 쉬우면서도 막상 하려면 너무나도 어려운 게 한둘이 아니다.
그중에서 두 가지만 꼽자면 사과와 감사일 거다. 특히 전생과 현생 양쪽에서 몇몇 사람들은 사과하면 죽는 병이라도 걸렸던 것 같다.
왜 사과하기와 자살하기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할 때 후자를 택하는 경우가 어떻게 그렇게나 많을까···
“뭔가 참 타이밍이 좋단 말이지.”
그나마 최소한 내 경험상으로는 감사를 표하는 건 사과하는 것에 비하면 난도가 현저히 낮았다.
미국 본토에서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도 우리 모두 감사의 정신을 실천하는 걸 보면 말이야.
심지어 이번에는 살면서 처음으로 소련인들과 추수‘감사’절 (‘Thanks’giving)을 보내게 되었다 이겁니다.
“딱 지금 여기서 회담 개최하는 날이랑 추수감사절 연휴랑 겹쳐서 그러십니까?”
“정답.”
어니스트 킹 대장은 분주하지만 절도있게 움직이는 수많은 대사관의 직원들을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자릿수의 요리사들을 포함해서 시야에 들어오는 직원들 대부분은 소련 소속일 텐데, 저들이 추수감사절을 준비한다니.
이것 참 기분 묘하네.
“참모총장님이 보시기엔 각하께서 의도하신 것 같습니까?”
“글세, 나도 확신은 못 하겠어.”
설마 일부러 스탈린을 추수감사절에 초대할 수 있도록 카이로와 테헤란의 회담 일정을 잡은 걸까.
루스벨트 그 양반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긴 하는데 말이야.
“그나저나 마셜 참모총장님은 오늘도 안 나오시는 겁니까?”
“본인 방에서 회의나 식사 말고는 거의 나오지를 않아.”
“오버로드 작전 때문에 계속 바쁘신 모양입니다.”
“그렇지. 가만있자, 마셜은 네가 나보다 더 잘 알 텐데 굳이 물어볼 필요가 있나?”
육군 소속도, 참모총장도 아니지만, 함대 사령관으로서 마셜이 겪고 있는 고생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본토 대륙으로부터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수백만 명의 병력을 지원한다니. 병참상 문제 상상만 해도 토 나올 것 같네.
내가 총사령관직 외에 참모총장직까지 동시에 맡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다-아이씨 이 생각만 몇 번째 하는 거냐고.
“병참도 병참이지만, 분명히 맥아더 그 인간과도 연관 있을 거라고 내가 장담하지.”
“아, 네···”
사이판 및 필리핀 공략은 내가 여기에 와 있는 동안 현재 더글러스 맥아더와 체스터 니미츠 둘이서 준비 중이다.
둘 다 (특히 후자) 신용하는 장성이긴 하지만, 내가 회담 다 끝나고 진주만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별일 없어야 할 텐데.
만약 작전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터지면 외교 석상이고 뭐고 루스벨트한테 양해받고 먼저 여길 떠야지.
“어이, 리. 방금 저거 봤나? 저 녀석 뭘 들고 처칠한테 가는 것 같은데?”
킹이 가리키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한 대사관 직원이 넓적한 물체 하나와 작은 도구통과 함께 처칠 총리 쪽으로 움직였다.
난 전혀 신경 안 쓰고 있었는데 저걸 또 용케 포착하네. 하여간 우리 해군참모총장님 눈썰미 하나는 대단하시단 말이지.
“저건 아마 처칠 총리님의 회화 관련 용품일 겁니다.”
“뭐야, 이 와중에 또 그림이라도 그리려는 건가? 다들 바쁜데 혼자서 여유가 넘쳐나는구먼.”
“아픈 몸으로 여기까지 오신 것만 해도 대단하지 않습니까.”
“아플 때도 골라서 아프지 않고, 나 참.”
조금 냉정하다 싶을 정도로 비아냥거리는 킹의 눈빛에는 형용하기 힘든 우려가 가득해 보였다.
머릿속의 생각을 정리하는 듯했던 그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는 낮은 목소리로 나에게 질문했다.
“처칠 그 작자가 온전한 상태로 방파제 역할을 못 해주는 상태에서, 각하께서 무사하실 것 같나?”
“···잘 못 들었습니다?”
뭐, 멀쩡히 듣긴 했지만, 이거 좀 무거운 못한 질문인데. 제가 뭐라고 답하시길 원하는 거죠, 참모총장님···?
“스탈린 그 자식이 여기에 도착했을 때부터 보이더라고. 녀석은 자신이 뭘 원하는지 제대로 알고 반드시 얻어낼 각오가 되어 있어.”
“참모총장님이 보시기엔, 자칫 잘못하면 스탈린이 각하를 손에 쥐고 놀 수도 있을 것 같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대장 빨갱이 그 자식은 나랑 비슷한 부류니까 말이야.”
“···엣?”
살면서 절대로 들을 리가 없을 것 같았던 말 한마디에 난 킹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아무리 인성이 개차반이라고는 해도 당신이 스탈린이랑 비슷한 부류라니요. 누가 보면 우리 미 해군에서도 대숙청이라도 일어난 줄 아-
-맞다, 그 정도 규모는 절대 아니더라도, 어뢰 문제랑 사보섬 패배 관련으로 킹이 해군에서 직접 모가지를 날려버린 인원만 세자릿수였지, 큼, 크흠···
“뭐, 참모총장님의 우려는 충분히 합리적입니다. 소련군처럼 같은 독종을 찾아보기가 힘든데, 그들을 통솔하는 자는 말할 것도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괜히 또 우리 모두를 농락하면 안 될 텐데···”
“하지만 너무 걱정하진 마시죠. 저희 쪽에서도 어느 정도 준비를 했으니까.”
“뭐···?”
본인도 전혀 몰랐던 얘기였는지 킹은 갸우뚱하며 나를 바라봤으나,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래도 물어봤자 본인의 정신 건강에만 해로울 것 같다는 듯이.
잘 알고 계시네.
*****
온유하고 평화로운 메시아의 일반적인 인상과는 달리, 예수 그리스도는 항상 부드럽기만 했던 자는 아니었다.
한 번은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는, 의외로 공격적인 발언을 한 적도 있었다.
성전의 장사꾼들에게 폭력을 가했을 때처럼, 현장에서 그 말을 들은 제자와 청중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터.
“대통령님···꼭 그렇게 손을 더럽히셔야겠습니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프랭클린 델라노 루스벨트는 궁극적인 평화를 도모하기 위한 자리에서 칼을 빼 들었다.
그리고 비장한 눈빛과 힘찬 손길로 두 마리의 거대한 칠면조 통구이 중 하나에 칼을 꽂아 넣었다.
“모자랄 일은 없으니 다들 걱정하지 마시죠, 정확히 분량을 계산했으니까요.”
어느 정도 의자에 몸을 지탱해야 하긴 했지만, 루스벨트는 회의실의 참석자에게 고기를 잘라주기 시작했다.
참석자가 두 자릿수였기 때문에 다 나눠주는데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고, 맨 처음에 받은 사람은 고기를 다 자를 무렵에 식사를 끝마칠지도 몰랐다.
“그렇게 번거로운 일을 굳이 직접 하실 이유는 없을 텐데 말입니다-쿨럭!”
뼈와 살을 능숙하게 가르는 루스벨트의 모습에 감탄하던 처칠은 거친 기침을 억누르지 못했다.
폐렴의 영향으로 여전히 몸이 안 좋아 보였으나, 스탈린이 도착하기 전과 비교하면 눈에 띄게 상태가 나아졌다.
혹시 리 제독의 도움이 한몫했던 것일까.
‘이봐, 대일. 처칠 총리한테 뭘 선물해줬다면서?’
‘별 건 아닙니다. 그냥 유자차라고 한국에서 감기 걸릴 때 좋은 음식이 있어서 좀 드렸지 뭡니까.’
‘···설마 그런 걸 늘 들고 다니는 건 아니겠지?’
‘노코멘트하겠습니다. 아니 그런데 차로 끓여 드시라고 했는데 그걸 빵에다 발라 드시다니···!’
음식의 정체성에 혼란이라도 느낀 것처럼 당황해하던 리 제독을 떠올리며 루스벨트는 피식 웃었다.
처칠에게 큼지막한 한 조각을 잘라준 다음에 그의 시선은 어쩌면 이번 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쪽으로 향했다.
“칠면조가 서기장 동지의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군요. 캐비어라도 준비했으면 더 좋았겠건만.”
“이번 만찬을 준비한 것도 저희 측 인원들이지 않습니까.”
“하기야, 그렇군요. 여기 받으시죠.”
대사관에서 미국식 만찬을 차려주는데 동의한 것 외에도 스탈린은 여러 가지 면에서 루스벨트를 배려해줬다.
우선 주 회의장 안에서도 휠체어에 앉은 그를 고려해 좌석 배치를 신경 쓴 흔적이 제법 보였다.
물론 소련군이 미국에 의존하는 정도를 생각하면 그 정도는 해줘야 하는 게 당연할 터.
“이제 몇 주만 더 있으면 크리스마스인데, 독일에서도 크리스마스 캐롤이 들릴지 모르겠군요.”
고기를 계속 나눠주면서 그는 카이로와는 방향이 다른, 이번 회담의 본론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짧은 순간에 주위를 살펴본 루스벨트는 스탈린의 표정이 미묘하게 밝아졌지만, 처칠은 불편해지는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이번 상륙작전은 고통받는 자유 세계의 인민들에게 그 어느 것보다 큰 선물이 될 겁니다.”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서기장 동지. 원래는 내년 5월이나 6월에 잡혀 있던 작전이 이렇게까지 앞당겨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스탈린의 감사에 미소지은 루스벨트는 동시에 처칠 쪽으로 흘끔 쳐다봤다. 그 또한 원칙적으로 오버로드 작전에 동의했고, 이 점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얼마 전 처칠은 12월 말 같은 험난한 시기에 영국 해협을 건너, 방어가 탄탄한 프랑스 해안을 침공하는 것이 현명한지 의혹을 제기했다.
추축국의 취약한 아랫배를 계속 공격하기 위해 이탈리아와 발칸 지역에서의 작전에도 계속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하면서.
“그러게나 말입니다. 전쟁의 결말이 다가왔다는 하나님의 징조인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처칠은 결국 연합군의 전략적 초점이 지중해에서 멀어진다는 사실을 별말 없이 승낙했다.
좀 더 반대 의견을 제기할 것 예상했던 루스벨트는 처칠의 빠른 수긍에 흠칫 놀라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왜 저리 순순하게 나오는 거지···사람이 죽을 때가 다 됐나?!’
헛기침과 함께 루스벨트는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 예상 밖이긴 해도 저렇게 협조적인 태도는 좋은 기회다.
누가 처칠을 몰래 찾아가서 구워삶았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이 자리에서 중요한 건 아니다.
“기뻐하십시오, 서기장 동지. 조만간 우리 미군과 영국군이 동부전선의 독일군 병력 중 3, 40개 사단 정도는 빼게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그것참 희소식입니다. 제2 전선이 이렇게 빨리 형성될 줄은 몰랐습니다, 너무 안 서두르셔도 됐는데 말입니다.”
부드럽게 미소를 짓는 것과는 별개로, 스탈린을 바라보는 루스벨트의 눈빛은 다소 싸늘하게 식었다.
그동안 제2전선 형성의 지연에 그렇게까지 불평을 표출해놓고선 지금 와서 빨리 되었다고 하다니.
“하긴, 서기장 동지의 지도 하에 붉은 군대는 경외감이 들 정도로 막강해졌죠.”
만약 미국의 랜드리스 지원이 지속한다면, 사실 영미군이 프랑스에서의 제 2전선을 열어주는 게 소련군에게 그렇게 필수적인 건 아닐 터.
그러나 서방 국가 측에서 독일을 상대하여 소련군에게 지상전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은 여전히 중요할 것이다.
소련이 전쟁으로 너무 쇠약해져서 전후 질서를 주도하지 못한다면, 스탈린한테선 그저 피로스의 승리 아니겠는가.
“그런 붉은 군대의 경이로운 업적에 저희 미군 또한 영감을 받아 꾸준히 성장해갔습니다.”
칠면조 고기를 다 나눠줬음에도 불구하고 루스벨트는 기름이 묻은 칼을 내려놓지 않은 채 스탈린의 눈을 바라봤다.
지금까지 칭찬도 해줄 만큼 해줬으니, 이제는 슬슬 본인의 주제를 파악할 수 있도록 기강을 잡을 때가 왔다.
“그런고로 태평양 전선은 붉은 군대의 도움 없이도 저희 선에서 충분히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 같지 뭡니까.”
자신의 의도를 파악한 스탈린의 얼굴이 굳어가는 모습이 루스벨트에게는 너무나도 만족스럽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