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772)
매국노의 원수 자식-772화(772/773)
재앙신이 지배하는 바다 (6)
1943년 11월
일본 제국, 도쿄
조르르륵
야심한 시각, 일본 제국 내각총리대신 관저의 어느 방 안이 은은한 차 향기로 가득 찼다.
부하 앞에서 하품하는 걸 참으며 도조 히데키 대장은 늦은 시간에 찾아온 손님에게 차를 한 잔 따라줬다.
형용하기 힘들고 복잡한 표정의 노기 야스스케 대장은 상관이 따라주는 차를 깍듯한 자세로 받았다.
“감사합니다, 각하. 이런 시간에 불편함을 끼쳐드리는 점 사과드립니다.”
“사과할 것까지야 있나. 나도 마침 일에 집중이 안 되고 있었거든.”
차를 홀짝이면서 야스스케는 두 장군이 있는 방 내부를 둘러보았다. 일반적인 사무실이나 접객실에는 보기 힘든 물건이 시야에 들어왔다.
일반 가정이나 군인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한 것보다 더 큰 라디오 여러 개가 보였다. 아마 이곳은 도조 대장이 연설할 때 사용하는 방이었을 것이다.
분명히 이 길고 지긋지긋한 태평양 전쟁을 시작한 개전 연설도 여기에서 했다는 것일 터.
“최근 들어서 고생이 참 많으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해주니까 정말 고맙군, 그래. 요즘 다들 나를 쫓아내거나 죽이려는 자가 많아진 것 같거든.”
허탈한 도조의 웃음에 야스스케는 흠칫 놀랐다. 비아냥거리는 게 아니라 나름대로 진심인 것처럼 들렸기에.
···그리고 동시에 그의 품 안에 있는, 은닉해서 들고 온 권총 한 정을 만지작거렸다.
“누가 각하를 암살이라도 하려고 하는 모양입니다?”
“그런지 좀 됐지. 그래서 아까 자네가 들어올 때도 간략하게 몸수색도 한 거 아니겠나.”
“앞으로는 몸수색을 좀 더 철저히 하라고 지시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래야 할지도 모르겠군. 야마모토 제독이 의지를 잃은 와중에 나라도 심지를 굳혀야 하니까.”
해군 연합함대 사령장관의 이름에 야스스케는 눈을 찌푸리며 슬그머니 품 안의 총에서 손을 뗐다.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과달카날에서의 패배 이후 야마모토 제독이 망가져 버린 것 같아. 자신이 무슨 생각이나 결정을 하든, 결국 재앙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더군.”
“···저런. 사령장관으로서 그런 나약한 태도를 보이다니.”
“전쟁 초기의 그 의욕 넘치던 제독이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입으로는 도조의 말에는 동조했지만, 야스스케는 가슴 속으로 야마모토를 전혀 비난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열렬히 공감했다. 리 다이이치 대장은 육군 장군인 자신도 두려운데, 해군 제독은 얼마나 그렇겠나.
사람이 자연재해를 두려워하는 건 나약함이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인 생존본능일 뿐이다.
“며칠 전에 독일의 히틀러 총통과 향후 전략의 방향에 대해 전보를 주고받았어.”
“독일도 요즘 상황이 많이 안 좋다고 들었습니다. 무솔리니 총리가 실각한 이후로 미군뿐만 아니라 이탈리아군도 자꾸 발목을 잡는다면서···”
“최상의 상태라곤 할 수 없지만 과장된 면도 있다네.”
어느 정도 영미 측 정보 매체도 접할 수 있었던 야스스케는 어설픈 거짓말을 손쉽게 간파했다.
그가 지켜본 결과 히틀러는 자신의 오류나 오판은 죽어도 인정하지 않았고, 그런 면에선 도조 대장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독일군은 절대 후퇴나 항복이 없을 것 같더군. 정말 무사다운 태도 같지 않나?”
“아무리 승산이 희박하고, 막대한 희생이 따르더라도 말입니까?”
“신이라는 이름의 정의로운 중재자는 가장 많이 헌신하고 투쟁하는 민족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법이니까.”
듣고 앉아 있기 힘든 정신론적인 궤변에 야스스케는 입술을 꽉 깨물고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신? 정의로운 중재자? 자신의 부모와 형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 때 그들은 도대체 어디 있었단 말인가.
“그렇게 될 거라고 믿으십니까, 각하? 전장을 보면 바뀐 거 하나도 없고, 전선은 그대로입니다. 아니, 점점 더 여기 본토 쪽으로 후퇴하고 있지 않습니까!”
참다 참다 못해 도조에게 소리를 내질러버린 야스스케는 뒤늦게 자신의 말실수를 깨닫고는 굳어버렸다.
그러나 호통을 치는 대신 지친 눈빛의 총리대신은 섬찟할 정도로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꺼냈다.
“이보게, 노기. 난 말일세···이참에 우리 둘이 좀 더 마음을 열어 볼까, 하는 마음도 솔직히 좀 있다고. 어려운 시국일수록 서로 같은 편이어야 큰 힘이 되지 않겠나.”
감정의 통제를 더 잃기 전에 야스스케는 자리에서 일어나 라디오 실을 나가려고 발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앉아 있는 도조에게 인사하기 전에 그는 진심이란 조금도 담기지 않은, 폐허가 된 본가의 내부처럼 공허한 말을 내뱉었다.
“···우리 일본 제국의 육군은 다 같은 편입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각하.”
입구의 경비병에 맡겨놓은 도검을 돌려받고 총리관저를 떠나는 야스스케의 발걸음은 점점 더 빨라졌다.
아무래도 준비가 더 필요했고, 만약 그날 밤 거사에 성공했다고 한들 이룰 수 있는 건 전혀 없었을 것이다.
이 자가 저질러 놓은 난장판을 제대로 수습할 수도 없을 테고.
덜컥
슥슥슥
자신의 사무실에 도착한 야스스케는 특별한 제안과 지시를 담은 전보 한 통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라바울 본영에서 분주하고 있을 자신의 후배 장군에게 긴급히 보내기 위한 내용을.
*****
12월
워싱턴 D.C.
몇 주 동안 북아프리카와 하와이에서 보낸 뒤 드디어 미국 본토로 돌아왔다.
으음, 매캐한 도시 냄새. 그리고 해군부 건물에 들어오니 역시 우리 해군참모총장님께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네.
“드디어 본토에 돌아오셨군.”
“이예이, 죽지도 않고 또 왔습니다.”
“···리, 올해 포토맥강 수온은 매우 낮다는 걸 명심해.”
싱글벙글 웃으면서 참모총장실에 쳐들어오는 나를 보며 어니스트 킹 대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이쿠 세상에, 저 양반 책상 위에 저게 다 뭐야. 설마 전부 다 이번 작전 관련된 문서인 건가?
참모총장으로서 그가 맡는 업무량이 많은 게 하루 이틀이 아니건만, 오늘은 유난히도 서류 더미가 더 크잖아, 어이.
“아 그래, 리. PCDA 계열 군수 사업자들한테 고맙다고 전해달라고.”
“혹시 상륙정 생산량 초과 달성 관련한 겁니까?”
“맞아. 노르망디와 사이판 양쪽에서 병사들을 실어나르려다 보니, 상륙정이 훨씬 더 많이 필요했지 뭐야.”
이미 몇 주 전부터 오버로드 작전을 준비하기 위해 연합군이 소유한 대부분 함선은 서부전선으로 총 투입되는 중이었다.
거참, 그걸 생각하니 사이판 상륙작전에 투입할 상륙정이 남아 있다는 것만 해도 정말 신기하단 말이지···
유일한 사장한테 몇 개월 동안만 상륙정 생산에 투입해달라고 요청한 보람이 있었군. 직원들한테 보너스 좀 두둑이 챙겨줘야겠네.
“잠깐만, 설마 그 책···테헤란에서 봤던 그 책 맞지?”
“맞습니다, 으헤헤헤헤헤···”
(무슨 목적인지는 모르겠다만) 다시 만주국으로 돌아가게 된, 레프 트로츠키가 쓴 책을 당당하게 흔들어 보였다.
정확히는 표지에 ‘스탈린: 삶과 영향의 궤적 (Stalin: An Appraisal of the Man and His Influence)’이라고 큼지막하게 적힌 평전을.
“···이봐, 리. 내가 생각한 그 짓을 저지른 건 아니었으면 좋겠어.”
“안 했다고 말하면 믿으실 겁니까?”
“아니.”
“그럴 것 같았습니다.”
테헤란 회담의 마지막 날, 난 아직 정식적으로 출판도 되지 않은 책을 들고 스탈린에게 접근했다.
그다음에는···음, 내가 만약 스탈린이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시건방진 외국 장성의 멱살을 잡았을 거다, 아마.
“한 마디로, 트로츠키가 쓴 스탈린 평전을 본인한테 들고 가서 사인해달라고 한 거지?”
“넵.”
“그리고 그 녀석은 또 사인해줬나?”
“혈압이 좀 많이 치솟아 오른 것 같긴 했는데 해줬습니다.”
뭐라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킹은 스탈린의 사인이 적힌 평전을 보고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을 뿐이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완용 그 자식은 왜 트로츠키 그 쓸모없는 놈을 아직도 살려두고 있는 거지?
‘아니, 아버지, 그 원조 빨갱이 삼인방 중 한 명을 아직도 살려놨다니요?!’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게야, 이 망나니 자슥아.’
‘무슨 생각이요?! 스페인에 보냈을 때도 결국엔 별 성과 없었잖아요!’
‘성과가 없긴, 무솔리니만큼은 아니지만, 프랑코 그 녀석도 완전히 히틀러에게 목줄이 꽉 잡힌 상태가 되었는데.’
뭐···확실히 내전 종결 이후 그동안 스페인에 참으로 기막힌 일이 많이 일어나긴 했다만, 글쎄올시다.
에휴, 모르겠다. 유럽, 그것도 지중해 지역에 신경 쓸 때는 진작에 지나갔잖냐, 태평양에나 집중하자고.
“네가···심각한 외교적 결례를 저지르던 와중에도, 진주만에서 니미츠는 엄청난 성과를 내고 있었더군.”
스윽
무거운 한숨을 내쉰 킹은 서류 더미에서 태평양함대 사령부가 보낸 문서 하나를 꺼내 나에게 건네줬다.
그리고 킹이 말한 대로 정말 어마어마한 성과에 난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야 이 미친.”
일본놈들도 완전히 멍청이였던 건 절대 아니었고 사이판에 상륙하려는 우리 미군을 막기 위해 움직였다.
태평양함대가 항공모함 전력으로 사이판섬을 폭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본은 섬 방어를 강화할 병력을 편성했다.
사단 단위의 병력이 여러 개의 수송 함대에 나뉘어 탑승한 뒤 본토에서 출발하는 것까진 좋았다. 하지만···
“니미츠 이 자식···수송 선단을 사냥하는 정도가 아니야.”
“이건 뭐 거의 저격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습니다, 홀리쉣.”
···체스터가 사실상 직접 지휘하는 잠수함대는 사이판 근처에 다가오는 일본의 수송 함대를 정확하게 찾아내 습격했다.
잠수함 공격을 연달아 받으면서 사이판섬으로 가던 물자와 병력은 과장 좀 보태서 절반도 살아남지 못한 모양이다.
“섬에 무사히 도착한 인원이 5,000명은 됩니까···?”
“안될 거야. 설령 도착했다고 한들, 장비도 없는 상태겠지.”
이로써 일단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체스터 니미츠가 해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고 흉악한 잠수함 사령관으로 영원히 기록되겠지.
만약 니미츠 이 친구가 만약 독일 해군에 있었고, 히틀러가 유보트 생산량만 조금 더 증가시켰다면···어후,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
“솔직히 말해서, 니미츠한테 이렇게까지 잔혹한 면이 있을 줄은 몰랐어.”
“제가 아는 군인 중에서 니미츠 제독처럼 할 때는 확실히 하는 자는 얼마 없습니다.”
“하긴, 괜히 원수 진급 대상에 포함된 게 아니지.”
그러게 말입니다-어이, 잠깐만.
내가 방금 잘못 들은 건가?
“참모총장님,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못 들었나? 늦어도 내년 초에는 원수 임명식을 할 거야.”
“엣?”
솔직히 난 테헤란을 떠나기 전에 루스벨트가 원수 계급 관련해서 했던 말을 그렇게까지 신경 쓰진 않았다.
그런데 그게 농담이 아니었던데다가, 이렇게나 빨리 추진하는 중이라고? 이런 세상에!
“너무 걱정하지 마, 당연히 나랑 너 둘 다 목록에 들어갔으니까.”
“···잘 못 들었습니다?”
미합중국 해군 원수라고요?
···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