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773)
매국노의 원수 자식-773화(773/773)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의 서막 (1)
1943년 12월
독일 제국, 베를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었다.
같은 맥락에서 승리를 하나 거뒀다고 계속 이어지던 패배와 굴욕의 연쇄가 완전히 끊기는 것도 절대 아니었다.
한 편 베를린에는 냉랭한 겨울의 기운이 짙게 내려앉았으며, 꽤 긴 시간 동안 제비나 승리 둘 중 어느 쪽도 찾아올 기미가 없었다.
“아아, 좋은 아침일세, 괴링.”
그러나 크리스마스를 코앞에 둔 어느 주말, 베를린의 한 건물 안에는 기묘한 경쾌함이 밀려왔다.
국가수상부 건물 안에서 근무하는 자들은 아돌프 히틀러의 흥겨운 모습에 극심한 위화감을 느꼈다.
날이 갈수록 체형이 둥글어지는 정권의 이인자, 헤르만 괴링 제국원수라고 절대 예외는 아니었다.
“조-좋은 아침입니다, 각하. 이렇게 기분 좋으신 모습은 오래간만에 뵈는 것 같습니다.”
“그럴 만도 하지 않은가, 결국 로마 수복에 성공했으니까!”
동료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를 몰아낸 미국 공수부대원들과 이탈리아 공동교전군은, 결국 몇 주 만에 로마에서 철수했다.
압도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연합군은 처절하게 싸워왔으나 독일군 원수 두 명 휘하의 병력을 막아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재탈환한 로마에 먼저 입성하는 영광은 북쪽에서 지원군을 지휘했던 알베르트 케셀링 원수에게 돌아갔다.
“붉은 남작 그 작자가 뭔가를 제대로 해내다니, 솔직히 믿기 힘들단 말입니다···”
다만 로마에 친위대 사단을 포함한 병력이 진입했을 때, 미군과 반 무솔리니 세력은 한참 전에 후퇴한 상태였다.
심지어 재탈환으로부터 며칠 후 케셀링은 1주일 정도는 방어세력이 텅 빈 도시에 병력을 계속 투입했던 건지도 모른다고 보고했다.
여러모로 수상쩍은 부분이 아예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의 장군들을 못 믿는다면, 누굴 믿을 수 있겠는가.”
“···네?”
괴링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눈치였으나 히틀러는 결국 불안과 의혹의 목소리를 억누르기로 했다.
안 그래도 상황이 악화 일로를 걷는 와중에, 군인들과 시민들의 사기를 위해서라도 이 정도의 경사는 최대한 활용해야 할 터.
크리스마스가 좀 더 일찍 맞이하게 된 소년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아직 하나님이 이 나라와 민족을 완전히 버린 건 아닌 모양일세.”
물론 동부 전선의 싸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힘겨워져 가지만, 그래도 볼셰비즘은 여전히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이제 독일에 중요한 문제는 단순한 승패가 아니다. 살든지, 죽든지, 어떻게든 이 전쟁을 견뎌내고 살아남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소란과 불길이 지나가면, 폐허에서 새 생명과 영광을 품은 도시가 찬란하게 솟아오르리라.
“나에겐 벌써 보여, 괴링. 내년은 승리의 한 해가 되리라는 것이 말이야.”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히틀러의 선언에 입으로는 동조하는 괴링이었지만, 진심으로는 동조할 수는 없었던 계속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리고 대일 리 제독의 잔인한 농간에 온 독일이 경악하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
메릴랜드, 볼티모어
아무리 20세기 중반처럼 급변하는 세상에서도 절대로 변치 않는 듯한 것이 몇 개 있었다.
우선 내가 오래간만에 볼티모어의 자택으로 돌아올 때마다 일어나는 일은 거의 똑같았지.
“나 왔어요-으극!”
“이게 얼마 만이에요!!”
지금은 무려 메릴랜드의 하원의원에까지 된 세레나였으나, 변함없이 나를 격렬하게 껴안으며 환영했다.
아, 직위는 말할 것도 없고 아내의 옷차림에는 확연한 변화가 있었지만 말이야.
“정장 재질 진짜 부드럽네요.”
“그래도 조금 조이는 것 같아서 걱정이란 말이죠-”
아내는 당선 이후로, 특히 국회에 참석할 때마다 말끔한 정장을 입었는데, 오늘도 워싱턴에서 볼일을 마치자마자 바로 여기에 온 모양이다.
세상에, 슬림핏의 정장을 입고 거기다가 안경까지 착용한 세레나라니···이건 이거대로 참을 수 없-
-에헤이, 대일아, 착한 생각, 착한 생각.
“보기 좋은데 왜 그래요.”
“-그, 그렇게 봐주시니 고맙네요···”
얼굴을 붉히는 세레나가 잠시 말을 버벅거리는 와중에, 또 다른 가족의 일원이 다가와 나를 맞이했다.
비스마르크를 나포하던 그 날 업어온 독일산 고양이 샘은 내 발치까지 다가와 요란하게 기지개를 켰다.
“웨오오오옹.”
“오냐 집사 왔다-어이쿠, 왜 이렇게 또 무거워졌니.”
들어 올릴 때마다 이 녀석의 체중이 불어가고 돼냥이가 다 되어가는 게 체감되네. 세레나 밑에서 얼마나 안락삶을 누리고 있는 거야···
“카이로랑 테헤란에선 일 잘 마치고 돌아오신 것 같더군요. 정말 수고하셨어요.”
그래도 성격은 얌전한 뚱냥이를 어깨에 태운 채 난 세레나를 따라 익숙한 대형 목제 탁자가 위치한 거실로 향했다.
이번 회담에 대해 다룬 여러 신문 중 제일 가까이 있는 디트로이트 프리 프레스 (Detroit Free Press) 1부를 주워들었다.
“어디 보자···‘FDR, 처칠, 그리고 스탈린이 독일의 운명에 합의하다 (F.D.R. CHURCHILL AND STALIN AGREE ON FATE OF GERMANY)’라.”
“안타깝게도 다들 카이로보다는 테헤란 회담에 훨씬 더 관심이 많았지 뭐에요.”
“한국인으로서 아쉽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당연한 거겠죠.”
“AMC한테 보도 많이 하라고 요청하긴 했어요. 충분하진 않아 보이지만요···”
국회의원에 당선되기 전부터 세레나는 아메리칸미디어컴퍼니의 경영자 자리에서 내려왔다. 정치인이 직접 기업을 운영하는 건 윤리적이지 않다면서.
그 전까지 전쟁정보국장으로 근무할 때만 해도 별문제가 없었던 것 같았는데, 국회의원은 뭐가 좀 다르구먼.
···나도 해군 제독의 신분으로 PCDA같은 초거대기업체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찝찝할 때가 없던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이건 그래도 진짜 만족스럽다고요.”
매우 자랑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세레나는 신문 더미 중에서 볼티모어 선 1부를 꺼내어 나에게 보여줬다.
“푸흡?!”
자랑스러울 만도 하네, 1면의 제목과 기가 막힌 사진을 보는 순간 즉시 뿜어버리고 말았으니까.
하이씨, 테헤란에서 이미 한 번 본 풍경이지만, 어떻게 볼 때마다 웃기냐.
[루스벨트 대통령, 이란 회담에서 확고한 장‘악력’을 선보이다 (F.D.R. DISPLAYS ‘FIRM GRASP’ AT THE IRAN PARLEY)!]1면에 게재된 사진에서 프랭클린 델라노 루스벨트는 악수하기 위해 초인적인 힘을 끌어내, 지팡이에 기댄 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와 악수하는 이오시프 스탈린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비명 지르려는 걸 겨우 참으려는 듯했다.
“대일, 당신은 이 모습 현장에서 목격했죠?”
“어쩌다 보니까요.”
···내가 장담하는데 루스벨트 저 양반 분명히 몸을 일으키는 것보다 스탈린 손을 으그러뜨리는 데 힘을 더 많이 줬을 거야, 세상에.
분명히 전생에서 어디 인도 총리가 이런 식으로 악력을 과시했던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이런 역사적인 순간마다 놓치지 않고 계속 참여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해요.”
“걱정 마요, 한 번도 내가 행운아라는 걸 자각하지 않은 적이 없으니까-”
“그리고 당신이 그런 자리에 참석해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거인이라는 것도요.”
“···”
이런. 아무래도 내가 미합중국 해군 원수 진급 대상이라는 걸 세레나도 전해 들은 모양이구나.
하기야, 아내 정보력과 인맥을 생각하면 모르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긴 하겠지.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은 샌프란시스코의 일개 소년 사업가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벌써 해군 원수 예정자까지 되셨군요.”
“솔직히 아직도 잘 믿기진 않지만요-”
턱
말하는 게 어딘가 마음에 안 들기라도 했는지, 세레나는 내 어깨를 꽉 잡고 그녀의 푸른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스스로의 역량과 업적을 부정하지 말고 믿으세요. 그리고 해군 원수 예정자에 걸맞은 언행을 보여주세요. 뭔지는 당신이 저보다 더 잘 아시죠?”
그래.
원수까지 올라왔으면 그 자리가 요구하는 걸 해내야 하지 않겠나.
“반년 안에 이 전쟁을 끝내주겠어요.”
*****
대영제국, 햄프셔
“하이고, 총리님.”
연합원정군 총사령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장은 연합원정군 사령부 (Supreme Headquarters Allied Expeditionary Force)의 사무실에서 피식 웃었다.
아이젠하워가 읽고 있었던 한 영국 신문의 1면에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악력에 고통받고 있는 스탈린의 사진이 생생하게 게재되었다.
···그리고 두 사람 뒤에서 해맑게 웃으려는 걸 겨우 참으려는 윈스턴 처칠의 얄미운 얼굴도.
“읏차.”
짧은 휴식을 마친 아이젠하워는 신문을 내려놓고 책상 위에 있던 말끔한 모자를 집어서 착용했다.
정치인들의 외교적인 전투가 끝났으니, 이젠 자신 같은 군인들의 군사적인 전투를 펼칠 차례가 왔다.
“태평양에서의 상륙작전은 잘 되고 있겠지?”
대일 리 대장의 지휘 및 설계하에 진행된 작전이었으니 사이판 상륙 및 탈환 또한 수월하게 진행되지 않겠는가.
특히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인해 병력, 장비, 물자 등, 일본 측의 방어병력이 모든 면에서 약화한 걸 생각하면 더더욱.
‘아마 사이판섬의 적이 제대로 방어 태세를 마치려면 지금으로부터 최소한 6개월은 더 걸릴 거야.’
‘이런 세상에!’
‘체스터 니미츠 제독과 같은 독일계 미국인으로서 너도 건투를 빌어, 아이크!’
전화를 끊기 전, 리 제독은 오버로드 작전의 지휘관 자리에 아이젠하워를 추천했다는 건 마셜 참모총장한테는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여러모로 감사할 게 많았던 아이젠하워는 그 정도 부탁 정도는 당연히 들어줄 생각이었다.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겠군.”
리 제독의 아들, 제이슨 리 중령은 결과적으로 로마에서 히틀러의 시선을 끌어주는데 대성공했다.
덕분에 서부 전선에 그렇게까지 많이 남지 않은 기갑전력을 포함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독일군 병력이 지중해에 묶여버렸다.
“그 아들에 그 아버지란 말이지.”
몇 년 전 리 제독과 대서양함대는 몰타에서 무솔리니 암살 음모를 퍼트려 붉은 남작의 병력을 분산시켜버렸다.
이제 리 중령과 공수부대원들은 로마에서 무솔리니를 몰아내며 독일군의 병력을 분산시켜버리며 역사를 반복했다.
“뭘 또 그렇게 중얼거리십니까.”
사령부 건물 밖으로 나온 아이젠하워는 자신을 기다리는 무수히 많은 장군과 참모들을 보며 미소지었다.
여러모로 정말 보기 아름다운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별건 아니야. 자, 모두 다 준비됐겠지?”
“그렇습니다!”
우렁찬 환호가 울려 퍼진 뒤, 얼마 있지 않아 수천 척의 함선과 수십만 명의 병력이 노르망디로 향했다.
···그리고 미 해군이 나포하고 영국 해군이 개조한, “전함 비스마르크”였던 군함이 거대한 상륙부대의 선두에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