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78)
매국노의 원수 자식-78화(78/773)
78_피와 강철의 폭풍 (4)
1905년 2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식적으로는 시위대에게 저격을 당하고 ‘입원’한 이완용은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그는 내무부 차관, 아니, 장관 권한대행 표트르 스뱌토폴크-머스키에게 내무부의 모든 업무를 떠맡겼다.
그리고는 며칠 동안 (아주 편하게 개조한 병상에서) 이제까지 못 잤던 잠과 즐기지 못했던 휴식을 마음껏 취하고 있었다.
병원장도 매수했겠다, 이젠 러일전쟁이 끝날 때까지 병원에서 요양하다가 적당히 기회를 틈타 러시아를 뜰 계획이었다.
이제 그가 러시아에 온 지 1년이 넘었다. 그것도 분명히 그저 학술교류 및 관광 차원으로.
작년 2월 때쯤엔 이미 한국에 복귀해야 했건만, 망할 놈의 책 한 권 때문에 지금까지 차르에게 억류되어 남의 나라에서 내무대신까지 맡게 된 것이다.
일단 맡은 일은 충실하게 해야 하며, 자신을 암살하려고 했던 일본을 최대한 골탕 먹여야만 한다는 신념 아래에 대부분 러시아 관료들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해왔다.
하지만 내무부 장관 권한대행이 되면서 안 그래도 산더미 같았던 업무가 태산같이 불어났고, 수면 부족과 과로로 인해 이완용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해 버렸다.
‘가퐁의 탄원서도 차르에게 제출했고, 아카시는 뭐 스뱌토폴크가 알아서 하겠지. 이 정도면 뭐 할 만큼 하지 않았는가.’
자신의 처신에 만족한 이완용이 못 읽어본 책 중에서 어느 작품을 읽어볼까 고민하던 중, 병원이 시끄러워졌다.
1층에서 시작된 소란의 근원은 멈추지 않고 점점 자신이 머무르고 있는 병실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완용이 누가 자신을 확인사살 하려고 왔나 싶어서 재빨리 도주하려던 참에, 그는 만일을 대비해서 소수의 오흐라나 요원을 병원 입구에 배치했던 걸 떠올렸다.
‘딱히 총성도 들리지 않은 거 보니 오흐라나가 막지도 않았고, 온 병원이 들썩일 정도의 인물이라면···?’
“리 장관 있는가!”
니콜라이 2세가 병실에 들이닥쳤다.
맙소사.
“폐-폐하께서 여기에 무슨 일로?!”
차르는 답을 하는 대신 (매우 안락한) 병상에 누워 있는 이완용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붙잡았다.
“무슨 용무라니, 배신자와 간신이 판치는 엄동설한 같은 세상에 찾기 힘든, 그것도 머나먼 타지에서 여기까지 와서 헌신하는 충신의 노고를 치하하러 왔다네!”
진심 어린 감동이 가득 찬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손을 꽉 쥐고 있는 차르를 이완용은 그저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볼 뿐이었다.
“네? 제가요···?”
“물론이지. 세상에 충성스러운 신하들은 많이 봤건만, 짐을 위해 몸을 날려 총알까지 맞아주는 자는 본 적이 없으니까 말이야!”
“아, 그건 사실-”
“그것과 별개로 탄원서는 좀 불쾌하긴 하지만···”
이제까지 밝았던 차르의 표정이 탄원서라는 단어를 언급하자 마치 치과의사에게서 썩은 이를 뽑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은 환자처럼 일그러졌다.
뭐, 가퐁의 탄원서가 받아들여지든, 바로 휴지통으로 직행하든, 그건 차르의 일이지, 이완용이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다만 이렇게 내무부에서 시위대에게 폭력도 쓰지 않고, 탄원도 막지 않겠다는 이미지를 보여줘야 괜히 민중의 분노가 자신에게 향하는 참사를 예방할 수 있다는 계산일 뿐이었다.
“뭐, 그래도 그대같이 충성스러운 신하가 괜히 짐을 곤경에 빠트리려고 한 건 아닐 테니 탄원서를 읽어는 보겠네. 그건 그렇고 자네가 1년 가까이 여기서 고생을 했는데, 아무런 보상을 해준 게 없다는 게 참 부끄러운 일일세.”
‘알긴 아는군.’
속으로 싱글벙글 웃으며 뭘 또 휘황찬란한 보상을 받아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이완용에게 차르가 상상도 못 한 제안을 했다.
엄청난 부담감과 민망함에 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아니, 아니, 폐하, 안 그러셔도 됩니다, 진짜로!”
“어찌 이렇게 겸손하기까지! 아무튼, 정복은 마련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게나. 쓸데없는 말이 길었군, 난 이만 가보지. 빠른 쾌유를 빈다네!”
넉살 좋은 미소를 지으며 병실을 나서는 차르를 본 이완용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이 나라에 오면 안 됐었다···
*****
만주,
봉천 남쪽, 요양(遼陽)
“아, 이거 진짜 죽겠군, 그래···”
일본 만주군 총사령관 오야마 이와오 원수가 격한 기침을 내뱉었다.
“괜찮으십니까, 원수님···?”
“시국이 시국인데 질병이 문제인가!”
자신을 걱정하는 참모장 고다마 겐타로 대장에게 소리 지른 오야마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 초부터 그의 몸 상태가 영 좋지 않았고, 잠시 고다마에게 만주군 지휘를 맡겼으나, 상황이 점점 악화 일로를 걷자 아픈 몸을 이끌고 총사령관으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방대한 러시아 극동군이 진군을 개시했다.
그것만 해도 엄청나게 위태로운 상황이건만, 더 끔찍한 건 제3군이 결국 뤼순항을 함락하지 못하고 북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3군의 사령관, 노기 마레스케 대장은 수개월 동안 일러전쟁 그 어떤 전투보다 더 많은, 수만 명의 사상자를 냈지만,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뤼순항 공방전은 남산 전투처럼 패배하는가 싶다가 기어이 승리한 게 아닌, 전술적이든, 전략적이든, 어느 차원에서 봐도 명백한 패배였다.
이제까지 단 한 번도 패배한 적 없는 무적의 일본군이 맞이한 첫 패배였다. 그것도 이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 중 하나가.
오야마는 그 점이 속이 찢어질 정도로 너무나도 분했다.
그는 뤼순항 점령, 그리고 태평양 함대 파괴라는 중요한 과업을 이루지 못한 노기가 여기에 도착하자마자 당장 문책하고 계급 강등을 시켜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장남을 잃었고, 차남도 잃을 뻔한 자를 면전에서 비난할 수 있을 정도로 냉혹한 인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마침 오야마 본인도 아들이 둘이며, 특히 장남은 연합함대의 3함대 소속 장갑순양함 마쓰시마 (松島) 에 복무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아무리 쓰라리더라도, 현재는 과거의 실책을 잠시 덮어두고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시간이었다.
“아무래도 극동군은 며칠 안에 이쪽에 도착할 것 같군. 병력 규모는 어느 정도로 추정하는가?”
“아무래도-크흑, 20만대 중후반에서 30만대 초반쯤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청화정 사건에서 입은 상체의 부상으로 인해 여전히 고통받는 쿠로키 다메모토 대장이 힘겹게 발언했다.
오야마도 몸 상태가 최선은 아니지만, 쿠로키를 보면 전투 중에 상처가 터질까 봐 걱정스러울 지경이었다.
“제3군이 합류하면 만주군 총 병력이 약 25만 명쯤 되니, 그 정도면 나름 할 만하군.”
애석하게도 그 추측은 그 현장에 모인 일본군 장성들의 희망 사항일 뿐이었고, 그들도 속으로는 인정하는 바였다.
지금 몰려오는 극동군 총 병력의 규모조차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아카시 모토지로 대좌와의 연락이 끊긴 이후, 만주군에 들어오는 정보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준비를 철저히 해야겠군. 우리도 사정이 안 좋지만, 저쪽도 마찬가지일 터.”
고다마, 쿠로키, 오쿠 야스카타 대장 및 자리에 모인 모든 장성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장담컨대, 이번 전투가 마지막 회전(會戰)이 될 것이다. 이 전투의 결과가 종전 협상의 내용을 결정하겠지. 대일본, 천황폐하의 명예를 걸고 저놈들을 막아내 보자고!”
“천황폐하를 위하여!”
일본의 장군들이 한마음으로 비장하게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며칠 후.
오야마는 물론이고 일본군 그들 중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상상을 초월하는 대규모의 극동군이 만주군을 덮쳤다.
*****
나보고 함포 사격을 보조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가장 먼저 떠오른 의문은, 왜 하필 다른 장교와 부사관을 놔두고 일개 장교후보생인 나를 시키는가였다.
내가 포격 몇 번 해봤다고 저러는 건가? 야, 이게 무슨 미군이냐 당나라 군대냐. 음, 타협해서 미합‘중국’군이라고 해야겠네.
하지만 내 입에서 그런 지적이 나오는 일은 없었다.
영문도 모르겠지만, 나보고 일본 함선에 포격하는 걸 옆에서 보조하라고?
어후, 이건 못 참지.
뇌물을 먹여서라도 꼭 해보고 싶은 걸 시켜주다니, 감사, 땡큐, 아리가토, 그라시아스!
아니 그런데 이 새끼들 진심 미쳤나, 어떻게 순양함 가지고 전함에 꼬라박을 생각을 하지···?
심지어 이건 명색이 아시아 ‘함대’고, 오하이오 뒤에는 위스콘신 (USS Wisconsin)과 올버니 (USS Albany) 같은 순양함은 물론, 구축함도 포함해서 함선만 거의 두 자릿수인데?
아 뭐 보병을 탱크에다, 그리고 함재기를 전함과 항모에 꼬라박을 생각도 하는 미친놈들이라 그렇게까지 이상한 건 아닌가···?
그러나 나는 전성관 뒤쪽에 자리 잡고 열심히 좌표를 계산하고 불러주면서 깨달았다.
일본놈들 함선의 함포 성능이 엄청나게 우수했다는 점을.
아시아 함대의 다른 함선이 제대로 전투태세를 갖추기 전에 이미 일본 순양전대의 순양함 네 척이 오하이오 쪽으로 포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아씨, 일본 함대의 화력이 사정거리, 화력, 정확도 및 모든 면에서 이렇게 뛰어날 줄이야.
함대와 선원들의 피로도 피로였지만, 원 역사의 쓰시마 해전에서 발트함대가 그렇게 처참하게 참패했던 이유가 있었구먼.
저 함포들 두말할 것도 없이 전부 영국제겠지. 아이고, 세상 흉악한 건 영국이 다 만들었다더니만!
시간이 지날수록 놈들의 포격은 점점 더 정확해지고, 오하이오에게 무시할 수 없는 타격을 주고 있었다.
내가 뇌물까지 줘가면서 반입한 소화기가 충분할까, 걱정하던 와중에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충격파에 휩쓸려 사격통제 장교는 실신했고, 난 머리를 세게 부딪쳐 잠시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났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사정없이 피격당하는 오하이오의 선체가 요동쳤고, 곳곳에서 비명과 경보음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어디선가 화재까지 난 것 같다.
어이가 없고 화가 치솟아 올랐다.
제독은커녕 소위도 되지 못하고 내 해군으로서의 커리어가 막을 내리려고 한다.
그것도 저 망할 놈의 일본군 손에.
아 지랄 마라.
내가 언젠가는 죽긴 하겠지.
그런데 말이다···최소한 쪽발이들한테 죽을 생각은 없거든?
그래, 그렇게 싸우고 싶다면 내가 너네들이 알아들 수 있는 언어로 철의 대화를 해주마.
내가 아주 그냥 네 놈들의 귀싸대기를 존나 맛깔나게 후려갈겨서 감동에 차올라 후퇴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눈가를 가리던,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낸 다음 쌍안경과 펜을 주워들었다.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최대한 정확하게 궤도를 계산했다.
완벽한 계산을 끝낸 후, 입안에 고인 피를 뱉어내고 전성관에다가 외쳤다.
“쫄지 마 새끼들아, 잽스한테 지옥 불맛 보여줘야지! 장전부터 해!”
드르르르륵.
딸칵.
끼리리릭,
내 지시가 떨어지자 여러 명의 수병이 수백 킬로짜리 포탄을 힘겹게 밀어 넣어 장전했다.
“장전 완료!”
우우웅.
철컥.
내가 외치는 대로 주포의 각도가 조정되었다.
“조정 완료!”
장전과 조정이 완료되자 난 가장 앞에서 우리에게 포격을 가하는 순양함을 노려봤다.
일본놈들아, 제발!
1절만 하자, 1절만!
“발포!!!!!!”
투쾅!
오하이오의 주포가 불과 연기를 뿜었다.
수백 킬로짜리의 육중한 포탄이 화약과 소금기가 가득한 공기를 가르며, 사냥감을 포착한 매처럼 날아간다.
콰캉!
몇 초 후, 나의 분노로 가득 찬 포탄이 순양함에 직격했다.
함교에서 요란한 폭발과 함께 불기둥이 치솟아 오른다.
“내가 바로 태평양의 호크아이야, 이 새끼들아!”
*****
제6 순양전대의 기함, 스마의 함교가 박살이 났다.
쌍안경으로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지켜보는 제3함대의 사령관, 카타오카 시치로 중장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세상에 이럴 수가, 스마가 저렇게 허무하게 당했다고···?!”
당장 연합함대의 기함에 연락하려는 순간, 카타오카의 귀에 이제까지 살면서 들어봤던 것 중에서 가장 소름 끼치는 보고가 들려왔다.
“큰일이 났습니다, 서쪽에서 크냐지 수보로프가 포착되었습니다!”
“뭐-뭐라고?!”
잠깐만.
그쪽에서 발트함대의 기함이 나타났다고?
그렇다면 스마가 먼저 공격을 시작한 저 함대는···?!
“이런 망할···6전대 당장 퇴각시켜!!!”
6전대가 퇴각하기도 전에 발트함대의 포격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