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85)
매국노의 원수 자식-85화(85/773)
85_헛된 꿈을 꾸는 자들 (1)
1905년 6월
텍사스주, 프레더릭스버그 (Fredericksburg)
샌프란시스코에 정박해 있는 전함 오하이오로 복귀하러 가는 길에 우리 둘은 체스터의 고향, 프레더릭스버그를 방문했다.
1월 말에 졸업했을 때는 그의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호텔이 갑자기 수리할 일이 생겨서 못 가봤지만, 이번엔 드디어 가볼 수 있게 되었다.
“아 맞다 대일, 그 상자 안에 뭐가 있었어?”
“어···아직 안 열어봤는데?”
“야 이 한심한 녀석아, 레이디가 선물을 줬는데 어떻게 안 열어봤어, 지금 열어봐!”
소더튼에서 헤어지기 전에 세레나는 나에게 선물이 들어 있는, 작지만 고급스러운 상자 하나를 건네줬다.
‘편지 기다릴게요!’
해맑게 웃는 그녀의 미소가 봄날 태양처럼 밝고 따스했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뒤에서 스테이튼 씨가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손으로 PPS를 장전하고 노리쇠를 당기는 동작을 취했던 동작만큼은 아니지만.
그렇게 우리는 니미츠 호텔로 가다가 멈춰서 그 상자를 한 번 열어봤다.
“뭐가 들어있을 것 같아?”
“음, 보나 마나 펜이나 손수건, 그런 계통 아닐까?”
어느 카우보이가 그랬지,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고.
번쩍
섬광탄에 처맞기는 전까지.
“구아아아악!”
“내 눈, 내 눈!”
“닫아, 빨리 닫아!”
엄청난 눈뽕을 맞은 우리 둘은 시력을 회복한 후, 나무 그늘 밑으로 가서 다시 한번 열어봤다.
‘친애하는 대일’이라고 적혀 있는 은빛 펜던트가 들어있었다. 한 번 들어보니 제법 무게도 있고, 아주 정교한 세공이 되어 있는 것 보니 가격이 꽤 될 것 같은데.
그리고 펜던트를 열어보니 윙크하면서 나에게 키스를 날리는 그녀의 사진이 들어있었다. 아이고 맙소사. 스테이튼씨가 이것까지 봤으면 흉내로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네.
아름답고 소중하지만, 쓸데없이 화려하고 무겁다.
정말 그녀다운 선물이군···
그래도 영 마음에 안 들면 그냥 팔아도 된다는 쪽지까지 들어있네. 이 아가씨가 배려라는 걸 언제 또 배운 거지, 참.
체스터 이 녀석이 또 뭐라고 쓸데없는 농담을 할 걸 예상했지만, 그에겐 더 중요한 게 있었나 보다.
“짜잔, 저게 우리 호텔이야. 끝내주지 않아?”
저 앞에 있는 니미츠 호텔은 작고 아담했지만, 매우 쾌적해 보였다. 확실히 그가 자랑스러워할 정도긴 한데, 뭔가 좀 부족하다.
“···체스터, 너네 호텔 해적선 개조해서 만들었다 하지 않았냐?”
비주얼이 좋은 것과는 별개로 딱히 해적선과는 관계없어 보이는데?
“음? 해적 출신이 만들었다고는 했지, 해적선으로 만들었다고는 안 했는데?”
“이 새끼 밑장 빼는 거 보소···”
역시나 체스터의 허언증이었네. 어쩌면 할아버지가 해적이었다는 것도 구라일지도 몰라. 아니, 할아버지가 존재하기는 하나?
“할아버지!”
호텔 입구 옆에 있는 흔들의자에 수염이 덥수룩하게 나 있는 찰스 니미츠 (Charles H. Nimitz)가 앉아있었다.
아, 존재하긴 하는구나.
마치 죽은 것처럼 눈을 감고 있는 그는 우리가 바로 앞까지 왔고, 체스터가 몇 번이나 그의 이름을 불러댔지만, 미동도 없었다.
“음?”
어디선가 중얼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고, 체스터가 몸을 기울여 찰스의 입에 귀를 갔다 댔다.
“대일, 할아버지가 뭐라 중얼거리시는 것 같은데, 잘 안 들려. 네가 한번 들어볼래?”
체스터는 여름 항해 중에 붕산을 부어버린 바람에 들리지 않는 한쪽 귀를 건드리면서 나에게 부탁했다.
그리고 내가 그의 입에 귀를 대는 순간···
“왁!”
“으악!”
찰스가 눈을 부릅뜨며 큰소리를 냈고, 나는 깜짝 놀라서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어설프구나, 애송이!”
“할아버지 제가 뭐랬어요, 백 퍼센트 속는다고요, 하하하!”
내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찰스와 체스터 둘 다 숨이 넘어가게 웃어댔고, 난 신발 한 짝을 벗어서 체스터의 등짝을 후려갈겼다.
이대로 가면 손자의 등짝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는지, 찰스가 기침하며 자기소개를 했다.
“이런, 초면에 괜히 짓궂은 장난을 쳐버렸군, 미안하네. 체스터의 할애비이자, 이 호텔의 주인장 찰스 니미츠라고 할세.”
“만나 봬서 반갑습니다, 니미츠 씨. 체스터한테서 많이 들었습니다.”
TMI급으로 많이 들었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야.
“나도 너에 대해 많이 들었단다. 특히 갤버스턴 허리케인 때 코카콜라에서 지원해준 덕분에 여기 텍사스에서 네 이름 모르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게야.”
“아, 그거요. 뭐, 해야 할 일은 한 것뿐이죠.”
“대일, 세상에는 겸손 떨지 말고 자랑을 해야 할 때도 있는 거야.”
아.
원 역사에서 전공에 비해 명성이 너무 적어서 결국 해군 원수가 되지 못한 (지금은 내 귀여운 후배인) 레이먼드 스프루언스가 생각나네.
···지금 일본 상황을 보면 이번 세계선에서도 못 달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아마도?) 태평양 전쟁의 부재로 인해 진급 길이 막혀 버릴 미래의 해군 제독 및 원수들 다수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어쨌든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구나. 체스터, 가서 특실 준비되었는지 한번 확인해봐라.”
“네, 할아버지!”
나도 혹시 뭐 도울 게 없냐고 물어보려던 찰나에, 매우 익숙한 사람이 호텔 로비에서 나를 불렀다.
“여, 대일, 빨리도 오는군!”
“브라우닝 씨, 오래간만입니다!”
존 브라우닝은 원래 아칸소주의 어느 장교를 방문했던 참이었다고 한다.
마침 내가 포츠머스 조선소에 참석하고 훈장 받으러 본토로 다시 돌아왔다가,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간다는 말을 어떻게 듣고, 나에게 연락해서 텍사스에서 만나기로 일정을 잡은 것이다.
아칸소 출신 유명한 장교가 누가 있더라···생각이 안 나네.
“쓸데없는 인사말은 생략하고, 결론만 들어가지. 네가 주문한 3가지 총기 중에서 마지막 물건 있잖아? 일단 프로토타입은 다 완성했어.”
아니.
콜트 M1911이랑 PPS(-43)는 그렇다 치고, M2 중기관총까지···? 내가 기억하기엔 1930년대쯤에야 본격적으로 채택되고 생산에 들어가는 그걸?!
“브라우닝 씨···혹시 당신은 신입니까?”
“신은 아니지만, 만약 악마의 우두머리를 죽일 수 있는 무기가 필요하면 나를 찾아오겠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양반은 그런 자뻑이 넘치다 못해 중2병스러운 발언을 할 자격을 얻었다.
가끔씩 시대를 초월한 물건을 보고 외계인을 고문해서 만들었다니 뭐니 그런 농담을 하곤 한다.
브라우닝은 그런 케이스가 아니다. 이 인간 자체가 외계인이다.
그러나 그렇게 브라우닝을 속으로 찬양하다가, 그가 나를 중기관총을 세팅해놓은 공터로 데려가서 시범 사격을 시켜주자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일단 화력은 적당히 굵기가 있는 나무를 썰어버릴 정도로 죽여줬다. 이 정도면 사람은 물론이고 1차 대전 기준으로 비행기, 그리고 어쩌면 탱크까지 썰어버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쓸데없이 크고, 무겁고, 잔고장이 많은 데다가 너무 빨리 가열이 되었다. 사실상 제대로 써먹을 수 없을 지경이다.
이건 뭐 브라우닝이라고 부르기에도 부끄러우니 그냥 –브–라고 불러야겠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도 하나 있었다.
내가 요구한 스펙대로 만드는 데 들어갈 예상 개발비를 물어봤는데···
“···0이 하나 더 많은데요?”
“뭐야? 어, 진짜네. 수정하지.”
“역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액수는 좀 과했다고 생각-아이고 0을 또 붙이셨네.”
아무나 군수 사업에 뛰어들 수 있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아오 미치겠네, 이 정도 개발비면 생산 단가도 막대할 텐데, 1차대전 때 도입이나 할 수 있을련지 모르겠다.
하, 존 퍼싱을 어떻게 만나서 잘 한번 구슬려봐야겠군. 육군도 아닌 해군인 나의 제안을 어떻게 전달할지는 둘째 치고.
“뭐,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라고. 일단 기관권총-”
“기관단총.”
“-기관단총도 거의 완성 직전이고, 권총은 사실상 완성했고. 이건 특별히 자네를 위해 만든 거야.”
내 침울한 심정을 이해했는지, 브라우닝은 나에게 뭔가를 건네줬다.
그리고 내 입가가 찢어질 정도의 미소가 활짝 피었다.
“아니 이 사람이, 제가 이런 걸 좋아하는지 어떻게 아셨습니까!”
맙소사.
상아 손잡이 M1911이라니.
하하하, 패튼 이 개새끼야, 내 레어템이 네 레어템보다 더 쩐다고!
*****
10월
러시아 제국, 레발
“후후후, 아름답군.”
오래간만에 집에 온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 대위는 지하실의 풍경을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러일전쟁이 종전한 지 약 4개월.
포츠머스 조약에 따라 러시아 극동군은 만주에서 철수해야 했고, 그 덕분에 운게른은 약 1년 반 만에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다.
처음에 사관학교에서 자퇴하고 참전하겠다고 했을 땐 부모는 노발대발했고 아버지는 심지어 의절까지 해버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1년 만에 무려 대위로 진급까지 하고, 성 블라디미르 훈장 (Imperial Order of Saint Prince Vladimir) 4급까지 수여 받았기에 전쟁영웅으로서 환대받으며 귀향할 수 있었다.
다만 그가 자신의 방을 전리품으로 수집해온 일본군의 제복, 총기, 이빨, 손가락, 그리고 해골 등으로 방을 장식하자 부모는 제발 지하실에서 하라고 빌 수밖에 없었다.
극동군이 복귀한 후로부터 상벌이 뚜렷했다.
우선 러일전쟁 내내 우유부단함과 무능함으로 여러 번의 패배를 일으킨 자슐리치, 스테셀, 포크 등 몇몇 장군은 몇 개급 강등당하거나 강제 전역을 당하기도 했었다.
그 반면 니콜라이 트레챠코프, 게오르기 스태켈베르크, 콘스탄틴 스미로노프 등 (러시아군 기준으로) 일관적인 유능함을 보여준 지휘관들에게는 각종 포상과 훈장이 수여 되였다.
특히 두 중장은 성 게오르기 훈장 3급을 받을 뿐만 아니라 대장으로 진급까지 하였다.
제2차 산데푸 전투에서 일본 만주군을 격파한, 제6 시베리아 군단 군단장이자, 러시아 극동군 임시사령관 알렉세이 알렉세예비치 브루실로프 중장.
그리고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뤼순항을 15만 명의 일본군의 공세로부터 막아낸 뤼순항 부사령관 로만 이시도로비치 콘트라첸코 중장.
솔직히 운게른은 처음엔 필사적으로 뤼순항의 군기를 잡으려던 콘트라첸코를 그렇게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았다. 자칫 잘못했으면, 포크 중장에게 했던 것처럼 결투를 신청해버렸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의 진정성과 효율성은 결국 운게른을 감화하고 말았고, 뤼순항 공방이 끝날 무렵엔 그를 진심으로 존경했고, 장례식에서 맨 앞에서 운구하기까지 하였다.
이 모든 것이 자신에게 영감을 준, 혼자서 일본군 장군을 3명이나 죽여버린 한국의 어느 청년 덕분이다.
“언젠가 한 번은 이 한국이란 나라에 가봐야겠군. 어떤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되는걸?”
*****
그 무렵, 런던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는 아쉬움과 당혹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생각보다는 선방한 것이 영 마음에 안 들었다. 물론 상당수 열강 국가들은 애초에 러시아가 이길 것이라고 예측하기는 했다.
그러나 울리야노프처럼 러시아 내부 사정을 어느 정도 잘 아는 사람이 보기엔 러시아는 질 가능성이 컸고, 패배해야만 했었다.
만약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했으면, 그리고 올해 1월에 발생한 대규모 시위에서 유혈사태가 발생했다면 얼마나 큰 혁명의 원동력이 되었을까 생각하니 너무 아쉬울 수 밖에 없었다.
‘내무부 장관 권한대행 완용 리 백작···차르가 동방에서 아주 악랄한 용병 하나를 데리고 왔군 그래.’
언젠가는 어떻게 손을 봐야할 요주 인물이다.
그리고 일본에서 고토쿠 슈스이라는 자칭 아나키스트가 러시아어로 써서 보낸 편지 한 장은 읽어보면 읽어볼수록 참 희한했다.
“혁명이 필요한 건 러시아뿐이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