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traitor RAW novel - Chapter (86)
매국노의 원수 자식-86화(86/773)
86_헛된 꿈을 꾸는 자들 (2)
1905년 8월
함경남도 북청군
터벅터벅
말복임에도 불구하고 선선하게 불어오는 안산의 바람에 홍범도의 머리칼이 휘날렸다.
일본군을 수십 명은 사살한 소총을 어깨에 멘 그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정겹고 푸르른 냄새를 마음껏 들이마시는 그의 코끝이 약간은 시큰해졌다.
“하, 얼마 만에 맡아보는 고향의 냄새인가.”
처음엔 아내를 포함해 동지들을 제외하면 주위 사람 모두 만주까지 나가서 일본군과 맞서 싸우겠다는 홍범도와 그의 일행보고 너무 무모하다고 말렸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누구도 그들이 험난한 타지에 나가서 일본군의 뒤통수를 지속해서 두들겨 친 성과가 없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대장님, 앞으로 어떡하실 겁니까?”
부하 중 하나가 그에게 묻자, 홍범도는 어깨를 쭉 펴고 주변의 산지를 빙 둘러보면서 답했다.
“뭘 어쩌긴 어째, 다시 생업으로 돌아가서 사냥이랑 농사나 할 거야. 이제 이 총으로 왜놈이 아닌 짐승들을 사냥해야지, 하하하!”
어쩌면 조국은 아직도 해방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이 나라의 주권이 일본이 아니라 저 미국으로 넘어갔다는 말도 오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뭐, 미국이 폭정을 일삼으면 이젠 미국을 향해 들고 일어서면 되는 거지. 이젠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닌데.’
최악의 가능성이 실현되지는 않기를 바라는 그의 시야에 저 멀리서 자신 쪽으로 오는 사람 무리가 들어왔다.
“어, 대장님. 저 사람들은 누굽니까? 주민들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러게, 어디 보자···순사들이잖아? 여기서 뭐 하는 거지?”
그중 가장 시야가 좋았던 홍범도가 먼저 확인하고는 고개를 갸우뚱했고, 곧이어 수십 명의 순사가 그들을 포위했다.
부하 중 하나가 뭔가 이상한 낌새를 차리고는 총을 들려고 했으나, 홍범도가 그 총 내리라고 손짓을 했다.
순사 중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가 서류 한 장을 꺼내 들고 자신을 쳐다봤다.
“자네가 만주에서 돌아온, 북청군 안산의 홍범도인가?”
“그렇습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군사를 조직하고, 만주로 월경하고, 일본군과 교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한 번이라도 조정의 허가를 받은 적이 있나?”
너무나도 뚱딴지같은 질문에 모두가 웅성거렸다. 조정과 관아가 모두 일본군의 감시를 받는 판국에서 어떻게 그런 걸 일일이 따질 수 있는단 말인가?
“네···? 아니, 당연히 없습니다만, 일본군이 팔도를 점령한 상황에서 그런 걸-”
그가 뭐라고 답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틈에 지휘관은 순사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순사들이 일제히 홍범도와 동지들에게 달려들어 포박했다.
“뭐야 이거, 당장 놓지 못해!”
“갑자기 왜 이러는 거요, 대장님!”
“아니 지금 이게 무슨?!”
포박이 완료되자 지휘관이 아까 꺼냈던 서류를 소리 내어 읽었다.
“북청군 안산의 홍범도, 그리고 그의 일당을 황명으로 체포한다, 죄명은···”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신돌석을 포함해, 전국 각지에서 활약한 의병들이 차례차례 체포되었다.
*****
6월
샌프란시스코
와그작와그작
옴놈놈
오하이오가 다시 아시아로 떠나기 바로 전날, 나와 체스터는 타디치 그릴에서 다과를 즐기고 있었다.
“와, 대일 이거 제법 맛있는데?”
그리고 이번 다과회의 스페셜 디저트는 바로 몇 개월 전부터 크래프트에서 개발에 들어간 초코파이와 오레오!
일단 초코파이는 내가 전생에서 기억하고 있는 형태와 맛을 제법 그럴싸하게 구현해냈다. 그렇게까지 어려운 건 아니었지, 동그란 비스킷 두 개에다가 마시멜로 끼우고 초콜릿을 입히면 되니까.
“아냐 아냐, 이게 아니야, 2% 부족해···”
문제는 오레오였다. 일단 쿠키 부분은 대강 구현해냈다만, 크림의 그 맛이 도무지 나오지를 않네.
오레오 크림은 전생에서도 어떻게 만들었는지 몰랐으니, 답이 없다. 내가 알던 그 맛이 나올 때까지 개발진을 (물론 충분한 보수를 주면서) 갈아버리는 수밖에.
“20살 넘은 장정들이 이런 달콤한 걸 좋아하다니, 허 참.”
그리고 왠지 모르게 더글러스 맥아더가 이 다과회에 불청객으로 참석했다.
“남자가 단 것 좋아하면 안 됩니까, 중위님?”
“안될 건 없지만, 물개들은 아주 어린애 입맛이군 그래.”
아 좀 냅둬요, 이 양반아 2차대전 당시 미 해군에게 아이스크림이 얼마나 중요한 물건이었는데! 술을 못 마시게 했으면 뭔가 시원하고 달달한 거라도 있어야지 않겠냐고.
음, 말 나온 김에 금주령에도 RR 운영 외에 또 뭔가 대비를 해놔야겠군. 이것도 크게 돈 좀 땡길 수 있는 사업이니까.
알 카포네 씨, 서부엔 얼씬도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아주 그냥 뒈지기 싫으면.
“아, 네, 그러면 성숙한 중위님은 이거 안 드셔도 되겠습니다?”
“그럼 저희 몫만 많아지는 거죠, 뭐.”
“누가 안 먹는다나?”
맥아더가 피식 웃으면서 오레오를 우유에 담가 먹었다. 아, 참고로 나 저렇게 먹는 거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그나저나 중위님은 왜 아직도 캘리포니아에 계신 겁니까···?”
“그러게나 말이다. 웨스트포인트의 수석 졸업생을 겨우 굴 파는 작업 감독하는 데나 써먹고 있다니, 참. 말세일세, 말세야.”
아직 1차대전도 안 터졌는데 뭔 소리야, 이 양반이.
“아, 그건 그렇고, PPS 좀 쏴봤거든? 성능 마음에 들더라고.”
아, 그래.
브라우닝이 아칸소에서 만났다는 장교는 바로 잠시 고향으로 휴가 나온 맥아더였다.
게다가 도대체 어쩌다가 그랬는지는 모르겠다만 맥아더의 귀에 내가 고안한 권총, 기관단총, 그리고 중기관총이 들어간 것이다.
아니 뭐 딱히 비밀로 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만 그걸 또 그렇게 발설해버리다니.
아 맞다, 둘 다 말이 쓸데없이 많은 인간이지, 참. 투머치토커 둘이 만났으니 무슨 얘기가 끝도 없이 나왔겠고, 결국 총기개발 프로젝트도 흘러나왔겠구나.
어차피 맥아더 같은 1차대전의 먼치킨의 손에 들어가면 좋으면 좋았지, 나쁜 건 없는지라 맥아더에게 얘 이름까지 새긴 특별 에디션 PPS 한 정을 선물해줬더니만 엄청나게 좋아했지 뭐야.
“일개 해군 주제에 이 맥아더를 감탄하게 하는 총을 만들다니, 제법이군 그래.”
···이 양반 지금 자신을 3인칭으로 불렀냐?
아냐 아냐, 내가 그냥 잘못 들은 거겠지. 어지간히 미친놈이거나 진짜 귀족 출신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런 쪽팔린 화법을 쓸 수 있겠어.
제발 일본아, 이번 세계선에선 태평양 전쟁 일으키지 마라. 나도 그렇고, 체스터도 그렇고, 이 황당한 인간하고 같이 작전 수행하기 싫단 말이야···
“안 그래도 캘리포니아도 따분해지려고 했는데, 이 총기 덕분에 삶의 활력을 되찾았지 뭐야. 너 같은 인재가 육군으로 오지 않은 게 참 아쉽군.”
들었냐, 패튼? 나중에 육군 원수 될 사람이 내가 웨스트포인트로 못 간 게 아쉽댄다, 이 새끼야.
뭐, 내가 뒤끝 쩐다고?
불만 있으십니까 패튼? 그러면 샌프란시스코로 오십시오. 나는 옥수수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And I also 항공조아.
아 그래, 말 나온 김에, 항공기 관련 사업은 순항하다 못해 마하를 돌파하려고 한다.
세상에, 최근에 편지를 하나 받았는데 라이트 형제, 글렌 커티스, 그리고 헨리 포드가 합작해서 항공기 및 수송 차량 개발 및 생산회사를 하나 차렸다지 뭐야.
그 이름하여, 아메리칸 에어로모터 컴퍼니 (American Aeromotor Company), 약칭 에이에이씨.
···음, 어감은 좀 그렇지만 아무튼 어때!
내년쯤에는 샌프란시스코 대지진도 일어나고, 그걸 예견하고 대비하여 인명과 재산피해를 대폭 감소시킨 나에게 (생명을 구했다는 보람 외에도) 제법 큰 공이 되겠지.
그러면 마침 후년에는 드디어 소위도 되겠다, 그 업적을 기반으로 바드 상원의원, 듀이 원수, 루스벨트 대통령 등 조금이라도 접촉이 있는 모든 연줄을 동원해서 미군 최초의 파일럿이 되고야 말겠다.
아주 그냥 해군항공대를 만들 수 있으면 더더욱 좋고. 야, 이러면 미 공군이 육군이 아니라 해군에서 탄생하는 수도 있겠는걸?
설령 그렇게까지는 안 되더라도, 전역하든, 군에 남아있든, 이 기세로 가면 1940년대쯤엔 내가 항공기 관련 최고 전문가 중 하나가 되겠지. 그러면 헨리 아놀드고, 커티스 르메이고, 전부 어떻게든 내 영향력 안에 들어가게 되는 거야.
미군의 모든 것이 해군으로 통하게 될 것이다, 크하하하하하!
“에헴.”
헛기침 소리가 들려와서 고개를 들어보니 체스터와 맥아더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저 녀석 맨날 저러나?”
“어후, 말도 마십시오, 중위님, 저 녀석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 말입니다.”
“나도 동의하네.”
유리잔에 비친 내 얼굴은 아주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 음, 죄송합니다, 잠시 딴생각 좀 하고 있었습니다.”
“왠지 아주 끔찍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으니 물어보지는 않겠어. 그나저나 자네 목에 그건 뭔가?”
내가 머쓱해서 뒤통수를 긁는 과정에서 목에 차고 있는 펜던트의 체인이 맥아더 눈에 들어왔나 보다.
“아, 이거 말입니까? 아니 뭐 별건 아니고 지인이 준 선물인데.”
“그렇단 말이지? 실례가 안 된다면 혹시 봐도 되겠나?”
“아 뭐 그러십시오.”
내가 별 생각 없이 펜던트를 꺼내려고 하던 그 순간 체스터가 급박히 외쳤다.
“야, 대일, 그걸 지금 여기서 꺼내면 어떻-”
번쩍
“대일, 이 병신아!”
“미안, 진짜 미안!”
“이 맥아더를 제압하다니, 이건 무슨 신무기인가!”
그날 타디치 그릴은 일시적 시각장애인 3명을 받았다.
여하튼, 나와 체스터는 다시 오하이오에 승선했고, 다음날 아시아를 향해 출항했다.
어디보자, 일본군의 트롤짓으로 완전 난장판이 된 내 생애 첫 항해는 한국과 일본 쪽으로 갔다. 지금 우리가 가는 방향은 중국과 필리핀.
하, 제발 이번엔 별다른 사고가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
뭐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일단 소화기는 대량으로 챙겨가자.
*****
8월, 대한제국
한성부, 경운궁
광무황제 이형은 중명전에서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지도를 살펴봤다.
근래 들어서 쇠잔해가던가 싶던 국운이 갑자기 융성하기 시작했으니, 어찌 입가에 미소가 떠날 수 있으리.
이 나라를 노리고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흉계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이것만 해도 풍악을 몇 주간 올려야 할 경사 중의 경사지만, 더 길한 것은 드디어 미리견이 그토록 기다려왔던 군사적 지원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이 결국 빛을 발한 것이었다.
게다가 얕은수를 부리긴 해도, 국제정세에 밝은 학부대신 이완용은 아라사에서 관직과 작위까지 받아서 돌아오지 않았던가. 본국을 놔두고 타국의 신하가 되었다는 게 꺼림칙한 점이 없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심신이 한계에 도달했다며 사직을 청하는 전문을 올렸으나 이형은 윤허하지 않았다. 분명히 위험요소가 산재하는 행보를 보여준 그라곤 해도 아직은 쓸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에 그의 셋째 아들 이대일은 미리견의 수군에 들어가 장교까지 되었으며, 심지어 일본군과 교전을 하여 격파하는 전공을 세워 훈장까지 수여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즉 아라사와 미리견, 두 강대국이 조선의 편을 들어준 것이며, 심지어 둘과의 연결책이 되어주는 이씨 부자가 그의 신하였다.
그리고 이형은 지도에서 만주와 청나라 쪽을 야망이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만약 이씨 부자만 계속 손에 쥐고 두 강대국의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면, 이제 이 나라도 북쪽으로 더 확장해나가 단순한 이름뿐만이 아닌 진정한 제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위대한 업적을 이룬다면 자신의 이름도 역사에 남을 명군의 반열에 반드시 들어갈 터!
“이 둘이야말로 정말 하늘에서 짐에게 내린 보배가 아닌가!”
이씨 부자를 속박할 기책을 고민하는 이형의 사고를 누군가가 방해했다. 밖에서 누군가가 요란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갑자기 이게 무슨 소란인가!”
“폐-폐하, 학부대신 이완용이 방금 궁궐로 들이닥쳤습니다!”
“호오, 지금 짐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바로 달려온 것인가? 어찌 이렇게 갸륵할 수가!”
그러나 중명전에 들이닥친 조선의 학부대신이자 러시아의 백작 이완용의 얼굴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광적인 기운이 가득했다.
“폐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이형이 무슨 일이냐고 추궁할 틈도 없이 이완용은 당장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상소장을 바닥에 내려놨다.
그리고 그 상소장 앞에는 날이 서슬 퍼렇게 빛나는 도끼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