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105)
재벌집 만렙 아들-105화(105/416)
< 태성그룹 임원회의 (2) >
회의가 길어지면 두 시간도 훌쩍이라더니.
‘진짜로 두 시간 넘게 회의를 할 줄이야. 이 인간들은 지치지도 않나? 할 말이 뭐 이렇게 많아?’
의욕이 지나치게 올랐다는 게 문제이려나.
우광화학, 우광증권, 우광건설을 날로 먹게 생겼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 이렇게 됐다.
태성그룹 임원들은 콧김을 뿜어내며 욕심을 불태우기 시작한 것이다.
“우광방직은 어떻습니까? 다른 건 그저 그런데, 폴리에스터에 관해서만큼은 국내 최고 수준입니다.”
“우광제화도 나쁘지 않습니다. 왕자표 고무신의 짝퉁이지만 엄마표 운동화가 제법 히트를 쳤지요.”
“우광광업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연탄보일러가 널리 보급되면서 겨울철엔 연탄을 찍어내는 대로 불티나게 팔린다더군요.”
이 사업들은 나쁘지 않다.
다만 단기적이란 점에서.
‘대한민국 산업 구조가 고도화되면서 경공업에 노동집약적 산업인 방직과 제화는 점차 사양산업으로 들어갈 테고.’
제법 수출 기여도가 큰 주력상품에 속해서 그런지 황금색이다.
‘고유가 시대에 연탄은 비교적 저렴한 연료에 속하니까. 석유파동 때는 반짝 뜨지만, 80년대 들어서 정부의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이 추진되면서 사양산업이 되지.’
그래서 현재까지는 황금색!
몇 년간 잘 굴려먹다가 비싼 값에 되팔아먹기 딱인 사업이었다.
‘태성그룹 임원진들이 회의 준비를 많이 해왔군.’
구체적인 수치까지 자료 조사도 열심히 해왔더라.
게다가 나름대로 장기적인 전망이나 태성의 미래에 관한 청사진도 슬쩍 비치는 경우도 많았고.
‘든든하구만!’
서열에 매몰되지 않고 임원들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는 분위기였다.
할아버지를 비롯해 계열사 사장들도 부지런히 펜을 놀리면서 메모를 생활화하고 있고.
‘지금까지 어떻게 기업을 이끌어 왔는지 조금은 알 것 같네.’
다들 열심이었다.
둘째 큰아버지도 우광 계열사 인수에 적극적으로 뜻을 내비쳤다.
‘동일한 예산하에 가장 많이 확장할 수 있는 방안으로 준비했군. 무려 12개의 기업이나 골라오다니.’
게다가 그것들 전부가 은색이 아니면 미약한 황금색이다.
‘이해득실 계산에 굉장히 능한데? 손해 보지 않으려고 머리 많이 굴렸어.’
그래서 아쉽다.
‘통이 작아. 모처럼 좋은 기회가 왔는데, 자잘한 계열사를 늘리는 데에서 그치다니.’
좀처럼 잡기 어려운 기회였다.
재계 순위 9위나 되던 우광을 야무지게 뜯어먹을 기회는 흔치 않다.
‘이럴 땐 큼지막한 것으로 골라 배 터지게 먹어야지.’
할아버지는 그걸 알고 있기에 둘째 큰아버지의 말에 고개는 끄덕일지언정 크게 기뻐하진 않았다.
차남의 능력이 기업이 안정화되면 잘 쓰일지 몰라도 지금은 사업을 확장할 때였으니까.
결국 장남의 말에 좀 더 무게를 실어주는 느낌이랄까.
“태성백화점의 의견은 어떤가? 네놈들도 우광백화점을 인수하자고 조를 테냐?”
“우광백화점은 줘도 안 먹어요! 흥!”
고모는 똑단발을 휘날리며 콧방귀를 뀌었다.
“차라리 우광신문, 우광방송, 우광극장이나 인수한다면 또 몰라도요.”
쇼핑을 할 때도 느꼈는데.
고모의 쇼핑 기준은 참으로 단순했다.
예쁜가 안 예쁜가, 어울리는가 안 어울리는가에 따라 옷과 잡화를 골랐다.
우광 계열사 인수 기준 역시 비슷했다.
‘태성의 영향력과 입소문을 퍼뜨릴 수 있는가 없는가를 기준으로 인수할 기업을 추려왔군.’
우광신문 똥색, 우광방송 똥색, 우광극장 황금색.
‘다음 정권이 제일 먼저 한 일이 언론통폐합 조치였거든.’
언론통폐합 조치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통해 시행한 언론 통제 정책이다.
언론사 구조 개선이라는 명분하에 신문사와 방송사, 통신사 난립을 정리하고 공영방송 체계를 도입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정권에 저항적인 언론인을 해직하고 언론을 체제에 순응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덕분에 우광신문은 문을 닫고, 우광방송은 국영방송으로 통폐합되어서 빼앗겨 버린다.
‘90년대라면 모를까. 지금으로서는 신문과 방송국은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철퇴 맞기 십상이지.’
나는 이번에도 빨간색 색연필로 우광신문과 우광방송에 X 자를 죽죽 그었다.
“태성건설에서는 달리 의견 없나?”
“없습니다.”
아버지는 묵묵히 듣고 있을 뿐, 달리 입을 여는 법이 없었다.
“의견 수렴 과정인데 참여하는 성의는 보여야지. 말해 봐.”
“저 같은 애송이가 뭘 알겠습니까?”
아버지의 목소리는 겸손했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전 고작 태성건설 전무에 지나지 않았고, 오랜 시간 지방과 중동을 떠돈 탓에 아는 게 없어서 그렇습니다.”
“너도 이제 태성건설 사장이야. 사장이면 사장답게 방향을 보여줘야지. 애송이도 태성의 미래는 꿈꿀 수 있다.”
“우광건설을 생각하고 들어왔습니다만, 그건 심 사장님께서 맡아서 인수해주실 것 같아서 긴말 보태지 않겠습니다.”
아버지는 말을 골랐다.
“그래도 태성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우광그룹 계열사 중에 우광병원과 우광제약, 우광연구소, 우광장학재단을 검토해 보시는 게 어떨까 생각합니다.”
우광병원과 우광제약은 눈부시게 빛나는 황금색이다.
‘접근성이 좋은 자리에 위치한 데다 일본 와세다병원과 연계하여 국내 1위 항암전문병원으로 거듭나는 곳이지.’
독일과 일본은 항암선진국으로 유명했다.
‘우광제약은 일본의 요우기제약과 기술협약 로열티를 지급하며 제약 쪽엔 히트 상품을 여럿 보유하고 있으니까.’
반면 우광연구소와 우광장학재단은 시커먼 똥색이었다.
“사람을 살리는 사업, 나라를 살리는 사업에 주목했구나.”
“태성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돈이 안 되고 투자만 해야 하는 곳이야. 모자란 자금은 어떻게 충당하려고?”
“태성이 그렇게 가난합니까?”
아버지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오늘 당장은 굶더라도 내년 농사를 지을 종자는 남겨둬야죠.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면 못 할 것도 없잖습니까?”
이를 두고 태성그룹 임원들의 의견이 크게 갈렸다.
“우광연구소는 돈 먹는 하마가 아닙니까? 박사들 월급과 투자금에 비해 나오는 실적은 코딱지잖습니까?”
“우광장학재단이요? 매년 장학금이랍시고 수억 원이 들어가는데, 정작 학생에게 주는 돈은 수백만 원뿐인 사학비리의 온상이잖습니까. 돈세탁처가 필요하십니까?”
반대하는 의견만큼 동조하는 의견도 목소리가 높아졌다.
“기술개발과 투자하면 태성 아닙니까? 목숨 걸고 기술개발에 투자해야죠. 우광연구소 인수해야 합니다.”
“안 그래도 양질의 인력을 수급하기 위해 인재 양성에 힘을 써야 할 때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우광장학재단이 보유한 사립학교라면 제법 괜찮습니다.”
흠, 우리 아버지는 희한한 데에서 어그로를 잘 끄시네.
사실 아버지의 선택은 그리 나쁘지 않다.
‘확률은 반타작, 결과도 극단적이군.’
아버지를 향한 임원들의 지지 역시 양극단으로 나뉘었다.
“태성의 향후 성장을 고려해 볼 때 미래를 위한 투자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심 사장은 특히 아버지를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축에 속했다.
“부족한 자금은 다른 계열사를 키워서 보충하면 됩니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기업에게 지속적인 성장이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심 사장이 왜 아버지를 선택했는지 알 수 있었다.
“태성의 미래를 생각하는 방향성 제시라는 점에서 반드시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심 사장은 사업을 키우는 데 특출난 능력이 있었다.
그 예로, 10억이란 사업자금을 기반으로 태성화학을 7년 만에 300억짜리 사업으로 키웠다.
‘심 사장이라면 아버지의 단점을 보완해주기 적격인 사람이로군. 할아버지가 왜 심 사장을 아버지에게 붙여줬는지 알 것 같다.’
물론 아버지처럼 노빠꾸로 배포 크게 내지르는 상사를 오래 모시다가는 과로와 혈압으로 비명횡사를 면치 못할 테지만 말이다.
뭐 본인이 좋다는데, 그것도 팔자겠지.
탕!
할아버지는 단상을 내리쳐서 좌중의 이목을 모았다.
“그만. 계열사 인수는 태성의 미래가 걸린 중대사다. 신중하게 검토하고 또 검토해도 부족하지 않아.”
“예, 회장님.”
“임원들의 뜻은 잘 들었으니, 구체적인 논의는 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 마무리 짓겠다.”
“예, 알겠습니다.”
그러려고 모인 전 계열사 임원회의였다.
각 계열사의 고충과 미래 계획을 듣고, 우광의 계열사 인수 검토 자료를 돌려보고, 구체적인 사항을 논의하기 전에 뜻을 모으고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
그게 오늘 계열사 임원회의의 목적이었다.
“이만하면 나와야 할 말들은 다 나온 것 같고.”
회의를 마무리하잔 소리였다.
할아버지가 임원들을 돌아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빨간색 색연필을 12색 색연필통에 잘 집어넣었다.
우광 계열사 자료를 인수 1순위부터 41까지 번호를 매기는 작업을 전부 끝냈기 때문이었다.
“많은 것이 걸린 회의였던지라 다들 머리가 복잡했을 터. 때로는 조금 더 단순하게 생각을 정리해보는 시간도 필요하겠지. 정혁아.”
“네?”
뜬금없이 불렸기에 엉겁결에 대답했다.
“네 생각은 어떠냐?”
“저요?”
저절로 눈이 동그래졌다.
나는 검지로 내 가슴을 콕 찔렀다.
“전 오늘 발언권이 없는데요?”
“착하고 얌전하게 견학했잖느냐. 견학 끝났으면 소감 발표 한마디는 들어 봐야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가 나대는 게 싫어서 새끼손가락까지 걸면서 입 다물고 있겠단 약속을 받아내신 거 아니었어요?
“회장님!”
아버지가 깜짝 놀라서 입을 열었다.
“고작해야 여덟 살짜리 어린애입니다.”
“여덟 살짜리 어린애는 뇌가 없는 줄 알아? 태성의 미래라면 애송이도 꿈꿀 수 있다니까.”
“회장님, 정혁이에겐 너무 과한 요구를 하십니다. 정혁이는 오늘 그저······.”
할아버지가 직접 판을 깔아주셨는데, 실망시켜드릴 순 없지.
“좋아요. 할게요, 견학 소감 발표.”
아버지가 더 곤란해하시기 전에 입을 열기로 했다.
이게 뭐 그리 어려운 거라고.
“세 가지. 임원 아저씨들에게 묻고 싶은 게 생겼어요.”
“세 가지나?”
나는 손가락을 꼽았다.
“첫째, 큰돈 들어가는 일인데, 왜 장기와 단기로 나눠서 인수를 검토하는 사람이 없죠?”
계열사 인수합병도 일종의 투자다.
투자는 장기 투자와 단기 투자로 나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장기 투자는 오래 보유하는 우량 주식과 같고, 단기 투자는 팍 오를 때 치고 빠져 시세차익을 노리는 급등주와 같다.
“······!”
회의 끝나면 나가려고 미리 서류를 정리하던 소리가 뚝 멈췄다.
뚜껑까지 닫았던 만년필을 도로 꺼내 메모하는 임원도 있었다.
“확실히 그렇긴 하군요. 우광 알짜배기 계열사를 추리는 데 열을 올리다 보니······.”
“크흠, 이왕이면 중장기 투자를 겸해 우광의 계열사를 인수할 생각에 그만······.”
“듣자 하니 외국에서는 M&A 전문 회사도 있다더군요. 부실기업을 인수해서 구조조정 및 산업 정리를 한 후에 쪼개어 비싸게 되파는 회사 말입니다.”
“수익성이 무척 좋다고 들었습니다. 우광 계열사를 사서 되파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요?”
오랜 시간 공들여 키운 기업이 아니니 쪼개 팔 때 애착을 둘 것도 없다.
점점 내게 쏠리는 시선이 많아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손가락을 하나 더 꼽았다.
“둘째, 왜 시장 상황이 비슷할 거라는 가정하에 인수 여부를 결정하세요?”
조만간 제2차 석유파동이 터질 텐데?
“악재가 예상될 때와 아닐 때로 나눠서 검토해 봐야 하는 거 아닐까요?”
임원들 중 한 명이 피식 웃었다.
“도련님께서 어려서 뭘 잘 모르시나본데 말입니다.”
“자넨 가만히 있어 봐! 지금 발언권 가진 사람은 정혁이야!”
할아버지가 할 말 많아 보이는 임원의 입을 막고 대신 입을 열었다.
“정혁아, 시장 상황은 언제나 유동적이었다. 우리가 그런 것도 고려하지 않았을까 봐?”
“몇 년 전에 석유파동이 터졌을 때요. 그때는 어땠는데요?”
예상치 못한 세계 이벤트급 악재에 태성도 크게 휘청거렸다.
“그, 그건······.”
몇 년 전, 중동 전쟁이 터지면서 전 세계는 느닷없이 터진 석유파동에 골머리를 앓았다.
한국도 고유가에 허덕대고 있을 때, 태성이라고 허리띠를 안 졸라맸을까.
그때 눈물을 머금고 되팔아야만 했던 태성의 계열사가 세 개라고 했던가, 네 개라고 했던가.
“우리 아빠가 청와대 오찬 초대장을 받았대요. 혹시 왜 받았는지 아시는 분 있어요?”
그야 대통령에게 언질한 제2차 석유파동 가능성을 인정받았기에 받을 수 있었지.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아버지에게 쏠렸다.
< 태성그룹 임원회의 (2)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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