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107)
재벌집 만렙 아들-107화(107/416)
< 고작 여덟 살 >
난 아버지의 손을 잡고 태성그룹 본사 회의실에서 나왔다.
아버지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그런 까닭에 어느 순간부터 걷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황금 비율의 모델 같은 기럭지는 쓸데없이 다리만 길어놔서 내 짧은 다리로는 그 보폭을 맞추기가 힘들었다.
“아···! 이런.”
아버지가 날 훌쩍 안아 들었다.
“천천히 걷자고 말하지. 이렇게 뛰고 있을 줄은 몰랐다.”
“괜찮아요. 안 그래도 좀 쑤셨는데요 뭐.”
“내내 꼼짝 않고 얌전하게 앉아 있었지. 지루하고 심심했을 텐데 고생했다.”
아버지가 내 등을 작게 토닥거렸다.
아버지가 성큼성큼 걸어가자, 나는 아버지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남자 향수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정혁아,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뭔데요?”
“쪽지 말이다.”
아까 내가 심 사장에게 보낸 것을 말하는 건가?
“누구한테 받았니?”
“······네?”
나는 어리둥절했다.
아버지가 슬쩍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내 귀에 작게 속삭였다.
“태성을 뒤에서 몰래 도와주는 사람이 가끔 쪽지를 보내거든.”
그러고 보니 대통령이 사석에서 술자리를 가진다고 아버지를 호출했을 때, 나는 김 비서를 통해 쪽지를 세 장 전달한 바 있다.
덕분에 아버지는 대통령의 눈에 들어 술 석 잔과 함께 청와대 오찬 초대장까지 받을 수 있었다.
“목적과 의도를 숨긴 자의 호의는 함부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흠칫했다.
아버지가 설마 내 야망과 목적은 물론 의도까지 단번에 꿰뚫어보시고······.
“혹시 이상한 아저씨가 사탕 준다고 해도 따라가면 안 된다.”
“······.”
에라이!
나는 ‘그 쪽지의 배후가 바로 접니다!’ 하고 깜짝 발표를 하는 대신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 사탕 싫어해요.”
“과자를 사준다고 해도, 초콜렛이나 아이스크림, 솜사탕과 빵은 물론······.”
이거 또 잔소리가 발동되셨구만!
평소에는 과묵하신 양반이 희한하게 나만 보면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를 대하듯이 하신다니까.
나는 동전 지갑을 열어서 아버지의 입에 사탕 한 알을 쏙 넣어주었다.
“음?”
“머리를 많이 쓰면 단 걸 먹어줘야 한대요. ”
비서실 소속 여직원이 챙겨준 사탕이었다.
엉겁결에 사탕을 받아먹게 된 아버지가 입을 다물고 나를 보았다.
“이 사탕이 다 녹을 때까지만이라도 쉬는 거예요?”
나는 방긋 웃었다.
“회의하는 내내 집중하셨잖아요.”
응? 사탕 한 알이 뭐라고 그렇게 감격한 눈으로 봐요?
“우리 아들이 최고다.”
아버지가 날 꽉 끌어안았다.
묵직한 향수 냄새와 섞여서 달콤한 딸기향이 퍼졌다.
무방비한 상태에서 훅 들어온 애정표현에 나도 모르게 그만 어린애 같은 웃음소리를 내버리고 말았다.
“우리 정혁이 정말 의젓하더라. 누가 우리 아들을 여덟 살짜리 어린애라고 보겠어?”
“헤헤헤.”
“그 많은 어른들 앞에서 떨지도 않고 말도 잘하고. 정말 멋졌다.”
여기저기 받은 뽀뽀가 간지러웠다.
내가 표정관리가 이렇게 안 되는 사람이었나 싶다.
젠장, 어린애 몸뚱이란!
“우리 아들 지금까지 저녁도 못 먹어서 많이 배고팠겠다. 아빠가 짜장면 사줄까?”
“이 밤에 짜장면이 다 뭐예요.”
“그럼?”
“야식은 역시 치킨이죠. 아빠는 맥주, 나는 콜라. 어때요?”
“좋지.”
그렇게 우리는 주차장에 도착했다.
“우리 정혁이가 치킨이 먹고 싶다면······ 이따 집에 갈 때 명동 영양센터에 들를까?”
명동 영양센터라면 이 시절에 아주 유명했던 통닭집이었다.
“음, 아마 그땐 영업시간이 끝나 있지 않을까요?”
나는 방긋 웃었다.
“아주 특별한 치킨으로 준비해 놓을게요. 그러니까 오늘은 너무 늦지 않기에요.”
“음?”
지금 이 시절에 치킨이라면 전기구이 통닭이 가장 유행했고, 그다음이 가마솥에 기름을 잔뜩 부어 튀기는 시장 통닭이었다.
‘양념치킨이 80년대에 개발되니까. 아마 먹어보면 깜짝 놀라실걸요?’
치맥이 아주 끝내준다니까요?
게다가 역시 치킨엔 반반 무 많이!
그러고 보니 지금 이 시절에 치킨무가 있었던가?
뭐 그것도 문제없지!
내가 또 옛날 주방 알바하던 시절에 튀긴 치킨이 몇 마리며, 자른 무가 몇 트럭인데.
“아주 당연한 듯이 통금시간까지 야근하는 걸 상정하는구나.”
“바쁠 때잖아요.”
“정혁아, 아빠는 지금 정혁이랑 같이 집에 갈 생각인데?”
“그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네요.”
“음?”
“보세요. 회의 끝났는데도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계열사 임원들이 한 명도 없어요.”
아버지는 그제야 놀란 눈으로 뒤를 돌아봤다.
귀가하는 임원들은 한 명도 없었고, 본사 회의실의 불은 꺼지지도 않는다.
“딱히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임원들이 의욕을 불태우며 야근을 자청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
“우광 계열사 어떤 것을 인수하느냐에 따라 태성의 미래와 사업 방향이 달라질 거예요. 그걸 알기 때문에 다들 바쁘게 움직이는 거고요.”
아버지는 묘한 표정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럴 때 아빠가 빠지면 안 되잖아요. 제 걱정은 하지 말고 들어가 보세요.”
아버지는 나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쪼그려 앉았다.
날 바라보는 눈빛이 깊고도 따뜻했다.
“이제 고작 여덟 살인데. 철이 너무 일찍 든 것 같다.”
“칭찬이에요?”
“아니, 반성하는 거야.”
아버지는 내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아빠가 바빠서 아들 저녁도 못 챙겨주고, 집에도 혼자 보내야 하다니.”
“그게 뭐 별거라고요.”
나는 동전 지갑을 뒤져서 남은 사탕을 탈탈 털었다.
아버지의 손바닥 위에 알록달록한 사탕을 올렸다.
“틈틈이 쉬엄쉬엄 일하세요.”
아버지는 손바닥 위에서 굴러다니는 사탕 몇 알을 꼭 쥐었다.
내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부드러웠다.
“전 이만 갈게요.”
“먼저 먹고 자고 있어라. 아빠 기다리다가 굶지 말고. 알았지?”
“네.”
나는 얌전히 자동차에 올랐다.
부르릉!
“정혁 도련님, 잠시만요!”
심 사장이 헉헉대며 뛰어왔다.
그 손에는 내가 보냈던 쪽지가 한 장 들려 있었다.
쪽지를 발견한 아버지의 눈빛이 순간 번뜩거렸다.
“심 사장님, 저 좀 잠깐 보실까요?”
차는 이미 출발했고, 아버지와 심 사장은 주차장에 남았다.
딱.
‘어이, 수호신!’
스르륵.
‘무슨 말이 오가나 확인!’
[알았다.]* * *
아버지는 심 사장에게 말했다.
“심 사장님도 쪽지 받으셨습니까?”
“예? 예.”
“혹시 태성을 뒤에서 몰래 돕는다는 그 배후가 보낸 겁니까?”
“알고 계셨습니까?”
“누굽니까?”
심 사장은 할 말이 많다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죄송합니다. 거기까진 제 권한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익명의 배후에게 꿍꿍이속이 없을 리 없는데. 심 사장님까지 동조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태성을 돕는 분이십니다. 이 역시 태성을 위한······.”
“제가 한번 봐도 됩니까?”
심 사장은 잠시 망설이다가 쪽지를 내밀었다.
<태성화학, 투자회사, 정유회사. 결정하셨나요? 인수자금 충분해요? 차관을 받으려면 중동 공사 얼른 끝내야죠.>
아버지는 쪽지를 보고 미간을 모았다.
보다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눈으로 말없이 심 사장을 바라봤다.
“새해 첫날에 제안을 하나 받은 게 있습니다. 태성화학이 우광에 넘어가면서 거취가 붕 떴을 때.”
“형님들이 앞다투어 심 사장님께 영입 제안을 했었죠.”
“예, 그때 제가 누굴 선택했는지 기억하십니까?”
“저는 마땅한 자리조차 제시하지 못했는데도, 저를 택하셨죠.”
당시 심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뭐든 시켜주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아직입니다. 지금 제안했던 자리는 잠시 보류했으면 합니다.
-제게는 아직 끝내지 못한 소임 두 가지가 남아 있어서 말입니다.
아버지는 말했다.
“그때 심 사장님은 두 가지 소임 때문에 잠시 보류하신다고 말씀하셨죠.”
“예. 그 한 가지는 태성화학을 도로 되찾아 오는 것이었고.”
“나머지 한 가지는 태성의 또 다른 미래를 위한 대계의 포석을 다지는 일이랬던가요?”
“맞습니다.”
“태성화학을 되찾아 오는 일보다 훨씬 더 크고 장대한 계획이며, 이 나라의 금융과 산업 전반에 파급력을 미치게 될 사안이라고 하셨었죠.”
심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안상 비밀이라는 그 일을 심 사장님께서 책임지고 반드시 완수할 때까지만 기다려 달라셨지요.”
“예, 이거 그 태성의 미래 중 하나입니다.”
“이것이 말입니까?”
아버지는 다시 한번 쪽지를 살펴봤다.
“태성화학, 투자회사, 정유회사라······. 설마 우광화학, 우광증권, 우광정유를 인수하시겠다는 뜻입니까?”
“······네? 이게 말이 그렇게 됩니까?”
“······.”
심 사장은 아버지 손에서 쪽지를 가로채서 다시 읽었다.
그러더니 부르르 떨면서 말했다.
“허, 벌써 그때 우광화학과 우광증권까지 염두에 두셨을 줄이야! 아니, 이게 가능해?”
“······?”
아버지의 고개가 기울어지거나 말거나.
심 사장은 쪽지를 보며 연신 헛웃음을 흘렸다.
“진짜로 우광정유까지 인수합병한다면? 이거 한국 최대의 정유회사가 나오겠는데?”
“심 사장님?”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가능할지도?”
심 사장은 턱을 쓸었다.
“석유파동 때 우광정유에 빚이 잔뜩 쌓이면 똥값으로 인수할 수 있을 테니까······.”
“심 사장님?”
“그래서 말입니다만, 태성화학의 임원들을 중동으로 보내는 건 언제 하실 생각입니까?”
“태성화학 임원들을 중동으로 보내요?”
“예, 성준 도련님께서 중동에서 따온 건설 수주 말입니다. 그 공사를 서둘러 진행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심 사장은 다급히 덧붙였다.
“제2차 석유파동이 덮치기 전에 얼른 공사 완공하고 잔금까지 전부 받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 그렇군요.”
“성적으로 실력을 증명해야지 차관을 받기 쉬울 테니까요.”
“차관?”
“예. 석유파동 때 전 세계 경제가 휘청거릴 겁니다. 석유를 기반으로 하는 중공업은 악재를 맞아 줄도산하기 시작할 테고요.”
아버지는 그제야 아! 하고 감탄했다.
“예, 세계 중공업 국가들이 줄도산을 할 만큼 세계 경기가 침몰한다면 반대편은 떼돈을 벌 겁니다.”
“산유국들의 넘쳐나는 돈을 끌어들이자?”
“우광은 계속 침몰하고 있습니다. 우광 계열사들을 인수 합병하기 위한 협상을 계속 진행하는 동안 석유파동이 닥친다면?”
“똥값이 된 우광 계열사를 인수할 자금으로 외국 차관을 끌어오자? 그것도 오일 머니가 넘쳐나는 산유국에서?”
아버지는 쪽지를 보면서 헛웃음을 흘렸다.
“태성을 배후에서 돕는 이 사람 말입니다. 천재인데요?”
심 사장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하지만 아버지는 턱을 쓸면서 감탄했다.
“판을 이렇게까지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짜는 사람은 처음 봅니다.”
심 사장은 할 말이 많은 표정이었다.
“아버지께서 보통 거물이 아닐 거라고 말씀하시더니. 정말 그렇습니다. 이 정도 수완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아주 유명인사일 텐데.”
심 사장은 목구멍까지 튀어나오려는 말을 애써 삼키는 것 같았다.
“대체 누굽니까?”
심 사장은 제 가슴만 주먹으로 퍽퍽 치다가 마침내 긴 한숨을 내쉬었다.
“태성의 미래이자, 태성의 복이자, 태성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아주 가까운 사람이라는 것만 알려드리죠.”
“태성의 미래이자, 태성을 지지하는 아주 가까운 사람?”
심 사장이 말을 하면 할수록 아버지의 미간이 깊어졌다.
“김 비서는 아니겠죠?”
“잘못 짚으셨습니다.”
심 사장은 콧방귀를 뀌며 딱 잘라 말했다.
“도련님, 우리 태성화학 임원들을 얼른 중동으로 보냅시다. 영전하여 돌아와야죠.”
“안 그래도 이 비서만으로는 부족했던 터에 잘됐군요.”
“중동 공사를 마무리 짓고 잔금까지 받아오면 아마 태성건설 금고가 두둑해지겠군요.”
“이를 말입니까? 안 그래도 태성건설은 요즘 후원자가 많아서 예산이 넘쳐납니다.”
심 사장님은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전생에 나라를 구하셨나······.”
“네?”
“그런 게 있습니다. 이게 다 태성의 복이고, 성준 도련님의 복이겠죠. 부러워 죽겠습니다.”
“······?”
아버지가 반대로 고개를 갸웃거릴 때, 심 사장이 말했다.
“사실 오늘 회장실에서 나오면서 김 비서와 정혁 도련님에 관한 얘기를 좀 나눴습니다.”
“정혁이에 관해서?”
“정확하게는 정혁 도련님의 조기교육에 관해서였습니다.”
“조기교육이요?”
“경영 조기교육에 관한 얘기까지 나온 참입니다. 생각 없으십니까?”
아버지가 깜짝 놀라서 버럭 외쳤다.
“정혁이 고작 여덟 살입니다!”
심 사장이 온갖 상념이 다 깃든 오묘한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어떻게 고작 여덟 살밖에 안 됐을까요?”
< 고작 여덟 살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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