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11)
재벌집 만렙 아들-11화(11/416)
< 내 집 마련 (1) >
우리는 명동 장수 은행에서 나왔다.
주택복권을 현금으로 환전했다.
통장에 찍힌 금액을 보고 어머니는 손을 덜덜 떨었다.
“와, 정말 천만 원이야.”
집주인 할머니에게 돌려받은 보증금과 그동안 어머니가 차곡차곡 모아둔 예금까지.
그걸 전부 합한 금액이 약 천만 원.
아파트를 살 돈이었다.
‘이것 보세요, 어머니. 아버지 시계가 훨씬 더 비싸거든요? 그건 천만 원 갖곤 어림도 없어요.’
나는 불룩한 호주머니를 쓰다듬었다.
몰래 챙겨온 아버지 시계가 여기 들었다.
‘요즘 아파트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던데. 고작 천만 원 가지고 아파트를 살 수 있을까?’
솔직히 여차하면 내다 팔 생각으로 가져왔다
여인숙에 놔뒀다간 도둑맞기 딱 좋기도 하고.
나는 명동 거리에 늘어선 전당포를 쓱 둘러보았다.
‘여기 골목길 안쪽 구석에 스승님의 전당포가 있을 텐데. 한번 찾아가 봐?’
지하 금융권에서 알아주는 큰손 중의 큰손.
일명 명동 송골매.
그분이 바로 내 스승님이었다.
‘그 양반이라면 지금쯤 강남의 목 좋은 아파트란 아파트는 모조리 쓸어담았을 텐데.’
스승님이 왜 명동 송골매라 불렸겠는가.
매의 눈을 갖고 있어서 그렇다.
알짜배기 물건들만 쏙쏙 골라 쓸어가는 게 스승님의 특기였다.
그 눈썰미를 배우는 데까지 딱 10년이 걸렸더랬지.
* * *
복덕방 거리엔 복부인들로 꽉 찼다.
복부인이란 부동산 투기로 큰 이익을 꾀하는 돈 많은 가정주부를 뜻한다.
강남이 뜨면서 생겨난 대표적인 신조어가 바로 복부인과 프리미엄이었다.
복부인은 보통 고위 관직자의 부인이라 할 수 있었는데, 남편이 몰래 알려준 고급 정보를 기반으로 강남 부동산 시장을 휩쓸었다.
그렇게 요즘 강남은 전국에서 가장 뜨거운 부동산 투기장이라 할 수 있었다.
“호호호, 요즘 압구정동 현무 아파트가 그렇게 많이 올랐다면서요? 프리미엄이 벌써 팔백이나 붙었대요. 상업지구가 확대 지정된다는군요.”
“그래도 전 대치동 천마 아파트를 사려고요. 연건에서 옮긴 한국대학교 덕분에 대치동으로 족집게 과외 선생이 몰리고 있대요.”
“반포동이 더 낫죠. 우리 남편이 내년에 그쪽으로 도로를 하나 더 뚫을 예정이랬어요.”
복부인들이 입을 열 때마다 일반인들은 접하기 어려운 고급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졌다.
‘아니, 저기서 여기까지 거리가 얼만데. 아줌마들끼리 귓속말하는 소리가 왜 이렇게 잘 들려?’
땅바닥에서 연기처럼 스르륵 솟아오른 저승사자가 엄지를 척 들더니 도로 스르륵 꺼졌다.
나는 어머니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엄마, 우리 저 복덕방으로 가요.”
“응? 저긴 복부인들이 너무 많이 몰렸잖아.”
“그만큼 먹음직스러운 매물을 많이 갖고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부동산이 돈이 된단 소문에 사람들이 수시로 복덕방에 기웃대던 시절이다.
좋은 매물을 독점하고 있어야 수입도 짭짤한 법.
손님을 뺏기기 싫어서 이 근방 복덕방은 매물 공유를 하지 않았다.
복부인이 유독 많이 몰리는 복덕방이니 가볼 가치는 있었다.
“우리 차례가 오기까지 꽤 기다려야 할 텐데. 괜찮겠니?”
“상관없어요.”
좋은 부동산을 고를 수 있다는데, 기다리는 것쯤이야.
어차피 남아도는 게 시간이다.
“복부인들은 어떤 물건을 찾는지 지켜보고 싶어서 그래요. 너무 궁금하단 말이에요.”
“그럼 그럴까?”
나는 어머니 손을 잡고 유독 사람이 많이 몰려 있는 복덕방으로 들어갔다.
복덕방 한쪽 벽에는 서울시 지도가 커다랗게 걸려 있었다.
복덕방 아저씨가 소리 높여 외쳤다.
“요즘 영동이 아주 좋습니다! 말죽거리 아시죠? 자고 일어나기 무섭게 땅값이 쭉쭉 올라!”
복덕방 아저씨는 지도에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를 쳤다.
별표도 세 개나 그려 넣었다.
“사 놓기만 하면 최소 1년에 두 배, 아니, 서너 배는 뛸 겁니다!”
복부인들은 탁자 앞에 늘어진 물건들을 뒤적거렸다.
마음에 드는 부동산을 골라 사기 위해서였다.
‘이야, 여기가 바로 노다지네.’
금테만 얇게 두른 것부터 온통 금빛이 일렁이는 것까지.
각양각색의 부동산 물건 서류가 황금빛으로 번쩍거렸다.
‘확실히 여긴 괜찮은 물건이 많은 것 같군.’
한 복부인이 금테 두른 부동산 물건 서류를 들어 올렸다.
“이 아파트는 얼마예요?”
“천사백만 원입니다.”
“어머, 두 달 전까지만 해도 구백만 원이었잖아요?”
“요즘 프리미엄 안 붙은 아파트도 있답니까? 없어서 못 파는데요. 그건 작은 평수라서 그나마 덜 오른 겁니다.”
하루가 다르게 프리미엄이 팍팍 붙고 있었다.
“가격 괜찮네요. 살게요. 요즘 계속 오르고 있어서 지금 놓치면 후회할 것 같아.”
“전 이걸로. 로열층으로 이천삼백. 맞죠?”
엄마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우리가 준비한 자금은 고작 천만 원.
압구정 현무 아파트, 대치동 천마 아파트, 반포동 금조 아파트까지.
우리가 노리던 아파트를 사려면 적어도 이천만 원은 들고 있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정혁아, 어쩌지?”
어머니가 몸을 기울여서 내 귓가에 속삭였다.
“천만 원 갖고는 택도 없겠는데? 우리 아파트 못 살지도 몰라.”
강남 아파트 가격이 후덜덜했다.
‘주택복권 1등 당첨금인 1천만 원으로도 아파트 한 채를 못 산다고? ······음?’
추천 매물이 아닌 구색 갖추기용 들러리 매물 중에 유독 황금빛이 찬란하게 번쩍거리는 서류가 있었다.
‘여기서 저거 하나만 백열전구처럼 빛나는군.’
과연 어떤 물건일까 궁금해졌다.
* * *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어떤 걸 찾으십니까? 전세, 월세, 매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돌아왔다.
“집을 사고 싶은데요.”
복덕방 아저씨는 날카로운 눈으로 우리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 내렸다.
“이건 어떻습니까?”
복덕방 아저씨가 추천해 준 건 구로동 판잣집이었다.
거긴 강제 철거가 예정된 곳인데, 이 양반이 지금 장난하나?
“소형 아파트를 찾고 있어요. 한 24평형 정도.”
“요즘 아파트가 워낙 비싸야 말이죠. 보아하니 여유 자금이 그리 넉넉할 것 같진 않아 보이는데.”
복덕방 아저씨가 탁자 위로 착착착 서류를 늘어놓았다.
이것도 판잣집, 저것도 판잣집, 죄다 판잣집.
어머니의 예산이 얼마인지 묻지도 않고 죄다 판잣집만 내놓았다.
“지역 따라, 도로 따라, 크기 따라, 집값이 전부 제각각입니다. 판잣집도 다 같은 판잣집이 아니거든요.”
얼씨구, 이 양반이 진짜!
탁!
나는 아버지 시계를 탁자 위에 올렸다.
“여긴 추천 매물이 영 후지네요. 내놓는 물건이란 게 고작 이런 것들밖에 없어요?”
아버지 시계를 보고 복덕방 아저씨는 눈을 크게 떴다.
딱 봐도 엄청 비싸 보이는 최고급 명품 시계니까.
복덕방 아저씨는 탁자 위에 올린 아버지 시계와 우리를 번갈아 보았다.
“됐고. 저거나 보여주세요. 방금 아저씨가 탁자 밑으로 치운 거 말이에요.”
“이거?”
복덕방 아저씨가 뭉치째 집어 든 서류 중에 내가 원하는 물건이 끼어 있다.
“네, 그거요.”
백열전구처럼 번쩍이는 구색 갖추기용 매물이 어떤 건지 구경해 봅시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복덕방 아저씨는 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물건을 보여줄 생각이 없다는 소리였다.
“예산이 총 얼마나 됩니까? 이건 복부인 중에서도 상류층 사모님들에게나 보여주는 부동산이라서 말이죠.”
그렇겠지.
아무리 구색 갖추기용 들러리 매물이라도 너무 허접한 물건을 들이밀면 복부인들이 언짢아할 테니까.
“여기 있는 것들은 전부 한남동, 성북동, 평창동 고급 주택뿐이라면 알아들으실까요?”
지금이 딱 협박할 타이밍인데.
이거 아쉽군.
딸랑.
그때 복덕방 문이 열리면서 훤칠하게 생긴 중년 아저씨가 들어왔다.
깔끔하게 넘긴 올백 머리에 옷깃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 양복 차림.
매서운 눈빛을 감춘 은테 안경이 퍽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그가 우리를 발견하고 이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그가 어머니를 향해 꾸벅 인사했다.
어머니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아직 약속 시간이 꽤 남지 않았어요? 게다가 약속 장소도 여기가 아니라······.”
“회장님 지시입니다. 방해할 생각은 없으니, 마저 볼일부터 보십시오. 후에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차갑지만 무척 정중한 말투였다.
자로 잰 듯 반듯한 몸가짐에 칼날처럼 예리한 기세.
‘누구더라?’
나도 모르게 눈이 가늘어졌다.
“아저씨는 누구세요?”
“태성그룹 회장님을 모시고 있는 비서실장 김영걸이라고 합니다.”
복덕방 아저씨가 숨을 흡 들이마셨다.
“태, 태성그룹!”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김영걸이란 이름을 듣고서야 눈앞에 남자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차 회장을 은밀하게 보필하는 최측근 중 한 명이었군. 더러운 일까지 도맡아 처리한다던.’
김 비서는 말없이 탁자 위에 놓은 시계를 집어 들었다.
꼼꼼하게 살피더니 어머니에게 공손히 돌려주었다.
“성준 도련님의 것이 확실하군요. 차정혁 군이라고 했던가요?”
“우리 정혁이 이름은 어떻게 아셨어요?”
김 비서는 어머니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날 머리부터 발끝까지 유심히 살폈다.
눈빛이 상당히 매섭다.
하지만 나는 그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피할 이유도 없고, 피할 생각도 없다.
‘먼저 피하는 새끼가 쫄보인 거지. 난 걸어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는다는 주의라.’
마주한 눈에서 잠깐 이채가 스쳤다.
김 비서는 한쪽 무릎을 꿇어서 나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성준 도련님 어릴 때 모습 그대로이십니다. 아버님을 꼭 빼닮으셨군요.”
김 비서는 품에서 명함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정혁 도련님, 앞으로는 이쪽으로 연락 주십시오.”
김 비서에게 바로 연결되는 태성그룹 회장 비서실 전화번호였다.
하지만 어머니가 손바닥으로 막았다.
“됐어요. 일곱 살짜리 어린애가 명함 쓸 일이 어디 있겠어요.”
“앞일은 장담하기 어려운 법이니까요. 없어서 아쉬운 것보다 있어도 안 쓰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다시 볼 일도 없을 거예요.”
“글쎄요. 살다보면 조커가 아쉬울 때도 있는 겁니다. 이를테면 주제도 모르고 짜증 나게 구는 쓰레기를 처리한다거나.”
김 비서는 복덕방 아저씨를 서늘하게 바라보았다.
“어린 도련님의 귀한 손에 오물을 묻혀서야 쓰나요.”
복덕방 아저씨의 안색이 확 변했다.
바로 두 손을 공손하게 모으며 비굴하게 웃었다.
“아까 그 물건으로 되겠습니까? 원하시는 부동산이 있다면 조건만 말씀하세요! 전국팔도를 뒤져서라도 구해다 바치겠습니다!”
다른 건 관심 없다.
내가 궁금한 건 오직 이것뿐.
나는 복덕방 아저씨가 들고 있는 부동산 물건 중에서 백열전구처럼 빛나는 서류를 골라서 쏙 빼었다.
저 서류만 전구처럼 번쩍이는 이유가 있었다.
“부지 700평에 건물 114평, 거기다 수영장까지 딸린 한남동 최고급 단독주택!”
어쩌다 이런 고급 주택이 헐값에 나왔대?
이건 좀처럼 만나보기 어려운 횡재였다.
< 내 집 마련 (1)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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