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116)
재벌집 만렙 아들-116화(116/416)
< 흙은 답을 알고 있다 >
태성건설 전(前) 임원들이 혼쭐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뒤인지라, 담임선생님은 아주 공손하게 굴었다.
나는 두 손을 모아 꾸벅 배꼽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올해 선생님 반에 배정받을 예정인 차정혁입니다.”
“읍읍읍?”
그가 낼 수 있는 소리는 고작 이게 다였다.
왜냐하면 아직도 밧줄에 묶인 채 재갈을 물고 있으니까.
구질구질한 변명이 끼어들 틈 없는 원활한 대화를 위해서, 사소한 문제는 적당히 넘어가기로 했다.
“말씀 많이 들었어요.”
악명이 아주 자자하시더구만?
우광사립학교 최고의 썩은 물이라 불린다지?
‘이 사람이 바로 집안 따라 차별하고, 걸핏하면 사랑의 매를 들고, 수틀리면 언어 폭력부터 난사한다는 우광의 폭군.’
주머니에 찔러주는 액수에 따라 태도가 손바닥 뒤집듯 바뀐다던데.
내 성의가 그리 부족했나?
“이런 식으로 개인 면담을 진행하게 되어 정말 유감이에요.”
진심이었다.
아직 난 입학도 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담임선생님과 이 밤에 청계산에서 이렇게 만나게 되었나 하면,
“성의가 적어서 화가 많이 나셨다고요?”
나는 유종태를 돌아보았다.
“봉투에 얼마 넣으셨어요?”
“삼백만 원입니다.”
“인제 보니 그릇이 크신 분이셨네.”
이 시절 장관 월급이 25만 원이었고, 국무총리 월급이 35만 원이었다.
그러니 코웃음이 절로 나올 수밖에.
“얼마나 더 요구하셨는데요?”
“큰 거 세 장. 삼천만 원입니다.”
“강남 아파트 두 채 값이군요.”
강남 개발붐을 타고 요새 압구정 현무 아파트가 소형이 천이백, 대치동 천마 아파트가 천삼백이랬다.
아니, 이게 막 입학하는 국민학생한테 뜯어낼 돈이야?
아무리 내가 재벌집 손자라지만, 사람을 호구로 보나!
그래서 궁금해졌다.
“뇌물과 청탁은 한 세트잖아요. 뒤로 든든히 받아먹었으면 앞으로 뱉어내야 하는 게 있을 거 아니에요?”
그래서 조사해 봤다!
나는 유종태가 준비한 서류를 넘겼다.
“둘째 큰아버지가 선생님을 제 담임으로 꽂아넣었다면서요?”
“읍?”
“태성유통 차기준 사장님 말이에요.”
“읍!”
눈알 굴리는 것만 봐도 알겠구만.
오가는 뇌물 속에 피어나는 꿍꿍이!
지난번 신문 1면에 내가 크게 실렸을 때, 축하랍시고 둘째 큰아버지가 뭐라고 덧붙였더라?
-축하한다. 아무래도 우리 조카님 입학 선물은 손수 챙겨줘야겠지? 기대해도 좋을 거야.
과연 내 입학 선물이란 게 뭘까 궁금해서 말이지.
나는 담임선생님의 이름이 적힌 서류를 빼내서 그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그를 비롯한 처자식의 치부가 줄줄이 기록되어 있었다.
“가족끼리 사이좋게 합장해 드려요?”
도리도리도리도리!
당장 내빼려는 엉거주춤한 자세가 군기 바짝 든 차렷 자세로 바뀌었다.
“내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라고 하시던가요?”
담임선생님은 고장난 차량용 인형처럼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니면 조카 기를 제대로 꺾어 놓으라고 당부하셨나?”
끄덕끄덕끄덕끄덕!
“트집 잡아서 한껏 괴롭히라는 지시는 없었고요?”
도리도리도리도리!
알고 싶었던 건 이만하면 얼추 알아낸 것 같고.
경고도 이만하면 확실하게 보여준 것 같고.
“긴말하지 않겠어요. 눈치껏 처신 잘할 수 있죠?”
담임선생님은 자기만 믿으란 의사를 온몸으로 적극 어필했다.
앞으로 내 학교 생활이 편해질 거란 소리였다.
“말이 잘 통하실 것 같은 분과 6년을 함께 보내게 되다니. 정말로 기뻐요, 선생님.”
“으읍?”
“에이, 강남 아파트를 두 채나 처먹겠다면서 1년 만에 안녕하시려고요? 이렇게 나오시면 곤란하죠, 선생님.”
나도 모르게 눈을 번뜩 빛냈다.
“커으읍!”
“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제 뜻에 따르시겠다고요?”
끄덕끄덕끄덕끄덕!
예정된 대답이었으니 딱히 감흥은 없었다.
나는 흰 봉투에 담아온 두툼한 성의를 담임선생님의 재킷 주머니에 푹 찔러넣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나는 두 손을 모아 꾸벅 배꼽인사했다.
그리곤 미련 없이 돌아섰다.
* * *
태성그룹 본사 회장실.
틀어놓은 브라운관 텔레비전에서는 아침 뉴스가 흘러나왔다.
-우광화학 화재로 시작된 노조 시위가 연일 거세지고 있습니다. 조합원 175명이 본사 사무실을 점거하고 제대로 된 보상과 사고 대책을 요구했습니다.
-우광그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본사 앞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크게 충돌했습니다.
-경찰은 5분간 말미를 두고 자진 해산을 요구했으나, 노조원들은 나체 시위를 강행하며 격하게 반발했습니다.
-해산 과정에서 70여 명이 연행되었고, 이 가운데 50명이 졸도, 14명이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한국노총에서 이를 두고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정부는 노동 탄압을 중단하라!’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차 회장은 텔레비전을 껐다.
조간신문 1면에서는 가장 큰 글씨로 우광 계열사 주가 폭락에 관해 다뤘다.
다음 장에서는 우광건설 김우석 사장의 구속에 관해서, 그 옆장에서는 총수직을 사퇴한 김우광 회장의 행보가 이어졌다.
“하이에나 떼가 돈냄새를 맡고 날뛰는군. 우광을 뜯어먹겠다고 다들 혈안이 되었어.”
민심이 등을 돌렸고, 언론이 연일 집중포화를 하고 있으며, 정부는 모른 척 눈을 감았다.
우광그룹은 요즘 말 그대로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되고 말았다.
오랫동안 공들였던 로비가 무색할 만큼 침몰하고 있었다.
“재수 없었으면 우리 태성이 딱 저 꼴이 날 뻔했는데 말이야. 다시 생각해 봐도 운이 좋았단 말이지.”
따르릉!
“여보세요?”
차 회장은 무심코 전화를 받았다가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났다.
통화 상대는 대통령 다음으로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는 청와대 경호실장이었다.
-청와대 오찬 모임이 내일모레라지?
“예, 그렇습니다.”
-각하의 기대가 무척 크시다. 철저하게 준비해 와야 할 거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뭐냐, 그때 술자리에서 언급했던 거, 뭐더라?
“제2차 석유파동의 가능성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거! 각하께서 태성에 왜 초대장을 두 장이나 허락하셨는지 명심하라고.
청와대 경호실장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논공행상으로 큼지막한 계열사를 얻어먹고 싶다면 각하가 원하는 대답부터 내놓는 게 순서지.
그럼 약속대로 우광의 계열사를 내어주겠단 은근한 뜻이었다.
-눈독 들인 계열사가 있을 테고. 말해 봐.
차 회장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긴장한 숨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흐르자, 반대편에서는 흡족한 웃음이 되어 돌아왔다.
-하하하, 뭘 또 그렇게까지 기합이 바짝 들었어? 나랑 비서실장이 한 팔 거들어주겠다고 약속한 일인데.
“감사합니다.”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히 골라 봐. 흔치 않은 기회니까 재주껏 잘 잡아 보라고. 하하하.
슬쩍 떠본 말에 넘어가지 않은 것에 몹시 만족스럽다는 기색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저리 자신만만하게 확언하는 것을 보니 청와대에서는 이미 결정을 끝냈나 보군.”
차 회장은 의자에 앉으며 마른세수했다.
“우광을 두고 경호실장과 비서실장, 육군보안사령관과 중정부장 세력이 갈라져 피 튀기는 혈전이 벌어질 텐데. 이거 졸지에 태성이 가운데 끼어 두드려맞게 생겼어.”
청와대 오찬 모임에서 어떤 개판이 벌어질지 눈에 선했다.
차 회장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짚었다.
자꾸만 수북하게 쌓인 서류에 눈이 간다.
죄다 우광 계열사 인수에 관한 보고서였다.
“우광증권과 우광화학은 정혁이 몫으로 넘겨주기로 했고. 아마 우광건설도 곧 부도 처리될 것 같으니······.”
“회장님.”
조용히 시립해 있던 김 비서가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그 일로 정혁 도련님께서 연락하셨습니다.”
“정혁이가?”
김 비서는 말없이 겉면에 숫자 ‘1’이 적힌 쪽지를 슥 밀었다.
차 회장은 슥 읽자마자 단번에 쪽지를 와락 구겼다.
“약속한 계열사의 지분은 물론 경영권까지 보장해달라고? 어림도 없는 소리!”
“회장님.”
“정혁이 이제 고작 여덟 살이야!”
차 회장은 손사래를 쳤다.
“안 그래도 정신 사나워 죽겠으니까, 자네까지 되도 않는 말을 보탤 필요 없어.”
“충분히 고려할 만한 일이라 사료되어 올리는 말입니다.”
“여덟 살짜리 애를 경영 일선에 어떻게 내세우라고! 뭐가 그리 급해서?”
차 회장은 딱 잘라 말했다.
“십 년도 빨라! 아니, 십오 년은 지나야 수습 사원 딱지라도 붙이지! 그동안 얌전히 심 사장 밑에서 경영 수업이나 받으라고 해!”
“안 그래도 심 사장이 이걸 올리라더군요.”
김 비서가 한 장짜리 서류를 내밀었다.
고작 몇 줄 적힌 보고서였으나, 그걸 읽어내려가는 차 회장의 눈동자는 크게 흔들렸다.
“심 사장마저 정혁이에게 경영권을 맡겨 보란 개소리를 올려?”
믿기 힘들었다.
정혁이가 고작 여덟 살이라며 고개부터 젓던 이가 바로 심 사장이었다.
그런 이가 정혁이의 경영 수업을 맡은 지 며칠이나 됐다고 손바닥 뒤집듯이 말을 바꿔?
기가 찰 노릇이었다.
“정혁이가 설립한 투자회사를 우회하여 경영하겠다고?”
“예.”
“심 사장 혼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야! 300억짜리 우광화학에 120억짜리 우광증권을 어떻게 건사하려고? 과로사로 뒈지려고 작정하지 않고서야······.”
“새로이 스물여덟 명의 임원진을 영입했다고 합니다.”
차 회장은 콧방귀를 뀌었다.
“임원 명찰 달면 다 임원인 줄 알아? 그만한 능력이 있어야 임원이지!”
“해고됐던 전(前) 태성건설 임원들이 정혁 도련님 밑으로 들어갔다고 하는군요.”
“뭐?”
김 비서는 빙그레 웃었다.
“정혁 도련님께 자진해서 충성을 맹세했다는 자가 도합 스물여덟 명입니다.”
김 비서가 책상 위에 올려놓는 건 고용계약서 복사본이었다.
차 회장이 고용계약서를 넘기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진짜 태성건설 임원들이······.”
“예.”
“성준이가 다루기에도 너무 벅찬 놈들이라서 내 손으로 깨끗하게 숙청 끝낸 놈들이야. 그런 놈들을 주워다 써? 아니, 왜?”
“그래도 능력은 있는 놈들이잖습니까.”
“아니, 이놈들이 단체로 쥐약을 처먹었나. 욕심 많고 깡다구 좋은 놈들이 고작 대리급 월급을 받고 노예계약서에 사인을 해?”
차 회장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군.”
“그만큼 정혁 도련님의 수완이 좋다는 뜻이겠지요.”
“거친 공사판에서 평생을 굴러먹던 놈들이야. 어줍잖은 협박이나 뇌물 따위에 넘어갈 것 같아?”
차 회장이 책상을 탕 내려쳤다.
“윤성이도 어쩌지 못하고 농락당했던 거 잊었어? 허구헌날 능구렁이 같은 정치인들이랑 어울리며 돈세탁하던 놈들이 뭐? 정혁이한테 굴복해서 그 밑으로 기어들어가?”
아무래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어림도 없지! 이건 심 사장이 나서도 어려운 일이야!”
“예, 심 사장은 경영은 잘해도 거친 놈들 다루는 건 영 젬병이니까요. 그래서 정혁 도련님께서 직접 나서신 모양입니다.”
“정혁이 고작 여덟 살이라니까!”
“이게 그 증거라는군요.”
달그락.
김 비서가 손수건을 꺼내자 금이빨 두 개가 굴러떨어졌다.
“금이빨 두 개 뽑고 상황 정리를 끝내셨다고 합니다.”
“그놈들 조폭이랑도 맞장 떠서 강제철거 강행했던 치들이야. 고작 금이빨 두 개로 꼬리를 말 것 같나?”
“아, 유 팀장의 보고에 따르면 묶어놓고 흙모래도 좀 끼얹긴 했답니다. 근데 그게 정말 다라는군요.”
“허······!”
차 회장은 입을 떡 벌린 채 움찔거렸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똑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건 질색이었다.
“정말 정혁이가 말 몇 마디로 구워삶았다고?”
“이미 결과로 증명하신 일입니다.”
김 비서가 건넨 목록을 보고 차 회장은 말문이 턱 막혔다.
“시중 은행장들은 물론 온갖 기업의 임원들을 만나 술접대를 하며 투자를 따내고 있다더군요.”
고작 며칠 만에 무시무시한 기세로 일거리를 따내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이만하면 정혁 도련님께 경영권을 내어주셔도 될 듯싶습니다만.”
“······어린 것이 수완이 참 제법이란 말이지.”
차 회장은 무참하게 구겼던 ‘1’번 쪽지를 도로 폈다.
어린 손자의 단정한 글씨가 눈에 콕 밟혔다.
<할아버지, 계열사의 지분은 물론 경영권까지 보장해 주세요.>
김 비서가 슬쩍 덧붙였다.
“회장님, 뒷면도 읽어보십시오.”
“뒷면?”
<그것만 약속해주신다면 중정부장과 육군보안사령관을 우리 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차 회장은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 흙은 답을 알고 있다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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