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117)
재벌집 만렙 아들-117화(117/416)
< 선물과 뇌물은 엄연히 다르다 >
“이런 생각은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가끔은 이 녀석이 진짜 여덟 살이 맞는지 믿기지가 않는다니까?”
차 회장은 눈을 비비고 다시 읽었다.
다시 봐도 똑같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리할 수밖에 없었다.
“중정부장과 육군보안사령관을 우리 쪽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이라. 그게 뭘까.”
차 회장은 곰곰이 생각을 정리하면서 회장실을 서성거렸다.
“암만 머리를 굴려 봤자 모르겠구만. 이게 돈 되는 사업이라면 벌써 수십 가지 공략 방법을 떠올리고도 남았을 텐데. 쯧.”
차 회장은 미간을 콱 구겼다.
아부에도 스킬이 있고, 뇌물도 때가 있고, 구워삶는 것에도 요령이란 게 있다.
차 회장은 타고난 장사꾼일지언정 타고난 정치꾼은 못 되었다.
청와대 경호실장의 평가도 썩 다르지 않았고 말이다.
-미련하게 사업에만 목매지 말고 자네도 청탁이란 걸 제대로 이용할 필요가 있단 소리야.
-기술 개발입네, 시설 투자네 하면서 퍼붓는 돈을 떼어다 위아래로 골고루 기름칠 좀 하게. 그렇게 빡빡하게 구니 태성이 거기까지밖에 못 크는 거야.
-자네가 이리 뻣뻣하게 구는데도 각하께서 태성을 내치지 않았다는 게 무슨 소리겠어? 각하께서 적당히 봐주고 계시단 거지.
-사업만 잘한다고 다가 아니야. 오늘처럼만 해. 그러면 각하께서도 어여쁘게 보실 테니.
차 회장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확실히 이쪽으로 머리 굴러가는 건 정혁이가 나보다 한 수 위란 말이지.”
차 회장이 구겨진 쪽지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김 비서야, 내가 억하심정이 있어서 정혁이의 경영을 막는 것 같은가?”
“그럴 리가요. 하지만 정혁 도련님의 입장도 이해가 됩니다.”
“물론 그렇겠지. 내가 그 심정을 왜 몰라? 장난감을 사줘놓고 갖고 놀지 말란 말과 똑같이 들렸겠지.”
차 회장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정혁이를 위해서, 태성을 위해 내린 결단이었어.”
“이번 계열사 인수에 따라 지분과 영향력이 크게 달라집니다. 그러니 태성의 경영권 싸움이 본격화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알아. 우린 우광처럼 아들 하나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딸자식이라고 출가외인 취급하는 것도 아니니까.”
차 회장이 우려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었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화살받이가 될 게 분명한 전장 최전방에 여덟 살짜리 손자를 세워놓을 수는 없잖나.”
원래 전쟁은 가장 약한 부분부터 무너뜨리는 게 기본이다.
“성준이가 좀 더 여물 때까지, 정혁이가 좀 더 클 때까지 시간을 벌어줘야지.”
“도련님께서 그런 것도 모르고 경영권을 요구하셨겠습니까?”
김 비서는 고용 계약서를 넌지시 짚었다.
“정혁 도련님 곁에는 심 사장과 태성건설 임원들이 버티고 있습니다. 믿고 맡겨 보시지요.”
“으음.”
“어차피 약속대로 인수하는 계열사 지분을 전부 넘기면 정혁 도련님은 주총을 열어 경영권자를 갈아치울 수 있습니다. 정혁 도련님께서 그걸 모르실까요?”
김 비서는 평소답지 않게 강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쪽지를 보내온 건 회장님과 척지고 싶지 않다는 뜻이겠지요.”
“알아. 내가 그걸 왜 몰라? 아니까 이리 속이 시끄러운 게지.”
차 회장은 깊이 한숨을 쉬었다.
“우광정유.”
“우광정유는 큰 도련님께서 눈독 들이고 계신 계열사잖습니까?”
“정혁이가 일러준 꾀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청와대 경호실장이 우광의 계열사를 태성에 넘겨주겠노라 언질 받지도 못했어! 공은 정혁이가 세웠는데, 그걸 왜 대준이 입에 넣어주나?”
따지고 보면 청와대 경호실장이 처음으로 그리 기꺼워하던 것도 결국 다 이 여덟 살짜리 손자의 조언 덕이었다.
차 회장은 서성이던 것을 멈추고 의자에 털썩 앉았다.
“유공을 노리는 녀석이었으니, 우광정유를 물어다 주면 정혁이가 기뻐하겠지. 할애비 노릇은 딱 거기까지만 할 거야.”
차 회장은 딱 잘랐다.
“더 유능한 놈이 기회를 잡아 올라오는 것까지는 안 막아. 하지만 어린 내 새끼가 어른들 싸움에 피투성이가 되는 꼴은 못 보겠다!”
“회장님, 일단 일을 시작하기 전에 정혁 도련님과 대화부터 나눠보심이 어떻습니까?”
“나더러 손주를 붙들고 내 입장을 이해해달라고 하소연이라도 하란 소리야?”
“회장님.”
“지금 업무 시간이야! 회사 일부터 끝내고. 나중에!”
차 회장은 책상에 산더미처럼 쌓인 결재서류를 펼쳤다.
각 계열사에서 임원들이 적어 올린 우광 계열사 인수에 관한 제안서가 한가득이었다.
“지금 우광의 계열사 인수만 검토하려고 해도 한세월이야! 몸이 열두 개라도 모자라!”
“그래서 말입니다만, 이걸 참고해 보시는 건 어떠십니까?”
김 비서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두툼한 서류뭉치를 책상에 올려놓았다.
겉면에 1부터 41까지 번호가 적혀 있는 서류였다.
“이건 지난번 정혁 도련님께서 태성그룹 전(全) 계열사 임원회의에 참관하셨을 때 작성하신 겁니다.”
“허······!”
“우광 계열사를 검토하여 인수합병의 우선순위를 적어놓으신 듯합니다.”
“뭐?”
“보시면 알겠지만 장단기 투자 종목으로 분류해 놓으셨고, 그 이유도 간략하게 기재해 놓으셨습니다.”
“······기가 차는군.”
눈을 반짝이며 열심히 임원회의에 참관한다 싶더라니.
차 회장은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고 녀석 참 여러 가지로 날 놀래킨단 말이야?”
“별표 친 부분을 중심으로 검토하시는 걸 추천드리겠습니다.”
* * *
“이거야 원. 야무지기도 하지. 하하하!”
차 회장은 눈을 빛내며 여덟 살짜리 손자의 메모를 읽어내려갔다.
유독 눈에 띄는 부분이 몇 군데 있었다.
“우광자동차, 우광중장비, 우광정유에 관한 평가가 유독 박하구만. 그런데 썩 그럴듯해.”
차 회장은 자꾸만 씰룩대는 입꼬리를 애써 끌어내렸다.
“어린 것이 제법 사업 머리를 굴릴 줄 안단 말씀이야?”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왕 정혁 도련님께 드릴 계열사라면 우선 도련님께선 어떤 청사진을 그리고 계시는지부터 물어보는 게 순서일 듯싶습니다.”
정혁이는 우광정유 서류에 X표를 세 개나 그려놓았다.
“흠, 정혁이와 의견이 갈렸구만. 나와 심 사장은 우광정유 인수에 관해 퍽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데 말이야. 이 녀석은 왜 안 될 일이라고 작대기부터 그어 놨을까?”
차 회장이 결재 서류를 뒤적여 <석유파동이 발생하는 경우를 상정한 우광정유 인수 계획안>을 찾아내었다.
“맨땅에 정유회사를 세우려면 돈을 냅다 쏟아부어도 될까 말까야. 헐값에 인수할 수 있다면 무조건 달려들어야지.”
“그에 관해서라면 정혁 도련님께서 따로 남기신 말씀이 있습니다.”
김 비서는 겉면에 ‘2’라는 숫자가 적힌 쪽지를 내밀었다.
<석유파동이 발생하면 원윳값은 치솟는데, 정부는 국내 석유 가격은 동결 혹은 최소한의 인상을 강요할 거예요. 그럼 그 손해를 누가 다 감당해야 할까요?>
“그야 정유회사가 감당해야겠지.”
차 회장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회장님, 같은 이유로 지난 석유파동 때 정유회사가 재정난을 감당하지 못하고 크게 휘청거렸습니다.”
“흐음.”
차 회장은 마저 다음 줄을 읽었다.
<우광정유가 시중에 매물로 나오면 누가 제일 먼저 달려들 것 같아요?>
“삼황정유. 덩치가 작아서 우광정유와의 경쟁에서 번번이 밀리고 있거든.”
<우광정유는 삼황에 양보하세요. 석유파동이 터지면 대한석유공사는 물론이거니와 우광정유와 삼황정유까지 한꺼번에 똥값으로 주워먹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
차 회장은 머릿속에서 번개가 번쩍 친 것 같았다.
중정부장과 육군보안사령관을 어떻게 꾀어내느냐를 고민했을 때와는 달랐다.
머릿속에서 주판알이 왔다갔다거렸고, 이에 관한 수십 가지의 공략 방도가 떠올랐다.
차 회장은 무릎을 탁 쳤다.
“석유파동이 아니었어도 우광정유를 두고 삼황정유와 박 터지게 싸우게 될 판이었어!”
정유회사라면 기본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자산 사이즈가 좀 커야지.
흔치 않은 기회에 눈이 벌게지는 건 태성만이 아닐 터였다.
“삼황정유가 중정부장과 육군보안사령관과 긴밀한 관계라는 걸 내 모르는 바가 아니야. 그래서 태성이 진흙탕 싸움판에 뛰어들게 생겼다며 내내 걱정했던 게지!”
차 회장은 구겨진 쪽지 ‘1’을 붙잡고 크게 웃었다.
“만일 중정부장과 육군보안사령관까지 우리 태성이 꾀어낼 수만 있다면 일이 퍽 쉬워질······ 잠깐! 그러고도 우광정유를 내던져? 아니, 왜? 굳이? 뭘 위해서?”
김 비서는 말없이 겉면에 ‘3’이라고 적힌 쪽지를 슥 내밀었다.
차 회장은 독수리가 먹이를 낚아채듯 쪽지를 채어갔다.
<진흙탕 난타전에 휘말리지 말고 우린 더 좋은 걸 노려보자고요.>
“그러니까 그게 뭔데?”
차 회장은 쪽지를 홱 뒤집어 뒷면을 확인했다.
<궁금하면 경영권!>
끝까지 경영권 타령이라니!
하여간에 못 말리겠다!
“그래, 원하는 게 있다면 이 정도는 밀어붙여야 태성의 핏줄이라 할 수 있지! 하하하하!”
차 회장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안 되겠다! 이거 도저히 못 참겠구만!”
차 회장은 벌떡 일어나 급히 옷걸이에 걸린 외투부터 챙겼다.
“김 비서, 오늘 오전 일정이 뭐였지?”
“회장님, 오전에 태성전자 신제품 발표와 태성중기 상반기 투자 보고회가 예정되어 있습니다만.”
“내가 고작 그깟 보고나 듣자고 정혁이와의 시간을 뒤로 미뤄야겠어? 전부 취소시켜!”
“예.”
“태성의 미래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일부터 처리해야지! 지금 이것보다 더 중한 일이 또 어디 있다고? 김 비서, 뭐 해? 출발해!”
김 비서는 예, 하고 대답하면서 흐트러진 서류를 정리했다.
그사이 성질 급한 차 회장은 쌩하니 회장실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하지만 김 비서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탁탁탁.
느긋하고 우아하며 정갈한 자세로 차 회장이 흐트러뜨린 결재서류를 각 잡고 쌓았다.
미용 티슈의 휴지 주름도 반듯하게 폈고, 창가까지 굴러간 의자 역시 깔끔하게 들여놓았다.
차 회장이 내팽개친 서류와 정혁이의 쪽지도 주워서 서류 가방에 챙겼다.
우당탕탕!
“김 비서!”
달려나갔던 차 회장이 헉헉대며 도로 뛰어들어왔다.
“정혁이가 보낸 쪽지! 인수합병 우선순위를 적어놨다던 임원회의 자료부터 챙겨야겠다!”
“예, 여기에. 보시다시피.”
김 비서는 서류 가방을 슬쩍 들어 보였다.
“가자! 내가 고 실장더러 차 시동 걸고 있으라고 먼저 내려보내 놨다!”
“예. 가시죠.”
차 회장이 도로 달려나갔다.
김 비서는 성큼성큼 그 뒤를 따랐다.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뜨리지 않고, 양복의 주름 하나 접히지 않게 걸으면서 김 비서는 손짓했다.
그러자 즉시 비서실 소속 비서가 달려와 메모를 준비했다.
“태성전자 신제품 발표회의 내일 오전 같은 시각으로 미루고.”
“예.”
“태성중기 투자 보고회 모레 오후 2시로.”
“알겠습니다.”
“점심 약속도 취소해. 아무래도 한남동에서 드시고 오실 것 같다.”
“양해 전화와 함께 꽃다발 보내겠습니다.”
“오후 회의 준비는 자네가 맡아줘야겠군.”
“예. 미리 세팅해 놓겠습니다.”
그러는 동안 차 회장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내려가기 버튼을 1초에 대여섯 번씩 두드렸다.
타다다다다닥!
지하 2층 주차장에 내려갔던 엘리베이터가 회장실이 위치한 32층까지 올라오는 것을 참지 못하고서 말이다.
땡!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것과 김 비서가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한 시각은 정확히 일치했다.
타타타타타탁!
차 회장은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지하 2층과 닫힘 버튼을 1초에 대여섯 번씩 눌러댔다.
김 비서는 그동안 양복 안주머니에서 휴대용 양복 먼지떨이를 꺼내 차 회장의 양복을 슥슥 닦아냈다.
그다음은 접이식 일자 빗을 꺼내서 달려오느라 흐트러진 차 회장의 머리를 슥슥 빗어냈다.
땡!
엘리베이터가 지하 2층 주차장에 도착한 것과 김 비서가 머리빗을 양복 안주머니에 집어넣은 시각은 정확히 일치했다.
차 회장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총알처럼 튀어가며 크게 외쳤다.
“고 실장, 출발해!”
아직 자동차에 오르기도 전이었다.
차 회장이 주차된 차를 찾아 두리번거릴 때, 김 비서는 이미 뒷문을 열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회장님, 이쪽입니다.”
“고 실장, 한남동이야! 가자!”
이 역시 아직 차에 오르기도 전이었다.
* * *
벌컥벌컥벌컥벌컥!
아침 댓바람부터 우리 집에 쳐들어온 할아버지는 앉은 자리에서 꿀물을 숨도 쉬지 않고 원샷으로 마셨다.
“가져가라, 경영권!”
할아버지가 미리 적어온 각서를 책상 위에 탕 하고 내려놓았다.
물론 황금빛이 눈부시게 번쩍거렸다.
“가족들이랑 태성그룹 임원들을 설득하는 일은요?”
“내게 맡겨라. 할애비가 그 정도도 해결해주지 못할 듯싶으냐?”
결심을 굳혔단 소리였다.
“단, 안전을 위해 널 전면에 세우는 것은 허락치 못한다. 네 투자회사를 우회해서 경영권 행사해.”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이걸 빌미로 네 큰아버지나 고모에게 먼저 싸움을 걸어서도 안 된다. 약속할 수 있지?”
할아버지가 겉면에 ‘1’이 적힌 쪽지를 내 책상 위에 탕 하고 내려놓았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면 된다고?”
인생은 원래 기브 앤 테이크!
오는 게 있으면 응당 가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나 역시 미리 준비했던 서류를 내밀었다.
“이건 우광건설 뇌물 장부가 아니냐?
한 부는 황금빛과 붉은빛이 섞여 있는 서류, 다른 한 부는 황금빛과 검은빛이 섞여 있는 서류였다.
“중정부장과 육군보안사령관의 것은 내놓지 않고 폐기하기로 합의 보지 않았던가?”
“아니죠.”
나는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건 청와대 경호실장과 비서실장에게 숙청의 칼자루를 내어주지 않기로 결정한 거고요. 이건 본인들에게 주는 선물이라 할 수 있죠.”
“선물? 뇌물이 아니고?”
선물과 뇌물은 엄연히 다르다.
< 선물과 뇌물은 엄연히 다르다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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