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119)
재벌집 만렙 아들-119화(119/416)
< 청와대 오찬 (1) >
방위산업체란 국가가 필요로 하는 국가 방위 관련 장비 및 시설 등에 관한 일체의 기업들을 의미한다.
한국에서는 보통 정부가 대기업 회장들을 불러다가 애국을 명분으로 방산에 진출하게 하거나, 정부가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일감을 나눠준다.
“정혁아, 네가 말하는 방산이라고 하면······.”
“태성이라면 굳이 국내 군부 납품에만 목맬 필요 없잖아요. 민수용 물자와 군 물자를 동시에 생산해서 납품하는 형태로 가야겠죠?”
방위물자를 생산하는 체제라면 보통 세 가지로 나뉜다.
평시에도 군에 물건을 납품하거나, 군과 민수용 물자를 병행 생산하거나, 평시엔 민수용 물건들을 만들다가 전시에만 군수품 생산으로 변환하는 형태다.
“그중에서도 수준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분야를 담당하면 더 좋을 테고요.”
이를테면 장갑차, 전차, 군함, 전투기 같은 것 말이다.
태성 하면 기술력이다.
내가 우광연구소를 굳이 인수하려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태성은 계열사별로 자체 기술 개발 연구팀은 있을지언정 따로 전문적인 기술연구소를 운영하지 않고 있거든.
“할아버지도 그간 심한 압박을 받으셨겠어요. 청와대로부터.”
순간 할아버지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차마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그간 말 못 할 고충이 상당했던 모양이다.
“태성은 우광과 달리 기술 개발과 시설 투자에 집중했잖아요. 덕분에 뻣뻣하게 굴어도 청와대의 눈 밖에 나지 않았고요.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봤거든요?”
아마도 정부가 기대하고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일 테지.
“정부에서 중화학공업 우선 육성 계획을 실시할 때, 굵직한 대기업이라면 할당받듯 강제로 참가해야 했나봐요?”
“그래.”
“그 결과 태성은 화학과 자동차에 뛰어들었고, 우광은 철강과 조선을 맡았고요?”
“맞다.”
“실은 태성이 왜 하필 자동차와 화학을 골랐을까 궁금했어요.”
나는 우광화학 서류를 손끝으로 더듬었다.
“국내엔 이미 다이너마이트 자체 개발에 성공한 현무화학이 굵직한 방산의 한 축을 도맡고 있는 상황이잖아요.”
“정혁아.”
“의문은 또 있어요. 태성보다 적극적으로 정부의 공업 수직화 계획에 동참한 우광은 왜 이제 와서 태성화학을 노릴까?”
우광은 로비에 적극적이었고, 우리나라 최고의 정경유착형 기업이었다.
그런 우광이 태성과 공동으로 화학을 설립한 지 7년 만에 발톱을 드러낸 이유라면,
“정부가 이를 악물고 방산을 밀어붙이고 있다. 맞죠?”
“그래.”
“우광은 그걸 기회로 삼아서 적극적으로 방산에서 위기를 타개하려고 했던 거고요?”
“철강에서 누적된 적자를 메꿀 길이 없으니까.”
한마디로 국방 예산을 털어서 구멍 난 주머니를 채우려 했단 소리였다.
“후우. 사업가가 사업에만 집중할 수 없는 이 빌어먹을 나라.”
할아버지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태성도 이제 뜻을 정할 때가 되었지. 자칫하면 핵무기 개발을 떠안게 생겼어.”
“그래서 그간 공들여 키운 태성화학을 우광에 선뜻 넘기기로 하신 거예요?”
“······!”
할아버지가 입을 떡 벌렸다.
그러더니 김 비서를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김 비서, 혹시 이거······.”
“전 아닙니다.”
“그럼 심 사장?”
“그 역시 아닐 겁니다. 심 사장 성격을 모르십니까?”
그제야 할아버지는 고개를 돌려서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이걸 다 정혁이가 혼자 유추했다는 소리야?”
그럼 누가 이런 걸 여덟 살짜리 어린애한테 알려준다고요?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에요. 태성이 확실하게 방산에 뛰어들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때라고요.”
“그래, 이젠 한계다. 막다른 골목이야.”
“피할 수 없게 되었다면 당당하게 뛰어들어 제대로 한몫 해먹어야죠.”
“제대로 해먹어?”
“아까 말씀하셨잖아요. ‘어차피 한겨울 찬 서리를 맞아야 한다면 쭉정이들이 죄다 죽어나갈 때 제일 덩치 큰 놈만 버티는 법’이라고. 방산의 거물이 되어 봐요, 우리.”
“······어?”
나는 씩 웃었다.
“정치 좀 모르면 어떻고, 로비 좀 못하면 어때요? 태성이 쓰러지면 방산도 무너지게 생길 정도라면 아무도 못 건드려요.”
“······!”
“국방부가 왜 매일같이 더 많은 화력과 더 강한 화력을 외치겠어요?”
그야 한국전쟁 때문이다.
6.25 전쟁 당시 한 참전자는 수첩에 이런 글을 남겼다고 한다.
-우리에게도 탱크만 있었다면.
“대한민국은 휴전국가예요. 당장 석유파동으로 휘청대고 전쟁이 터진다고 해도 정부가 국방 예산을 삭감할 것 같아요?”
그럴 리가.
“위기 상황일수록 늘리는 게 국방 예산이에요.”
“북한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다른 건 몰라도 국방에 신경을 안 쓸 수는 없지.”
같은 의미로 조만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어 각종 병기 개발 착수에 관해 발표할 것이다.
“어차피 방산에 진출해야 한다면 수출까지 노려봐야죠.”
“방산으로 수출까지? 그게 되겠어?”
“안 될 것도 없잖아요?”
나는 씩 웃었다.
“태성에 공장이 없어요, 유통 라인이 없어요, 기술력이 없어요?”
이 시절의 대기업이 다 그렇듯, 태성 또한 수출로 덩치를 키웠다.
특히 둘째 큰아버지가 맡은 유통은 수출 덕분에 해외지사를 따로 만들 정도였다.
심 사장에게 한자리를 내어주며 무역과 유통을 총괄하려 했다.
‘조만간 크고 작은 국제적 분쟁이 시작될 것이다. 3월부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테러조직의 공격을 분쇄하기 위해 레바논 남부를 침공할 테고.’
같은 달 이탈리아 테러 단체 붉은 여단은 알도 모로 전 수상을 납치한다.
4월엔 미국이 코라이게이트로 압박하면 대통령은 보란 듯이 국산 고성능 전차 성능시험을 참관한다.
또한 아프가니스탄 공화국에서는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대통령과 일가족이 살해당하고 공산당 독재 정권이 들어선다.
5월이면 이란 대학생들이 반정부 시위를 시작할 테고, 8월이면 이란 군경과 부딪쳐 477명이 숨진다. 이란 혁명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게 제2차 석유파동이 터진다.
‘석유파동이 터지고 유공이 시장에 매물로 나오려면 1년밖에 안 남았다.’
유공을 인수하려면 나와 태성이 가진 자금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차관은 필수다.
‘외국에서 돈 빌리러 갈 때 빈손으로 가서 구걸할 순 없잖아? 당연히 그쪽에서 혹할 만한 카드를 내밀면서 윈윈의 거래를 제안해야지.’
나는 씩 웃었다.
“중동전쟁 이후 자원민족주의를 주창한 사우디아라비아는 오일쇼크 이후 넘쳐나는 오일머니를 국방과 건설에 쏟아붓는다면서요?
그렇게 시작된 게 80년대 중동 건설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21세기까지 중동은 천문학적인 돈을 국방비에 퍼붓는다.
한 해의 국방비 예산만 해도 미국이 8천억 달러, 중국이 3천억 달러, 사우디아라비아가 680억 달러에 달한다.
‘지금 막 서방세력을 몰아내려는 중동에서는 무기를 못 구해서 난리지.’
부르는 게 값이고, 눈먼 돈을 줍는 게 임자란 소리가 나올 만큼 불티나게 팔렸다.
“잘 팔아볼게요.”
원래 전쟁 터지는 곳에서는 군수 상인이 떼돈을 버는 법.
지금 중동은 세계에서 제일가는 화약고다.
짝. 짝. 짝. 짝.
누가 박수 소리를 내었는가?
할아버지는 입을 뻐끔거리며 헛웃음만 흘리는 반면, 김 비서는 탄복했다는 듯 탄성을 흘리며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역시 우리 도련님! 도련님께는 계획이 다 있으셨군요!”
* * *
몸수색까지 확실하게 마치고 나서야 청와대 경호원은 손을 내밀었다.
차 회장은 가지고 왔던 청와대 오찬 초대장을 내밀었다.
“태성그룹 차 회장님과 태성건설 차 사장님, 안으로 드십시오.”
청와대 경호원들이 만찬회장 문을 열었다.
30명은 족히 둘러앉을 수 있는 초대형 원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원탁 앞에는 명패가 하나씩 붙어 있었다.
태성그룹 차 회장의 이름은 상석의 주인과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었으나, 태성건설 차성준의 이름은 가장 말석에 자리했다.
“차 회장, 어서 오시게.”
먼저 온 회장들이 손을 들어 반겼다.
삼황, 일성, 록산, 금조, 현무, 천마, 산국의 회장이었다.
“자네도 들었나? 어제 있었던 신년 보고회가 개판 났다더군.”
“그래, 우광건설 뇌물에 연루된 군 및 행정부 수뇌부들이 곡소리 나도록 굴렀다는 소리라면 나도 들었지.”
“제대로 걸렸으니 왕창 깨질 수밖에. 반면 청와대 경호실장과 비서실장, 그리고 중정부장과 육군보안사령관은 각하께 술 석 잔을 받았다는군.”
금조의 조 회장이 더욱 은근하게 속삭였다.
“높은 자리에 올랐는데도 애국하는 마음으로 청렴하게 국정을 돌봤기에 내리는 포상이라지 뭐야.”
현무의 오 회장도 슬쩍 말을 보탰다.
“덕분에 각하의 신임이 더 굳건해진 모양이야. 오늘 청와대 오찬에 그들도 전부 참관한다는군.”
“구 시장을 포함해서 고위직 행정관료들 역시 병풍처럼 둘러설 예정이라지 뭔가?”
“우리 귀에 이 소리가 들어가게끔 일부러 말을 흘렸다는 소리야.”
록산의 강 회장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우광처럼 허튼수작 부린다면 혼쭐을 내주겠다는 각하의 경고일세.”
“침몰한 우광을 뜯어먹겠다고 작정을 한 듯해.”
“그게 아니라면 군과 행정 수뇌부들을 굳이 정계 오찬 모임에 불러들일 까닭이 없다, 이 말이야.”
그룹 총수들은 은근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측근들이 우광을 뜯어먹어봤자 한계가 있지.”
“주식으로 한몫 단단히 챙겨서 빠질 일이야. 하지만 회사는 남아.”
“바닥까지 주가가 떨어졌다가 순식간에 반등하면서 손해는 꽤 보기야 하겠다만.”
측근들은 군과 행정의 수뇌부들이다.
그들이 원하는 건 돈이지, 회사의 경영권이 아니었다.
반면 총수들이 원하는 건 회사의 경영권과 이권이었다.
“우광이 주저앉으면 국가 경제가 무너져. 우리가 그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지.”
“이 나라의 경제와 산업 발전을 위해 기꺼이 총대를 멜 각오가 되었네.”
“그걸 논의하자고 각하께서 정관계 모두를 불러들이신 거겠지?”
한마디로 헐값에 우광 계열사를 인수하려고 눈독 들이고 있었다.
“우리끼리 죽어라 싸울 것도 없지 않나?”
“서로 눈치껏 적당히 도와주자고.”
순식간에 결성된 담합의 장.
차 회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우광의 김 회장은 아직인가?”
“그 친구가 여길 왜 오겠어?
금조의 조 회장은 콧방귀를 뀌었다.
“설사 총수 자리에 있더라도 병원에 입원했단 핑계로 꽁무니를 내빼야 할 상황 아닌가?”
“청문회 저리 가라 할 만큼 집중포화를 맞을 텐데. 그 자존심에 그 화를 다 어찌 감당하려고?”
벌컥!
만찬회장 문이 열리고, 나이 지긋한 총수들에 비해 유독 젊은 남자가 저벅저벅 걸어왔다.
“우광의 김대식입니다. 오랜만입니다, 회장님.”
그는 그룹 총수들을 향해 깍듯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아버님께서 총수직을 사퇴하신 까닭에 총수 대리인으로 이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대식아.”
“차 회장님도 와 계셨군요.”
우광의 김대식은 태성건설 차성준을 힐끔 보더니 웃는 낯으로 차 회장을 돌아보았다.
“성준이와의 혼사는······ 유감입니다. 여러모로.”
전혀 유감스럽지 않은 표정과 어투였다.
“대식아, 오늘은 상황이 썩 좋지가 않다.”
“알고 있습니다.”
“각하께서 오시기 전에 이만 돌아가는 게 나을 게다. 아직 우광의 총수직에 오르지도 않은 서른일곱짜리 애송이가 여기서 뭘 어쩔 수 있겠느냐.”
“아직 총수직에 오르지 않은 애송이니까 온 겁니다.”
우광의 김대식은 양복 재킷을 바로 했다.
“겁쟁이처럼 아버지 뒤에 숨어다닐 생각 없습니다. 우광이 난도질되는 것만큼은 막아봐야죠.”
“대식아.”
“혼사가 파투 났다고 사업까지 파투 낼 수는 없잖습니까.”
딱딱.
“정숙! 각하께서 드십니다!”
앉아 있던 그룹 총수들이 벌떡 일어나 동시에 허리를 굽혔다.
“각하!”
대통령의 뒤로 청와대 경호실장과 비서실장이 따랐다.
중정부장과 육군보안사령관은 물론 군과 행정부의 수뇌부들이 속도를 맞추어 입장했다.
“각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우광의 김대식은 그 자리에서 무릎 꿇고 이마를 바닥에 대었다.
“······.”
만찬회장에는 정적이 흘렀다.
모두가 서 있는 자리에서 바닥에 납작 엎드려 오체투지한 사람은 오직 한 명뿐이었다.
< 청와대 오찬 (1)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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