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126)
재벌집 만렙 아들-126화(126/416)
< 본가 호출 >
할머니는 소매를 걷어붙였다.
“내 이것들 버르장머리를······!”
“여보, 임자! 뭘 어쩌려고?”
“나도 참을 만큼 참았어요. 여태, 지금껏, 언제나, 늘!”
“알아! 그래서 나도 언제나 고마워하고 있어. 진심이야.”
“그러면 회장님은 뒤로 빠져 계세요! 오늘부터 집안일은 내 소관으로 맡겨주셨으면 좋겠군요.”
할머니는 뒤를 홱 돌아봤다.
“정혁이 말이 다 맞다고 했어요.”
두 부부의 눈이 마주치자 할아버지가 움찔하며 눈을 피했다.
“호적정리만 하면 다가 아니라고. 말로 낸 상처도 가만히 두면 곪아 썩는다고. 그건 평생 간다는 말, 틀린 거 하나 없어요!”
그만큼 할머니의 눈은 살기등등했다.
“여기 당사자가 있잖아요.”
할머니는 검지로 본인의 가슴을 콕 찔렀다.
“이 집안에 들어와서 내가 애들 눈치 보느라, 남편을 남편이라 부르지 못하고, 어머니 소리 못 들은 게 자그마치 29년이에요.”
“그, 그건······.”
“눈앞에서 죽은 어미를 본 이후로 밤마다 숨넘어가는 어린애들이 불쌍해서 모른 척 넘어가기로 결심했어요. 아버지마저 뺏길까 봐 덜덜 떠는 애들이 안쓰러워서 내가······!”
“여보······.”
“그래서 당신을 회장님이라고 불렀고, 애들한테는 정 여사라고 불리는 걸 감내했어요. 내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데요?
할머니는 파르르 떨었다.
“이제 서른 줄 마흔 줄인 애들 눈치를 내가 언제까지 봐야 하는데요?”
무려 삼십 년 가까이 쌓아온 불만이 터진 듯했다.
“잘못 생각했어요. 언젠가는 내게 마음을 열겠거니, 지금은 아픈 애들 상처가 먼저겠거니, 그러다 세월만 훌쩍 지나간 거죠.”
“애들이 어렸으니까. 제 어미를 그렇게 눈앞에서 잃고······.”
“알아요. 회장님이 첫째를 왜 그리 유독 안쓰러워하는지, 내가 왜 모르겠어요.”
“그건 고마워.”
“그래도 이건 아니죠.”
할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그간 욕심 많이 안 부렸다고 생각해요. 이복동생을 자기 형제로 받아들여서 함께 어울리기만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었는데······.”
“형제 사이가 이만하면 괜찮지.”
“애들이 괜찮대서 나도 괜찮은 줄 알았죠. 하지만 아니더라고요.”
긴 한숨과 함께였다.
“왜 나는 아직도 정 여사이고, 회장님은 왜 아직도 회장님인 거죠? 왜 나는 지금까지 새해 첫날 떡국 먹는 자리에 얼굴 한 번 못 비춰야 하죠?”
할아버지의 입이 조개처럼 딱 다물려졌다.
“이게 정상은 아니잖아요.”
“여보······.”
“나는 괜찮아요. 하지만 우리 애들은 안 돼요.”
할머니가 나를 가리켰다.
“오죽하면 여덟 살짜리 애가 와서 이런 말을 해요. 어른들더러 교통정리 똑바로 하라고, 할아버지가 지켜주지 않으니 자기 가족은 자기가 지켜야겠다고. 부끄럽지도 않아요?”
“크흠.”
“그래서 나도 더는 못 참겠어요. 아니, 안 참겠어요.”
할아버지가 붙잡으려고 했지만, 할머니는 등을 돌렸다.
“정혁이가 그랬죠? 진짜 가족이라면 잘못된 점은 딱 잘라 훈계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안쓰럽다고 마냥 오냐오냐 받아주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
할머니는 길게 탄식했다.
“나도 지금부터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용기를 내볼까 해요.”
“임자.”
“진즉 이랬어야 했어요. 쉬쉬하며 덮어둔 상처가 썩어서 곪아터졌잖아요. 이렇게.”
할머니는 다다다 쏘아붙였다.
“싸움은 말리는 게 아니라, 싸울거리를 차단하는 게 먼저고, 서열정리랍시고 개싸움이 나든 말든 방치할 게 아니라 규율을 세워서 기강부터 잡아주는 게 먼저라고. 전적으로 동의해요.”
할머니는 딱 잘라 말했다.
“정혁이만이 아니라 나도 여태 회장님 체면 생각해서, 가족끼리 얼굴 붉히기 싫어서, 속이 문드러지도록 참고 또 참았어요. 이젠 안 참겠단 소리예요.”
“말숙아!”
“그러니 이제부터 내가 나서서 교통정리 좀 확실히 할까 해요.”
할머니는 후련한 듯 웃었다.
“서열정리? 며느리 유세? 텃세? 기싸움? 그거 이제부턴 나랑 먼저 하자고 해요. 그게 순서잖아요?”
할머니가 작정하자, 할아버지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며느리들 눈치 보기 전에 잘못 키운 자식을 불러다 족치는 게 맞고요.”
“······.”
“왜요? 계모에겐 애들 나무랄 자격도 없어요?”
“······아니. 당신이 자격이 없긴 왜 없어?”
할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삼십 년 가까이 어미 노릇 했으면 충분하지.”
“그럼 당신은 잠자코 뒤로 빠져 있어요.”
“······뭘 어떻게 하려고?”
“나도 이젠 내 식대로 부딪쳐 보려고요.”
“그러니까 어떻게?”
할아버지는 불안한 듯 눈을 굴렸다.
“설마 처갓집 룰대로 하겠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아무렴 가족인데, 내가 설마 애들을 지하실이나 야산으로 끌고 가겠어요?”
어라?
어디서 많이 애용하던 장소가 툭 튀어나왔다.
“우리 친정 룰대로라면 손도끼랑 오함마, 청테이프와 삽부터 준비해요. 내가 설마 애들 손모가지부터 자르고 말 트겠어요?”
역시나 익숙한 도구들, 친숙한 대화법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차용증을 들이밀면서 계열사 돌며 일수 도장을 찍겠어요?”
할머니는 몹시 음흉하게도 “우후훗!” 하고 웃었다.
“그러니 이빨이나 손톱, 머리털 정도는 뽑아도 괜찮잖죠?”
“아니!”
할아버지가 다급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무릎 꿇리고 재갈 물려서 지하실에 감금하는 것 정도는?”
“안 되지!”
할아버지가 기함하며 더욱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휴우, 그럼 김치 싸대기나 물 싸대기 정도로 타협해 볼게요.”
“하지 마!”
할아버지가 뒷목을 잡았다.
“당신이 이리 과격하니 애들한테 적극적으로 뭘 어떻게 해볼 생각을 하지 말란 소리가 나오는 거 아냐!”
“그래도 밥상머리 뒤집어엎는 건 양보 못 해요.”
할머니는 몹시 불만 어린 표정으로 볼을 부풀렸다.
“안 그러면 애들 친정집에 쳐들어가서 멱살부터 잡을까요?”
“밥상머리나 엎자! 그거 좋다!”
“콜.”
극적으로 타협점을 도출하게 된 순간이었다.
“회장님, 오늘 저녁 애들은 집에 두고 오라고 해요. 동심은 지켜줘야죠.”
“그래.”
할아버지는 몹시 피곤한 듯 미간을 주물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할머니는 날 바라보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정혁아, 할머니 믿지?”
나는 할머니에게 엄지를 척 들어주었다.
“그럼 됐다. 우후훗!”
“우후훗!”
우리 조손은 서로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꺼내는 단어만 봐도 든든하기 이를 데가 없구만!
할머니, 왠지 내 스타일이시다!
* * *
차 회장의 호출을 받고 첫째 며느리는 안방으로 달려갔다.
찰싹!
“으악!”
차대준은 자다가 등짝을 대차게 얻어맞고 팔짝 뛰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왜 아침부터 그래?”
“아침은 무슨! 벌써 오후 4시가 넘었어요!”
“오늘 주말이잖아. 출근 안 한다고.”
“어휴, 술 냄새!”
“속 쓰려 죽겠어. 나 북엇국 좀······.”
“북엇국 같은 소리 하네!”
찰싹!
부인이 풀 스윙으로 남편의 등짝을 후려갈겼다.
첫째인 차대준은 오징어처럼 몸을 비틀며 끙끙댔다.
숨마다 섞인 술 냄새가 풀풀 풍겼다.
“이 인간아! 허구헌 날 무슨 술을 동틀 때까지 마셔?”
“크흠, 술 접대가 다 그렇지.”
“당신이 말단 영업사원이야? 술 접대는 임원들이나 하라고 해요!”
“이것도 엄연한 회사 일······ 으악!”
부인이 주먹을 들고 달려들자, 차대준은 몸을 비틀다가 침대 밑으로 쿵 떨어졌다.
남편을 한심하게 내려다보며 부인은 혀를 찼다.
“주접 그만 떨고 이만 일어나요. 본가 호출이에요.”
“왜? 무슨 일인데?”
“몰라요. 갑자기 연락 와서 오늘 저녁 같이 먹자고 하시네요.”
“그럼 나 북엇국 좀 끓여달라고 아버지 댁에 전화라도······.”
“이 웬수가 진짜! 지금 둘째네는 어떻게든 화학과 자동차를 먹어보겠다고 개 발에 땀 나도록 뛰고 있다는데!”
“어, 그래? 허허허. 역시 기준이가 손이 빨라.”
“지금 웃음이 나와요? 그럴 때는 내 밥그릇 왜 넘보냐면서 화를 내야죠!”
“화? 왜? 이것도 다 태성을 위해서······ 억! 아파! 그만 좀 때려!”
퍽! 퍽! 퍽!
“당신이 이렇게 정신 줄 놓고 술이나 퍼마시니까 무능하단 소리를 듣는 거예요! 중장비랑 자동차 안 챙길 거예요?”
“그건 아버지가 어련히 알아서······.”
“아버님이 어디 거저 내주는 사람이에요? 공이랍시고 내세울 생색거리라도 있으면 또 몰라! 세월아 네월아 술이나 처마시고 다니면 누가 알아주냐고요! 내가 못 살아, 정말!”
퍽! 퍽! 퍽!
그렇게 첫째네는 싸웠다.
* * *
차 회장의 부름을 받은 셋째 딸 차만영은 짜증을 냈다.
“저녁 식사를? 이렇게 갑자기?”
“예.”
태성백화점에서 새로 연 피부미용실에서 마사지를 받고 있던 참이었다.
“무슨 일로?”
“그것까진 모르겠습니다. 정 여사님의 호출이시랍니다.”
“정 여사님이? 우리 아버지가 부른 게 아니고?”
“예.”
“웬일이래? 이런 적 한 번도 없으시잖아? 때맞춰 밑반찬만 넣어주고 도망치듯 사라지시는 분이?”
고모인 차만영이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손톱을 손질하던 직원이 깜짝 놀라 외쳤다.
“아직 움직이시면 안 돼요! 매니큐어 아직 덜 말랐어요!”
“다시 칠하면 되지. 그게 지금 중요해?”
“덧칠하면 안 예뻐요.”
“그렇게 중요한 건 진작 말했어야지! 흥.”
얌전하게 손을 도로 내어주면서 차만영은 고개만 돌렸다.
“조카들 몫으로 쇼핑 좀 해야겠네? 김 전무, 준비해요.”
“그게···, 애들은 빼놓고 어른들만 모이라는 전언이었습니다.”
“그럴 리가?”
차만영이 고개를 갸웃대자, 머리에 두르고 있던 수건이 스르륵 떨어졌다.
차만영의 똑단발이 찰랑찰랑하게 내려왔다.
“정 여사님이라면 애들 입에 뭐라도 넣어주고 싶어서 안달을 내시는 분인데?”
“분위기가 좀 심상치 않아 보였습니다.”
“무슨 문제 있어요?”
“그것까진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만, 듣자 하니······.”
태성백화점 김 전무가 허리를 굽혀 차만영의 귓가에 작게 소곤댔다.
그럴수록 차만영의 눈썹이 뾰족하게 올라갔다.
“뭐라고요? 누가 누굴 구박해? 우리 정혁이 앞에서 태성화학이 뭐 어쩌고저째요?”
차만영은 신경질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는 바람에 손톱에 바르던 매니큐어 칠이 삐뚤어졌지만, 차만영은 상관하지 않았다.
가운을 추켜올리며 차만영이 똑단발을 뒤로 넘겼다.
“안 되겠네.”
“사장님, 자꾸 그러시면 손톱이······!”
“지금 손톱이 문제야? 우리 막내 조카가 울었다잖아!”
“······전 운다고 말씀드린 적이 없습니다만.”
“애 앞에서 제 엄마를 대놓고 면박 줬다는데, 그럼 애가 울지 안 울어요?”
차만영은 신경질적으로 실내화를 구겨신었다.
아직 손톱에 바른 칠이 다 굳지도 않았는데도, 차만영은 머릿수건을 내던지며 탈의실로 향했다.
“아버지는 대체 애 앞에서 뭘 어떻게 하신 거람? 내가 진짜 못 살아!”
그렇게 셋째는 분기탱천하여 본가의 호출에 응하기로 작정했다.
* * *
차 회장의 호출을 받은 둘째 며느리는 얼음처럼 싸늘했다.
“기준 씨 지금 당장 집에 들어오라고 전해요.”
양 비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지금 어느 년이랑 어디서 뒹굴고 있는지 묻는 거 아니잖아요.”
“······.”
“본가 호출 왔어요. 저녁 식사래요.”
“······차후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차후가 아니라 지금 당장! 급히 논할 말이 있으니······.”
“용건은 김 비서님께 직접 듣겠습니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내 말은 씹어도 본가 호출은 못 씹는다? 내 말은 안 들어도 김 비서에게는 묻겠다?”
둘째 며느리는 양 비서를 매섭게 노려봤다.
“아버님께서 중대 발표를 하시겠노라 애들까지 떼어놓고 모이는 자리에요.”
“예.”
“감이 영 안 오나 봐요? 청와대 오찬에 다녀온 직후에 갑작스레 호출한 중대 발표라면 하나밖에 없잖아요.”
“우광 계열사의 처분······입니까?”
“이제야 좀 대화가 되겠네.”
둘째 며느리는 화장대에 앉아서 화장을 고쳤다.
빨간 립스틱을 진하게 발랐다.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란 뜻이에요.”
치익. 칙.
독한 향수도 뿌렸다.
“조선, 자동차, 중장비, 화학. 이 중에 굵직한 거 두어 개는 먹어치워야 하지 않겠어요?”
그녀는 보석함을 펼쳐놓고 가장 크고 비싼 귀걸이를 꺼내 귀에 걸었다.
아버님과 친정아버지가 독대한 직후에 예정에도 없던 중대 발표라니.
너무 기쁘고 설레서 심장이 쿵쿵 빠르게 뛰었다.
“갤러리에서 물건 따로 추려서 빼놨다고 전해요.”
“사모님?”
“화학과 자동차. 갖고 싶지 않대요?”
“으음.”
“그렇다면 지금 누구보다 내 도움이 간절할 것 같은데?”
양 비서는 움찔했다.
그럴수록 둘째 며느리의 웃음은 짙어졌다.
차가운 웃음이었다.
“시간 없으니까 지금 당장 달려오라고 해요.”
“예!”
양 비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쳐나갔다.
거울로 그 모습을 보면서 둘째 며느리는 머리를 매만졌다.
“친정아버지가 도와주시기로 결정한 이상, 잘하면 화학과 자동차는 내 몫으로 떨어질지도?”
태성그룹 총수는 공을 세운 만큼 포상을 내어주는 사람이니까.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 본가 호출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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