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130)
재벌집 만렙 아들-130화(130/416)
< 부러운 것들 >
JH투자회사는 명동에 있었다.
위이이잉.
사무실에선 복사기 돌아가는 소리가 쉬지 않고 울렸다.
타다다닥. 타다닥. 타다다다닥.
타자기 소리마저 끊기는 법이 없었다.
자료 넘기는 소리도, 따각따각 스테이플러 집는 소리도, 장부에 코를 박고 끙끙대는 소리도 함께였다.
“크흐흐흑.”
신음 소리 비슷한 울먹거림이었다.
“이렇게는 못 살겠습니다. 퇴근 좀 시켜주세요!”
“저는 과외 하러 왔지, 복사하러 온 게 아니거든요.”
“손가락이 부러질 것 같아요. 타자를 쳐도 쳐도 끝이 없다니까요?”
정혁이의 과외 선생님들이었다.
스무 명의 선생들은 다크서클이 진해진 눈으로 하소연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 일이 너무 많은 거 아닙니까? 흐흐흑.”
“서류 냄새가, 잉크 냄새가 코끝에서 떠나질 않아요.”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전 그냥 과외 알바 하던 대학생이었을 뿐이었는데요, 정신 차려 보니까 회사원이 되어 있습니다?”
따르릉. 따르릉.
시끄럽게 전화벨이 울렸다.
과외 선생 중 누군가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외쳤다.
“무슨 전화가 3분에 한 번꼴로 와!”
“노이로제 걸릴 것 같다. 돌아버리겠어.”
“······전화선 코드를 뽑자.”
그러자 같은 사무실을 쓰고 있는 전(前) 태성건설 임원이 으르렁대며 외쳤다.
“동작 그만. 뭐? 전화선을 뽑아?”
“이것들 회사원의 기본자세가 글러먹었구만?”
“영업 안 할 거야? 문의 안 받을 거야? 업무 안 할 거야?”
“그래, 누구는 영업 따온다고 하루에 다섯 탕, 일곱 탕씩 간이 썩어나가게 뛰어다니고 있는데.”
전 태성건설 임원들의 다크서클은 과외 선생들보다 진하고 깊었다.
“부러운 것들!”
심지어 말을 할 때마다 지독한 술 냄새가 폴폴 풍겼다.
“기껏해야 잡무밖에 안 하는 것들이 징징대기는.”
“우리는 영업 따온다고 까이고! 될 만한 투자처를 골라내고, 투자 제안서 작성하고, 결재받으면서 또 까여! 맨날 까여!”
“이 개 같은 업무 강도를 늬들이 알기는 해?”
전 태성건설 임원들의 책상에는 서류가 두툼하게 쌓여 있었다.
어림짐작해봐도 과외 선생들의 책상에 쌓인 서류에 비해 열 배는 족히 쌓인 듯싶었다.
그때 사장실 문이 벌컥 열리면서 훌쩍 늙어버린 심 사장이 걸어나왔다.
“부러운 것들!”
심 사장이 들고나온 결재서류는 삼십 개가 넘었다.
“지금 이렇게 한가하게 노닥거릴 때야? 할 일이 태산입니다!”
이미 결재서류로 탑을 쌓아서 나르고 있는 수준이었다.
“네놈들은 영업 따낸 거나 투자처를 정리하면 그만이지! 난 시발 우광 계열사 인수 상황 전체를 파악해야 돼!”
심 사장의 안색이 왜 이렇게 거무튀튀한가 했더니.
알고 보니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왔기 때문이었나.
“너희들이 술 접대한답시고 시시덕거리며 처먹고 있을 때, 난 사무실에 처박혀 지금 한 달째 집에도 못 들어가고 있단 말입니다!”
심 사장이 괴로움에 몸을 비틀자,
“이번에 우리가 인수하게 된 우광 계열사만 몇 개입니까?”
결재서류로 쌓아 올린 산이 휘청거렸다.
“우광조선, 자동차, 중장비, 병원, 제약, 연구소! 시발, 여섯 개! 거기에 태성화학 재인수까지! 시발, 일곱 개!”
심 사장은 악에 받쳐서 외쳤다.
“자랑도 정도껏 작작 하십시오! 나 도와줄 거 아니면 입 닥치라고!”
“······.”
“이 새끼들이 입 닥치랬다고 진짜 닥치냐? 3인 1조가 되어서 날 도와주면 어디 덧나냐?”
“······.”
“이런 시발!”
조용해진 사무실에선 다시 복사기가 위이잉 돌아갔고, 타자기 소리는 도로 빨라졌으며, 서류 넘기는 소리는 더 조용해졌다.
탁!
심 사장이 결재서류탑을 내려놓은 건 사무실 한쪽 구석에 위치한 책상 위였다.
이 사무실에서 가장 큰 책상에, 가장 크고 비싼 의자가 자리한 곳.
심 사장의 결재서류탑만 한 서류가 적어도 열 개 이상 쌓여 있는 책상.
그곳에선 아까부터 조용히 팔랑팔랑 서류 넘기는 소리밖에 들려오지 않았다.
“보스, 우리 직원 충원은 언제 합니까?”
“소리 지르시는 거 보니까 아직 여유가 넘치시는 것 같던데요?”
그러고 보니 책상 위에 높게 쌓인 서류산 너머로 자그마한 머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몽블랑 만년필 한 자루를 꼭 쥔 채 서류를 넘기고 있는 어린애.
정혁이었다.
“보스, 차라리 영업을 뛰겠습니다! 술 접대시켜주십시오!”
“에이, 귀한 인력을 그렇게 낭비하면 쓰나요.”
그 말에 전(前) 태성건설 임원들은 사무실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눈물이 고여 반짝거렸다.
“이러다 과로사 하겠습니다! 그럼 계열사 하나만 맡아 키우겠습니다!”
“에이, 그럼 제 과외는 언제 해주시려고요.”
그 말에 정혁이 과외 선생들도 사무실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이쪽은 콧물까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유 팀장님, 이 황금색 박스는 심 사장님께 보내세요.”
“옙, 맡겨주십시오.”
눈치 빠른 경호원이자, 보스의 수족을 자처하는 유종태가 벌떡 일어났다.
정혁이의 책상 옆 바닥에는 언제나 커다란 박스가 세 개 나란히 놓여 있었는데.
각각 <황금색>, <은색>, <똥색>이라는 뜻 모를 라벨이 붙어 있었다.
황금색 상자는 심 사장의 몫이었다.
“은색 자료는······.”
“캐비닛에 넣고, 똥색은 소각장으로 보내겠습니다.”
유종태는 이런 일을 한두 번 해본 게 아닌 듯 능숙하게 움직였다.
돌돌돌돌.
작은 손수레를 끌면서 사장실까지 배달 완료.
정혁이는 반대편 책상 옆에 놓인 박스를 가리켰다.
“우광화학 노조와 임원들에 관한 자료 조사는 다 끝냈나요?”
“여기 있습니다!”
태성그룹 경호원들이 저마다 서류뭉치를 들고 후다닥 달려와서 줄지어 섰다.
경호원들이 정혁이 눈치를 보며 들고 온 서류뭉치를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올렸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아시다시피 저희가 서류 작업은 영 젬병이라서요.”
“대신 우광 노조 간부들은 물론이고 부장급 인사들까지 뒤를 탈탈 털어왔습니다.”
“처자식은 물론이고 사돈에 사촌까지 털었습니다.”
“팔촌까진 못 건들었습니다. 시간 관계상도 그렇고 털 놈도 너무 많아져서요. 쩝.”
정혁이는 수북하게 쌓이는 서류뭉치를 보며 씩 웃었다.
“고생하셨어요.”
“별말씀을요.”
“도련님께 도움이 됐다면 영광이죠.”
정혁이는 서류뭉치를 분류하기 시작했다.
쉴 새 없이 서류 위를 훑어내리는 눈동자와 기계적으로 분류하는 능숙한 손길!
눈치 빠른 경호원이자 수족을 자처하는 유종태가 어느새 잽싸게 튀어왔다.
착. 착. 착.
<치부책>, <정보 문건>, <기타>란 라벨이 적힌 상자를 깔았다.
휙. 휙. 휙. 휙.
“치부책을 만들 자료는 정계, 재계, 사회계, 기타로 묶어서 계층별로 정리하시고요.”
“그건 우리 1조가 맡겠습니다.”
“정보문건은 그룹별, 년도별, 사업별로 묶어서 정리해주시고요.”
“그럼 이건 우리 2조가 맡겠습니다.”
정혁이는 씩 웃었다.
“그동안 우광 노조와 임원들의 뒷조사를 열심히 하셨네요. 3조와 4조는······.”
“외근 나갔습니다.”
이게 태성그룹 경호원들의 일이었다.
그들은 사무실 서류 작업이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다.
대신 김 비서가 굴리던 대로 잘 굴려 쓰고 있었다.
엄연히 이것도 전문가가 필요한 영역이라구?
“3조는 지금 뒷골목 해결사들 멱살 잡고 있을걸요?”
“4조는 아마 술집이랑 건달패 사업체를 돈다고 바쁠 겁니다.”
“좋아요.”
정혁이가 만족스러워하며 웃자, 태성그룹 경호원들은 헤벌쭉 웃었다.
“도련님, 오다 양갱 사왔는데 한번 드셔보실래요?”
“전 수정과를 사왔습니다만. 식혜는 어떠신지요?”
“서류 분류하느라 피곤하시죠? 안마 좀 해드릴까요?”
태성그룹 경호원들은 재빨리 간식을 세팅하고, 팔다리에 한 명씩 달라붙어서 조물딱거리며 안마를 해줬다.
“말랑말랑······ 찰떡이다······ 크흠.”
“어이, 신입. 힘 빼라. 눌린 자국 뭐냐?”
“앗! 죄송합니다. 그만 저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쿡 찔러버리고 말았습니다.”
유종태가 군고구마에 데운 우유와 김치를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웃었다.
“오늘따라 유독 일거리가 별로 없으시군요?”
과외 선생들이 입을 떡 벌렸다.
누군가 “저게 적어?”, “미쳤네······.” 소리를 흘렸다.
“도련님, 오늘은 3시 이전 조기 퇴근도 가능하시겠는데요?”
전(前) 태성건설 임원들도 입을 떡 벌리긴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그게 가능해?”, “괴물······.” 소리를 흘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파라라락. 파라라락.
정혁이는 심 사장이 가져온 결재서류를 읽어내렸다.
“역시 심 사장님!”
그새 결재서류 한 부를 뚝딱 검토하고,
“핵심만 뽑아서 잘도 추려오셨네요. 보기 좋고, 깔끔하고, 확실하고, 덧붙인 견해까지. 굳!”
손에 쥐고 있던 몽블랑 만년필로 서명날인을 끝냈다.
탁. 타타탁. 탁.
그렇게 정혁이는 서류산을 해치웠다.
유종태가 곁에서 결재서류를 탁탁 두드려 각 잡아 쌓아 올리면 이것도 끝!
정혁이는 웃으면서 심 사장을 돌아봤다.
“심 사장님, 방금 결재 다 끝냈는데요?”
“헉!”
심 사장이 눈을 부릅뜨며 재빨리 입가를 닦아냈다.
유종태가 눈매를 좁혔다.
“설마 서서 조셨습니까?”
“이틀 밤을 새웠더니. 크흠.”
그 모습을 보고 전(前) 태성건설 임원들은 화들짝 놀라서 자세를 바로 했다.
힘들다고 징징거렸던 자들이 얼굴을 붉혔다.
“이런. 약속시간에 늦겠습니다.”
“개발에 땀 나도록 영업 따와야죠! 밥값 해야죠!”
“바로 기획서 만들어 올리겠습니다. 투자받아야죠.”
“야근이라도 감지덕지였습니다. 따박따박 집에 들여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태성건설 임원들이 과외 선생들을 슥 돌아보았다.
“부러운 것들.”
정시 출근 정시 퇴근하는 과외 선생들은 민망해하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오늘따라 복사 용지가 참 아름다워 보이네요. 아하하······.”
“내가 오늘 쓰레기통을 비웠더라? 커피포트에 물을 받아놨던가? 크흠흠!”
“세상에서 타자 치는 일이 제일 쉬웠어요.”
똑똑똑.
딸랑.
사무실 문이 열렸다.
고개를 빼꼼하게 내밀어 방문 손님을 확인한 과외 선생 중 하나가 놀라 외쳤다.
“정혁이 아버님?”
“뭐? 누구?”
순간 JH투자회사 사무실엔 정적이 흘렀다.
사람들은 얼음이 된 것처럼 동작을 멈췄고, 복사기와 타자기 소리마저 그쳤다.
따르릉! 따르릉!
삽시간에 조용해진 사무실엔 전화벨 소리만 울렸다.
하지만 누구도 전화를 받지 못했다.
누군가 재빨리 전화선을 뽑았지만, 아무도 그걸 나무라지 않았다.
다들 두 사람을 번갈아 보느라 몹시 바빴기 때문이었다.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일 보십시오.”
정혁이 아버지와,
“삼 곱하기 일은 삼, 삼 곱하기 이는 육, 삼 곱하기 삼은 구.”
난데없이 구구단을 외우기 시작한 보스, 정혁이를 말이다.
“······.”
“······.”
정혁이가 손에 든 결재서류를 내려놓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빠, 여긴 웬일이에요?”
“음, 심 사장님을 만나러 왔다. 정혁이 너는 왜 여기에······.”
“심 사장님께 과외 받으려고요.”
“집이 아니라 사무실에서?”
“······요즘 심 사장님이 바쁘시다잖아요.”
뭐? 왜? 뭐!
심 사장에게 과외 받는 거 맞지!
대상이 내가 아닐 뿐이지만.
게다가 바쁜 것도 맞잖아?
물론 심 사장만 바쁜 건 아니지만.
“여기 이 사람들은 네 과외 선생님들이신 것 같은데. 이건 어떻게 된 일이지?”
“······견학 겸?”
왜? 뭐? 왜!
견학(見學)!
보고 배워서 익히고 있는 거 맞지!
“도련님, 이쪽으로 오십시오.”
심 사장이 정혁이 아버지를 사장실로 모셨다.
달칵.
사장실 문이 닫히자, 전(前) 태성건설 임원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정혁이를 돌아봤다.
그중에서도 깡다구 좋기로 제일인 오정섭 전무가 고개를 갸웃댔다.
“혹시······.”
“왜요? 뭐요? 왜요! 우리 아빠 처음 봐요?”
정혁이는 인상을 팍 썼다.
“한가하신가 봐요? 유 팀장님, 여기 이 박스 오 전무님한테 배달.”
“어허허헉!”
오정섭은 기함했다.
유종태가 손수레를 돌돌돌 끌면서 커다란 박스를 배달했기 때문이었다.
박스에 적힌 라벨은 <똥색>.
“이거 분류해서 쓸만한 사업거리 찾아내 보고서로 만들어 올리세요.”
“······.”
오정섭은 손을 덜덜 떨면서 똥색 박스를 받아 들 수밖에 없었다.
유종태가 그런 오정섭을 보면서 혀를 찼다.
“눈치가 없는 건 정말 유감입니다.”
“유종태!”
“왜요? 오정섭 씨?”
“오정섭 씨? 오정섭 씨이이이? 야, 이젠 같은 사무실 쓰고, 직급도 내가 더 높······.”
“보스, 오정섭 씨가 이걸론 부족하시다는데요? 목소리에 독기가 철철 넘치십니다.”
정혁이가 심드렁하게 반대쪽 서류 박스를 발로 툭 찼다.
<기타>라고 적힌 서류 박스였다.
“그럼 이것도 정리하라고 하세요. 개인별로 식별코드 붙여서.”
“옙, 보스!”
유종태는 얄밉게도 씩 웃으며 손수레를 달달달 끌었다.
오정섭은 끙 소리와 함께 똥색 박스와 기타 박스를 양팔 가득 떠맡게 되었다.
“······.”
딱.
정혁이가 손가락을 부딪치자, 저승사자가 스르륵 올라왔다.
‘가라! 우리 아빠가 무슨 용건으로 오셨는지.’
[알았다.]* * *
저승사자가 스르륵 가라앉으며 사장실로 흘러들어갔다.
응접실 소파에 앉아 심 사장과 아버지는 차를 마셨다.
“심 사장님, 도와주십시오.”
아버지가 단도직입적으로 용건을 꺼냈다.
심 사장은 의아해서 물었다.
“뭘 도와드릴까요?”
“태성화학 말입니다.”
“그건 이미 재인수까지 협상 다 끝냈는데요?”
이미 심 사장의 손을 떠난 일이었다.
태성화학이 어머니 몫이라는 할아버지의 선언 후, 꼬박 한 달이나 걸려 해치운 일이었다.
“고용 승계까지 다 끝냈으니, 이제 제대로 굴리기만 하면 그만일 텐데요?”
“그게 문제입니다. 우광의 노조까지 고스란히 떠맡게 됐잖습니까.”
아버지는 곤란한 듯 말했다.
“우광화학 화재 및 보상금 문제로 연일 노조가 격하게 시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사무실까지 점거했어요.”
< 부러운 것들 > 끝
ⓒ 오소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