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14)
재벌집 만렙 아들-14화(14/416)
< 협상 (1) >
자동차 보조석에 앉은 채, 남산 찰거머리는 팔짱을 꼈다.
“형, 그 코찔찔이 말이야. 확실히 보통내기는 아니었지?”
“예? 귀티 나게 잘생긴 꼬마 도련님이 말입니까?”
“눈 썩었어? 귀티랑 살기도 구별 못 해? 그 나이에 사람 섬뜩하게 만드는 독기랑 광기는 또 뭐냐고. 확실히 정상이 아니야.”
다시 생각해 봐도 그 어린놈, 눈깔부터 분위기까지 죄다 보통이 아니었다.
“겁대가리 없는 새끼,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더라니까? 끝까지 피하지 않고, 놀라는 기색조차 없었어.”
그래서 이상했다.
“오히려 날 같잖게 깔아봤다고. 마치 우리 할아버지처럼. 곱게 미친 눈이었단 말이지.”
“착각하신 거겠죠. 다른 분이라면 몰라도 어찌 조부님과 견줄 수 있겠습니까?”
“형은 내 눈을 1분 이상 똑바로 쳐다볼 수 있어?”
백미러로 눈이 마주치자, 수행원은 흠칫 놀라 시선을 돌렸다.
한쪽 눈은 사백안, 다른 쪽 눈은 삼백안.
열다섯이란 나이가 무색하리만치 살기와 적의가 칼날처럼 내려다 꽂히는 눈이었다.
그 눈앞에 서 있으면 모골이 송연해서 도저히 오래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봐, 못 하잖아.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라니까? 그 새끼가 비정상인 거야.”
남산 찰거머리는 턱을 괴었다.
“그 새끼 진짜 뭘까? 그 자신만만한 태도랑 느긋한 여유도 전부 마음에 안 들어.”
콩알만 한 새끼에게 괜히 배알이 꼴린단 말이지.
이상하지만, 진짜 그렇다니까?
“감히 내가 점찍은 집을 노려? 겁대가리 상실한 코찔찔이에게 세상의 쓴맛을 보여줘야겠네.”
그 꼬맹이, 노리던 집을 빼앗기면 분해 죽겠지?
길바닥에 드러누워 진상짓 하면서 대성통곡하는 꼴을 꼭 봐야겠다.
“형, 저기 공중전화! 엄마한테 전화부터!”
끼이익.
평소답지 않게 마음이 조급해진다.
왠지 꼭 두 눈 뜨고 저 집을 빼앗기기라도 할 것처럼.
그럴 리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희한하게 불안해지는 것이다.
뚜르르르. 달칵.
-여보세요?
“엄마, 나! 이번 생일 선물로 아파트 대신 사고 싶은 집이 생겼어!”
-뭐?
“한남동 집인데, 당장 계약하려면 얼른 돈 좀······! 윽!”
[email protected]#$^#*&&$^%%*@$&%!!!!!대뜸 전화기가 터질 정도의 성량으로 욕설이 쏟아지는 게 아닌가.
-너 그 집이 어떤 집인 줄 알아?! @!^@^&%$&*^%*&%!!!!
뭐지?
“엄마, 나 아직 아무런 설명도 안 했는데······.”
-시끄럿! 귀신 소굴 얘기라면 더 들을 것도 없어!
흠칫!
‘아니, 엄마가 그걸 어떻게 알았지? 나 지금 한남동 집이라는 말밖에 안 꺼냈는데?’
한남동에 있는 그 많은 고급 주택들이 전부 다 귀신 들린 집도 아닐 텐데.
어떻게 콕 짚어서 그 집을 살 거란 걸 눈치챈 거야?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일이었다.
-절대 안 돼! 거긴 재수 옴 붙었어! 그냥 아파트나 사! 투자용으로!
“그거 다 미신이고 헛소문이야! 그냥 포클레인으로 건물 다 때려부수고······.”
-할아버지 선거가 코앞이야! 괜히 쓸데없는 짓 벌이지 말고, 당장 집으로 기어들어왓! 계속 고집부리면 아파트고 뭐고 국물도 없을 줄 알앗! 끊어!
달칵.
남산 찰거머리는 혼미해진 정신을 붙들었다.
내 몫으로 미리 아파트를 사기로 했다면서 나더러 직접 골라보랬는데?
갑자기 왜 이렇게 게거품을 물면서 결사반대하는 거야?
“환장하겠네. 와, 갑자기 일이 이렇게 꼬인다고?”
엄마가 돈을 안 주면 그 집 못 사잖아!
남산 찰거머리는 머리채를 쥐어뜯었다.
“정 안되면 우리 동네 길바닥에 드러누워서 시위라도 해야지.”
당장 어머니를 설득해 돈을 받아내려면 달리 방법이 없다.
“형, 당장 집에 가자! 악셀 콱콱 밟아! 최고 속력으로!”
부르릉!
남산 철거머리와 그의 수행원은 차를 타고 떠났다
피 튀기는 협상이 예고되었다.
* * *
명동의 송골매 전당포.
가게 안에 들어서자 빛바랜 추억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내가 여기서 10년을 버텼었지.’
물건 보는 안목을 기른답시고 하루 15시간이나 스승님을 따라다니며 온갖 잡일을 도맡아 했다.
나 외에도 한 수 가르쳐 주십사 찾아온 사람들이 종종 들어왔었는데, 모두 중간에 나가떨어졌다.
결국 스승님의 모든 것을 전수받은 건 오직 나뿐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너무 긴장했던 탓에 첫 대면에서부터 버벅거렸고, 실수를 연달아 했으며, 당황하면서 수습하다 망하기를 여러 번.
결국 스승님께 눈에 안 찬다는 판정을 받고 10년 간 허드렛일을 전전하며 구박을 면치 못했었다.
‘이번엔 반드시 스승님께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힌다!’
각오는 이만하면 충분하다.
“훠이, 훠이~. 애들은 가!”
흰머리에 회색빛 한복을 입고 있는, 꼬장꼬장한 노인이 손사래를 쳤다.
하여간에 성질머리 괴팍하기로 유명한 분이셨다.
“애는 내보내고 어른들끼리 얘기합시다.”
“잘못 짚으셨는데요? 손님은 저쪽이 아니라 이쪽, 바로 접니다.”
나는 꾸벅 배꼽 인사를 한 후 씩 웃었다.
“담보를 잡혀서 돈을 융통하고 싶어요.”
“오호라, 꼬마 도련님께선 꽤 어려운 단어를 알고 계시군?”
내 차림 어디에서 도련님이란 말이 나올까.
동네 형들에게 물려받은 옷에, 새 운동화도 싸구려 시장표였다.
아하.
“뒤에 서 있는 저 아저씨의 태도를 보고 도련님 소리를 내셨군요?”
“호오.”
“하긴. 차림새로 견적을 내면 안 되죠. 원래 과대포장에 현혹되다간 진흙 속에 숨은 진주를 놓치는 법이니까요.”
“이런, 이런.”
스승님은 외눈 안경을 추켜올렸다.
“오랜만에 아주 재밌는 손님이 오셨구만. 좋아, 그럼 어디 한번 흥정을 시작해 볼까? 참고로 난 어린애라도 안 봐주는 사람이다.”
내가 그걸 모를까.
수발만 10년이었구만!
“생각보다 비싼 물건을 가져온 모양인데.”
“내가 뭘 가져왔을 줄 알고요?”
“잔말 말고 거기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든 거, 어서 꺼내 보거라.”
하여간에 점쟁이가 따로 없다니까.
하지만 반만 맞췄다.
“제가 담보로 내놓을 건 두 개예요.”
“좋아좋아. 꼬마 손님이 준비한 물건이 뭘까 벌써부터 궁금해지는구만?”
나는 카운터 위에 아버지의 시계를 올려놓았다.
“바쉐론 콘스탄틴 패트리모니 1970 스페셜 에디션. 진품이죠.”
“······.”
“1755년 장마르크 바쉐론이 설립한 스위스 명품 시계 회사에서 최고 수준의 품질과 세련된 디자인, 그리고 장인정신을 제공하기 위해 한정 수량만 제작됐던 스페셜 에디션입니다.”
“······.”
“보관 상태가 무척 양호합니다. 애초에 착용을 몇 번 안 한 까닭에 생활 기스조차 거의 없단 건 시곗줄만 봐도 아실 테고.”
스승님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김 비서를 돌아보았다.
“지금 이 상황, 나만 당혹스럽나?”
“저도 비슷한 심정입니다.”
“쟤, 지금 몇 살인가?”
“올해로 일곱 살이 되신 것으로 압니다.”
“······.”
그러거나 말거나.
“이거 얼마나 쳐줄 거예요?”
“이백!”
스승님은 딱 잘라 말했다.
“원래 비싸게 주고 산 물건도 중고로 내다 팔 때엔 똥값밖에 못 받는 법이란다.”
“일곱 살짜리 꼬맹이라고 우습게 보였나 보네요. 그럼 계속해 볼까요?”
“응?”
“오백은 받아야겠어요. 솔직히 이백은 너무 양심도 없이 후려치셨잖아요.”
“······.”
스승님은 고개를 홱 돌려 김 비서를 보았다.
김 비서는 모른 척했다.
“어째서 적정가가 오백이어야 하는지 구구절절이 읊어 볼까요?”
내가 당신 밑에서 배운 게 이건데.
못 할 것도 없다.
나는 배운 대로 하나하나 꼼꼼하게 짚어대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스승님의 입이 점점 더 벌어졌다.
광택제에까지 이르렀을 때, 마침내 스승님이 두 손을 들었다.
“이 꼬마 도련님은 옹알이할 때부터 시계만 팔았나. 그래, 내가 졌다! 오백으로 하자.”
“말씀은 바로 하셔야죠. 애초에 여기 말고 딴 데 가서 입 털었으면 거뜬히 팔백은 받을 수 있는 물건인데요. 잘 아시면서 생색은.”
“······.”
“내 말이 틀려요? 어째서 내 말이 타당한지 또 한 번 나불댈까요?”
“커흠! 이만 다음 물건으로 넘어가 볼까?”
슬쩍 봤더니, 김 비서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내게는 이 시계 외에 더 담보 잡힐 만한 물건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
천만에.
탁.
나는 아까 받았던 태성그룹 비서실장 김영걸의 명함을 내밀었다.
“이건 오백만 원짜리 명함이에요.”
“그깟 명함 쪼가리, 뭐 바꿔 먹을 게 있다고 팔러 왔어? 이건 근처 인쇄소에 가서 돈 주고 파도 그만이구만.”
스승님은 김 비서의 명함을 내 쪽으로 쭉 밀어냈다.
“그런 이유로, 이건 한 푼도 못 쳐주겠는데?”
“저기 당사자가 계신 데도요?”
나는 엄지로 어깨 너머를 가리켰다.
김 비서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잠자코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맞습니다. 그건 제 명함입니다. 인사드리겠습니다. 태성그룹 비서실장 김영걸입니다.”
“세상에 사기꾼이 한둘이어야지. 돈 받고 싶으면 어디 한번 제대로 증명을 해 보던가?”
“굳이 증명할 필요 있겠습니까? 제가 누군지 이미 아시는 것 같습니다만.”
스승님은 쯧, 하고 혀를 찼다.
“좋아. 내 자네의 체면을 봐서 이 명함, 받아주겠네. 이천 원!”
“이천 원?”
김 비서가 눈썹을 찡그렸다.
“제 명함이 고작 이천 원밖에 안 될 줄은 몰랐군요.”
못마땅한 말투였다.
“태성그룹 비서실장의 명함이 짜장면 일곱 그릇 값도 안 된단 말인데. 이거 섭섭합니다, 어르신.”
“어디서 남의 돈을 날로 먹으려 들어? 이깟 명함 따위로 짜장면 한 그릇이라도 바꿔 먹으면 다행인 거지. 이천 원도 많이 쳐준 걸세.”
나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제가 이 아저씨와 내기를 하나 했거든요. 진 사람이 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기로요. 그것까지 포함해서 명함값을 받겠어요.”
“흐응, 그렇다면 말이 다르지.”
스승님은 김 비서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내 일에 태산그룹의 힘을 동원할 만한 일이 몇이나 되겠어? 차 회장도 아니고 비서실장의 손을 빌리는 값? 백만 원도 후하게 쳐주는 게야.”
하여간에 이놈의 후려치기!
김 비서가 눈썹을 꿈틀대며 입을 열기 전에, 내가 먼저 선수 쳤다.
“좋아요. 태성과 좋은 관계를 만들어보자는 말은 없던 것으로.”
“하지만 내 이번엔 특별히 이 명함, 500만 원으로 쳐줌세!”
최고급 명품 시계만큼의 가치를 인정하겠다는 소리였다.
“이 꼬마 도련님, 정말 보통이 아니군?”
그제야 김 비서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스승님은 두 손을 짝 부딪쳤다.
“좋다, 그럼 이제 용건은 다 끝난 거지?”
“아직이에요. 800만 원짜리 볼일이 또 있는데요?”
“800만 원? 이 시계와 태성그룹 비서실장의 부탁보다도 더 비싸게 팔 수 있는 게 또 있어?”
“물론이죠.”
“아까는 담보 잡힐 물건이 두 개라며?”
“물건이 아니니까요. 내가 800만 원짜리 볼 일이랬지, 언제 담보 잡힌댔어요? 자꾸 말 띄엄띄엄 들으실래요?”
“······.”
스승님은 말문이 턱 막힌 듯 입을 뻐끔거렸다.
하지만 잠시 후,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 지었다.
“허, 살다 살다 전당포에 물건도 안 맡기고 돈을 융통하겠다는 손님이 다 있네?”
“때로는 담보 물건보다 정보가 더 비쌀 때도 있는 법이죠.”
나는 검은색 서류철을 탁 올려놓았다.
<우광건설 비자금에 관한 조서>
철구 아저씨가 작성해 둔 서류였다.
‘아저씨,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요. 복사본으로 몇 부 더 준비해두는 게 좋을 거라고.’
당연히 이게 원본이다.
엄마랑 짐 가방 싸서 튈 때 몰래 슬쩍 챙겨왔지.
“중앙정보부 내부 자료예요.”
스승님과 김 비서는 동시에 입을 떡 벌렸다.
“중정?”
“중정의 내부 자료를 빼돌리셨다고요?”
보통 이런 걸 일컬어 극비 정보 혹은 기밀 자료라고 부르곤 한다.
하지만 그게 뭐 어때서?
이런 반응에 의아해지는 건 오히려 내 쪽이었다.
“왜 이렇게 유난스럽게 구세요? 이 정도 능력은 다들 되시면서.”
“······.”
“······.”
스승님이 손가락으로 날 가리키며 김 비서에게 똑같은 질문으로 다시 물었다.
“쟤, 올해 몇 살이라고?”
협상에 나이가 뭐 그리 중요한가.
어떻게 얼마나 왕창 뜯어 먹느냐가 더 중요하지.
그럼 이제부터 제대로 협상이란 걸 시작해 볼까?
다시 말하지만 오늘 내 목표는 ‘내어주는 물건 없이 돈만 뜯어내기!’니까.
< 협상 (1)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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