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143)
재벌집 만렙 아들-143화(143/416)
< 인왕산 선녀보살 (3) >
‘엄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미 내 미간은 잔뜩 구겨진 후였다.
‘일주일간 드라마 시청권 압수.’
[안 돼!]‘녹화 금지 추가.’
[너무해!]저승사자가 억울한 듯 발을 동동 굴렀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몰라서 물어?’
[모르니까 묻지.]저승사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접이 너무 초라해서 그런가?]‘난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다녀오려고 했단 말이지.’
궁금한 건 오직 우리 부모님의 생사안위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백호와 인왕산 선녀보살은 어째서인지 숨넘어갈 정도로 경기를 일으켰다.
[크허헝어어억!]“대, 대접이 그리 초라하였습니까? 더욱 최선을 다해 손님맞이에 나서보렵니다!”
아니, 난 조용히 왔다 가려고 했다니까?
아, 저승사자와 속으로 대화가 가능해서 깜빡했는데.
아무래도 내 속말까진 못 듣고 저승사자의 말만 들을 수 있는 것 같네.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인왕산 선녀보살이 비명처럼 외쳤다.
“이것들아, 당장 안 튀어나와? 이러다 누구 죽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갑니다, 가고 있어요!”
저택의 문이란 문은 죄다 벌컥 열리면서 알록달록한 한복에 흰 고깔모자를 쓴 여자들이 우르르 뛰어나왔다.
“금고에서 치성드린 지전 전부 꺼내와! 고수레 올리게 젯밥 올려! 병풍들 싹 거둬서 반야심경 걸어!”
“아이고오오!”
그녀들은 곡소리를 내며 달려나왔다.
한복 치마가 펄럭여 속치마가 드러나거나 말거나.
머리에 뒤집어쓴 흰 고깔이 바닥에 떨어지거나 말거나.
이것저것 한 아름 챙겨 든 채 버선발로 달려나온 여자들이 더욱 빠르게 손을 놀렸다.
“비상사태다! 더 빨리 움직여!”
“서두르지 않으면 뒈진다잖니!”
“미치겠다! 지전 태울 화로에 불씨부터 올려!”
“이젠 하다 하다 반야심경까지 나왔다! 목탁 어디 갔니?”
순식간이었다.
둘둘 말린 무명포를 다급하게 풀어내며 무당집 툇마루로 향하는 돌바닥에 곱게 깔아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복 차림에 꽃종이 바구니를 든 어린애가 날 향해 꽃종이를 뿌리기 시작했다.
팔랑팔랑.
온갖 악기로 풍악을 울리고, 오방기가 툇마루에서 나부꼈다.
목탁이 따악따악, 화톳불이 화르륵, 박스 가득 쌓인 지전 뭉치가 바람에 휘날렸다.
하지만 인왕산 선녀보살은 멈추지 않았다.
“부채춤 안 추니? 검무 맡은 애 누구야? 너 그러다 작두 탈래?”
“······.”
모두 앗, 하는 사이에 이뤄진 일이었다.
나는 일련의 상황에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얼떨떨한 표정은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저기 보살님? 갑자기 왜들 이러시는 거죠?”
“송구합니다. 다음엔 더욱 융숭히 준비할 것이오며, 아이들이 굼뜬 것도 제가 차후 따끔하게 혼을 낼 터이니, 부디 노여워하지 마시길.”
인왕산 선녀보살은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머리를 조아렸다.
물론 저승사자를 향해서였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눈에 저승사자가 보일 리가 있나.
마당에 모여 있던 정재계 유명인사들이 나와 할머니를 바라보며 작게 수군대기 시작했다.
“저기 태성의 회장 사모님 아니야? 손자랑 같이 오셨네.”
“왜 인왕산 선녀보살이 태성의 회장 사모님께 쩔쩔매는 거죠?”
“이번에도 회장 사모가 밥상머리부터 뒤집어엎고 보살님 머리채를 뜯었나 보지?”
허공에서 눈이 마주쳤다.
홍해처럼 갈라져서 뻥 뚫린 길 끝에 중정부장과 내가 있었다.
흥미로워하는 눈이었다.
“태성의 막냇손자.”
아니, 중정부장이나 되는 인사가 날 어떻게 알아본 거지?
날 향해 중정부장이 저벅저벅 걸어왔다.
“안 그래도 태성에 연락 들어갔을 텐데. 각하께서 보자신다.”
“누구를요? 우리 아빠요?”
“아니, 너.”
나를?
상식적으로 대통령이 여덟 살짜리 꼬마애를 콕 찍어서 따로 보자는 게 말이 돼?
“조만간 전차공장에서 국산 고성능 전차 성능시험이 있다. 거기에 초대하셨지.”
여기저기서 숨 들이마시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각하께서 태성의 막냇손자를 따로 부르신다고? 그것도 국산 고성능 전차 성능시험에?”
“전국 각지의 내로라하는 장성들을 부르는 자리에 저런 어린애를 초대한다니.”
“각하께서 태성을 이렇게까지 편애하실 줄은 몰랐군요. 태성그룹 총수라도 끼기 힘든 자리인데요.”
중정부장의 입꼬리엔 미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가 허리를 굽혀 내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네 아빠에게만 전해야 한다. 각하께서 우광 노조 시위를 깔끔하게 해결한 공으로 선물을 하나 준비하고 있다고.”
아니, 중정부장이 왜 이런 말을 나한테 은밀히 전해?
저 사람 눈에는 난 고작해야 여덟 살짜리 꼬맹이에 불과할 텐데?
“각하께서 흥미로워하는 건 태성의 브레인이다.”
설마 내가 태성의 익명 후원자인 걸 눈치채고서······.
“현무호텔 술자리에서 보지 않았다면 짐작조차 못 했겠지. 태성의 브레인이 그토록 젊은 친구였을 줄이야.”
······모르고 있었구만.
“널 인질로 잡을 일 없도록 내가 움직일 테니 걱정할 것 없다고 전하면 알아들을 거다.”
“······.”
“이것으로 지난번 뇌물 장부 건으로 생긴 빚은 갚은 셈 치자.”
중정부장이 허리를 펴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나중에 보자.”
중정부장은 그 말을 끝으로 미련 없이 등을 돌려 무당집을 떠났다.
정치인들 사이에서 눈치가 오갔다.
다들 중정부장을 따라 우르르 나갔다.
나로서는 퍽 다행한 일이었다.
할머니는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니,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인왕산 선녀보살은 왜 이러고, 중정부장은 또 왜 저러니?”
인왕산 선녀보살이 고개를 들고 방긋 웃었다.
“태성가 회장 사모님은 잠시 별채에서 기다려 주시겠어요?”
“네?”
“아드님 내외의 혼삿날 받으러 오셨잖아요?”
할머니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는데, 줄줄줄 읊기 시작했다.
연신 방긋방긋 웃으면서.
“먼저 치성부터 드린 다음에 혼삿날 받죠.”
“아, 네. 그런데······.”
“태성가에 열린 살문(殺門) 때문에 걱정이 많으시죠? 아드님 내외 사주 다시 보고, 액막이 고려해볼게요.”
“아, 네. 그리고······.”
“태성가와 연이 없으리라 말했던 막냇손자님 문제도 제가 책임지고 봐드릴게요. 태성가의 대들보가 될 분이신데요.”
“아, 네. 그러니까······.”
“그냥 닥치고 좀 별채에 앉아계시겠어요? 제가 손자분과 먼저 나눠야 할 대화가 있거든요.”
할머니는 이번에도 똑같은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 네.”
아니, 우리 할머니가 기싸움에서 밀렸어?
* * *
인왕산 선녀보살은 말했다.
“귀인께서는 무엇이든 하명하십시오. 쇤네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솔직히 고할 것이며, 명에 따라 행하겠습니다.”
나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여러 가지로.
“자리가 바뀐 것 같은데요?”
“거기가 상석이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왜 나를 무당이 앉는 비단보료에 앉혀둔 거냐고.
저승사자는 비단보료가 푹신한 게 마음에 든다며 아까부터 뒹굴거리고 있긴 하다만.
“아니, 그럼 점은 누가 봐요?”
“당연히 제가 보지요.”
“거기서요?”
인왕산 선녀보살은 장지문을 세 개나 열고 저쪽 방 끝 맨바닥에 앉아 있었다.
물론 그 옆에는 고개를 조아린 투명한 백호도 함께였다.
거리로 따져도 30미터는 되었다.
“이 정도 거리에서도 감당하기 벅찹니다. 후광이 너무 눈부셔서요.”
후광?
“대체 전생에 공덕을 얼마나 쌓으신 겁니까.”
“······.”
“설마 전생에 나라라도 구하셨을까요? 지금 거의 성인 아니, 생불 수준인데요. 죽으면 바로 천당 가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
“이 정도 후광은 저도 생전 처음 보거든요. 게다가 수호신으로 차사를 붙여준다는 것 또한 듣도 보도 못한 일이라서 당혹스럽네요.”
“······.”
대답은 저승사자가 심드렁하게 대신했다.
[염라대왕님의 뜻이니라.]“아이고오오오오! 어쩐지 보통 후광이 아니더라니! 쇤네가 살다 살다 염라대왕의 축복을 받은 귀인은 또 생전 처음인지라!”
인왕산 선녀보살은 연신 흐르는 땀을 무명천 손수건으로 닦아냈다.
“그런데 이건 정말 이상하군요. 무당이란 것이 본디 과거는 손바닥 들여보듯 보나 미래는 그리 훤히 내다보긴 힘들거든요. 그런데 귀인께서는······.”
눈치를 힐끔힐끔 보더니 눈 딱 감고 말한다.
“제가 감히 앞날을 헤아려보기 어려울 정도로 후광이 대단합니다. 이 정도면 유사 이래 최고의 행운아라 불려도 될 정도라 제 점이 의미가 있을런지 모르겠군요.”
“제 미래가 전혀 안 보인다는 뜻인가요?”
“그래서 너무 이상하거든요. 아까 귀인이 말씀해주신 사주가 훤히 들여다보인다는 것이.”
뭔 말이야?
“분명 과거가 아닌 미래일진대 어찌 이토록 선명하게 들여다보이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나는 절로 묘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설마 그게 내가 살아왔던 과거라서 훤히 들여다보인다는 건가?’
[그렇겠지.]저승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차사님. 그럼 저도 눈 딱 감고······.”
인왕산 선녀보살이 눈을 질끈 감고 손을 내밀었다.
“복채 좀 주십시오.”
“······.”
“무당은 대가 없이 점괘 못 봅니다. 그럼 천기를 누설한 죄로 천벌 받습니다.”
“······.”
“일단 백 원이라도 좋으니······.”
나는 동전 지갑을 열어 10만 원짜리 수표를 꺼냈다.
“성의엔 성의로 오가야지요. 감사합니다, 덕분에 더 많은 것을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 헉.”
탁.
나는 동전 지갑을 뒤집어 무당이 쓰는 좌탁 위에 와르르 돈을 쏟았다.
“이걸 전부 다 복채로 지급한다면.”
족히 백만 원은 될 액수였다.
“나랑 우리 부모님의 것도 상세하게 봐줄 수 있을까요?”
“힘닿는 만큼 소상히 고하겠습니다.”
인왕산 선녀보살이 우리 부모님의 사주가 적힌 한지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정말 이상한 일이군요. 이분들이 아직 살아있단 말입니까?”
“네.”
“어머니는 작년에, 아버지는 올해 정월에, 둘 다 인재로 객사하여 단명할 팔자인데.”
인왕산 선녀보살은 무당방울을 흔들면서 눈을 감았다.
“정말 이상하군요. 두 분이 본 자식은 하늘이 내린 대단한 자식이라고는 하나 외가 친가 할 것 없이 인연이 닿지 않아 조실부모 사고무친하여 길바닥을 떠돌다 단명할 아이인데. 어찌 태성가 사모님의 손을 잡고 오셨을까.”
단명?
난 52세에 사고사로 죽었는데.
그 정도면 단명이라고는 말하기 힘들지 않나?
인왕산 선녀보살은 내 사주가 적힌 한지를 부모님의 것 위에 겹쳐 올렸다.
“22살에 죽는 명운이로군요.”
“52세가 아니고요?”
“물론 그때도 죽을 운이 들긴 했지요. 사실 온갖 사고수에 횡액이 가득해서 년에 몇 번씩 죽을 고비를 넘기는 팔자라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거든요.”
인왕산 선녀보살이 말을 하다 말고 삼켰다.
나는 뒷말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인왕산 선녀보살은 부모님의 사주를 아예 옆으로 치워버리고 내 사주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보고 또 봐도 이건 정말 괴상하군요. 귀인의 사주가 너무 극단적입니다. 후광과 정반대로 따로 노는 것이 참으로······ 더럽게 박복합니다.”
인왕산 선녀보살은 앓는 소리를 내었다.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어도 크게 팔아먹지 않고서야 이 정도로 천벌 받은 사주가 나오기도 어렵겠는데요?”
나는 쓰게 웃었다.
이미 알고 있는 바였다.
“만나는 인연마다 악연뿐이고, 하는 일마다 하늘의 훼방을 받을 것이요, 평생 배신과 이간질, 협잡질과 칼부림 속에 고군분투하다 객사할 팔자.”
그것도 알지.
“인생이 어둠이요, 칼날 위에 맨발로 선 형국이라. 사주가 금으로 도배가 되었으니 평생 돈과 칼침으로 전쟁 같은 삶을 사는데······. 어떻게 22세의 죽을 운을 넘길 수 있겠습니까.”
그때 저승사자가 입을 열었다.
[있잖나. 방법.]“보통 액막이 무녀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당대 최고의 액막이 무녀가 목숨을 걸고 치성을 드리며 평생을 바치지 않고서야.”
액막이 무녀?
난 그런 사람 모르는데.
[이 녀석의 명운은 복운(複運)으로 보아야 한다. 명계에서 대왕께 받은 명운이 두 개거든.]“복명운(複命運)! 이건 대대로 말로만 전해 들었던 전설 같은 일인데요!”
인왕산 선녀보살이 달달 떨면서 붓을 들었다.
“그럼 두 번째 사주는 어찌 되십니까?”
두 번째 사주?
[다시 돌아온 날.]문득 떠오르는 날짜가 있었다.
내가 저승에서 돌아와 깨어난 날.
과거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날이라 언제나 가슴에 사무쳤던 바로 그날 말이다.
‘사주라면 시간까지 알아야 되는 거 아닌가?’
아, 그러고 보니까 아버지의 시계를 확인했었지.
우리 동네 골목길 공중전화에서 보석상자를 떨어뜨려서 줍다가.
마침 그때 저승사자가 친히 카운트다운을 해주었으니 돌아온 시각은 역산하면 되겠다.
“허어어억!”
내 두 번째 사주를 받아 든 인왕산 선녀보살이 숨넘어가게 경기했다.
< 인왕산 선녀보살 (3) > 끝
ⓒ 오소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