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144)
재벌집 만렙 아들-144화(144/416)
< 액막이 무녀 (1) >
달달달달.
손을 어찌나 떠는지.
인왕산 선녀보살은 물도 제대로 못 마시고 줄줄 흘렸다.
어림잡아도 족히 반 이상을 흘린 듯했다.
그런데도 인왕산 선녀보살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한참이나 말없이 내 사주 두 개만 번갈아가며 노려보고 있었다.
‘왜 저래?’
[냅둬. 생각이 많아지니 심경도 복잡해진 모양이지.]저승사자는 비단보료 위에서 뒹굴면서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황당했다.
‘남의 사주를 들여다보면서 심경이 복잡해질 일이 뭐가 있다고?’
어차피 남의 일이다.
‘무당이라면 허구헌 날 보는 게 남의 사주일 텐데, 왜 저리 호들갑이래?’
[복명운이라잖느냐.]그러고 보니 인왕산 선녀보살은 복명운이란 것을 대대로 말로만 전해 들었다고 했었다.
‘저렇게까지 신기해할 일인가?’
[기다리기 심심하면 주전부리나 먹고 있어라. 입이라도 심심치 않게.]저승사자가 가리킨 건 좌탁 위에 올린 간식거리였다.
깎아놓은 과일 조금, 세 종류의 떡, 모양 좋은 화과자에 제사상에 올리는 알록달록한 사탕 옥춘당(玉春糖)까지.
저승사자는 슬그머니 일어나 좌탁 옆에 거하게 차린 제사상 앞에 앉았다.
‘어라? 너 방금 저걸 먹었어?’
[왜 그렇게 놀라?]‘네가 뭔가를 집어먹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아서.’
[그럼 차려놓은 제사상도 못 받아먹을까 봐.]저승사자는 금젓가락을 집어 산적을 입에 쏙 넣었다.
오물거리며 야무지게 먹는 모습이 참 낯설었다.
[고수레라는 게 있다.]고수레라면 음식을 먹기 전에 먼저 조금 떼어 던지는 민간 신앙이다.
인간이 아닌 대상에게도 음식을 나누어준다는 미신인데, 그걸 저승사자가 넙죽 받아먹을 수 있는 줄은 몰랐지.
‘흠, 그동안 내가 밥을 안 챙겨줘서 배고팠으려나?’
[누굴 아귀(餓鬼)로 아나. 내가 이승 젯밥을 못 먹어서 굶어죽을 짬밥이야?]‘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잘 처먹는데?’
[······이 집 음식 잘하네.]저승사자가 밥 먹다 말고 화로를 가리켰다.
[할 일 없이 멀뚱하게 앉아 있을 거면 저기서 지전이나 태워라.]‘뭐 하러 방 안에서 저걸 태워? 재 날리게.’
[저승돈이다.]저승사자가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붙이며 씩 웃었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걸음, 주머니 두둑하게 성의는 챙겨 가야지.]‘뇌물을 받아먹겠다고?’
[공물이라 치자.]공물은 무슨.
‘뇌물이나 선물이나 공물이나.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는 게 세상의 이치지. 날름 받아먹고 입 싹 닦고 튈 거 아니잖아.’
[크흠.]‘무슨 꿍꿍이야?’
[······알 것 없다.]꿍꿍이 없단 소리는 안 한다 이거지?
어째 눈알을 수상하게 굴린다 했다.
내 눈이 절로 가늘어졌다.
‘청탁받은 게 뭔데?’
[천기누설이다.]‘대답하기 곤란하면 맨날 천기누설이래.’
[진짠데.]‘무당한테 천기누설을 논할 만한 청탁을 받는다는 시점에서 이미 글러먹은 거 아냐?’
[······이 집 음식 잘하네.]저승사자는 모른 척 와구와구 먹기 시작했다.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쯧, 봐줬다.
‘하여간에 이승이고 저승이고 공무원이 다 그렇지. 뇌물이라면 껌뻑 죽는다니까.’
[쳇, 그럼 네 부모 명부를 맨입으로 보랴?]아니, 갑자기 그렇게 훅 들어온다고?
그럼 말이 달라지지.
나는 벌떡 일어나 소매를 걷었다.
‘화끈하게, 한 방에, 깔끔하게 태워주마. 5분 본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지전이 다섯 상자 가득이다.]저승사자는 코웃음을 쳤다.
[무녀 다섯이 사이좋게 둘러앉아 태웠는데도 아직 반 상자를 못 태웠다. 네가 무슨 수로?]‘내가 책임지지도 못하는 소리 꺼내는 거 봤어?’
나는 씩 웃었다.
‘부모님이 걸린 일이라는데, 확실하게 처리해야지. 내 눈으로 지전 다 태운 거 보고 가려면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서.’
[뭘 어쩌려고?]‘휘발유가 어딨더라? 없으면 아쉬운 대로 등유라도.’
[누가 지전을 태운다고 기름을 찾아! 집 태워먹을 일 있어?]저승사자가 소리를 꽥 질렀다.
내 사주를 들여다보느라 멍하니 넋을 잃고 있던 인왕산 선녀보살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지, 집을 태워요? 기름은 갑자기 왜 찾으시는 건데요?”
인왕산 선녀보살은 동공에 지진이 난 눈으로 오들오들 떨었다.
“역시 천벌인가요. 오늘 여기서 싹 다 불에 타 급사하는······.”
“그런 거 아니에요.”
나는 재빨리 손을 내저었다.
“저 그렇게 어설픈 솜씨 아니거든요. 불 한두 번 질러 보나.”
“······!”
“알고 있어요. 여기 한옥이라서 순식간에 잘 타들어가는 거.”
내가 왕년에 이 집에 불 질러봐서 잘 안다.
“특별히 더 조심할게요. 새끼손가락 걸면 믿으시려나?”
[······.]아니 왜 그런 눈으로 날 봐?
그렇다고 찜찜하게 문서로 남겨줄 순 없잖아.
[겁도 없이 무당집에 불을 질러?]‘옛날 일이야. 그땐 나도 어쩔 수 없었어. 눈에 뵈는 게 없었거든.’
인왕산 선녀보살은 벌떡 일어났다.
“지전 다섯 상자! 무녀들이 책임지고 싹 다 태우면 봐주시렵니까?”
“어느 세월에?”
“얘들아, 뒷마당에 드럼통 꺼내! 목재에 등유 듬뿍 끼얹어서 지전 상자째 들이부어!”
그제야 나는 만족스럽게 웃을 수 있었다.
“이제 정신이 좀 드셨나 봐요? 그럼 사주풀이나 좀 들어봅시다.”
“······.”
인왕산 선녀가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더니만 이내 피식 웃었다.
“깜짝 놀랐습니다. 귀인께서 농담하신 줄도 모르고······.”
“누가 농담이래요?”
“······.”
“자판기도 돈 먹은 만큼 토해낸단 말이죠? 복채가 X으로 보이시나.”
“복명운은 두 사주를 엮어 읽어내야 합니다. 귀인의 두 번째 사주는 범상치 않아 쉬이 입을 열기 어렵습니다. 귀인의 후광이 어째서 그토록 밝은지 알 듯합니다.”
인왕산 선녀보살이 넙죽 엎드렸다.
“아무리 복채를 받아도 까딱 잘못 건들면 천기누설로 급사할 일이 지뢰처럼 깔려 있는지라······. 쇤네가 아뢸 수 있는 만큼만 고해도 괜찮을런지요?”
“좋아요.”
“두 번째 사주와 엮이면서 박복하기 그지없던 첫 번째 사주가 완전히 정반대로 뒤집히게 되었습니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을 들어보셨을까요?”
흥미로웠다.
“만나는 인연마다 악연뿐이고, 하는 일마다 하늘의 훼방을 받을 것이요, 평생 배신과 이간질, 협잡질과 칼부림 속에 평생 고군분투하다 객사할 팔자가 정반대로 변하니 세상에 다시없을 길한 사주로 변했습니다.”
신기했다.
“엮이는 인연마다 귀인과 상생하여 대운을 부르게 될 것이며, 하는 일마다 하늘이 도울 겁니다. 평생 귀함과 감사, 은덕과 사랑이 쏟아지는 가운데 잔병 없이 천수를 누리다가 귀천할 겁니다.”
염라대왕께서 약속하신 일이었다.
그걸 용한 무당의 입에서 다시 듣게 되자 새삼 기분이 묘해졌다.
“사주가 금으로 도배가 되었으니 평생 돈 마를 날이 없을 테고, 철옹성에서 가족들을 철통같이 지킬 것이요, 돈방석 위에 올라앉은 형국이니, 피 터지는 암투에서도 오직 승리뿐인 영광을 거머쥐실 겁니다.”
[그렇지!]저승사자는 연신 무릎을 탁 치며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온갖 영광과 횡재수가 넘쳐서 년에 몇 번씩 돈벼락을 맞는 팔자라, 뜻하는 바 이상으로 이름을 떨치고, 세상을 뒤집을 겁니다.”
[옳거니!]“귀인이란 인물을 담아내기엔 한국이란 땅덩이가 너무나도 좁습니다.”
[바로 보았다!]“젊은 나이에 전 세계를 손안의 떡 쥐듯이 주무를 것이요, 막강한 영향력이 오대양 육대주를 아우를 정도라, 각국의 내로라하는 유명인사들조차 귀인 앞에서는 허리를 구부릴 겁니다.”
[잘한다!]저승사자는 인왕산 선녀보살의 점괘가 퍽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칼날이 가득 박힌 구덩이 위로 떨어지는 것과 같아 죽음을 피할 길 없는 22세의 운도, 귀인의 인생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해로 바뀌었습니다. 귀인이 바랐던 인연을 잇기에 이보다 더 좋을 때는 없을 겁니다.”
“내가 바랐던 인연이요?”
“천륜.”
들고 있던 동전 지갑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나는 동전 지갑을 주울 생각도 못 하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나는 죽어서나마 부모님을 다시 뵙길 바랐고, 염라대왕은 강우를 내 친아들로 보내주기로 했었다.’
하늘이 맺어주어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장 강한 인연.
그것이 바로 천륜이었다.
부모와의 인연, 부부와의 인연, 자식과의 인연.
천벌 받아 박복한 인연만을 허락받았기에.
나는 천륜을 이을 수 없었다.
“그해 하늘이 허락한 귀한 아들을 얻게 되실 겁니다.”
강우를 내 자식으로 보게 된다는 뜻인가?
“처복은 물론 여복 또한 차고 넘치니, 원하는 여자에게 손을 내밀면 안 이뤄질 인연이 없을 겁니다. 그 말인즉, 22세에 끊겼던 가장 아픈 인연은······.”
“그건 됐어요.”
듣고 싶지 않았다.
죽어도 다시 이을 엄두가 안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처참하게 짓밟혔던 악연이었다.
이번 생에서 마주칠 일 없을 거고, 절대로 뒤돌아보지도, 찾지도 않을 생각이다.
“우리 부모님에 관해 듣고 싶어요.”
“본디 팔자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이라, 부모 팔자를 자식이 닮는다는 말이 있지요.”
들어본 적 있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게 정반대로 거꾸로 뒤집히자 귀인의 팔자가 부모의 팔자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군요.”
“그게 무슨 뜻이죠?”
“조실부모 사고무친하여 부모덕을 받지 못해 외롭고 서러웠을 박복한 팔자가 뒤집히니, 부모는 후덕한 자식 덕에 다시없을 기쁨과 영광을 누리게 되겠지요.”
“혹시 제 팔자 덕에 단명한다는 우리 부모님도 천수를 누리게 될까요?”
“아, 그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될······ 크흡!”
갑자기 인왕산 선녀보살이 코피를 주르륵 흘렸다.
그녀는 담담하게 무명천 손수건으로 코를 틀어막으며 말했다.
“여기까지 보겠습니다. 그 일은 회장 사모님과 따로 이야기를 나누지요. 귀인께서는 그동안 잠시 밖에서 기다려주셔야 할 텐데, 괜찮으실까요?”
“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인왕산 선녀보살은 최선을 다했음을 알고 있으니까.
[가자.]저승사자가 앞장섰다.
나는 두 손을 모아 꾸벅 배꼽 인사를 한 후, 군말 없이 저승사자의 뒤를 따라나섰다.
* * *
한옥치고 구조가 참으로 복잡한 집이었다.
마당을 지나 툇마루를 몇 개나 건너 도착한 복도.
‘음?’
나는 생각할 게 많아서 내내 바닥만 보고 걸었던 터라, 저승사자가 걸음을 멈추자 덩달아 발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저승사자는 복도 끝, 어느 한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흰 창호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크고 작은 가지각색의 부적이 덕지덕지 붙은 미닫이문.
마치 ‘절대로 이곳에 들어오지 마시오!’ 하고 빨간 페인트로 경고문을 휘갈긴 느낌이랄까.
‘왜 멈췄는데?’
황당했다.
이렇게 안쪽까지는 처음 들어왔는데, 별채가 어디인지 내가 어떻게 아냐고.
‘무슨 볼일인데?’
[천기누설이다.]‘또, 또, 또 천기누설. 이거 아주 상습범이야.’
말하기 곤란하다는 뜻이었다.
‘혹시 이 안에 죽어가는 사람이라도 있나 보지?’
[팔자에도 없는 수호신 노릇을 하려다 보니, 차사 일은 잠시 내려놓았다.]‘그럼 왜?’
대답이 없다.
저승사자의 눈이 닿는 곳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볏짚으로 꼬아 만든 새끼줄에 부적과 무당방울이 일정한 간격으로 매달려 있었다.
[금줄이 끊어지려 하는구나.]‘금줄? 아이를 막 낳은 여자가 저 방 안에 있나 보지?’
[아이를 낳으면 그 집 대문에다 건다. 방문에 거는 금줄은 좀 다르지.]뭐가 다른데?
[신성한 곳임을 표시하고, 부정한 이의 접근을 막으며, 잡귀의 침범을 방어하기 위해서.]저승사자가 날 내버려두고 성큼성큼 걸어간다.
[따라 들어올 생각하지 마라. 여긴 액막이 무녀가 지내는 곳이니, 허락받지 못한 자가 함부로 들면 방 주인이 횡액을 맞는다.]투명한 몸체는 연기처럼 창호지 문을 뚫고 안으로 사라졌다.
복도에 나만 덩그러니 남겨두고.
‘액막이 무녀?’
문득 인왕산 선녀보살과 저승사자의 대화가 떠올랐다.
-인생이 어둠이요, 칼날 위에 맨발로 선 형국이라. 사주가 금으로 도배가 되었으니 평생 돈과 칼침으로 전쟁 같은 삶을 사는데······. 어떻게 22세의 죽을 운을 넘길 수 있겠습니까.
-있잖나. 방법.
-보통 액막이 무녀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당대 최고의 액막이 무녀가 목숨을 걸고 치성을 드리며 평생을 바치지 않고서야.
이게 대체 무슨 뜻일까.
액막이 무녀란 게 있다는 것도 오늘 처음 듣는데.
평생 관심 끄고 살았던 탓에 내가 미신에 대해 뭘 알아야 말이지.
‘혹시 액막이 무녀는 죽음도 막을 수 있는 건가?’
아까 인왕산 선녀보살과 나누던 마지막 대화가 떠올랐다.
-혹시 제 팔자 덕에 단명한다는 우리 부모님도 천수를 누리게 될까요?
-아, 그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될······ 크흡!
-그 일은 회장 사모님과 따로 이야기를 나누지요.
할머니가 이곳을 찾아온 용건도 생각났다.
-태성가에 열린 살문(殺門) 때문에 걱정이 많으시죠? 아드님 내외 사주 다시 보고, 액막이 고려해볼게요.
저승사자는 저 안에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호기심이 무럭무럭 자랐다.
그렇다고 허락도 없이 남의 방에 함부로 들어갈 수도 없고.
딱.
‘시야 공유.’
눈앞이 빙글 돌면서 어두침침한 방 안 풍경이 드러났다.
방 안 여기저기엔 향로가 피어오르고, 벽에는 어찌나 부적을 겹겹이 붙여 놓았던지.
방문 창호지에 도배하다시피 붙여놓은 부적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
“흐윽······, 흐으윽······.”
널찍한 방 한가운데엔 어린애가 쓸 만한 작은 이부자리가 펼쳐져 있었다.
쌔액거리는 숨소리와 속으로 삼키는 앓는 신음.
끊어질 듯 희미하게 울먹거리는 목소리엔 고통이 짙게 배어 있었다.
[본 차사가 이곳에 행차하는 바람에 네가 오늘 고생이 많구나.]< 액막이 무녀 (1)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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