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147)
재벌집 만렙 아들-147화(147/416)
< 평생에 단 한 번 >
“할머니가 말해주랬어. 어제 미처 말해주지 못했던 거, 지금의 나는 말해줄 수 있으니까.”
꼬마애가 서찰을 가리켰다.
우리는 같은 곳, 같은 구절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도 갓 신을 받은 애기무당의 첫 점은 눈감아주는 법입니다.>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초심자의 행운, 첫 출근 실수 봐주기, 뭐 이런 건가?”
“응.”
꼬마애는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작게 속삭였다.
“평생에 단 한 번. 족쇄를 풀고 달릴 수 있는 기회래.”
깨달았다.
무당의 족쇄라면······.
“내 무당 인생에서 가장 멀리, 가장 깊게, 가장 많이 보는 것이 허락되는 점이랬어.”
천기누설.
“그래서 함부로, 아무에게나, 아무렇게나 점치면 안 된대. 가장 소중한 건 가장 귀한 사람에게 바쳐야 한댔어.”
나는 눈을 감았다.
“한번 믿어 봐, 귀인 오빠. 오늘만큼은 내가 할머니보다 잘 볼걸? 헤헤헤.”
항간에는 이런 말이 있다.
-갓 신내림을 받은 무당이 제일 용하다.
어제 주작을 얻은 꼬마애를 아침부터 내게 보낸 진짜 이유였다.
인왕산 선녀보살의 보은이었다.
“네 할머니가 그러던데. 내 사주엔 곳곳에 천기누설 지뢰가 박혀 있다고.”
“응?”
“멋모르고 겁도 없이 막 건드렸다가 크게 탈 나는 거 아냐?”
“흐으응, 이건 비밀인데. 귀인 오빠한테만 몰래 가르쳐 주는 거다?”
꼬마애가 내 쪽으로 더 가까이 바짝 붙으면서 숨죽여 작게 속삭였다.
“감당할 수 없는 영역까지 내다볼 땐 아예 넋이 나가서 괜찮대.”
“넋이 나가는데 괜찮을 리가 있나?”
“신점 몰라? 무당에 신이 강림해서 보잖아.”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신점이란 소리도 오늘 처음 듣는데.
“그게 멀쩡한 제정신으로 내뱉는 말일 것 같아? 제정신이 돌아오면 자기가 했던 말은 기억도 못 할걸?”
꼬마애는 자신만만하게 방긋 웃었다.
“할머니가 그랬어. 아무 걱정 하지 말고 뭔가 어렵고 힘들다 싶으면 그냥 넋 놓고 꾸벅꾸벅 졸다오면 된다고.”
꼬마애의 어깨에 앉은 병아리만 한 주작도 의기양양하게 빽빽 울어댔다.
독경을 쓰던 세필을 내려놓으며 꼬마애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래서 귀인 오빠는 뭐가 제일 궁금해?”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 * *
내 방으로 돌아온 나는 바닥에 털썩 앉았다.
팔짱을 끼고 양반다리를 했다.
방바닥에 내려놓은 황금빛 서찰을 노려보았다.
미간이 절로 구겨졌다.
‘쉽게 얻지 못할 우군이 청하지도 않았는데 제 발로 굴러들어왔다?’
뜻밖의 횡재였다.
‘인왕산 선녀보살이 왜 이렇게까지 굽히고 들어오지? 저승사자가 내 수호신이라서?’
문득 염라대왕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좋은 인연이 모이고, 거기에서 크고 작은 기회가 생기고, 때마침 운까지 따라주면 제법 살맛이 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대운(大運)이니라.
-그러니 부디 인연을 신중히 맺거라. 인세(人世)의 운이란 본디 인연에서 유래하는 것이니.
볼수록 심란하다.
이렇게까지 요란하게 황금빛이 터지는 서찰을 바라는 거 없이 막 내어줄 리가 없으니까.
‘선물이라기엔 너무 과하고, 보은이라기엔 너무 꿍꿍이속이 느껴지고, 함정이라기엔 호의만 가득하고.’
인왕산 선녀보살이 돕겠다던 일을 보라고.
-은밀한 인맥 주선해주기.
-청원각에 듣는 귀 심기.
-친목계를 열어 어머니의 사교계 활동 지원하기.
-정재계 유명인사들의 뒷소문 장악하기.
-다음 대 백호신을 모실 액막이 무녀 보내주기.
‘죄다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인연을 맺어야 하는 일들로만 골라서 보내왔으니.’
찜찜하게 느껴지는 이유였다.
‘적당히 돈이나 귀물 따위를 보내서 끝냈으면 좋았을 텐데. 이건 꿍꿍이속이 따로 있다고 봐야지.’
이 정도 스케일이면 선물의 범주는 진즉 넘었다.
이건 뇌물이다.
‘인왕산 선녀 보살이 나한테 뇌물 건넬 일이 뭐 있을까? 저승사자라면 또 몰라도.’
[뭐? 왜? 내가 뭐?]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드라마를 보고 있던 저승사자가 고개를 돌렸다.
그래, 너! 나 좀 잠깐 보자.
‘네 덕분에 꼬맹이가 주작을 얻었다며?’
[······본 차사는 인세에 관여치 않는다.]‘본 차사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내 앞에서까지 똥폼 잡을래? 그럼 무당집 신당에 사방신은 왜 집합시켰어?’
‘일주일간 천기누설 압수당할래, 잡귀 쫓아내서 착하다고 돌려줬던 드라마 시청권 도로 압수당할래?’
[······.]이것 보라고.
눈알을 굴리는 것만 봐도 견적이 딱 나온다.
고의성이 다분한 계획범.
‘청탁받은 건 횡액만 면케 해달랬다는 건데, 왜 일부러 횡재까지 안겨준 거야?’
[······.]‘인세에 관여치 않는다면서 되도 않는 오지랖은 왜 부린 건데?’
[······.]‘어쭈? 계속 대답 안 하지? 천기누설 소리를 꺼내지 말랬더니 이젠 아예 묵비권을 행사하려 들어?’
[······.]‘일주일간 텔레비전 압수.’
[안 돼! 내 보물 1호!]저승사자가 화들짝 놀라서 텔레비전을 얼싸안았다.
[치사하다! 줬다 뺏기 있냐?]‘그러니까 말해 봐. 왜 그랬는데?’
[너야말로 왜 그러는데? 저 꼬맹이는 앞으로 너랑 엮일 일 없을 거라며? 모르는 일이라며? 네 알 바 아니라며?]저승사자가 심통 난 얼굴로 팔짱을 꼈다.
[이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저 꼬맹이랑 엮인 일이고, 네가 알 바 아닌 남의 일인데, 꼬치꼬치 따져 묻긴 왜 물어?]‘······.’
[처음 마음 정했던 대로 끝까지 모른 척해. 그럼 되잖아.]‘······.’
[관심조차 두지 말고, 눈길조차 보내지 마. 인연은 쌍방이야.]저승사자는 단호했다.
[사귈 땐 쌍방 합의여도, 이별은 일방 통보인 거 몰라? 악연도 인연이라, 네 쪽에서 끊어내면 그만이야.]‘확실해? 저승에서 정식으로 공증된 사항이야? 이론으로 정립돼서 학계에 보고 검토 끝났어?’
[뭘 또 공증에 이론 정립까지 따져?]‘그럼 미신이야, 관용구야?’
[미신도 안 믿는 놈이······!]‘안 믿겠냐?’
나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못 보고 못 듣고 못 겪어봤을 때야 미신 따윈 있겠냐며 대수롭게 여겼지. 하지만 지금껏 내가 보고 듣고 겪은 게 얼만데. 그걸 왜 안 믿어?’
[어제는 기를 쓰고 안 믿겠다고 우기더니?]‘안 믿고 싶었지. 그게 안 되니까 지금 이 모양인 거고.’
짜증이 나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참에 완전히 끊어버리려는 거니까 협조 좀 부탁해.’
[끊어? 악연을? 미련을?]한숨이 절로 나왔다.
‘마음에 걸리는 게 생겼어.’
‘저 꼬마애 때문에?’
‘내가 어제오늘 보고 들은 것들 때문에. 그것만 물어보고 깔끔하게 접을 거야.’
심경이 복잡해진 이유였다.
이미 끊어냈다고 믿고 싶었던 어리석은 미련이 다시 한번 꿈틀대기 시작했다.
‘어이, 수호신. 그것 때문에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아무리 갓 신내림 받은 애기무당이 보는 첫 점이라도 하늘이 무한정 눈감아주는 건 아닐 거 아냐.’
[천기누설이다.]‘그러니까. 천기누설이 허락된 건 몇 명까지야?’
[그것도 천기누설인데······.]저승사자는 불안한 듯 눈알을 굴리며 텔레비전을 더욱 꽉 끌어안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양반다리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약에 말이야. 이번 생에선 내가 양지로 나왔잖아. 그러니까······.’
입안이 바싹바싹 말랐다.
‘과거처럼 스승님과, 사형제들과, 조폭들과, 말죽거리 말대가리랑 남산 찰거머리랑와도 더럽게 엮여서 칼부림 날 일 없을 테니까······.’
나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그 처절했던 뒷골목 전쟁통에 저 여자가 또 휘말리지 않도록 막으면······. 그 서방이란 놈보다 내가 먼저 가로채면······. 그래도 안 되는 건가?’
몇 번이나 쥐었다 폈다 해봐도 손이 떨리는 건 막지 못했다.
‘한번 맺은 악연은 영원히 악연이야? 언제 어떻게 무엇을 노력해도, 서로에게 상처만 주게 되나?’
저승사자가 묘한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나도 알아. 나 혼자만 기억하는 옛날 일, 다시 끄집어내 봐야 하등 쓸모없는 미련, 저 여자에겐 없었던 일이란 거.’
차마 그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어서.
나는 떨리는 손으로 내 눈을 가렸다.
‘그런데도 그때 듣지 못했던 대답에 미련이 남더라고. 살아서도, 죽어서도, 지금까지도.’
[······.]‘저 여자에겐 아니었을지 몰라도, 내게는 저 여자가 천륜이었으니까.’
내게는 천륜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천벌이었다.
저승사자는 눈을 감았다.
‘아까 나더러 뭐가 제일 궁금하냐고 묻던데? 이번에는 그 여자랑 천륜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가 제일 궁금했어.’
[······.]‘천륜도 악연처럼 내 맘대로 끊어낼 수 있는지, 저 여자의 천륜을 내가 억지로 끊어낼 수 있는지. 나는 그게 궁금했다고.’
[······.]‘평생 순정을 다 바쳤던 서방이라잖아. 그래서 그 여자의 천륜이라잖아.’
[······.]‘천벌 받은 나랑 중간에 더럽게 얽히다가 돌아가게 되는 바람에 그 새끼한테 무슨 구박을 얼마나 모질게 받았을 거야. 그 까맣고 윤기 나던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도록······.’
나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이번 생에선 일부러 외면하자고 생각했어.’
나는 쓰게 웃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우리의 마지막을 악에 받친 악담으로 잘라냈던 게 마음에 걸려서, 그게 계속 미련으로 남아서······.’
느리게 눈을 감았다.
이렇게 눈을 감고 있으면 그날 밤이 선명하게 떠오르곤 한다.
‘삼청동 한옥 전각 한 채를 불태웠었어. 그 여자를 직접 만나 얘기를 들어보겠다고.’
아수라장이 되어 뛰어다니는 사람들 속에서 그녀를 찾아 붙들었다.
‘삼청동 무당집에 허구헌 날 찾아갔지만, 백일치성이란 이유로 단 한 번의 면담도 허락받지 못했거든. 딱 석 달째 되는 날, 인내심은 거기서 끊겼지.’
12년을 헤맸다.
전국방방곡곡 안 뒤져본 곳이 없었고.
‘그 여자, 끝까지 감은 눈을 뜨지 않더라. 대답 한 번을 안 하더라.’
그런 그녀의 어깨를 붙들고 물었다.
12년 동안 몇 번이나 속으로 되뇌이며 다듬고 또 다듬었던 물음을 한꺼번에 쏟아냈었다.
‘눈 감고, 귀 막고, 나 따위는 모른다는 듯이, 그렇게 끝까지 외면하더라.’
그래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인왕산 쪽으로는 오줌도 보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그렇게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전까지, 우리가 다시 만날 일은 없었다.
‘그때와 똑같이 물어볼까 해. 대답을 못 들어도 상관없어. 미련까지 거기에 두고 끝낼 생각이니까.’
멀리서 행복을 빌어주려고.
‘저 여자 인생에 끼어든 이물질이 되는 건 한 번으로 족해.’
[이건 그냥 잠꼬대일 뿐이다. 드르렁!]저승사자는 선 채로 코 고는 시늉을 시작했다.
[그러니 난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한마디로 난 모르는 일이다. 쿠우울!]어색한 코골이 사이로 저승사자의 한숨이 번져나갔다.
[한 명. 하늘도 눈감아 줄 것이다.]아까 대답하지 않았던, 첫 점을 보는 애기무당에게 허락된 천기누설 범위였다.
‘수호신, 너······.’
[참고로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무당도 제 팔자는 못 본다. 남 일처럼 엿보면 또 모를까. 드르렁!]한쪽 눈을 찡긋한 저승사자는 스르륵 연기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5초도 안 지나서 저쪽 벽에서 얼굴만 삐죽 내밀고 다급하게 덧붙였다.
[무당은 미래보다 과거를 잘 본다. 별표 다섯 개 밑줄 쫙. 커어커어!]저승사자는 엄지를 들어 보이곤 도로 벽으로 빠져나간다.
터미네이터가 용광로에 빠져 죽으면서 마지막 엄지가 잠겼던 것처럼.
저승사자도 그렇게 엄지와 함께 벽 너머로 사라졌다.
* * *
꼬마애를 내 방에 들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기로 했다.
“아까 뭐가 제일 궁금하냐고 물었지?”
“응.”
“지금 물어봐도 돼?”
“응.”
꼬마애가 비장한 표정으로 무릎 꿇고 앉았다.
그 애 어깨에는 병아리만 한 주작이 삐약대고 있었다.
“이 사람을 봐줬으면 해.”
저승사자의 힌트에 따라 쉽게 고를 수 있었다.
나는 내 사주가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사주는 볼 줄 알지?”
“아직 다 안 배웠는데······.”
“······.”
“하지만 이제 관상이랑 신점은 볼 수 있게 됐으니까 상관없어.”
꼬마애가 내 사주가 적힌 종이를 받아갔다.
보지도 않고 대뜸 미간을 팍 찌푸린다.
“우와, 생긴 것만 봐도 더럽게 박복한 남자다!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나? 어쩜 이럴 수가 있지?”
응, 그거 나야.
“신장 떼이고, 손가락 잘리고, 도가니 박살 나고, 얼굴 반 이상이 화상에, 이빨은 대체 몇 개나 털렸나 몰라. 쯧쯧쯧. 칼자국은 말도 못 해. 수십 개야.”
사주도 못 본다는 얘가 이런 건 어떻게 보는 거지?
“딱 봐도 인연이 박해. 만나는 인연마다 악연뿐이라, 배신과 이간질, 협잡질에······.”
“됐고. 내가 궁금한 건 이 사람의 여자야. 천륜인지 악연인지 뭐 그런 것들.”
“여자와 천륜······.”
꼬마애가 안 그래도 잔뜩 찌푸린 미간을 와락 구겼다.
“더럽게 이쁘게 생겼네. 경국지색이야 뭐야? 남자들이 눈 뒤집고 달려들겠어.”
응, 그거 너야.
< 평생에 단 한 번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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