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151)
재벌집 만렙 아들-151화(151/416)
< 세 번째 목숨 빚 >
철컥. 철컥!
난 지하실에서 꺼내온 마취총을 손질하느라 바쁘게 손을 놀렸다.
유종태는 휘파람을 불었다.
“와우, 우리 도련님께선 이런 건 다 어디서 배웠나 몰라.”
“전당포에서요.”
“······언제부터 전당포에서 마취총을 전문적으로 취급했을까요?”
“돈 되는 건 다 취급하는 게 전당포 아니겠어요?”
나는 마취총에 넣을 마취탄을 몹시 신중하게 골랐다.
유종태는 그걸 또 무척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도련님, 이왕이면 마취약을 가득 담는 게 좋지 않을까요?”
모르는 소리!
“마취과 의사도 마취할 때 용량 조절에 심혈을 기울이는 거 몰라요?”
“그것까진 도련님 알 바 아니지 않을까요?”
“시체 치울 일 있어요?”
아무리 내가 인간 같지도 않은 놈들에게 마취총을 쏠 생각이라도 해도,
우리 집에 호랑이도 한 방에 쓰러뜨릴 마취제가 한가득 있다고 해도,
그래도 마취는 함부로 하는 거 아니란 생각엔 변함이 없다.
“설마 그런 것도 전당포에서 가르쳐 줍니까?”
“그럴 리가요.”
이건 뒷골목에서 배웠다.
약 잘못 써서 입 돌아간 놈들이라면 지겹도록 봤거든!
‘어이, 수호신.’
[곧 드라마 시작할 텐데. 귀찮아 죽겠네. 그냥 재울까?]‘오? 그런 것도 가능해?’
[네 친가 식구들한테 한꺼번에 꿈 보여줄 때, 내가 어떻게 했을 것 같으냐?]그러고 보니 들은 적 있다.
할아버지가 뉴스를 보다가 깜빡 졸았는데, 온 집안 식구들도 그때 같은 꿈을 봤다고.
[그럼 간다.]‘잠깐. 웨이러 미닛.’
[왜?]나는 씩 웃었다.
‘옥분 할머니한테까지 마취총 쏘고 싶진 않거든.’
[······알았다.]저승사자는 얌전히 시야를 돌렸다.
* * *
철구 아저씨와 옥분 할머니는 정원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말을 나누고 있었다.
옥분 할머니가 못마땅한 눈으로 철구 아저씨를 다그쳤다.
“철구야, 여긴 아무도 없다. 그러니까 이제 속 시원하게 털어놔 봐라. 대체 무슨 일이야?”
“일은 무슨 일.”
“해마다 토정비결 찾아 보고, 날마다 오늘의 운세 찾아 읽고, 시합 때마다 징크스 타령하던 놈이 용한 애기무당 말을 한사코 딱 잡아떼?”
옥분 할머니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네가 언제부터 내 퇴근 시간을 챙겼다고? 전화 한 통 없이 무작정 이 집에 찾아온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고?”
“크흠!”
“네가 어디 남의 집 대문이 열렸다고 막 들어오는 애야? 허옇게 질려서는 대뜸 현관문을 벌컥 열고 뛰어들어 왔을 때부터 큰일 났구나 했다!”
여차하면 아들의 등짝을 날려줄 기세였다.
“위험한 일에 휘말린 거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데?”
“강 여사.”
“잡아뗄 생각은 하지도 마! 안 그럼 나도 네놈 말 안 듣는다!”
철구 아저씨는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강 여사, 당분간 전주 이모 댁에 내려가 있으면 어떨까 싶은데.”
“뭐? 무장공비가 들이닥쳤을 때도 도망가란 말을 안 하던 애가······.”
“그게, 직장 쪽으로 좀 꼬인 것 같아서 그래. 어쩌다 보니 호랑이 목줄을···, 잘못 건든 것 같달까······.”
“아이고, 철구야!”
중정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대통령의 칼이었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단 소리였다.
“애기무당이 그랬다. 도련님께서 널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강 여사, 일이 상당히 위험하게 돌아가고 있어. 꼬맹이네 가족까지 휘말리게 할 순 없잖아.”
“여긴 아무나 함부로 못 건드는 재벌집이래잖냐!”
“괜히 나 때문에 이 집까지 똥물 뒤집어쓰면? 강 여사, 그게 바로 배은망덕이야.”
“철구야!”
“나 이 집 덕에 두 번이나 죽을 고비 넘겼어. 염치없이 또 빌붙을 수야 있나.”
철구 아저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강 여사, 중정이 재벌이라고 봐줄 것 같아?”
“그건······!”
“중정에 끌려왔다가 죽어나간 재벌집 사람들이 어디 한둘인 줄 알아? 명단 줄줄이 읊어줘?”
옥분 할머니는 입술을 깨물었다.
“중정에서 이 집을 알아. 찾아온 적도 있고.”
“아이고!”
“내 배후로 이 집을 의심하고 있는 것 같고, 그러니까 확실하게 발길 끊어야 하고.”
철구 아저씨가 고개를 푹 숙였다.
“어째 난 번번이 이 모양인가 몰라. 나도 얼른 요직에 앉아서 보탬이 되고 싶었는데. 어렵네. 난 걸림돌밖에 안 돼.”
“······.”
“내가 잘하는 거라곤 수상한 놈 때려잡는 것밖에 더 있어?”
“······.”
“그래서 중정에 들어왔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까 이게 하등 쓸모없는 재주더라고.”
철구 아저씨는 손끝으로 제 머리통을 툭툭 쳤다.
“중정에서는 요기 이 머리빡 굴리는 거로 싸우대.”
철구 아저씨는 씁쓸하게 웃었다.
“어떻게 하면 남을 끌어내릴까, 어떻게 하면 누명을 뒤집어씌울까, 어떻게 하면 정치적으로 써먹을 판을 짤 수 있을까. 근데 내가 이 머리빡 굴리는 데는 영 재주가 없으니.”
“철구야······.”
“서로 죽고 죽이는 대가리들 싸움판에 휘말렸으면, 중정요원이고 재벌집이고 간에 몸 성히 빠져나가긴 힘들지.”
“그, 그런······!”
“여기서 무사히 빠져나갈 길은 승자 편에 붙어 공을 세우는 것뿐인데.”
자연스럽게 한숨이 터져 나왔다.
“누가 나처럼 별 볼 일 없는 인사를 거둬다가 제 심복으로 삼으며, 윗분들 눈에 들 만한 전공은 또 어떻게 세우겠어. 무슨 수로?”
철구 아저씨는 한 손으로 퍼석해진 얼굴을 쓸어내렸다.
“내가 아부를 잘해, 라인을 잘 타, 머리싸움을 잘해? 그도 아니면 윗분들이 혹할 만한 특별한 뭔가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나? 쥐뿔도 없지.”
옥분 할머니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봤다.
철구 아저씨는 그런 강 여사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미안해, 강 여사. 못난 아들 때문에 더러운 꼴 본다, 그치?”
“어휴, 속 터져! 엄마 앞에서 못 하는 소리가 없어, 아주!”
쫘악!
옥분 할머니의 등짝 스매싱은 매섭기 그지없었다.
불곰 같은 철구 아저씨마저 몸을 비틀었을 정도였다.
“으억! 강 여사!”
“난 널 그렇게 못나게 키운 적 없다!”
쫙! 쫘악! 쫙! 짜악!
“아파! 강 여사, 산삼 드셨어?”
“사내자식이 이까짓 매타작에 앓는 소리를 내? 난 널 그렇게 나약하게 키운 적 없다!”
옥분 할머니는 철구 아저씨의 등짝을 대여섯 대쯤 더 힘껏 후려치더니 손을 털었다.
“그래! 넌 아부도 못하고, 라인도 못 타고, 머리싸움도 안 되고, 가진 것도 쥐뿔 없는 주제에 수상한 놈 잡아 족치는 것만 잘하지!”
“강 여사, 아들 욕을 그렇게 대놓고······.”
“그래도 내 아들은 은혜를 알고, 고마움을 알고, 염치를 알고, 주제를 알고, 배은망덕하지 않았으니까 됐어! 그만하면 잘 컸어!”
“······.”
“가자! 오늘은 우리 철구 좋아하는 닭찌찌나 배 터지게 먹자!”
옥분 할머니는 허리를 쭉 펴고 가슴을 폈다.
철구 아저씨의 팔뚝을 잡고 질질 끌다시피 성큼성큼 걸어갔다.
“죽을 때 죽더라도 닭찌찌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더라!”
“아니, 강 여사. 거기서 닭찌찌가 왜 나와?”
“시끄러워! 자꾸 기운 빠지는 소리를 해대는 거 보니까 우리 철구 물렁살 다 됐네!”
“······.”
철구 아저씨는 피식 웃었다.
“그래서 오늘 닭찌찌 먹고 난 후 일정은 어떻게 돼? 말 나온 김에 바로 전주 갈까?”
“번갯불에 콩 볶아 먹을래? 나 아직 여기 사표도 안 썼다!”
그렇게 두 모자는 아웅다웅하면서 대문을 나섰다.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길 모퉁이에 가로등이 하나 켜져 있을 뿐, 오가는 행인 하나 없었다.
집 앞에는 지프차가 얌전히 주차되어 있었다.
철구 아저씨는 멈칫했다.
“바퀴가······.”
“이야, 박철구 너 눈썰미 하난 기똥차다?”
지프차 뒤에서 히죽히죽 웃으며 걸어나온 남자는 쥐고 있던 송곳을 좌우로 흔들었다.
“서문철.”
“중정에서 튕겨 나왔다고 이젠 선배 소리도 빼네? 한번 선배는 영원한 선배 모르냐?”
“서빙고 물고문실에 있어야 할 놈이 여기까진 어떻게 왔지?”
“시건방진 후배한테 주사 한 대 놔주려고 잠깐 들렀지.”
서문 머시기의 다른 손에는 주사기가 들려 있었다.
철구 아저씨는 손가락을 우두둑 꺾었다.
“계급장 뗀 김에 한판 붙자.”
“움직이지 마라. 쏜다.”
음산한 목소리는 뒤에서 들렸다.
어둠 속 담벼락 그늘에서 감찰국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손 들어.”
감찰국장이 권총을 겨누고 있는 건 철구 아저씨가 아니었다.
옥분 할머니였다.
감찰국장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서 옥분 할머니의 목에 팔뚝을 걸었다.
“······항복.”
철구 아저씨는 순순히 두 손을 올렸다.
서문 머시기는 철구 아저씨의 목덜미에 주사기를 꽂으려고 손을 높이 들었다.
“크큭, 그럴 줄 알았다. 미련곰탱이 같은······ 억!”
푸슛!
서문 머시기는 목덜미에 분홍 꽃술 달린 마취탄을 맞고 그대로 옆으로 픽 쓰러졌다.
서문 머시기의 손에서 주사기가 데구르르 굴러떨어졌다.
“······.”
“······.”
“······.”
철구 아저씨도, 옥분 할머니도, 옥분 할머니를 잡고 권총을 들이밀던 감찰국장도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철컥!
나는 마취탄을 갈아 끼우면서 대문을 발로 뻥 찼다.
그와 동시에 저승사자에게 손짓했다.
‘옥분 할머니 좀 재워라. 험한 꼴 보지 않게.’
[알았다!]저승사자가 옥분 할머니 얼굴에 입김을 후 불자, 할머니는 순식간에 곯아떨어졌다.
“드르렁!”
“뭐, 뭐야?”
감찰국장은 갑자기 축 늘어지는 옥분 할머니 때문에 기겁했다.
푸슛!
“커헉!”
그 직후 감찰국장의 가슴팍에 분홍 꽃술 달린 마취탄이 박혔다.
철구 아저씨는 몹시 당황하여 나를 돌아봤다.
“철구 아저씨, 정신 똑바로 안 차릴래요?”
“꼬맹이가 겁도 없이! 저 새끼 총 들었어!”
“마취총 든 건 나거든요? 저건 딱 봐도 장난감 총인데, 그걸 속아요?”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아저씨, 저 사람들 중정 딱지 뗀 거 벌써 까먹었어요?”
“······어?”
“중정요원이면 또 모를까. 일반인이 권총 차고 다닐 리가 없잖아요.”
“······어어어?”
전당포 생활 10년이면 대충 봐도 견적이 딱 나오지.
“학교 앞 문방구표 500원짜리!”
“에이씨!”
퍽!
철구 아저씨는 지체 없이 달려들어서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커헉!”
감찰국장은 코를 부여잡으며 나가떨어졌다.
“감찰국장씩이나 오른 새끼가! 그 좋은 대가리를 사기 치고 협박하는 데에나 쓰냐?”
뻐억!
철구 아저씨는 감찰국장의 명치를 올려쳤다.
갈비뼈 부러지는 소리가 나는 듯했다.
“커헉!”
“감찰국장이나 해먹던 새끼가 쪽팔리게 여자를 인질로 잡아?”
철구 아저씨는 숨을 못 쉬어서 꺽꺽대는 감찰국장의 멱살을 잡았다.
“지저분한 짓만 골라가며 하지! 남의 차 바퀴는 왜 펑크 내고 난리야!”
“아저씨, 이 새끼들이라면 차 시동선도 끊어놨을걸요?”
“이런 개새끼!”
빠악!
철구 아저씨가 박치기로 감찰국장의 이마를 들이받았다.
“끄어어억!”
감찰국장은 게거품을 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빠악! 빡! 빠악! 빡!
철구 아저씨는 연달아 감찰국장의 마빡을 마빡으로 박았다.
기겁한 유종태가 다급히 달려와서 뜯어말렸다.
“빡대가리 빡중령님, 고정하십쇼! 이 새끼 기절했습니다!”
“놔라!”
“이러다가 빡중령님 마빡도 쪼개지게 생겼습니다!”
“놓으라고 했다! 난 아직 멀쩡하거든?”
“빡대가리 빡중령님 마빡 튼튼한 거야 누가 모릅니까? 그래도 안 됩니다! 안 그래도 빡대가리인데, 여기서 더 빡치다가 얼마나 더 빡대가리가 될 줄 알고!”
“······.”
겨누었던 마취총을 내려놓으려니, 철구 아저씨가 날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세 번째 목숨 빚인가. ······고맙다.”
철구 아저씨는 겸연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빚이 또 늘었네. 이걸 다 언제 갚나 몰라.”
철구 아저씨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데 말이다, 꼬맹아. 내가 능력이 좀 딸려서 네가 많이 실망할······.”
“내가 언제 아저씨가 아부 잘하고, 라인 잘 타고, 머리싸움 잘하고, 가진 게 많고, 요직에 앉아서 구해줬대요?”
“······.”
“아저씨도 우리 엄마 구해줄 때 그런 거 따졌어요?”
“······그건 아니었지.”
철구 아저씨는 옥분 할머니를 힐끔 쳐다봤다.
“우리 강 여사 목숨을 구해줬는데, 내가 못 할 일이 뭐 있겠어? 살인, 방화, 북파 공작, 뭐든 말만 해!”
“됐어요.”
“내가 너무 고마워서 그래! 미안해서 그래! 내가 뭐든 도움이 되고 싶어서 그래!”
그러자 철구 아저씨의 몸을 감싸고 미약하게 황금색이 빛났다.
심 사장님이 나한테 충성을 맹세했을 때 본 적 있었다.
나는 멍하니 홀린 듯이 입을 열었다.
“아저씨가 미국에서 일을 하나 맡아서 처리해주었으면 하는데요.”
“미국?”
“코라이 게이트.”
철구 아저씨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아저씨도 알고 계시잖아요. 서로 죽고 죽이는 대가리들 싸움판에 휘말렸으면, 승자 편에 붙어 공을 세워야죠.”
철구 아저씨의 눈동자가 지진이 난 것처럼 거칠게 흔들렸다.
“이왕 끈을 잡으려면 중정부장, 아니, 대통령의 끈을 잡는 게 낫지 않겠어요?”
현(現) 중정부장은 코라이 게이트를 수습하기 위해 그 자리에 올랐다.
“아저씨가 미국에서 뇌물 장부를 하나 빼돌렸으면 하는데요.”
“뇌물 장부?”
“대통령과 중정, 우광에서 미국에 뿌린 로비 내역이요.”
“으헉!”
“미국 정재계 주요 인사들과 고위 관료, 무기상과 마약상까지 얽힌 일이에요.”
철구 아저씨의 입이 절로 떡 벌어졌다.
“허어···, 꼬맹아, 내가 그걸 어떻게······.”
“아저씨가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잘하는 일이 있잖아요.”
“내가?”
“그 좋은 촉으로 수상한 놈들 때려잡고, 위험분자 색출하고, 뒤 잡고, 뇌물 장부 찾아내는 거요.”
“······.”
철구 아저씨는 우광건설 뇌물 장부를 찾아 손에 넣은 사내였다.
“중정부장님께 연락해 놓을게요. 담판 지어야죠.”
철구 아저씨는 턱이 빠질 것처럼 입을 떡 벌렸다.
나는 마취총 끝으로 기절한 감찰국장과 서문 머시기를 가리켰다.
“마침 이렇게 중정부장님께 들고 갈 선물도 제 발로 찾아왔잖아요. 하늘이 돕는 것 같지 않아요?”
청탁 겸 제안을 하러 가는 길에 빈손으로 갈 수야 없지.
운이 좋았다.
< 세 번째 목숨 빚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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