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157)
재벌집 만렙 아들-157화(157/416)
< 땡땡이 칩시다 >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왔던 심 사장은 화들짝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예고도 없이 사무실에는 어떻게 나오셨습니까?”
심 사장은 움켜쥐고 있던 강준구의 뒷덜미를 놓았다.
그러고는 단숨에 사무실 문 앞까지 헐레벌떡 달려왔다.
내게 귓속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사무실 안에 우광의 실무진들이 바글댄단 말입니다!”
“왜 이리 유난이에요?”
“보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내가 못 올 데 왔어요?”
“저놈들은 태성의 인재들과는 다릅니다. 태성에 지킬 의리 따윈 없어요.”
심 사장은 걱정하고 있었다.
“저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야심 차게 입사해서 열심히 잘 다니던 회사가 하루아침에 날벼락처럼 쪼개져 태성에 합병되었습니다.”
알고 있다.
“거기에 본인의 의지는 들어가 있지도 않지요. 그러니 저들의 의리는 태성이 아닌 우광을 향할 겁니다.”
심 사장이 뒤를 힐끔 바라봤다.
과외 선생들과 태성의 임원들은 내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서류에 코를 박고 미친 듯이 업무 처리 속도를 올리는 데 반해, 우광의 엘리트 실무진들은 멀뚱멀뚱 보고 있다.
호기심과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서.
“저놈들 입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도련님의 정체를 만천하에 까발리면 어쩌려고요?”
심 사장이 한 자 한 자 끊어 강조했다.
“그건 우리 회사 최대의 특. 급. 기. 밀. 이란 말입니다!”
아무렴 내가 그런 것도 대비 안 하고 여기에 나왔을까 봐?
“도련님은 태성의 브레인, 태성의 미래, 태성의 후원자, 태성의 기둥이십니다!”
심 사장이 내 겨드랑이에 손을 들어 훌쩍 들어 안았다.
순식간에 난 달랑 들려서 심 사장의 품에 폭 안겼다.
“으걋!”
“으헉!”
심 사장과 나는 동시에 다른 의미의 비명 소리를 내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엄하게 주의를 주던 심 사장이건만.
심 사장은 바보처럼 헤벌쭉 웃으며 내 정수리에 뺨을 부볐다.
“아기 냄새가 폴폴······.”
“심 사장님?”
“죄, 죄송합니다. 제가 사흘 밤을 새워가며 철야근무한다고 잠깐 정신 줄을 놨나 봅니다. 흠흠흠!”
심 사장은 재빨리 내 정수리에서 얼굴을 떼어내고 허리를 바로 세웠다.
하지만 심 사장의 손은 여전히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들기고 있었다.
아기 강아지를 만지듯 무척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우광의 김 회장은 저들에게 미래를 약속하고 간자처럼 부리며 태성의 내부 정보와 기술, 인재 등을 빼돌릴 계획을 세웠잖습니까.”
“우광의 인재들을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받아낸 사람은 심 사장님이시고요.”
“도련님은 말보단 문서를 더 믿으실지 몰라도, 전 문서보다 사람의 이기심과 욕망을 더 신뢰하는 편입니다.”
심 사장은 눈을 가늘게 뜨며 뒤를 힐끔 돌아봤다.
흥미진진한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던 우광의 엘리트 실무진들이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딴청을 피웠다.
우광 김대식 회장이 포기하면서 끈 떨어진 연이 된 사람들이었다.
“회장님께서 왜 도련님을 경영 일선에 내세우지 않는지 이해하신다면 좀 더 주의를 기울여주셨으면 합니다.”
“사무실에 여덟 살짜리 꼬마애가 찾아오는 게 그렇게까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일이었어요?”
“크흠! 도련님은 일반적인 여덟 살짜리 어린애가 아니시죠. 거듭 말씀드리지만, 도련님은 태성의 미래, 태성의······.”
어째서일까.
심 사장의 괜한 걱정이란 걸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내가 어떻게 이놈들이 우광의 간자라는 걸 밝혀내게 됐는지 말을 해, 말아?’
그건 청계산에서 속 깊은 면담을 통해서 밝혀낸 일인데.
‘유종태가 청계산에서 정신교육 끝내고 종신계약서까지 받아놨다는 걸 말을 해, 말아?’
안 그래도 심 사장은 회사 일로 신경 쓸 것 많고, 걱정거리가 많은 사람이다.
거기에 내 걱정까지 얹어주고 싶지 않았다.
‘심 사장은 회사 경영은 참 잘하는데. 아랫사람들 험악하게 다루는 데엔 영 젬병인지라.’
나는 혹시나 해서 가져왔던 우광 계열사 실무진들의 치부책과 종신계약서를 슬그머니 등 뒤로 숨겼다.
눈치 빠른 유종태가 서류 가방에 도로 집어넣었다.
“남의 눈치 보다가 내 회사도 제대로 못 굴릴 것 같은데요?”
“그런 일이 없도록 제가 바지사장을 맡은 겁니다. 확실한 방패막이가 되어드리겠습니다.”
“이미 포섭 끝, 회유 완료 상태란 것만 알아두세요.”
염려가 듬뿍 담긴 눈빛은 부드럽고 따스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태성가 막내 도련님이 태성화학 임원들이 귀국하셨다기에 만나러 들를 수도 있는 거죠.”
“아, 우리 애들을 만나러 오셨던 거군요?”
“사무실 식구들도 포함이에요. 다들 열심히 일하고 고생 많이 하셨잖아요. 격려차 왔어요.”
심 사장은 그제야 마음 놓고 활짝 웃었다.
그는 전(前) 태성건설 임원들에게 강제로 연행되고 있던 태성화학 임원들을 돌아보았다.
“다들 정혁 도련님 알지? 자네들을 만나 격려하러 오셨다는군.”
“안녕하십니까, 도련님!”
제일 먼저 신임 태성화학 사장 예정자는 허리를 굽혀 내게 인사했다.
“저는 이번에 새로 태성화학 사장으로 발령받게 된 강준구라고 합니다.”
나는 심 사장의 품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두 손을 모아 꾸벅 배꼽 인사 했다.
“멀리서 고생 많으셨어요. 앞으로 저희 어머니를 많이 도와주셨으면 해요.”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손수레 가득 서류 상자를 쌓고 돌돌돌 밀던 유종태도 반갑게 인사했다.
“태성화학 임원님들, 오랜만입니다. 딱 보기 좋게 구워지셨는데요?”
“유 팀장, 그동안 잘 지냈나? 자네는 왠지 관록이 붙어 신수가 훤해졌는데?”
“에헴, 그건 다 우리 도련님 덕분이지요. 사무실에 처박혀서 두어 달쯤 일만 하다 보면 이렇게 뽀얘지거든요.”
유종태는 강준구 태성화학 사장 예정자에게 손수레 손잡이를 건넸다.
“이거 받으십시오.”
“음? 이걸 왜 나한테······.”
“태성화학에서 처리해야 할 일거리들입니다.”
유종태는 능글능글하게 웃었다.
“월급 받고, 회사 왔고, 숨 붙어 있으면 일해야죠.”
“맞는 말이야. 그렇게 잠깐 손을 놀리고 있으면 서류가 잠깐 사이에 눈덩이처럼 증식한다고.”
심 사장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니 고깝게 듣지는 말고.”
“심 사장님,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을 겪으셨기에 이렇게까지 일벌레로 돌변하셨습니까?”
“궁금해? 알려줘?”
“······아닙니다. 갑자기 안 궁금해졌습니다.”
“사우디에서 구르면서 눈치만 늘었나.”
심 사장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일하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되겠지. 구르고 또 구르다 보면 못 구를 리 없게 된다는 걸 뼛속 깊이 배우게 될 테니까.”
강 사장이 은연중에 떨거나 말거나.
심 사장은 손수레 가득 쌓인 서류를 보면서 웃었다.
“유 팀장, 일거리를 너무 적게 챙겨온 것 같은데? 그거 가지고 되겠어?”
“도련님께서 방금 귀국하신 분들이라고, 태성화학의 최근 현황만 파악하면 된다셨습니다.”
유종태는 멋쩍은 듯 광대를 긁적거렸다.
“그래서 간단하게 이것만 추려서 가져왔지요.”
“간단?”
신임 태성화학 사장 예정자가 반쯤 넋 나간 목소리로 읊조리자, 태성화학 임원들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손수레 가득 실린 서류 상자는 한눈에 보기에도 꽤 크고 묵직했으니까.
반면 모른 척 고개를 처박고 서류만 보고 있던 과외 선생들이 작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우리 도련님은 관용과 인정이 넘치신다니까.”
“시차 고려해서 맛보기로 끝내주시는 거지.”
“저 서류에 저 인원이면 6시간 컷으로 마무리. 조기 퇴근 가능하겠는데요?”
하지만 태성화학 임원진과 우광 계열사 실무진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조기 퇴근?”
“이놈의 회사는 어째 상식적인 업무 기준이란 게 이상하게 설정됐냐.”
“업무 보다 죽은 귀신이 들렸나. 터가 안 좋아.”
반면 전(前) 태성건설 임원들은 몹시 부러워했다.
“사모님 보좌할 사람들이라고 살뜰하게도 챙겨주시네.”
“역시 사람은 라인을 잘 타고 봐야 해. 이게 다 무슨 복이야?”
“공장 한번 안 둘러보고, 노조 한번 안 구슬려보고, 공장 화재 복구 현황 한번 안 물어보고.”
“식은 죽 먹기지.”
나는 사무실 구석에 마련된 책상을 내어주었다.
내가 쓰던 책상이었다.
“서류 보고 태성화학의 현황을 파악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테니까 태성화학 임원분들은 여기서 일 보시고요.”
과외선생과 전(前) 태성건설 임원들은 헉 소리를 내었다.
“이럴 수가! 노골적인 총애잖아?”
“효도를 이렇게 한다고?”
배신감과 허탈감, 그 사이 어디쯤에 걸린 듯한 표정과 말투였다.
그런데 이게 웬걸?
사무실 식구들은 줄줄이 들어오는 수레를 바라봤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손수레의 행렬!
“······손수레가 좀 많은 것 같은데?”
“왜 계속 들어오지?”
“태성화학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간단하게 추린 거랬는데?”
“밑에 트럭이 와 있는데요? 서류 상자가 가득 실렸던데요?”
“······.”
창고에 쌓이는 재고품처럼 서류 상자는 사무실 구석에 쌓여갔다.
유종태는 씩 웃었다.
“우광에게 넘어간 이후 태성화학에 관한 자료들입니다. 이것만 하면 오늘의 업무 끝! 참 쉽죠?”
“······.”
나는 사무실 식구들을 돌아보았다.
“그동안 우광 계열사 인수 합병 관련해서 업무 보느라 다들 고생이 많으시죠?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내 손짓에 유종태가 일수 가방을 꺼내 들었다.
“성과금이 꼭 월말 보너스로 나올 필요는 없겠죠?”
유종태가 재빨리 봉투를 돌렸다.
봉투 겉면에 적힌 이름대로 착착착.
“성과금은 역시 실적만큼 받아가는 거죠.”
성과금이란 소리에 다들 봉투 받기 무섭게 열어봤다.
“어헉, 무슨 성과금을 300만 원이나 챙겨주셨습니까?”
“처, 천만 원?”
이 시절 장관 월급이 25만, 국무총리 월급이 35만 원이었다.
눈에 보이는 격려와 칭찬이었다.
“세상에, 우리 도련님이 내게 손편지도 써주셨어!”
감격 어린 목소리였다.
“일곱 장짜리 손편지 중에서 여섯 장 반이 업무 지시와 교정 사항이지만!”
“칭찬이라고는 달랑 세 줄뿐이지만!”
“세 줄짜리 칭찬 중에서도 두 줄은 부모님 안부와 경조사에 관해서지만!”
“마지막 한 줄이 심금을 울려서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무실 식구들이 매우 기뻐하며 크게 외쳤다.
“동봉해주신 차 키는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
“태성건설의 신축 아파트 입주권이라니! 너무 좋습니다!”
“맙소사! 15일짜리 휴가권은 사랑입니다!”
나는 방긋 웃었다.
“아직 점심 전이시죠? 회식을 저녁에만 하란 법 있어요?”
“아니, 여기에 회식까지?”
“새로 우광 계열사 식구들도 들어왔는데, 업무가 바빠서 그동안 회식도 제대로 못 했었죠?”
성과금은 실적대로 지급하는 만큼, 우광 계열사 식구들의 봉투는 과외선생과 전 태성건설 임원들에 비해 많이 얇았을 터였다.
“사우디에서 고생하신 태성화학 임원진도 오신 김에 함께하시죠. 환영회 겸으로.”
산더미 같은 서류 산을 바라보며 착잡해하던 태성화학 임원진들도 고개가 홱 돌아갔다.
“한우정 풀코스로 준비했어요.”
“우와아!”
“한우정! 한우정!”
한우정은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최고급 한우 전문점이었다.
일 인분 밥값이 웬만한 호텔 레스토랑 코스 요리 가격을 가뿐하게 후려친다는 곳!
그래서 주로 정재계 유명 인사들이 이용하는 만큼 직원 회식 장소로 좀처럼 쓰지 못하는 식당이었다.
“대신 내일을 생각해서 무리하지 말고 술은 딱 한 잔만 하는 거예요?”
사무실 식구들이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실 때.
유종태는 슬쩍 말을 보탰다.
“그럴 줄 알고 한우정에 따로 연락해서 취향에 맞는 잔을 이용할 수 있게 해놨으니, 혹시라도 화채 그릇, 국그릇이 필요하신 분은 슬쩍 귀띔해주시고요.”
“허억!”
“정종부터 막걸리까지, 소주와 맥주부터 와인과 위스키까지 주종도 취향껏 선택할 수 있도록 해놨으니, 혹시라도 곁들일 안주 따로 주문하실 분들도 슬쩍 귀띔해주시고요.”
“으허헉!”
“참고로 귀가 시 이용할 택시비, 혹은 호텔 이용료는 별도로 지급해주시겠답니다. 영수증 없이.”
“허어어억!”
사무실 식구들이 동시에 가슴을 움켜쥐었다.
나는 손뼉을 짝짝 쳐서 주위를 환기시켰다.
“오늘은 회식 후 바로 귀가!”
“······!”
사무실에 갑자기 정적이 흘렀다.
다들 듣고도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직 점심시간도 안 됐는데요?”
“오늘 치 업무량이 이렇게나 밀렸는데요?”
“내일 업무까지 쌓이면 도저히 야근, 주말출근, 철야를 못 면할 텐데요?”
“오늘은 공휴일도 아니고, 명절 연휴도 아니고, 우리 집 기념일도 아니고, 단합대회나 야유회도 아니고······.”
나는 씩 웃었다.
“그동안 다들 열심히 일했잖아요. 눈 딱 감고 먹고 놀고 땡땡이치는 날도 있어야죠.”
“우와아아아!”
“도련님 최고!”
“역시 우리 도련님!”
사무실 식구들이 흥분해서 콧김을 내뿜었다.
나는 강준구 신임 태성화학 사장 예정자와 송선필 신임 태성화학 부사장 예정자를 돌아보며 방긋 웃었다.
“두 분 사장님, 부사장님. 잠깐 얘기 좀 나누실까요?”
“따로 말씀하실 용건이라면······?”
“여천국가산업단지.”
2001년 10월에 여수국가산업단지로 개칭되는 곳.
단일 규모 석유화학단지로는 세계 제1위, 산업단지로서도 동양 최대, 국내에선 울산산업단지와 나란히 어깨를 견주는 거대한 공업단지를 말한다.
“방산 사업과 태성화학 재정비에 관해 긴히 나눌 말이 많을 것 같아서요.”
심 사장이 앞장섰다.
“사장실로 가시죠.”
< 땡땡이 칩시다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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