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161)
재벌집 만렙 아들-161화(161/416)
< 주거니 받거니 >
“내 애로사항을 네가 해결해 줘? 공장 이전할 돈도 없다는 녀석이?”
할아버지는 내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정혁아, 해외 유통망을 뚫는 데 시간과 노력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알긴 하느냐?”
“모르긴 몰라도 많이 들겠죠?”
“아무렴. 우리가 꽉 잡고 있는 국내 시장도 유통망을 제대로 뚫으려면 기본 수십억이야. 하물며 기반도 없는 해외 시장이야 말할 것도 없지. 짐작이 되려나?”
“내가 그것까지 알 바 아니거든요.”
나는 한쪽 눈을 찡긋했다.
“우광이 뚫어놓은 해외 유통망에 밥숟가락 얹기로 말 다 끝낸 후라서요.”
“뭐?”
할아버지가 깜짝 놀라서 날 돌아봤다.
심란한 표정으로 용봉탕만 만지작거리던 김 비서도 고개를 번쩍 들었다.
“도련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우광의 해외 유통망에 밥숟가락을 얹겠다니요?”
“그래, 우광이 미쳤다고 그걸 우리한테 내어줄까.”
“우광은 혼사가 파투 나니까 제일 먼저 유통망부터 끊어버렸습니다.”
“그래, 우리가 웃돈을 얹어주겠다며 여러 차례 설득에 나섰지만, 이놈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고 협상 테이블을 엎더라.”
두 사람이 어림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젓자, 문득 깨닫는 바가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김 비서는 청원각에서 중정부장을 상대하느라 옆방에서 심 사장이 우광의 김대식 회장과 협상하고 있던 걸 모르고 있었군.’
김 비서는 철구 아저씨의 미국행을 서포트하기 위해 중정부장이 돌아갈 때 함께 자리를 떴었다.
“역시 사람은 말보다 문서를 더 믿는다니까요.”
나는 동전 지갑에서 꺼낸, 황금빛이 번쩍거리는 종이를 할아버지 손바닥 위에 올려주었다.
“음?”
종이를 펴본 할아버지는 입을 떡 벌렸다.
“우광이 진짜로 해외 유통망을 내놨다고?”
할아버지가 김 비서를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김 비서, 진짜로 우리 정혁이가 우광의 해외 유통망을 뜯어 왔어! 이것 좀 봐라!”
“아니, 이걸 대체 어떻게······!”
할아버지와 김 비서가 서류에 코를 박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허어, 이놈이 각서에도 멍멍, 왈왈까지 적어놨네. 기가 찬다, 기가 차!”
“······혹시 무슨 암호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암호는 무슨! 이건 그냥 개소리야!”
할아버지는 “김 비서, 자네가 그놈이 대통령 앞에서 짖는 꼴을 봤으면 그런 말 못 하지.” 하고 중얼거렸다.
심 사장은 껄껄 웃었다.
“우광의 김대식 회장이 그걸 적을 때 신신당부한 말이 있었습니다.”
“그게 뭔데?”
“태성의 브레인에게 전하랍니다. 이왕 얹기로 한 숟가락, 눈 딱 감고 전력으로 서포트하겠다고.”
“진짜로 그놈이 자청해서 정혁이를 돕겠단 소리를 했다고?”
“우광은 각하께 충성을 다 바칠 것이니, 태성이 타고 있는 그 배에 우광도 같이 태워달라던데요? 멍멍! 왈왈왈! 하면서요.”
“저런 미친놈!”
할아버지는 미간을 와락 구겼다.
“심 사장, 똑바로 불어 봐.”
“뭘 말입니까?”
“대식이가 맨입으로 이런 걸 내놓는 놈은 아니잖아. 그래서 뭘 요구하던가?”
“코라이 게이트를 닫아주기로 했습니다.”
“뭐? 코라이 게이트를 닫아?”
할아버지는 이젠 미간뿐만이 아니라 입매까지 와락 일그러뜨렸다.
“중정이 달라붙고, 로비스트들이 뛰어다니고, 우광이 돈을 퍼부어대도 여태 못 닫은 게 코라이 게이트야!”
탕!
할아버지는 화가 나서 응접실 테이블을 후려쳤다.
“미국 하원이 벌집 쑤시듯이 쑤셔대고, 미국 신문사들이 혈안이 되어서 파고들고 있어! 이 새끼가 지금 그걸 우리더러 닫아 달라고 요구했다는 건가?”
“예.”
“그럼 우광은 뭐 하고? 손가락만 빨 건 아니잖아. 돈은 얼마나 내놓겠대?”
“자금은 전액 도련님께서 떠맡기로 하셨습니다.”
“이런 얼어죽을! 김형원을 언제 어떻게 잡아들일 줄 알고? 그 경비를 전부 정혁이더러 대래?”
할아버지가 들고 있던 각서를 테이블 위에 탕 내려놓았다.
“이거 도로 가져가라 그래!”
“회장님, 그리 감정적으로 대응하실 일이 아닙니다.”
“수지 타산이 안 맞는다! 이러면 이성적인 대응이야?”
“태성에게 가장 시급한 게 미국 내 유통망을 확보하는 일이잖습니까? 수출 물량이 꽉 막혔다면서요?”
정부는 국가경제를 부흥시킬 요량으로 수출을 부르짖었다.
그리고 그 수출 실적 요구치는 고스란히 대기업이 떠맡게 되었다.
“각하께서 요구한 할당량을 못 채우셨잖습니까. 당장 이번 분기 대미 수출 실적이 펑크가 난다면 문책받으실 겁니다.”
우광과 태성은 오랫동안 긴밀한 관계를 이어오던 동맹 기업이었다.
더욱이 혼약을 맺은 이후엔 협력을 넘어 공생 관계까지 구축했었다.
태성이 태성유통으로 국내 유통망을, 우광은 해외 유통망을 뚫어 같이 사용해왔다.
“올해는 대선과 총선이 겹쳐 각하의 심기가 몹시 예민하잖습니까. 크게 낭패를 볼 겁니다.”
“후우.”
“수출 실적이 부진한 기업에게 정부가 어떻게 압박하는지, 국책 사업에서 어떻게 밀려나는지, 이권다툼에서 어떤 불이익을 보는지, 경제정책 수립 과정에서 어떻게 배재당하는지.”
“알아!”
한숨을 내쉰 할아버지가 착잡한 눈으로 나를 돌아봤다.
“우광이랑 혼사 파투 냈기 때문에 태성이 곤란해졌다고 생각했느냐?”
그게 사실이니까.
딱히 부정할 생각이 없어서 난 입을 다물었다.
그럴수록 할아버지의 한숨이 더 깊어졌다.
내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무게가 더해졌다.
“그래서 이 쪼끄만 것이···, 부모 혼사 때문에 할애비가 곤란해졌다고···, 우광의 유통망을 가져와서 태성의 숨통을 틔워주겠다고······.”
차마 아니라곤 말 못 하겠다.
그런데 그 이유가 전부인 건 아닌데.
솔직히 말하면 내 사심도 살짝 얹혀 있단 말이지.
“태성은 한 가족! 우리 부모님 때문이 아니더라도 할아버지와 태성이 곤란한 상황이라면 저도 도와야죠.”
할아버지가 내 곤란을 모른 척하지 않았듯.
나 역시 할아버지의 곤란을 조금 덜어주면 좋지.
물론 거기엔 내 사심도 살짝 얹혀 있지만서도!
“이젠 할애비 밥그릇까지 챙겨주려고?”
“안 될 것도 없잖아요? 내리사랑만 사랑이에요?”
“허······!”
할아버지가 나를 꽉 끌어안았다.
“나만 보면 돈 달라고 징징대는 자식새끼들 때문에 힘이 쪽 빠졌었는데, 우리 정혁이 덕분에 할애비가 힘이 난다.”
정수리 위로 할아버지의 나지막한 웃음이 진동처럼 흘러들었다.
“정혁아, 할애비 걱정은 넣어 둬라.”
“할아버지.”
“이 할애비 그리 능력 없는 사람 아니다. 까짓것 해외 유통망이야 돈 더 넉넉하게 풀어서 뚫어내면 그만이야!”
쉽지 않을 텐데.
그게 녹록했다면 이번 분기 수출 실적 문제가 불거져 나올 일도 없었을 테지.
해외 유통망 때문에 김 비서가 야근하면서 고생할 일도 없었을 것이고.
“아니면 웃돈 듬뿍 얹어서 다른 그룹 유통망을 빌려쓰는 방법도 있고!”
굳이?
우광에게서 뜯어온 해외 유통망을 눈앞에서 확인하고도?
“코라이 게이트 때문에 그래요?”
“코라이 게이트가 뉘 집 개 이름이야? 김형원은 그리 호락호락한 놈이 아니야.”
할아버지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놈 비열하고 잔혹한 놈이다. 안 그래도 손속 악독한 놈이 미국 정부의 보호까지 받고 있어. 절대 쉽게 잡히지 않을 게다.”
“김형원을 잡아올 사람이라면 이미 미국으로 보냈는데요?”
“뭐?”
“김형원의 거주지 및 위장 신원까지 파악 끝냈거든요.”
나는 씩 웃었다.
“김 비서님이 왜 요즘 매일 해외 전보 보내면서 철야한다고 바빴겠어요?”
미국으로 날아간 철구 아저씨 서포트한다고 여기저기 연락할 일 많았을 것이다
‘철구 아저씨는 간첩 수색의 스페셜리스트랬어. 수상한 놈, 구린 놈, 이상한 놈 찾아서 때려잡는 게 특기랬으니, 빠르면 석 달 내로······.’
똑똑똑.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렸다.
유종태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종이 한 장을 흔들었다.
“도련님, 회장님, 사장님, 김 비서님! 기다리고 기다리던 따끈따끈한 소식이 방금 이렇게 막 도착했습니다!”
“무슨 소식?”
“빡대가리 빡중령님이 김형원을 잡아서 끌고 오고 있답니다!”
이렇게 빨리?
아니, 미국 간 지 얼마나 됐다고?
아직 일주일도 안 됐는데?
“외무부와 국방부의 도움을 받아 군용기에 태워서 한국으로 이송 중이라는데요?”
유종태가 종이를 가리키며 능글능글하게 웃었다.
“아마 중정에도 이것과 똑같은 전보가 들어갔지 싶습니다만?”
“뭐야?”
할아버지가 독수리처럼 전보용지를 낚아챘다.
과연 유종태가 말한 그대로 적혀 있었다.
“정말로 김형원을 잡았다고?”
“외무부와 국방부에서 군용기까지 내줄 정도라면······.”
기가 차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이렇게 술술 풀릴 일인가? 중정이 6년 동안 못 잡은 놈을 어떻게······.’
따르릉! 따르릉!
사장실 전화기가 크게 울렸다.
심 사장보다 먼저 김 비서가 전화를 받았다.
그러더니 바로 전화를 끊고 다이얼을 돌렸다.
“태성그룹 김 비서입니다. 중정부장님께서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김 비서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차분한 어조로 통화를 끝냈다.
달칵.
“회장님, 중정부장님의 전언입니다.”
“그래, 뭐라고 하더냐?”
“확실하게 빚 달아두겠답니다. 그러니 김형원을 청와대에 끌고 가는 건 중정에게 맡겨달랍니다.”
“중정부장이 그런 소리를 해?”
할아버지는 입을 떡 벌렸다.
“게다가 빚이라니?”
“그게···, 사실은 정혁 도련님께서 중정부장에게 미리 김형원을 잡아오는 것을 조건으로 약속을 받아 놓으신 게 있습니다만.”
“정혁이가?”
“예, 김형원을 잡고 코라이 게이트를 닫는 대가로 중정부장님께서 태성의 요구를 세 가지 들어주겠다고 단언하셨습니다.”
할아버지가 눈을 부릅뜬 채 날 돌아보았다.
“중정부장에게 빚을 세 개나 달아둬?”
“그게 대통령께서 중정부장에게 하달한 최우선 순위 임무였으니까요.”
“아니, 그건 나도 안다만. 김형원을 이렇게 간단히 잡아들인다고? 중정부장이 지금껏 날뛰어도 못 한 일을, 정혁이 네가?”
“에이, 말은 바로 하셔야죠. 제가 아니라 철구 아저씨가 잡았는데요?”
“그놈을 누가 골라서 보냈는데?”
“······저요.”
할아버지는 몹시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어버버 말했다.
“아니, 정혁아, 너 진짜 대체 어떻게 그런······.”
“요령껏? 재주껏? 능력껏?”
“······.”
역시 안 믿으시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운 좋게 얻어걸렸다고 하면 믿으실래요?”
“······.”
왜? 뭐? 왜!
나도 이렇게 운 좋게 얻어걸릴 줄은 몰랐지!
그런 건 철구 아저씨한테 가서 따지든가!
“어쨌거나 김형원을 잡아들였으니까 코라이 게이트는 곧 닫히겠네요?”
사장실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 동시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와, 그러니까 우광이 그렇게 돈을 때려 붓고도 못 닫은 게이트를 정혁 도련님께서 단번에······.”
“결국 경비라고 해봤자 푼돈 좀 들이고, 우광의 해외 유통망과 중정부장의 세 가지 약속을 얻어내신 거네요?”
“그 김형원을······. 중정부장이 그렇게 이를 갈면서 사방으로 들쑤셔대도 못 잡은 놈을······.”
“대체 무슨 수작을 어떻게 부리면 이렇게 금방 뚝딱 코라이 게이트를 닫아버리는 겁니까?”
“허, 도련님께선 대단히 유능한 조력자를 얻으셨나 봅니다.”
“이 바닥에선 운도 능력이고, 수완도 능력이에요. 이 역시 전부 정혁 도련님의 힘입니다.”
할아버지가 호탕하게 웃으며 테이블을 탕탕 쳤다.
“하하하, 이거 우광의 해외 유통망을 날로 먹게 생겼구나!”
해외 유통망을 뚫는 데 시간과 돈이 얼마나 들었으려나?
횡재였다.
“하하하, 게다가 중정부장에게 빚까지 지웠다니! 그것도 세 가지나! 이건 천금을 주고도 못 얻지!”
권력자의 비호는 쉽게 얻기 힘들다.
할아버지가 날 번쩍 들어서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우리 금쪽같은 내 새끼! 만금을 내줘도 아깝지 않은 내 새끼! 어이구, 우리 이쁜이!”
쪽쪽쪽!
할아버지의 뽀뽀 세례는 몹시도 부담스럽게 쏟아졌다.
“우리 복덩이! 우리 똘똘이! 내 새끼 덕분에 매번 일이 아주 그냥 술술 풀려!”
할아버지가 날 보란 듯이 들어 올리며 호탕하게 외쳤다.
“늬들은 이런 손자 없지? 우리 정혁이만 한 손자 있는 놈은 어디 한번 나와 보라고 해! 하하하!”
할아버지가 뿌듯하게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약속대로 태성화학 공장 이전 비용은 이 할애비가 책임지마!”
난 새끼손가락 약속보다는 문서를 더 믿는 사람인데.
까짓것 기분이다.
“약속하신 거예요.”
“그럼, 할애비를 몰라? 공 세운 만큼 포상해야지!”
“알죠. 믿죠.”
새끼손가락을 건 채 할아버지도 나도 흡족하게 웃었다.
내가 좋아하는 거래는 역시 윈윈.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양쪽 모두가 만족할 만한 판을 짜는 게 베스트거든.
“그럼 차용증은요?”
“이렇게 처먹고도 차용증 쓰라고 우기면 내가 도둑놈이지. 외려 차용증을 써주면 또 모를까!”
“그러니까요.”
나는 동전 지갑에서 미리 적어온 차용증을 슬쩍 꺼냈다.
몽블랑 만년필까지 함께 세트로 내밀었다.
“잘 읽어보고 서명 날인하세요.”
“······.”
원래 가까운 사이일수록 돈거래는 확실해야 의가 안 상하는 법이다.
* * *
대통령이 거의 내달리는 것처럼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주파해 청와대 집무실 문을 열었다.
벌컥!
“김형원을 잡아 왔다고?”
“예, 각하.”
중정부장이 김형원의 목에 건 목줄을 잡아당겼다.
“꿇어.”
우당탕탕!
수갑과 족쇄는 물론 포승줄로 꽁꽁 묶인 김형원은 켁 소리와 함께 넘어져 바닥에 질질 끌려갔다.
그 옆에는 검은 양복을 차려입은 박철구가 권총을 찬 채 열중쉬어 자세로 서 있었다.
< 주거니 받거니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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